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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로만 리켈메

last modified: 2015-02-16 05:24:00 Contributors


이름 후안 로만 리켈메 (Juan Román Riquelme)
생년월일 1978년 6월 24일
국적 아르헨티나
출신지 산 페르난도
포지션 미드필더
신체조건 183cm, 75kg
유스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1992~1995)
보카 주니어스(1995~1996)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1996~2002)
FC 바르셀로나(2002~2003)
비야레알 CF(임대)(2003~2005)
비야레알 CF(2005~2007)
보카 주니어스(임대)(2007)
보카 주니어스(2008~2014)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2014)
국가대표 51경기 17골

현대 축구의 반역자
그러면서도 현대 축구에서 살아남은 기이한 능력의 소유자

Contents

1. 소개
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
4. 기타

1. 소개

출신인 동네가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 남쪽에 있는 빈민가 지역 출신에 외모가 약간 컨츄리틱 한 외모를 가져서 농부라는 별명이 생겼다. 딴에는 또래이면서 동안인 파블로 아이마르와 비교돼서 이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풍문도 있다.[1] 실제로 아이마르는 일찌기 유럽에 진출했지만, 리켈메는 약간 늦게 진출하여 일찍 돌아온 케이스. 아이마르는 발렌시아 CF, 레알 사라고사, SL 벤피카를 거쳤고, 리켈메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FC 바르셀로나비야레알 CF를 거쳐 다시 보카로 리턴한 케이스이다.[2]

일찍이 남미의 지네딘 지단으로 유명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지단의 마지막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경기에서 눈치 없이 지단과 레알 마드리드를 신나게 털어버린 전적이 있다.[3] 그리고 경기 후 지단에게 유니폼을 받기도 하였다.

비야레알이라는 중상위 클럽에서만 활약한 덕분에 다소 인지도가 낮을 수 있으나,[4] 당시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중소 클럽 중 하나였던 비야레알의 중심 선수로 자리잡아 2004-05 시즌 리그 3위로 이끌며 2005-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따냈을뿐만 아니라 다음 시즌이였던 2005-06 시즌에는 비야레알을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이끌기도 했으며[5] 당시 8강전의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리켈메 커리어상에서도 최고 불릴만한 백미. 인터 밀란 선수들을 문자 그대로 가지고 놀았으며 이 경기는 축구팬들에 의해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마지막 11대 1의 경기"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다만 수비력이 제로에 가깝다는 단점이 있으며, 그를 기용하려면 압박으로 대변되는 현대축구의 흐름에 역행해 팀을 그 한명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리켈메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시에는 팀 전체가 죽어버리는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리켈메의 컨디션이 급속도로 하락한 것이 당시 비야레알이 부진에 허덕이고 있었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며, 이에 구단 측에서는 리켈메의 컨디션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시즌 도중 리켈메를 고국인 아르헨티나로 휴가를 보내주는 결단까지 내렸다. 하지만 복귀 이후에도 리켈메의 컨디션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고, 급기야 주전에서 제외된 것으로 인해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마누엘 페예그리니와 불화가 생겨 시즌 종료 후 인터 밀란 등 여러 강팀으로의 이적설이 돌았다.[6]

하지만 본인은 친정팀이기도 한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했으며, 2014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로 이적한 뒤 한국 시간으로 2015년 1월 2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 국가대표

2006년 독일월드컵에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플레이메이커로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콩락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하엘 발락이 뛰던 독일에 의해 아쉽게도 8강에서 아르헨티나가 탈락해 더 이상 뛰지는 못했다.[7]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체스코 토티와 함께 공동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며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토티의 이탈리아가 우승했단걸 감안한다면 8강에서 멈춰선 것 치고는 정말 엄청난 기록이다.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대활약을 펼치며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리켈메가 중심이 된 아르헨티나는 당시 피파 랭킹 1위에 각종 스타 선수들이 모두 즐비한 팀으로 대회 우승후보 1순위로 지목받았다. 그런데 결승에서 주전이 대부분 빠진 브라질에게 3-0으로 졌다.[8] 리켈메 본인은 어이없게도 밥장군에게 털렸다.[9] 안습.

하지만 이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던 디에고 마라도나와는 여러 가지 구설수를 낳았고 2008년 이후 국가대표팀에 더 이상 발탁되지 못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그의 순간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지만, 컨디션 좋은날엔 아무도 공을 뺏을 엄두조차 내지못했던 압도적인 볼키핑 능력과 개인기, 베컴만큼은 아니지만 유럽 최고급의 크로스와 환상적인 프리킥 등의 시즌 15골도 기록한적이 있는 데드볼리스트로서의 능력, 마라도나 이후 최고로 평가받는 창의성, 그리고 마라도나, 베론, 루이코스타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고까지 평가받는 찔러주는 킬패스 능력까지...플레이메이커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대부분의 능력을 사기적인 퀄리티로 지니고 있었다. 리오넬 메시가 등장하기 이전 기술적으로 아르헨티나의 10번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는 리켈메였고 남미의 지네딘 지단이라는 별명은 이것 때문에 붙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뛰는 팀은 그에게 플레이 스타일을 맞추어 주어야 하며, 그가 부진한 날은 팀 전체가 부진할 가능성이 있고, 템포를 끊어먹을 가능성이 높은 플레이스타일 때문에[10] 감독들이 쉽게 선호할 수 없는 선수가 아니었음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인테르, 레알마드리드를 비야레알, 보카를 데리고 털어버린 경기를 유튜브에서 보면 왜 이 선수가 더 성공하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11]

또 플레이가 스피드가 느린 상태로 자신의 개인기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볼을 키핑하는 모습이 땅을 일구는(…) 듯한 모습이라는 소리가 있다. 킬패스가 주특기이긴 한데, 킬패스 깎는 노인

여러모로 '현대 축구의 반역자'라는 별명이 그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별명이기도 하다.

4. 기타

농켈메라는 별명이 있는데 왜인지 궁금하다면 당장 juan roman riquelme를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해봐라. 흉년이 닥친 농부의 표정을 볼 수 있다. 비슷한 뜻으로 덕호라는 것이 있다
이전까지는 리켈메 하면 누구나 농부를 떠올렸지만 2010 월드컵을 기점으로 라리사 리켈메에게 추월당했다. 안습.
그래도 2014년 10월 26일 기준으론 현재 네이버 검색창에 리켈메를 치면 후안 로만 리켈메가 나오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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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아이마르는 리버 플레이트의 10번이었고 리켈메는 보카 주니어스의 10번이어서 라이벌 의식이 있을만했으나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이다.
  • [2] 아이마르는 2000년대 초반 발렌시아에서의 대활약으로 제2의 이즈카 멘디에타라 불리며 호나우지뉴, 제바스티안 다이슬러와 함께 세계최고의 유망주로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오히려 리켈메는 바르셀로나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유망주 시절 유럽에서는 아이마르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그들의 전성기 나이에는 리켈메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아르헨티나 내에서 에이스 자리는 리켈메가 받게되었다.
  • [3] 이래뵈도 보카시절 레알 마드리드 털기, 비야레알 시절 인터 밀란 털기 등 한 팀 찍어서 탈탈 털기의 고수다...역시 농부.
  • [4] 그래도 FM2008까지는 좋았다. FM 2010도 단기적으로 보자면 가격 대 성능비로 상당히 좋은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 잘만 쓰면 스탯왕도 가능하다. 1~2년이지만...
  • [5] 당시 아스날 FC와의 4강전에서 합계 스코어 0-1로 아쉽게 탈락했으며, 특히 2차전에서 리켈메가 시도한 PK를 아스날의 옌스 레만이 막아내는 장면은 리켈메와 레만의 교차편집을 통해 긴장감을 극도로 높혔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 [6] 참고로 이 때 리켈메가 빠진 자리는 칠레에서 새로 영입한 티아스 페르난데스로 메웠다.
  • [7] 여담으로 이 때 아르헨티나와 독일은 승부차기까지 돌입했는데, 공교롭게도 월드컵 직전 챔피언스 리그에서 PK 맞대결을 펼쳤던 레만을 다시 적으로 만났다...만 리켈메 본인은 승부차기에 나서지 않았고 팀은 레만의 선방쇼로 인해 2-4로 패배를 맞았다.
  • [8] 이 대회를 계기로 둥가의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알려졌다.
  • [9] 다만 이 당시 밥티스타는 나름 가능성있는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 [10] 피지컬이 안 좋단 말로 압축하기엔 실제로는 아르헨티나 10번 선수답지 않게 덩치가 좋아서 몸싸움도 되고 속도도 맘 먹고 뛰는 경우는 그렇게 느리지 않다. 다만 본인이 빨리 뛰는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활동량도 적은데다 템포 자체를 느리게 플레이 하다보니 완전히 이미지가 거북이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첨언하면 몸싸움에 한정할 경우에는 리켈메는 유럽 탑클래스 레벨이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이 유럽에서는 발재간이 아무리 좋아도 몸이 버텨내지 못하면 공을 키핑하고 있을 재간이 없다. 게다가 리켈메처럼 템포까지 느린 축이라면 몸싸움은 필수. 실제로 당시 비야레알 경기를 살펴보면 리켈메가 상대팀 수비 둘 정도를 등진 상태에서 어깨싸움만으로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11] 현대 축구에서 고전적 플레이메이커들이 다 그렇다. 상술한 요소도 요소로서 컨디션도 컨디션이지만 부상이나 경고 누적이라도 당하면 수가 없다. 팀 전체가 리켈메에게 맞춰져 있는데 어디서 대체재를 구한단 말인가? 또 상위권 팀이라면 3개 대회를 운영할 텐데 맞춤팀이니 플레이메이커가 없으면 경기력이 안 날 거고 뛰게 하면 3개씩이나 뛰면서 어떻게 탈이 안 나길 바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