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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last modified: 2015-04-14 21:05:06 Contributors



위 :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 8강전에서 영국을 승부차기로 꺾고 4강 진출을 확정짓고.
아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8강 스페인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짓고 난 후. 그리고 그와 관련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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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Unknown)]

쿨타임 십 년짜리 웃음.



"마치 두 명의 말디니가 서 있는 것 같다." - 세계 올스타 경기에서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경기를 조율하는 모습을 본 이탈리아 해설자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다. 아시아에선 비슷한 선수조차 찾아볼 수 없다. 나조차도 그의 말을 따르며 볼을 찼다. 아쉽다. 그는 더 큰 무대로 갈 수 있었다." - 일본의 축구선수 나카타 히데토시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다." - KBS의 해설위원 이영표[1]
1992년 K리그 MVP
용환(대우 로열즈) 홍명보(포항제철 아톰즈[2]) 이상윤(일화 천마)

199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창현
FW
근재
MF
홍기
MF
김현석
MF
신태용
MF
태하
MF
동철
DF
홍명보
DF
종화
DF
박정배
GK
사리체프
199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상철
FW
라데
FW
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기태
GK
사리체프
199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황선홍
FW
노상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김현석
MF
판근
MF
아미르
DF
영일
DF
홍명보
DF
기태
GK
사리체프
199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라데
FW
세르게이
MF
신태용
MF
데아
MF
홍명보
MF
하석주
MF
김현석
DF
윤성효
DF
김주성
DF
기태
GK
김병지
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2 FIFA 월드컵
골든 볼
올리버 칸
실버 볼
호나우두
브론즈 볼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의 레전드. 등번호 20번. A매치 136경기 10골[3]. 2002 피파 월드컵 브론즈볼
한 때의 영웅은 어쩌다 역적이 되었나??
이름 홍명보 (洪明甫 / Hong Myung-Bo)
생년월일 1969년 2월 12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본관 남양 홍씨
182cm
혈액형 B형
가족 부모, 1남 2녀 중 첫째, 배우자 조수미[4] 2남[5]
선수시절 소속팀 상무(1991~1992)
포항 스틸러스 (1992~1997)
쇼난 벨마레 (1997~1998)
가시와 레이솔 (1999~2002)
포항 스틸러스 (2002~2003)
LA 갤럭시 (2003~2004)
스태프 커리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5~2007/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2007~2008/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0 (2009~2012/감독)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2009~2012/감독)
FC 안지 마하치칼라 (2013/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3~2014/감독)
선수시절 포지션 수비수
국가대표 136경기/10골
별명[6] 흥부. 홍명바[7]. 통칭 아시아의 리베로, 영원한 캡틴, 홍명보험
홍띵보, 돌명보, 홍보, 명보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2.1. 플레이 스타일
2.2. 커리어
2.3. 선수생활 중 사건/사고
2.3.1. K리그 드래프트 파동
2.3.2. LA 갤럭시 이적 꼬장
2.3.3. 잦은 항명 및 태업 의혹
3. 은퇴 후 국가대표 코치 및 코치 시절
3.1. 청소년 대표부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까지
3.2. 2012 런던 올림픽
3.3. 안지 코치 연수
3.4.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3.5. 감독으로서의 홍명보
3.6. 국가대표 감독직 사퇴
4. 이후 행보
5. 여담

1. 개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이자 최고의 올림픽 감독. 그리고 최악의 월드컵 대표팀 감독

선수 시절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이자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끄며 브론즈볼까지 수상했던 대한민국 축구의 영웅. 영원한 캡틴.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사상 최초로 대표팀 동메달을 따내어 수많은 유망주들의 병역문제를 해결해주고 한국 축구의 위상을 알린 은사.

그러나 월드컵 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능력도 없었고 자신이 세운 원칙을 저버린채 의리 논란까지 불러 일으킨 한국 축구 국가대표 역사상 최악의 감독

명선수가 명감독이 된다는 보장이 없고, 성공한 아마추어 지도자가 성공한 프로 지도자라는 보장이 없음을 말해준 반면교사. 야구에 선동열이 있다면, 축구엔 홍명보가 있다.

2. 선수 시절

2.1. 플레이 스타일

U-16 대표팀부터 월드컵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수비수. 황선홍과 함께 9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수퍼 스타. 대한민국 선수 가운데 A매치 최다 출장(136경기)과 유일한 월드컵 4회 연속 참가 기록을 가졌다. 거기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시아 월드컵 최다 출전경기 기록 보유자이다. 총 16경기.[8]

고려대학교 재학시절엔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지만 남대식 감독이 스위퍼의 재능을 간파하면서 재능이 꽃피게 된다. 수비수로서 피지컬과 스피드는 떨어지는 편이지만, 탁월한 예측력과 전술이해력을 바탕으로 공이 가는 길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수비진을 조율했다. 4백보다는 3백에 특화되었고 일반적인 센터백보다는 스위퍼의 위치에 적합했다. 출신이 미드필더인지라 롱 패스가 상당히 정확했고 그로 인해 꽤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줬으며 같은 포지션에 같은 성향을 지닌 프란츠 베켄바워와 비견되기도 했다. 카리스마와 리더쉽으로 팀 동료 사이에서도 항상 신망이 두터웠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사실 홍명보는 순수한 리베로라고 부르기엔 애매하다. 그의 플레이는 센터백으로서 리베로란 개념보단 독일식, 정확하게는 바이에른 뮌헨식 앵커맨에 가깝기 때문이다. 3백 시스템에서 중앙 3백 중 2명을 대인마크용인 스토퍼로 두고, 나머지 한 명의 센터백을 스위퍼로 두되 이 스위퍼가 거의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울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 스위퍼를 앵커맨이라 불렀다. 이 앵커맨은 수비때는 스토퍼 2명을 백업하는 수준의 수비 요구치가 낮으며 피지컬 요구치도 상대적으로 낮은 대신 공격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뛸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는 포지션으로, 80~90년대 독일 국가대표의 로타어 마테우스,마티아스 잠머, 조금더 올라가면 현역시절 울리 슈틸리케등이 이 포지션에서 활동한 선수.

리베로란 게 엄밀하게 얘기하면 포백 시스템에서의 수비수를 가리키기 때문에 홍명보를 리베로라 부르긴 어렵다. 물론 개념이나 이름이야 해석하고 붙이기 나름이니 리베로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홍명보가 리베로라고 불리게 된 정확한 계기는 독일의 앵커맨을 일본 신문지상에서 리베로로 번역했기에 일본에선 홍명보를 리베로라 불렀고 이 호칭이 베켄바워와 비견할 정도로 간지도 나는 김에 어영부영 한국에도 정착하게 되었다.

바이에른식 앵커맨 자체가 그렇긴 하지만 홍명보는 실제로 써먹기 굉장히 어렵고 애매한 선수였는데, 정확한 롱패스를 활용한 빌드업 능력을 갖고 있었고 중거리 슈팅도 제법이었지만 정작 프로에서 미드필더로 포지션 체인지 했을때는 기본기 부족과 약한 피지컬 때문에 처참하게 실패했다. 홍명보가 한국이 아닌 다른나라에서 태어났거나 한 10년 일찍 태어났더라면 수비형 미드필더가 적합할거란 말이 많았다. 한국이 아닌 다른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좋은 유소년 교육으로 기본기가 튼실할 거고, 10년 전이라면 압박이 덜하니까... 아니면 20년 늦게 태어나서 좋은 유소년 교육을 받았어도 기본기가 탄탄해서 기성용 처럼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잡았을 거라는 말도 있었다.

압박은 달라진 현대축구의 가장 큰 명제이자 홍명보의 가장 심각한 문제였는데, 옛날 경기를 돌려보면 홍명보의 플레이는 지금 기준으로 볼 때, 끝내주는 시야, 두뇌, 패싱력을 보유했지만 볼 트래핑을 비롯한 기본기가 민망한 수준인데다, 탈압박은 커녕 수비수와의 1:1대결조차 드리블로 뚫어내지 못하는 키핑, 드리블 능력의 소유자였다. 미드필더가 아닌 4백의 센터백으로 기용해도 처참했던 건 마찬가지였는데 일단 본인 수비가 별로였다. 쉽게 말해서 몸싸움은 수준 이하고 1:1대인마크도 좋지 않았다. 홍명보의 1:1에서 수비스타일은 '저지'이지 볼 쟁탈이 아니었다. 그래서 본인을 도와줄 선수를 기다리며 주춤주춤 뒷걸음 치는 모습을 자주보였다. 그나마 헤딩은 평타는 쳤으나 어디까지나 평타일뿐 헤딩도 훌륭한건 아니었다.기본적으로 헤딩을 하려면 몸싸움을 버텨야지 쓰리백 시스템에서 우리편 태클이 강한 선수와 반대편 드리블이 좋은 선수를 맞붙이고 우리편 헤딩이 좋은 선수와 상대편 타겟터를 맞붙이는 등 수비수들을 조종하며 공수의 진퇴를 결정하는 데는 능하지만 정작 수비적인 능력이 클래스에 비해 많이 애매한 데에 있다.

그런데 어떻게 훌륭한 수비수인가? 앞서도 언급한 탁월한 예측력으로 패스 커트와 슛각도 좁히기 or 블록 등에 능했으며 다른 스토퍼가 먼저 상대를 막다가 뚫리면 귀신같이 나타나 공격을 끊는 커버능력으로 수비진의 전설로 남았다. 홍명보의 결정적인 선방 장면들은 수비적 기본기가 뛰어나서라기보단 타이밍을 결정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경우가 많다. 즉 1:1보다는 다대일이나 막 1:1을 뚫은 상대를 저지하는 능력이 좋다. 순간적인 센스가 좋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1:1은 약하지만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능력을 발휘하는 커맨더형 수비수이다. 다만 커멘더형 수비수라고 해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잘짠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홍명보는 항상 3백에 특화되있던 선수였다. 4백은 필연적으로 중앙수비가 직접적으로 상대 공격수와 맞대결하게 되기 때문에 홍명보를 4백의 센터백으로 1명의 파트너만 붙였다간 수비가 박살난다.

거스 히딩크도 2002년을 준비하며 몇 차례나 홍명보를 4백 시스템에 끼워넣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홍명보가 장기부상을 당한 김에 홍명보를 아예 버리고 4백으로 맞추려고 했다.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4백의 센터백 자리에는 맞지 않는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끝내 히딩크가 홍명보를 버릴 수 없었던 건 탈아시아급이라 할만한 홍명보의 딥라잉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버릴 수 없었고, 자신에게 알맞은 전형 위에 세워 놓으면 태양과 같은 리더였기 때문이다.[9] 2002년 월드컵때 대표팀 중원을 지킨 유상철김남일은 빼어난 경합능력과 수비력, 활동량으로 유럽선수들과 대등하게 맞설순 있었으나 패스를 활용한 빌드업 능력은 없었다. 홍명보를 버릴 경우 대표팀의 공격 루트는 측면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홍명보에게 어울리는 3백을 구축한 2002년 국가대표팀은 여러가지 조건이 좋고 경기력과 홈 버프를 받아서 역대 최고의 성과를 내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홍명보는 커리어 내내 클럽에서는 피지컬 압박이 덜한 J리그에서 황제로 군림했고, 국가대표에서는 확실한 자신의 보디가드들을 두고 있어야 능력을 100%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축구의 가장 큰 명제인 압박의 문제로 인해 피지컬과 탈압박이 약했던 홍명보식 한국형 플레이메이커 즉, 몸싸움과 드리블보다는 패스로 빌드업과 게임 지휘를 맡던 중앙 미드필더자리는 바로 뒷 세대인 윤정환, 이관우에서 한동안 끊어졌다가, 기성용이 이 자리를 이어받아 스스로 스텝업해서 계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기성용 항목에도 설명이 나와있지만, 기성용이 홍명보의 현대축구판 업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2.2. 커리어

1989년 겨울 이회택 감독이 고려대학교의 홍명보를 국가대표팀에 선발. 동년배 황선홍과 함께 막내였지만 이미 황선홍은 1988년 아시안컵을 통해 스타가 되었기에 홍명보 본인은 꽤나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주전 수비수였던 스위퍼 조민국이 부상을 당해 대안으로 국가대표로 뽑혔고, 1990년 2월 노르웨이와 친선경기에서 대표팀 데뷔했다. 그리고 이회택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이탈리아 월드컵에 선발출장했다. 그러나 대표팀은 졸전을 거듭하여 월드컵 진출팀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처참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홍명보는 '향후 10년 국가대표팀을 대표할 선수'로 평가받았다.

1993년 도하 월드컵 지역예선 한일전에서 0:1으로 패배후 홍명보는 '이후 내가 또 한일전에서 진다면 축구화를 벗겠다'고 맹세했다고. 그리고 이 맹세는 끝까지 지켜냈다.하지만 동아시아컵에서 일본한테 지면 어떻게 될까? 결국 졌다. 그런데 동아시아컵 당시에는 감독이었기 때문에 축구화 벗은 것은 맞다.
  •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전에서 일본과 2차례 대결했는데 이미 출전을 확정지은 대표팀이 홈경기에서 사지에 몰려 있던 일본에게 0:2로 패배한 바 있다. 이때 홍명보는 경고 누적으로 1경기 출전정지가 되었기 때문에 출전할 수 없었다.

1994 월드컵(2골 1어시스트), 아시안게임 대표.
1996년 아시안컵 대표.
1998년 월드컵 대표.
2001년 컨페더레이션컵 대표.
2002년 월드컵 대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 최우수선수 3위에 해당하는 'FIFA 브론즈볼' 수상.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K리그에 진출할 당시 최대급 대어였으나, 황선홍과 함께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해 파문을 일으킨다. 이후 상무를 제대하고 드래프트를 통해 부산 대우(現 부산 아이파크)에 지명됐지만 포항에서 이미 가급여를 받고 있었고, 2중계약 파문으로 번질수 있었지만 3:1 트레이드를 통해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
1992년 데뷔 첫해 MVP 수상. K리그 베스트 11. 포항 우승.
1994년 세계올스타전 출전. 아시아축구연맹 수비상. K리그 베스트 11.
1995년 세계올스타전 출전. 5월 10일 유공(현 제주)전에서 48m 프리킥 골 성공.(당시 최장거리 골) K리그 베스트 11.
1996년 피도컵 전북전에서 해트트릭 기록. K리그 베스트 11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독일전에서는 디팬딩챔피언인 독일을 상대로 ㅎㄷㄷ한 활약을 보여줘서 독일 선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러나 팀은 2-3으로 패배했고 이로 인하여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2골을 기록한후 당시 대표팀 기술고문이었던 비쇼베츠를 통해 유럽 3개팀[10]으로부터 오퍼를 받았지만 계약 문제[11]로 유럽진출이 거듭 무산되다가 마침내 '1996시즌이 끝나면 해외진출을 허락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이적할 팀을 물색,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본행을 결심한다.

97년 7월 J리그 벨마레 히라츠카 입단. 당시 이적료 11억. 세계올스타전 출전.
99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J리그 가시와 레이솔 이적. 세계올스타전 출전.
  • 당시 말디니와 함께 뛰면서 수비라인을 조율하는 홍명보의 모습을 보고 외국 해설자가 "마치 두 명의 말디니를 보는 것 같다"라고 언급한 바 있음.(이 부분은 사실 홍명보가 주위선수들에게 지시하는걸보고 해설자가 비꼬는 투로 "뭐죠. 말디니가 두명인가요?"라는 식으로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 청팀의 2번 선수가 누구인지 맞춰보자.경기 내내 호나우두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거다. 청팀 주장에게 가려져 잊혀진 백팀 주장 안습
  • 98년 가시와 레이솔의 경기당 실점률은 1.7점. 99년에는 0.8점이 됨(...).
02년 포항 스틸러스 복귀.
03년 LA 갤럭시 이적.
04년 10월 8일 은퇴 선언.

벨마레 데뷔전은 스위퍼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 그러나 보복 행위로-백태클이 들어오자 밟아버림- 레드 카드. 당시 벨마레엔 일본대표 로페스와 나카다가 있어, 리베로 홍명보가 아닌 수비의 구심점을 맡길 바랐고 자연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다 98년 팀 재정이 악화되면서 자구책으로 고액연봉자를 팔기 시작했고 홍명보도 트레이드 시장에 나왔다.

Hong_Myung-Bo_Kashiwa_Reysol.jpg
[JPG image (Unknown)]


99년 홍명보를 영입한 가시와 레이솔은 만년 중하위권 팀에서 단숨에 리그 3위로 도약, 00년 외국인으로서 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이 시즌도 역시 리그 3위. 우승을 목표로 황선홍과 유상철을 영입해 외국인 3명 제한을 모두 대한민국 대표팀 주전으로 채운다. 이른바 코리안 삼총사 탄생이다. 홍명보가 일본 축구팬에게도 커다란 존경과 애정을 사는 이유도 이 당시 활약상 때문이다.[12]

흔히 홍명보를 말할 땐 리베로를 떠올리지만, 실제 대표팀 시합에선 수비에 치중하거나 공격에 가담한다 해도 제한적인 경우-전방에서 워낙 공격이 안 풀리니 어쩔 수 없이 올라가는 형태-가 많았다.

결국 '철저하게 리베로 홍명보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기능하는 팀'은 대표팀이 아닌 J리그 프로팀인 셈이었다. 황선홍과 함께 1990년대 일본 대표팀에게 무수한 좌절을 안겨준 인물이 홍명보란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13]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그야말로 절정의 활약을 보여줬다. 홍명보가 이끄는 한국 팀의 3백 최진철-홍명보-김태영[14]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엄청난 강호들을 상대로 5경기 동안 2실점만을 기록하며[15] 최고의 수비벽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서 승리를 확정짓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한국 축구 최고의 명장면이다.

마지막 3/4위전에서 시작하자마자 최종 수비수이자 주장이 경기 시작 11초만에 공을 터키 공격수 하칸 쉬퀴르에게 빼앗겨 실점하는 실수로 아직도 깨지지 않은 월드컵 최단시간 골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16]...월드컵이 끝나고 홍명보는 아시아인 최초로 브론즈볼을 수상하게 되며 유종의 미를 거둔다.[17] 골든볼이 골키퍼인 올리버 칸이고, 실버볼이 공격수인 호나우두였던 것을 감안하면 월드컵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은 격이다.

2.3. 선수생활 중 사건/사고

2.3.1. K리그 드래프트 파동

홍명보는 이미 고려대시절 90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대표팀의 차후 10년을 책임질 중핵으로 떠올랐다. 이에 드래프트 판에 나올 경우 모든 팀의 관심이 집중될 대어였으나 홍명보는 황선홍과 더불어 선수 본인이 가고 싶은 팀에 입단할 수 없다는 점과 계약금과 연봉이 타 종목에 비해 낮게 책정되었다며 드래프트 거부 선언을 했다. 그리고 포항제철이 꼼수를 부려 산하 아마추어팀에 황선홍과 홍명보를 입단시킨 후 포항제철 소속 선수로 맞아들였다. 이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동시에 아마추어팀 입단에서 3년이 지날 때까지 경기에 나올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황선홍과 홍명보를 포항이 해외 유학을 보내기로 발표하며 일반 팬들에게까지 파문이 확산되었다. 이후 황선홍은 해외 유학을 떠났고 홍명보는 상무에 입대한다.

그러나 여론과 타구단의 반발을 이기지 못한 포항은 홍명보의 상무 전역 후 드래프트 시장에 내놓게 되었고 홍명보는 유공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홍명보는 이미 포항에게서 1억을 상회하는 돈을 받았기에 유공으로 가는 건 포항제철의 책임자들에게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포항은 기존 포항 선수와 더불어 그해 드래프트 1, 2순위자들과 유공의 홍명보를 1:3 트레이드하며 홍명보를 데려오게 된다.그리고 포항은 15년 후 홍명보의 고려대 후배 선수에게 뒤통수를 맞는 부메랑 효과를 누리게 된다.[18]

2.3.2. LA 갤럭시 이적 꼬장

Hong_LA_Galaxy.jpg
[JPG image (Unknown)]


가시와에서 아이콘이나 다름없던 홍명보에게 은퇴 후 지도자 생활-차기 감독-을 요청했으나 사양하고 J리그 활동을 정리한다.

대신 홍명보는 포항에서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정리할 예정으로 03년까지 계약을 맺었다. 포항은 4강팀의 주장 홍명보로 포항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적은 생각도 없었으나, 어느 틈에 홍명보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홍명보는 MLS로 이적하고 싶었고, 느닷없이 MLS로의 이적의지를 천명했다. 포항은 금시초문이었는데 홍명보와 LA 갤럭시 간의 개인협상은 끝난 것처럼 보이는 정황이었다.[19] 포항은 당연히 뭔 소리하냐는 반응으로 홍명보의 이적 의사를 일축했으나 홍명보는 이에 백태클 퇴장으로 대표되는 태업으로 응수했으며, 장외에서는 언플 및 개인 팬클럽 등의 활발한 활동으로 대승적 차원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구단이 졸렬한 것처럼 보이게 압박했다. 결국 포항은 이적료로 100만 달러를 요구했는데 LA갤럭시에서는 36만 달러밖에 주지 못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결국 홍명보 본인이 파기 위약금을 물고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나이를 감안해도 바로 6개월 전 월드컵에서 브론즈볼을 수상한 선수에게 36만 달러가 적당한 이적료는 아니었다.

이때 묘한 언플로 마치 포항은 홍명보를 공짜로 J리그에서 데려왔는데 돈장사한다고 욕먹었지만, 기실 홍명보의 이적에 공식 이적료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당시 가시와와 홍명보의 남은 계약기간 동안 홍명보가 받을 수 있는 연봉이 100만달러였고 포항이 이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이적이 발생했던 것이다. 즉 단 반시즌만 뛴 홍명보를 포항이 36만달러에 보내주면 포항은 자기 맘대로 이적 안 시켜준다고 태업질을 일삼으며 여론을 조종해 팀을 뒤흔든 선수를 6개월 동안 쓰기 위해 64만달러 + 6개월어치의 연봉(필시 포항 출심임과 더불어 4강 영웅이자 주장임을 내세워 최고급 대우를 해줬을 테니 연봉 10억 이상도 생각할 수 있는 만만찮은 액수)이라는 거대한 비용을 지불했어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는 위약금만 물면 언제든지 자유계약 신분이 되어 이적할 수 있다는 거대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악질이라고 볼 수 있다.선례왕 박따봉의 원조[20] 끼리끼리 논다더니

여튼 이 사건으로 포항에서 홍명보에 대한 평가가 급락하게 되고 지금도 이 사건을 아는 포항 올드팬들에게는 욕을 먹는다. 황선홍도 도피성으로 J리그 가면서 이미지가 안 좋아졌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깽판을 치면서 가지는 않았다. 은퇴 이후에도 포항에 애정을 보여주며 감독까지 된 황선홍과는 달리 홍명보는 포항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으며 되려 포항이 울산 다음으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서울 구단에 관심을 더 많이 보여주면서 스스로 이미지 악화에 일조했다. 자서전에서도 자신은 포항의 레전드는 아니고, 가시와 레이솔의 레전드는 될 수 있겠다고 쓴 바 있다.

다만 포항 구단이 숱하게 홍명보의 해외 진출을 완강하게 막고 그가 J리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포항 구단도 일방적 피해자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포항이 얼마나 공들여 홍명보를 데려왔는지, 데려와서 군대 보냈다 어쩔 수 없이 드래프트 시장에 내놓은 뒤 1:3 트레이드로 다시 데려왔는가는 이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21]

이 때 뭔가 저주라도 받은 건지 포항은 홍명보에 이어 또 다시 통수를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더 맞게 된다. 김 모씨-박주영-오범석에 이어 2014년에 황희찬까지.

2.3.3. 잦은 항명 및 태업 의혹

과거 전 29만원의 그것을 본딴 사조직 '열하나회'의 멤버로서 대표팀내 영향력을 행사하며 가입하지 않는 선수에겐 불이익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하나회'가 그 시절 국대들에 대한 홀대와 막나가는 대접 때문에 선수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단 반론도 있으나 감독 통제 벗어나서 자기들끼리 밤새 술먹다가 걸린(...) 조직이 그럴리가...게다가 당시에도 박종환 당시 대표팀 감독을 무시하고 고의로 을 벌였단 의혹도 받았다. 대표적인 게임이 전반까지 2:1로 멀쩡히 앞서가다가 후반에 탈탈 털린 대 이란 2:6 참패 경기...[22]

다만 여기에 대해선 다른 설도 존재한다. 열하나회는 하나회를 모델로 만든 것이 아니라 베스트 엘레븐의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열하나+회라고 했다는 것과 박종환 감독 당시 이란전 6-2 대패의 경우, 박종환 감독의 소위 빠따질을 위주로 한 강압적인 지휘에 불만을 품고 벌인 일이라는 이야기다. 박종환 감독 자체가 워낙 강압적인 지도와 빠따질...로 유명한 구세대 감독이라 나름 그들에게도 명분은 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대표팀에서 사조직을 창설한 것은 비난을 받을 여지가 많다.

비쇼베츠 감독과의 불화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올림픽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서 합류가 유력시됐으나 불발되고 말았는데 감독의 출장명령을 대놓고 거부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비쇼베츠 감독이 한국 문화에 매우 잘 적응하지는 못했던 점, 그리고 당시 윤정환 위주의 팀을 만드려고 했던 것이 불화의 원인이 아니었나 추측되곤 한다.

98 월드컵 감독인 차범근과 02 월드컵 감독인 히딩크와도 당시 크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아드보카트는 아드보카트 감독님이라고 부르는데 히딩크는 히딩크 감독이라고 부른다.[23] 하지만 후술할 내용에 의하면, 히딩크와의 사이가 크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히딩크가 감독을 맡던 안지 마하치칼라 팀에 가서 코치 연수를 받았었다.사이가 크게 좋진 않다고 했지 나쁘다고 하진 않았다. 애초에 감독과 주장이 사이나쁜 막장팀이 4강까지 갈리가...

3. 은퇴 후 국가대표 코치 및 코치 시절

3.1. 청소년 대표부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까지

MLS에서 은퇴한 뒤 축구행정가로 진로를 정했으나 갑작스런 본프레레 감독의 사임 사태를 맞아 대표팀에 합류했다.
다만 문제는 축구협회 규정상 유소년부터 대표팀까지 클래스별로 일정 자격증이 필요한데,[24] 홍명보는 전혀 없었다. 즉 야매코치.
축협 스스로 축협규정을 위반한 초법적 행위라 잡음이 일었으나 비상시국이란 공감하에 일단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일단 언론에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를 보좌할 코치로 홍명보를 원했다는 모양새. 참고기사 그러나 뒷날 자격 문제가 다시 한번 불거졌다.

09년 U-20 청소년 대표 감독에 임명되었고, 언론에선 2012년 올림픽 대표를 그에게 맡길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인데, 이전에 언급되었던 자격증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하물며 지도자로서의 검증도 끝나지 않은 마당에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임은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도자 연수 후 K리그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황선홍과는 대조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U-20 대표팀을 이끌며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진출시켰다.

언론에서는 더 볼것도 없다는 듯이 명장탄생이라며 찬양하기 바쁘고 축협도 공적을 인정해 그를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청소년 대표팀이 전임 조동현 감독에 의해 90%이상 완성되었던 팀이었고 별다른 신예선수 없이 사실상 물려받은 선수단이었긴 하지만 그때만해도 이 멤버들은 골짜기 세대 소리 들으면서 기대치가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2009년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오른 성과는 축협의 기대치에는 충분히 다다른 상황.

선수시절 K리그에서 홍명보와 같이 활약했던 황선홍, 신태용, 유상철K리그 감독으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착착 경험치를 쌓고 있는 것에 비하면 클럽 운영 경험 없이 국가대표팀 감독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06년 월드컵 코치.
07년 아시안컵 코치.
08년 올림픽 수석코치.
09년 U-20 청소년대표 감독.

그리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UAE에 패하였다. 결과도 결과였지만 내용도 문제였는데 압박이 좋고 몸싸움에 능한 UAE 대표팀을 상대로 공격템포 변환이나 빠른 볼배급을 통한 속공을 전혀 시도하지 않고 느려터진 공수 전환에 볼을 이리저리 돌리며 확실한 공격루트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다 상대 수비에 번번히 막혀버렸다. 쉽게 말해 지나치게 완벽하고 예쁘게 공을 차는데만 집중하다 제대로 망해버린 것. 이 날 경기를 요약하면 전반전에는 후반전을 생각하고 후반전에는 연장을 생각하고 연장에는 승부차기를 생각하다[25] 경기를 그르쳤다. 더구나 이 날 UAE는 수비적인 전술운영을 하긴 했지만 중동팀이 허구한날 구사하는 침대축구도 구사하지 않았다!
UAE 대표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부족했고 플랜A가 막혔을때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연장 후반 선수들이 불필요한 항의로 아까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때도 코칭스태프는 그저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선수선발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짧은 소집기간과 2012년 런던올림픽을 대비하여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자신이 성과를 낸 09년 U-20 대표팀 위주로 선발했다. 그 때문에 K리그 10시즌 득점왕 유병수와 2010 월드컵 대표 이승렬은 아시안게임 나이 제한인 23세 이하의 검증된 공격수임에도 09년 U-20 대표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탈락되었다고 한다.[26]

이처럼 그야말로 '본인의 팀'을 만들어 출전해서 결과의 책임도 오롯이 다 몰렸다.
사실 런던올림픽 동메달 이후 인식이 바뀌었지만 아시안게임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정도로 살벌하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런던올림픽때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선수선발을 본인 맘에 드는 사람만 한다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 사실 이건 국대감독이면 당연한거다. 다만 책임도 당연히 본인이 다 지는 것이고...

여하간 이란과의 3, 4위전에서 4:3 역전승으로 동메달을 따내며 유종의 미는 거두게 되었다.

설상가상 야구 국가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상대적으로 여론이 나빴는데, 이란과 3, 4위전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남들이 피자, 햄버거 등을 섭취할 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했다"[27] 언급했고 극적인 銅 홍명보 감독, "포기 안한 선수들 고맙다" 몇몇 선수들은 자신들의 미니홈피에 무난하게 금메달을 딴 야구대표팀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일부 亞축구대표 "햄버거 먹고 쉽게 金" 야구 비하

3.2. 2012 런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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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로이드랑 면제로이드를 섞어서 만들어 올테니까, 후반전 시작하면 다들 한 잔씩 마셔라.
브로커로서의 내 할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선수인 너희들에게 맡기마.잠깐, 화장실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이후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어찌됐든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이는 애초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 올림픽 감독까지 맡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

비슷한 시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차 예선과 겹친데다, 쓰는 선수만 죽어라 굴리는(...) 조광래 감독 때문에 선수차출 부분에선 꽤나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축협, 조광래, 홍명보 간의 선수 차출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기도 했으나, 결국 겹치는 선수는 국대(월드컵)에 우선 배정하기로 함으로서 마무리. 이런 이유로 정상적인 전력을 꾸리지 못한 채 올림픽 최종예선을 진행해야 하는 홍명보 감독에 대한 동정여론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28]

차,포떼고 치룬 올림픽 예선에서 현재까지 1승 1무의 성적을 거두었다. 오만과의 홈경기에서 윤빛가람, 김보경의 골로 2:0, 카타르 원정에서는 시종일관 경기를 주도하면서도 전반 막판에 패널티킥을 내주며 고전했으나 김현성의 골로 1:1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최근 들어 A대표팀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지라 홍명보 감독의 능력을 고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나 카타르 원정에서는 예전 한국 축구 스타일을 보여주며 비록 경기 결과에서는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카타르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윤빛가람, 서정진 등 A대표팀에 차출되었던 선수들을 선발에서 제외하고도 압도적 경기력을 보여주었기에 홍명보 감독의 능력이 다시 재조명 받고 있다.

2012년 2월 22일 밤 11시 30분에 열린 오만과의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함으로서 2012년 런던 올림픽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대표선수들에게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게 했다고 한다
4월 24일 한국시간 19시 조추첨 결과 멕시코, 스위스, 가봉과 같은조에 배정되었다.

6월 7일 화성 종합 경기타운에서 열린 올림픽 대표 평가전 시리아와의 홈경기에서 수비수 김기희의 2골 맹활약과덕분에 어부지리로 올대 승선 윤일록의 1골에 힘입어 3-1 승리를 거뒀다. 사실상 올림픽 시작 전 마지막 시험 무대였는데, 수비가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정예 멤버 중 구자철, 기성용, 와일드카드가 확실시되는 박주영 등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괜찮은 팀 전력을 보여주었다 평가받고 있다.

이후 「공간과 압박」이란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도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확실히 카리스마를 가지고 선수들을 지휘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그리고 홍정호에게 스스로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게 하는 모습이나, 선수들 스스로 전략과 전술에 대해 생각케 하는 모습, 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 등을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팀을 이끌어가고 있는 듯. 오랜만에 조광래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으며, 당시 선수 차출 문제에 대한 홍명보 감독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말하기를 "올림픽 대표팀 감독 하고 나면 다른 어떤 감독 자리를 가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홍명보 감독의 입술이 많이 상해 있고 얼굴이 초췌해 보인다는게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이며 그 강도는 다큐멘터리 후반부에 절정에 달한다. 올림픽 감독으로서의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라는걸 느낄수 있다.

2012년 7월 14일, 올림픽 출정식을 겸한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박주영과 남태희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남태희의 결승골은 탁월한 개인기를 확인할수 있는 좋은 골이었다. 검증자료 와일드카드까지 소집한 후 첫 경기였고, 선수들의 호흡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음을 고려한다면 좋은 경기내용을 보여주었다는 평가. 공격 루트가 상당히 다변화되었고 선수들이 자신감에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수비 불안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2012년 7월 20일, 결전지인 런던으로 건너간 뒤 치러진 세네갈과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퍼포먼스로 세네갈을 3:0으로 제압하였다.[29]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이는 한국의 파상공세에 세네갈은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빼먹었으며, 경기시작 3분만에 터진 기성용의 중거리포, 그후 3분 뒤에 터진 박주영의 깔끔한 슛에 전반 중반 연속되는 구자철의 추가골까지.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전반전을 보여주었고 후반전들어 거칠어지는 세네갈 선수들에 한국 선수의 부상을 우려, 후반전은 롱패스 위주의 무리하지 않는 경기를 이어가며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어 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을 밝게 했다.

그러나...
7월 24일, 미드필더 한국영이 발등 부상으로 낙마하고 급히 정우영을 불러들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런던 현지에서 벌어진 돌발사건인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일 불운하게 입은 부상도 아닌 무려 6주 동안 부상을 숨겨왔다는 것. 허울 좋은 부상투혼으로 실드 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가 봐도 팀을 망치는 이기적인 행위이다.

메달빛 전망을 쏟아내는 국내언론과는 다르게, 해외 도박사들은 한국이 멕시코를 꺾을 가능성이 적다고 전망했다.대한민국이 조별예선을 통과할 가능성이 없다고 예측했다는 점은 일단 젖혀두자

7월 27일, 멕시코와 벌인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그라운드 사정에도 불구하고 굳이 패싱 축구를 고집한 점, 멕시코가 전반전 영혼의 10백까지 써가면서 몸을 사렸는데 과감히 모험을 걸지 못한 점, 그런데 모험하다 역습당하고 졌으면 또 얼씨구나하고 그걸로 까댔겠지 또한 후반전 멕시코가 빠르게 선수교체를 가져가면서 승부수를 띄운 반면 교체가 한박자씩 늦었던 점 등 내용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조별예선 최대의 난적을 만나 소중한 승점 1점을 얻었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급기야 스위스와 가봉이 1:1로 비기면서 네 팀 모두 승점 1점을 획득, 헬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한국시간으로 2012년 7월 30일 새벽, 스위스와의 조별 예선 2번째 경기를 2:1 승리로 이끌었다! 후반전에, 그것도 짧은 순간에 3골이 한꺼번에 터졌다. 먼저 박주영이 다이빙 헤딩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몇 분도 안 돼서 박주영이 넣었던 경로와 똑같은 헤딩골을 허용하면서 1:1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을 깬 것은 김보경. 구자철의 슛팅이 수비수 몸 맞고 나왔는데, 이 루즈볼을 김보경이 놓치지 않고 논스톱 발리슛을 때려넣어 다시 경기를 뒤집는 데에 성공했다. 이 점수를 잘 지켜 승리를 따냈다.

2006년 오심으로 얼룩진 스위스와의 리매치라 더 값진 승리다.[30] 박주영, 김창수와 같은 와일드 카드는 물론 상대적으로 볼터치가 말끔한 김보경, 백성동, 구자철, 기성용 등을 중심으로 플레이를 풀어나갔다.

그 다음 조별 예선 3차전, 가봉과의 경기. 만약 가봉으로서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나오면서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잘 대응하면서 득점없이 비기면서 한국은 0:0 무승부를 거두고 1승 2무 조 2위의 호성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경기 내내 한국이 몰아치다시피 했지만 골을 넣지 못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일부 축구팬들이 결정력 부족에 대해 우려했다고.

다음 경기인 8강전 상대는 단일팀 영국. 도박사, 전문가들은 대부분 홈팀 영국의 승리를 점쳤다. 라이언 긱스, 크레이그 벨라미, 다니엘 스터리지, 아론 람지, 톰 클레버리 등 EPL에서 뛰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고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이 그 이유라는 것. 국내 팬들도 이 점을 우려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에이 설마 한국이 영국을 이기겠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8월 5일 한국 시간 3:30분 영국과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새벽잠을 뚫고 경기를 본 축빠들의 잔칫날
홍명보는 김보경을 빼고 영국 현지 경험이 많은 지동원을 대신 투입하는 전략을 썼는데, 많은 불안과는 다르게도 이런 홍명보의 용병술이 먹혀들어 지동원 선수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1:0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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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잠시 후, 수비수 오재석의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해 아론 람지가 넣으면서 1:1 상황이 되었다. 몇 분 되지도 않아, 또다시 황석호가 페널티 에어라인 내에서 스터리지에게 파울을 범하는 바람에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하지만 정성룡 키퍼의 선방으로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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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신난다~
비록 김창수정성룡이 모두 부상을 입어 교체카드를 2개나 미리 쓰게 되는 불리한 상황이 이어졌지만,[31] 한국의 조직적인 압박에 박혀 영국은 영양가 있는 공격을 하지 못 했다. 오히려 역습으로 한국이 더욱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기는 연장전까지 돌입하게 되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연장전도 득점 없이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한국과 영국은 4:4의 팽팽한 상황을 만들었다. 참고로 한국 키커의 순서는 차례대로 구자철, 백성동, 황석호, 박종우였다.
그리고 영국의 마지막 키커인 스터리지의 슛을 이범영 선수가 볼의 진로를 읽어내 막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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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의 다섯번째 키커 기성용이 마무리 골을 멋지게 성공시키며 홈팀이었던 영국을 꺾게 된다. 이로 인해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축구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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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건 영국전의 전개가 홍명보 감독이 10년전 대표팀 주장으로 뛰었던 2002년 월드컵의 한국 vs 스페인전과 흡사했다는 것.

스터리지의 실축과 이범영의 선방은 2002년 당시 호아킨의 슛을 선방한 이운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쪽의 키커 다섯명 모두가 한명도 실패하지 않고 슛을 성공시킨 점도 같다. 역사적인 승부차기 보러가기.
게다가 한쪽은 월드컵, 또 한쪽은 올림픽에서 사상 첫 4강을 이룩하게 된 의미있는 대결이기도 하다.

2002년 스페인전 당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이자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2012년에는 감독으로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해준 셈이다.

그리고 2012년 8월 8일 한국 시간 새벽 3시 30분. 브라질과의 4강전을 가졌으나 3:0으로 패하여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전반 초반까지는 거세게 밀어붙였으나, 우려했던대로 수비진의 패스 미스를 브라질이 가로 채 그 한 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시켰다. 이 때부터 서서히 경기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전후로 패널티킥 찬스가 두 번 있었지만 심판이 보지 못 했는지 둘 다 넘어갔다.

이 후, 후반전엔 조직력이 속절없이 붕괴되더니 추가로 2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브라질은 조별 예선부터 이 경기까지 경기당 3골을 몰아넣는 화력팀이었고, 한국은 그런 공격력을 이기지 못 했다. 브라질은 경기 내내 개인 기량에 의한 돌파로 계속해서 찬스를 만들어냈고 한국은 그것을 막기에 바빴다. 어렵사리 한국이 공격 기회를 잡아도 적극적인 전진 압박에 막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했다. 박주영, 정우영, 백성동이 교체 투입되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경기를 치룬 맥시코가 일본에게 3:1로 이기면서, 다음 경기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일전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일본을 2:0으로 가볍게 격파하여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최초의 메달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새벽잠을 뚫고 경기를 본 축빠들의 잔칫날이무니다 이로써 대표팀 선수 모두 병역 면제를 받게 되었다.[32]

전반 37분경, 반일로이드와 면제로이드를 섞어서 마신 뒤, 수비 4명을 달고 들어가면서 침착하게 박주영이 골을 성공시켰다.


박주영 영구 까방권 획득 그런데 그 까방권을 브라질에서 전부 말아먹었지

이어서 후반 11분, 구자철이 침착한 퍼스트 터치에 이은 쐐기골을 터뜨렸다. 홍명보 본인이 박주영이 군대 안가면 자기가 대신 간다고까지 하면서[33] 감싸준 박주영이 결정적인 순간에 큰 활약을 하는 등, 이번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인터뷰에 따르면 홍명보 본인은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의 성과로 월드컵 대표팀에서 지역예선 이후 유력한 국가대표 감독 후보로 설레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회의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재, 대한축구협회는 '한 감독이 유스부터 국대까지 멤버를 일관되게 끌고가는 팀 운영'을 홍명보 감독에게 바라고 있는데, 현행 대표팀은 그런 장기 비전에 걸맞는 팀이 아니다. 즉 조광래 감독을 뜬금 해고하고 최강희 감독을 땜빵으로 앉혔는데 그나마도 지역예선이면 시효가 끝나서 또 본선까지 땜빵을 찾아야하는 괴상한 팀이다.(...) 한마디로 조광래 팀도 아니고 최강희 팀도 아니고 홍명보 팀도 아닌데 굳이 맡을 당위성도 메리트도 없다. 사실 축협이 이런 걸 하고 싶었으면 이광종이 만든 팀에 자기네 큰아들 앉히는 게 아니라 이광종을 올렸어야 하는 일이다.

또한 올림픽팀의 수비 조직력은 뛰어났으나 공격력은 한일전 단 한 경기를 제외하자면 시종일관 불만스러웠고, 그나마도 한일전도 '일본은 피지컬로 찍어눌러야 제맛'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써먹었고 여기에 보태서 박주영을 비롯해 와일드 카드로 뽑힌 선수들이 매우 잘해줬을 뿐 홍명보 특유의 색깔은 보이지 않았다. 즉 감독으로서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은데 높으신 분 설거지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커리어를 걸고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는 현실론도 만만찮다.

3.3. 안지 코치 연수

최강희 감독이 처음 공언한대로 예선전까지 맡고 대표팀 지휘봉을 놓기를 고집하면서, 찌라시들은 신나게 차기 국대감독 설레발을 쳤다. 그러나 홍명보는 이를 일축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초청으로 러시아 FC 안지 마하치칼라로 가서 코치 연수를 받는 쪽을 선택했고 일단 6월 22일에 귀국할 예정이다.

최강희 감독이 퇴임한 뒤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 자리를 놓고 어떤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할 테고... 그 때 과연 홍명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최강희 감독이 본선 진출 확정후 사임하자 마자 홍명보 감독이 후임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서 그야말로 난리판이 난 상황. 축협은 후보중의 한명이라고 부인하긴 했으나 허정무 부회장이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내정되었다고 시인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언론들도 사실상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 아직 홍명보 본인은 침묵중이다.

그런데 6월 20일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홍명보는 대표팀 감독을 고사했다고 한다. 차근차근 장기적 계획을 세워서 팀을 만들어나가는 그의 성향상 불과 1년도 안되는 시간에 최악의 상황에 있는 국대를 바로잡아서 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과를 낸다는건 너무 부담이 클수밖에 없는 일. 그런데도 축협은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서 끌어앉히려는 2년전 최강희 감독 선임때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리 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홍명보라고 해도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내리라고 기대하는것은 무리다. 결국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천하의 홍명보라고 해도 장기 계약을 해서 러시아 월드컵까지 맡기려는건 여론이 허락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에 홍명보의 커리어에도 심한 오점을 남길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어하는 국내외 유능한 감독에게 브라질 월드컵을 맡기고 홍명보는 브라질 이후 2015년 아시안컵부터 국대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결국 그는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3.4.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대한축구협회가 2013년 6월 24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홍명보를 최강희 감독의 후임으로 확정하였다. 일단 계약기간은 2년, 즉 2015년 아시안컵까지지만 이후 성적에 따라 +3년(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재계약을 할 수 있는 옵션으로 포함되어있다.

이후 항목추가 및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막장행적은 기대를 똥통에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홍명보호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고.

3.5. 감독으로서의 홍명보


의리축구의 달인 홍명보 분석
정치질의 달인이자 축협의 황태자
본인 말대로라면 C급 리그 감독도 해본적 없는 F급 감독

모두들 알다시피 브라질 월드컵에서 거하게 말아드셨다. 당연히 경질되거나 물러날줄 알았는데 유임이 확정되었다.요즘 유행을 따라간다 카더라 이는 차범근 감독이 중간에 경질되었던 사례와 조광래 감독이 성적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례와 비교해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자신들의 방패막이었던 홍 감독을 자르기는 미안했는지 축협이 사실상 홍 감독을 아시안컵에서 명예 회복하라고 준 재신임이다는 페이크고 자진 사퇴라는 형식으로 짤림.

굳이 변명을 하자면 감독으로서 홍명보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 청대에서의 성공과 아시안게임에서의 실패, 올림픽에서의 성공과 월드컵에서의 실패 등. 실패이후 반등하는것이 보이기는 하는데 실패패턴이 항상 성공했던 대회멤버를 신뢰하다가 생긴거라서 이걸 어떻게 개선할지...하지만 청대와 아시안게임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기본적인 전술은 매번 똑같은게 함정...

그런데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의 땅 약 78평을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4월부터 본인이 직접 여러 차례 근처의 부동산을 찾았고, 최종 계약일은 월드컵 엔트리가 발표된 이후인 5월 15일이라고 한다.# 당장 홍명보를 본 부동산 중개인이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땅만 보러다녀도 괜찮냐?'라고 했을정도(…). 여론은 '엔트리 구상할 시간에 열심히 땅투기나 하고 있었냐?'라 홍명보의 이미지만 바닥으로 내려앉는 중이다. 결국 홍띵보의 바리에이션인 홍땅보가 별명으로 추가(...). 1따봉 1땅봄 영혼의 콤비

사실 토지 매입 자체가 문제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산에 관련된 문제고, 또 불법으로 저지른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 시점이면 다른 팀 감독들은 전부 분석자료모아 자료집 만들고 전술 짜느라 밤 새우고 있을 시점이었다. 태만했음을 부정하기 힘들고 결과마자 안좋으니 욕 먹는건 당연지사.

축협에선 "계약서에 도장 찍으러 한 시간 정도 시간 낸게 전부"라고 했는데, 파주에서 분당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왕복만 해도 서너시간은 족히 걸린다.[34] 그냥 하루를 통으로 썼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부동산 업주 말처럼 여러번 보러 왔다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엔트리 발표도 하기 전인데 시간좀 낸게 어떠냐는 쉴드도 있지만, 그가 땅을 찾고 있을때 홍명보가 승점자판기 취급하던 알제리 감독은 한국전 맞춤전술을 만들기 위해 국대 경기는 물론 K리그 경기까지 일일히 챙겨보며 엔트으리를 생각하면 볼 필요도 없었겠지만 준비하고 있었다는게 알려져 제곱으로 까이고 있다. 그 결과는??? PROFIT!

결국 땅보러 간 사건이 알려지며 언론의 집중포화를 다시한번 받게 되었고 본인도 더이상은 버틸수 없었던지 얼마 안있어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를 선언했다. 짤리지 않은게 용할뿐 홍명보험

3.6. 국가대표 감독직 사퇴

결국 2014년 7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하기로 하였다. 9일밤부터 일부 언론을 통해 사퇴소식이 전해지더니 자정을 넘자 다음포털 메인기사로 사퇴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팬들은 사퇴가 아닌 경질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결국 홍명보가 사퇴함으로써 모양새는 그동안의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는것이 아닌 일부팬들의 과도한 사생활침해와 비난으로 인해 사퇴하는 모양새로 가게되었다.

2014년 7월 10일 오전 10시 사퇴기자회견을 하였다. YTN에서는 사퇴기자회견을 생중계하면서 덧붙여 벨기에전 종료후 현지 회식동영상을 방영하였는데 폭탄주를 말아먹고 여자를 끼고 노래를 하는 모습들이 모자이크처리로 방송이 되었다. 1무 2패로 예선탈락했던 상황에서 그들은 쳐진 분위기를 띄운다고 브라질 현지에서 폭탄주를 말아먹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이 회식을 취재한 김환 기자의 말에 따르면, 사퇴 기자회견 전날에 축협에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기사를 올리겠다고. [35] 그런데 그날 오후 8시에 갑자기 축협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 내용은 "내일 홍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이 열릴 것이다."(...) 실제로 당일 오후 8,9시경부터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홍명보', '축협 기자회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즉 홍명보와 축협은 계약 기간 끝까지 버텨서 아시안컵에서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찾으려 했으나 가뜩이나 좋지 않은 여론과 결정타로 폭탄주 회식 기사까지 더해질까봐 전날에야 부랴부랴 사퇴를 결정했다는 것이 된다.

기자회견에서 홍명보는 비판을 받기 위해 일부러 사퇴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가지고 임했다라는 다소 무책임해 보일 수 있는 발언을 날림으로써 그동안에 그나마 홍명보를 지지해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모독이다 14년 6월 감독 홍명보가 기강이 태만해 일은 하지 않고 사리사욕으로 땅을 사러 다니기에 불러서 목을 쳤다다음 발언으로 논란과 연속이었던 행보를 역시 또다른 어그로로 마침표 찍게 된다. 국내선수들과 전지훈련을 했고,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비교를 했다.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한다. 결국에는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분명 실력차는 존재하고 앞으로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한국 축구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마지막까지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월드컵에서 밥값이나 한게 누군지 기억 안나는건가?

더 정확히는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K리그 선수들과 비교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K리그서 최고의 선수들이라면 유럽에서는 B급일 수밖에 없다. 떨어지는 선수들로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난 1월에 있던 멕시코와 경기서 바꿔놓은 것이 사실이다. 0-4로 패할 때 이정도의 레벌이라면 남은 어쩔 수 없었다. 좋은 선수들이 모두 유럽에 나갔지만 경기에 나서지 못하지만 K리그 선수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를 거치지 않은 온전한 발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A급 선수들이 있는데 이 선수들은 유럽에 나가면 거의 B급대 선수들이 있고요. 우리 K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그 밑에 있는데 과연 잘하는 선수가 유럽에 나가서 경기를 하지 못하고 지금 그 선수들보다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을 때 과연 이거를 어떻게 선수 구성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고" 영상
다시 말해 홍명보의 관점은:
유럽에 진출한 한국의 A급 해외파 = (유럽 기준) B급
유럽에 진출하지 않은 K리거 = (그 B급보다 밑인) C급 이하

정작 월드컵 무대에서 뛴 한국 선수들중에는 K리거 이근호, 김신욱, 김승규가 활약에 대해 호평을 받았다. 이용은 다소 애매하고 이 분은... 끝까지 논란의 중심이 된 박주영은 말할 것도 없으며 기성용[36]과 본인의 올림픽 키드가 아닌 비올림픽파 출신 손흥민정도를 제외한다면 다른 유럽파 선수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펼쳤다. 정작 자신이 뽑은 유럽파 선수들조차 유럽에서 A급임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K리그 선수들에게 B급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자신의 실패를 다른쪽으로 떠넘기는 것으로 비추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 해외파 선수들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기라도 하면 모를까, 주구장창 벤치 달구는 선수들까지 우대하여 기용하면서 K리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수들이 그런 벤치워머들보다 급이 낮다? 벤치라도 유럽 벤치니까 A급이다 이건가 이는 감독으로서 홍명보의 마인드가 단세포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예가 될 수 있다. 홍명보 본인 또한 유럽 문턱도 못 밟아보고 평생 하류 리그만 전전한 B~C급 수비수에 불과했다는 셀프디스. J리그? 정작 아챔을 씹어먹는 리그는 어디였더라?#

오히려 전북 현대에서 호주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좋은 활약을 보인 알렉스 윌킨슨 같은 예만 봐도, K리그의 상위권 팀에서 주전으로 좋은 활약을 보인다면 월드컵에서 충분한 활약을 보였다. 정작 외국인인 호주 감독은 K리그 선수의 경쟁력을 인정하고 중용하는데, 국대 감독이란 사람이 이렇게 편견을 가지고 대표팀을 운영했으니 그야말로 답이 없다.

게다가 2002년 한국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 역시 2002 월드컵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의 부족한점은 개인기량이 아니라 팀 플레이와 승부근성, 골 결정력 부족등을 요소를 지적하였다. 오히려 국대 선수들의 개인기량은 유럽선수들과 승부를 겨룰만하다 크게 호평하였다, 물론 공식 인터뷰 발언이니 어느정도의 립 서비스의 성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전에도 한국 축구에 쓴소리를 한 전적이 있고[37]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국은 4강 진출이라는 성적으로 이를 증명하였다. 홍명보 감독 본인이 이 때의 주역인 만큼 해외리그 우선주의적 언행은 과거 자신의 가장 영광된 시절 마저 부정할 요지가 다분한 언행이다.

양박쌍용과 같이 분명 해외파가 국가대표를 잘 이끌어준 경력이 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 1부리그에서 주전 경쟁을 해야 A급이란 이야기가 가능하지 그냥 유럽에서 벤치만 주구장창 달구고 있다고 A급이 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유럽 2부 리그에서도 벤치신세인 선수들이 K리거보다 우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막말로 윤석영과 지동원이 전남에서 리그를 지배하고 외국에 진출했나? 지동원이야 벤치건 뭐건 그나마 진출한지 오래라 쳐도 k리그에서 윤석영이 뭘 대단한 걸 했으며, 외국에서 기량 발전이 있을 수 있다 해도 외국에서는 뭘 했단 말인가? 최소한 월드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축구팬들은 '아니올시다'인듯 하다.게다가 박주호는? 설령, 국내리그 선수들이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술과 조직력을 통해 그러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그기간 동안 해외파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만일 보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감독을 맡지 말았어야 한다. 지성이를 부르면 올 줄 알았지

게다가 아무리 리그의 수준차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K리그 선수들을 유럽에서도 벤치에 머무르고 있는 선수보다 못한 B급 취급하는 것은 국내에서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수많은 K리그 프로축구선수들에 대한 모욕이다. 원팀을 강조해왔던 이미 원칙이고 자시고 본인이 인정할 만큼 말아먹었지만.. 감독이 떠나는 길에서마저 선수들의 등급을 나누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박주영의 군대 옹호 발언이나, 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는 원칙[38] 등 국가대표 감독으로써는 너무 발언이 가벼운 것이 아니냐라는 지적을 마지막까지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며 확인사살 시켰다. 결국 마지막까지 국민과 축구팬들에게 실망감을 선사하며 홍명보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막을 내렸다.

결국 이렇게 물러나는 순간까지 축구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면서 향후 홍명보가 공식적인 축구무대로 복귀할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0에 수렴할 듯 하다. 한때 차범근에 비견되던 대한민국 레전드의 멘탈이 이랬다는 것에 한국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특히 K리그 팬들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39] K리그를 모욕했기에 K리그의 각 구단들은 홍명보에게 감독자리를 맡길 일은 영원히 없을것이다. 구단 명예의 전당에 홍명보가 등재되어 있는 포항 스틸러스의 일부 팬들은 구단 홈페이지에 홍명보를 명예의 전당에서 제외하라는 요구를 하기까지 했다.[40]

위의 충격적인 발언와 열하나회 관련 파벌 조성사건까지 겹쳐져, 사실상 모 SNS 유저를 필두로 한 일명 해외파 파벌 조성 논란의 시발점[41]이 사실은 홍명보 감독이 아니었냐는 설까지 대두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나 감독 본인의 언행으로 보나 선수들한테 그 정체불명의 우월감을 심어준게 애초에 홍명보 감독 본인이 아니었냐는 것. 원래부터 많이 나오는 설이기도 했고 엔트으리 논란과 K리거들의 알수없는 선발 탈락까지 겹쳐지며 많은 의혹을 받기도 했는데 대놓고 K리그를 엿먹이는 발언까지 등장했으니...

그와중에 박종우, 홍정호, 윤석영이 연달아 sns에 홍명보 옹호로 보이는 글을 올리며 런던파벌, 으리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리고 9월 평가전에서 그렇게 깔봤던 C급 선수들이 남미의 다크호스 베네수엘라를 격파하고 우루과이와 대등한 경기를 하면서 홍명보의 말이 왈왈왈임을 증명했다. 인터넷에서는 홍명보, 박주영, 정성룡이 TV로 경기를 보며 때굴멍하는 합성사진이 돌아다녔을 정도로 홍명보는 조롱받고 있는 신세다.
거기다 임시 감독인 맥콜라리(...)가 '나라면 월드컵에서 이렇게 했을 거다'며 홍명보를 깠고, 신임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때 한국팀에 대해서 '너무 어린 팀이었다'며 제대로 된 노장들을 기용하지 않은 전임을 둘러서 깠다.

퇴임 이후, 현재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2년 스페인전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올라왔을때 '이거 못 넣으면 이민가야 하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12년뒤에 그가 고민한대로 그게 실제로 일어나감독으로서 성적 부진으로 결국 조국을 떠나고 말았다. 향후 행보를 결정하겠다고 하는데, K리그 비하발언 때문이라도 단기간에 국내복귀는 쉽지 않을 듯. 거기다 인맥축구의 핵심이라고 주목받은 덕분에 협회 내부에서 행정가로서 업무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겨우 1년 남짓 된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팀을 만들어 볼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레전드 축구영웅을 그저 헌신짝처럼 일찍 버려졌다는 것에서는 분명 아쉬움이 있다. 애초에 프로구단을 이끌었던 적이 없었던 감독을 감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 전 감독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그저 결과만 보고 서두른 축협의 탓도 크다.

그럼에도 홍명보는 지나치게 부족한 사람이었다. 디에고 마라도나, 마르코 반 바스텐, 또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홍명보는 필설로 형용키 어려울 만큼 문제가 심각했다.[42] 이들 감독이 각기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첼시 감독으로 부임할 때 이들 감독들은 경험이 일천한 젊은 감독들이지만 위기에 처하고 분열되어가는 팀을 구하기 위해 선임되었다. 선수들이 그 플레이를 직접 보고 자라 존경하는 레전드로서 팀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조직력과 정신력을 고취시키며 희생정신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 선임된 인물들이다. 마라도나는 탈락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를 기어코 남미 예선을 통과시켰고, 반 바스텐은 02, 04년 위기엠 몰렸던 네덜란드를 다시금 정상 궤도로 올려놓았고, 디 마테오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물론 이런 선임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며 뉴캐슬을 강등에서 탈출시키지 못한 앨런 시어러 같은 경우도 있다.

홍명보는 이미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고 한국 축구계의 거두로서, 특히 런던 올림픽파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홍명보의 전술적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건 이미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드러난 바 축협에서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나 파벌놀이로 인해 막장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팀을 하나로 묶고 단속하는 역할로 선임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레전드로서 팀을 다잡기 위해 부임한 감독이 오히려 앞장서서 파벌의 역성을 들어주며 그들에게 묻어가는 팀운영을 보여줬다.

너무 짧은 시간, 일천한 경력 등이 축협의 파행적 행정을 탓할 이유가 될지는 몰라도 홍명보에게는 최소한의 면죄부도 되지 못하며 오히려 결과에 매몰되는 결과주의적 시각이다. 결과의 비참함과는 상관 없이 홍명보는 그 자신에게 맡겨진 최소한의 임무 - 팀의 도덕성과 스포츠맨쉽에도 직결되는, 그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최소한의 임무조차 용기 있게 수행해내지 못했다.

거기에 똑같이 짧은 시간 대표팀을 맡으면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투혼을 일깨우쳐준 슈틸리케호의 맹활약으로 평가는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거기에 런던 올림픽 대표의 파벌 조장자들은 기성용 말고 폭망한건 덤

4. 이후 행보

2014년 10월에 잠시 귀국했다. 후진육성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후진육성도 대다수 축구팬들은 안좋게 바라보고있다. 이걸 빌미로 다시 축구계에 발을 들여서 재기를 노리는게 아닌가하는 의혹을 보내는중. 하지만 이건 홍명보가 선수를 은퇴한 시점부터 계속 해오던 것이다. 하지만 시점이... 의리의 화신이자 언플의 달인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 시점에선 그에게 실망한 팬들이누가 봐도 보기에 안 좋게 볼 수밖에 없다.
최강희 감독에 의하면 '까방권'이란 걸 줘서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자고 카더라.이건 또 어디서 알아낸 거야

5. 여담

사적으로는 표정 변화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과묵한 성격. 결혼을 한 뒤 아내와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서 홍명보의 아내는 가끔 인형과 대화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홍명보의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에서 직접 언급.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게 5-0으로 진 경기에서 프랑스의 스트라이커 니콜라 아넬카에게 "와 봐! 새X야!"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도나 뻥이다.

홍명보가 홍명바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으니. 8강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 상황에서 호아킨의 슛이 이운재에게 막혀 대한민국의 4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KBS서기철 캐스터가 흥분한 나머지 홍명보를 홍명바로 발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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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홍명보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만화가 존재한다. 제목은 홍명보 이야기. 이 만화는 2002 한일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화이며 작가는 터 노구치의 작가인 Toshiyuki Mutsu가 그렸다. 한마디로 작가가 홍명보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정성껏 만든 만화책이다.노구치 히데요도 그렇고 홍명보도 그렇고 이분이 그리는 만화주인공은 왜 얼굴이 다 저 모양......

두 아들의 이름이 각각 홍경민(!?)과 홍성민인데 공교롭게도 가수 홍경민의 본명이 홍성민이다. 팬이었나? 야구선수 홍성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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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43]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요술봉(...)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4권 제 51막에서, 애니메이션에서는 1기 9화에 등장. 변신시 사용자의 아버지를 누드로 만든다. 이는 봉(보)의 일본어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 개그.홍명봉 여담이지만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만화 자체에서 한국인 이름을 엉뚱한데다 많이 쓴다. 월간 최홍만이라든가, 월간 최지우라든가,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 야마토가 연재된 월간 최용수라든가...[44]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있는 홍명고등학교와는 무관하다. 29만원 시절 대전광역시의 랜드마크였던 홍명상가와도 물론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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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 취소선 처리되었으나 감독과 선수로서 그에 대한 극과 극의 평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해 제거한 듯하다.
  • [2]포항 스틸러스
  • [3] 대한민국 국가대표 역대 최다 출전.
  • [4] 성악가 조수미와는 이름만 같고 완전 다른 사람이다.
  • [5] 큰아들 홍성민, 작은아들 홍경민. 이 둘과는 상관없지만 참고로 가수 홍경민의 본명이 '홍성민'이다.
  • [6] 윗줄은 애칭, 아랫줄은 멸칭(…).
  • [7] 2002 월드컵 8강전 당시 KBS 서기철 캐스터의 발음 때문에 붙여진 이름. 홍명바! 4강 4강 흐으으헝엉엉.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홍명바'라는 아이스바가 나왔다 카더라. 믿으면 골룸.한번 봐보자
  • [8] 박지성이 2014년 월드컵에도 뛴다면 이 기록을 깰 수 있을것으로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국가대표팀을 은퇴하였다. 총 출전경기수는 2010 월드컵까지 총 14경기째.
  • [9] 후술할 열하나회 및 각종 태업 사건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멘탈 측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 시대만 해도 지금과 달리 똥군기도 그냥저냥 넘어가던 시대긴 하다. 그래도 홍명보 이후 박지성이라는 걸출한 주장이자 리더쉽, 인성을 갖춘 선수가 존재해서 홍명보 은퇴후 리더쉽 부재로 인한 혼선이 일어나진 않은 편. 되려 박지성 은퇴후 기성용 페이스북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 [10] 그 중 하나가 바르셀로나였고 또다른 하나는 AC 밀란이었다. 흠좀무.
  • [11] 계약 문제라기 보다는 그냥 포항 구단에 오퍼가 온 적이 없었다. 홍명보 본인의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에서도 자신한테 직접 제의가 왔지 구단에 제의가 갔다는 이야기가 안 적혀 있다. 기본적으로 자서전이란게 선수 자신에 대한 미화가 어느정도 들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구단에 오퍼가 간적이 없다고 봐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진출 어쩌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하물며 당시는 보스만 판결 이전이었기 때문에 FIFA 이적룰도 2001년 개정 이전과는 완전 딴판이다.
  • [12] 이때문에 당시 발매된 위닝일레븐 J리그 시리즈에서 홍명보의 능력치는 그야말로 신급. 가시와 레이솔을 잡고 확인해보면 팀 기본전술에도 센터백 오버랩이 설정되어있고, 켜는 순간 수비진 가운데의 노란 점 하나가 폭풍처럼 오버래핑을...
  • [13] 센터백 오버래핑을 팀 전술로 완성시킨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자 문제도 있고, 팀의 규모 문제도 있고 한국 프로에서는 쉽지 않았다.
  • [14] 물론 송종국과 이영표가 양쪽에 서서 수비에 활발하게 가담함으로써, 수비 상황에서는 5백과도 같은 상황이기도 하였다.
  • [15] 이 당시에 이운재 역시 야신상 유력 후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선방을 선보였다.
  • [16] 이 일에 대해 홍명보는 "유상철이 골키퍼에게 패스할 줄 알았다. 그 상황에서는 골키퍼에게 패스하는게 당연하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유상철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이후 2014년 월드컵 때 보여준 졸전과 불통 이미지로 인해 몇몇 커뮤니티에서 대회 직후 이 일화가 세삼스럽게 재조명되고 있다;;
  • [17] 월드컵이 끝나고 방송에서 그전까지는 조별 예선만 마치면 짐싸서 한국으로 왔으니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 [18] 여담이지만 결국 이 드래프트 파동은 번지고 번져서 결국 신태용을 위시해서 어정쩡하게 국대에 소집되고 해외진출도 안 하는 a급 유망주들을 잔뜩 수집한 일화가 꿀을 빠는 결과로 끝나게 된다.
  • [19] 지금이야 사문화된 규정이지만 축구계에서 구단과 선수(+대리인)간의 사전 접촉은 절대불가능이며 이는 피파 선수 이적규정에 명시되어있다. 2002년이면 이 규정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던때였다.
  • [20] 실제로 이후에 몇몇 포항 선수가 이런 식으로 이적하려다가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21] 다만 위에 다른 각주에서 기재한 것처럼 구단에 정식 오퍼가 왔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불분명하다. 더불어 입단테스트의 경우는 정말로 검증이 되지 않은 신예선수들 위주로 이루어진다는 반문이 있고, 이적료와 임대료가 비싼 것처럼 기재되어 있지만 홍명보가 벨마레 히라츠카 입단 당시 포항이 받은 이적료가 한화 11억으로, 당시 150만 달러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봤을 때는 포항의 완고함보다는 유럽 클럽들이 알려진 것 처럼 가치를 높게 쳐주지 않았을 확률도 있다.
  • [22] 다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네덜란드 대 스페인 전도 전반은 1:1로 동점이었는데 후반에 스페인이 탈탈털려서 1:5로 패배한 거라서 스코어만 가지고 태업 의혹을 제기하긴 애매한 면도 있다.
  • [23] 자신의 롤모델은 아드보카트라고 자주 얘기해왔다.
  • [24] 흔히 말하는 P라이센스가 이중 하나다. 유소년 D급, 초등학교 C급, 중고교 B급, 모든 팀이 가능한 A급과 P급.
  • [25] 이는 선수교체에서 드러나는데 연장전에서는 난데없이 골키퍼를 교체했다.(...)
  • [26] 그러나 U-20 대표팀이 아니었다고만 단정하기에는 팀 전술 문제나 개인 워크에씩 문제 등의 이유를 댈 수 있었다. 일단 2014년 현재 둘의 성장 정도를 보면...특히 이승렬은... 적어도 월드컵 엔트으리 논란에 비하면 훨씬 문제 없었다 이 말
  • [27] UAE와 4강 경기전에 축구대표팀 쇠고기 회식으로 15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중국에선 쇠고기보다 햄버거가 비싸긴 하다. 단, 중국산 쇠고기라는 전제 하에. 한국에서 고기를 공수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28] 선수차출에 A대표팀이 우선권을 갖는거는 당연하다 쳐도, 그 뒤에 전혀 쓰지 않는 선수가 많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 [29] 참고로 세네갈은 한국과 붙기 1주일 전 스페인을 경기내용에서 압도하면서 2:0으로 쾌승, 스위스를 1:0으로 이기면서 상승세가 붙고 있던 팀이었다!
  • [30] 이번 경기에서도 상당히 많은 헐리우드 액션이 난무했기 때문에 더더욱…. '박주영 장풍'을 한 번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밟히지도 않은 반대쪽 발을 잡으면서, 엄청난 오버액션을 떨면서 쓰러졌다. 심판은 즉시 엘로카드를 꺼내들었고 박주영은 밀지도 않았는데 억울한 경고를 받게 되었다.
  • [31] 그러나 이 부상 때문에 2명의 후보선수가 출전할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축구 국가대표팀 전원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 관련기사
  • [32] 이 때 하필 박종우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세레머니를 하는 바람에 박종우의 동메달 획득이 잠시 보류되었다. 사실 구자철도 세레머니를 할때 같이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려 했으나 주변에서 말리는 바람에 그냥 만세만 부르고 끝났다. 만약 구자철이 실행에 옮겼더라면 단체로 메달이 보류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지지부진하게 전개되었던 메달 보류사태는 FIFA가 박종우에게 소액의 벌금과 a매치 몇경기 출장금지라는 경고수준의 처벌을 내렸으며 남은건 ioc의 결정만이 남은 상태. ioc는 축구문제는 FIFA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주의라서 메달인증서는 받긴했지만 메달수여가 역시 문제쟁점이다. 그 이외는 전원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박종우 안습. 그 후 올림픽이 끝난지 8달 뒤에 박종우도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처벌은 벌금으로 끝났다고 한다.
  • [33] 참고로 홍명보 감독의 저 발언은 말 그대로 한군두였다. 본인은 이미 상무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
  • [34]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거리보다 멀고, 파주는 서울 북서쪽, 분당은 서울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을 가로질러가거나 돌아가야 하는데 헬리콥터라도 타지 않는 이상은 한 시간은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직선으로 서울을 가로질러 고속도로를 뚫어도 한 시간 내에 갔다오는 게 힘들 판국인데.....
  • [35] 축협의 허락을 맡기 위한 것은 아니고 단순한 통보. " 이러이러한 기사를 내일 내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와 같은 것.
  • [36] SNS 및 파벌의 핵으로 지목되어 월드컵 직후에는 감정론에 휩쓸려 활약상에 대한 폄하가 심하긴 했으나, 해외 전문가는 한국 선수중 가장 뛰어났던 선수로 기성용을 뽑았다.
  • [37] "강팀과의 경기에서 패배는 부끄러운것이 아니다, 당신들 한국은 한국 축구를 과대포장하고 있다."
  • [38] 사실상 처음부터 지킬 생각도 없었고 지키지도 못할 원칙이었다고 봐야한다. 결국 이 원칙은 자신이 깬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 [39] 가장 안 좋은 기억이 많은 포항도 젊은 팬들은 이명주 사건 이전까지는 홍명보의 과거 전력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 다른 K리그팀 팬들도 90년대 이전부터 봐 온 올드비가 아닌 이상 포항 팬들에게 알음알음 들어서 아는 정도였다.
  • [40] 안그래도 포항 팬들은 이명주의 월드컵 엔트리 탈락으로 홍명보 감독에 대해 상당히 예민해진 상태였고 LA 갤럭시 이적건으로 인한 태업질+언플이 새삼스럽게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 [41] 사실 축구 파벌 편가르기의 시초는 조광래였다(...).
  • [42] 디에고 마라도나는 국가대표로 감독 데뷔, 마르코 반 바스텐은 유소년 팀에 잠깐 있다 감독 데뷔, 디 마테오는 대단할 것 없는 경력으로 첼시에 부임하고 감독 대행의 신분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맛보았다. 또한, 디 마테오는 첼시 감독 대행을 맡기 전, 그러니까 첼시 수석 코치를 맡기 전에 2부 리그에 있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감독을 맡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시키고 한 동안 팀을 중위권에 안착시키는 나름 잠재력이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 [43] 참고로 이 짤방은 축까들이 홍명보 및 홍명보호를 깔 때 등장하기도 한다.
  • [44] 몇몇 자막에서는 제이온스라고 되어있다. 뜻은 같고 발음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