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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킨 산체스

last modified: 2015-03-25 00:45:50 Contributors


ACF 피오렌티나 No.17
호아킨 산체스 (Joaquín Sánchez Rodríguez)
출생 1981년 7월 21일
신장 179cm
출생지 스페인, 엘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
포지션 윙어
등번호 17
클럽 레알 베티스 B (1999~2000)
레알 베티스 (2000~2006)
발렌시아 (2006~2011)
말라가 (2011~2013)
ACF 피오렌티나 (2013~ )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
대한민국 월드컵 4강의 주역

ACF 피오렌티나 소속의 스페인 축구선수.

정통 클래식 윙어이며, 그래도 아직은 사람들이 '윙어'하면 떠올리는 선수 중 한명이다. 드리블 돌파 -> 크로스라는 정통 윙어로써의 능력치를 따지면 그래도 아직은 정상급이라고 볼 수 있다. 역시 클래식 윙어에 세계 지존급 윙어 루이스 피구를 존경하는 선수로 뽑았는데, 이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피구가 세대교체 할 때쯤되면 호아킨을 꼬셔서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었지만, 그가 선택한 첫 빅클럽은 발렌시아였다.

Contents

1. 클럽 활약상
1.1. 레알 베티스
1.2. 발렌시아 C.F.
1.3. 말라가 C.F.
1.4. ACF 피오렌티나
2. 국가대표 활약상
3. 여담


1. 클럽 활약상

1.1. 레알 베티스

1999년 레알 베티스 B 팀에서 프로 데뷔를 하였는데, 1999년 스페인 유스 대회에서 베티스를 우승시킨후 당시 FC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루이스 반 할 감독이 극찬하였을 정도. 당시 강등되었던 그래도 이제는 재강등후 승격된 베티스를 맹활약과 함께 프리메라 리가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한다. 특히 그 레알 마드리드 C.F.호베르토 카를로스를 농락하는 등의 뛰어난 활약을 하며 당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카마초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대엔 재능있는 풋내기 였음에도 2002년 월드컵에 주전으로 등장하여 굉장한 활약을 펼쳤다. 망한 맨디에타보다 풋사과인 호아킨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월드컵 8강전에서 MOM급 활약을 보이며 대한민국 수비진을 털던 모습은 아직도 많이 회상될 정도. 하지만 경기의 판정도 한동안 말이 많았을 정도로 좀 석연찮은 데다가[1] 막상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로 나오니 이운재의 선방에 막혔다.[2] 이 장면은 홍명보가 넣고 4강에 기뻐하는 장면과 함께 그래도 아직(...)뱅크샷으로 꽤 많이 우려먹어진다. 안습. 그 경기의 MVP로 뽑혔지만 승부차기를 실축한 후 그 특유의 벙찐표정은 그래도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그 다음날에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호텔 창가에 앉아있는 사진이 공개되어 축구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2002년 이후 베티스에서의 활약은 그래도 아직은 대단하였다. 중하위권 정도의 빅 클럽이 못되는 베티스의 중흥을 이끌지만 호아킨은 그래도 아직 베티스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는만큼 베티스에 대한 애정이 강했으며, 베티스 역시 자기팀의 프랜차이즈이자 에이스인 선수를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호아킨의 영입설에 가장 근접한 팀은 바로 지구방위대로 명성을 떨치던 레알 마드리드 C.F.였다. 호아킨 자신이 루이스 피구를 그렇게 존경하기에 레알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였지만 레알이 선택한건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었다. [3][4]

어쨌건 이적도 물건너 간후, 강한 기복과 함께 상당히 지지부진하며 유로 2004에서도 부진한 플레이와 함께 까이면서 묻히나...싶었지만 04/05시즌에 다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 무엇인지 호아킨은 보여 주었다. 시즌 도움왕에 등극함과 함께 베티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한다. 시즌 MVP를 줘도 아깝지 않는 엄청난 활약이었다. 이때는 아직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가 국내에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는데, 단 1시즌 뿐이었지만 호아킨은 이미 최정상을 한번 찍어본 선수다.

이러한 대활약과 함께 수많은 빅 클럽들이 러브콜을 보내었으며, 특히 그래도 아직은 부유한 첼시 FC에서 정말 강한 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높으신 분들이 직접 행차하셔서 이적을 추진하였을정도. 하지만 호아킨은 그런 러브콜을 다 거부하며 그래도 아직은 베티스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챔스에서도 호아킨의 현란한 플레이가 먹힐지 주목을 받았으나...

챔스도 나갔으면서 선수보강이 부족하여, 특히 호아킨의 공백을 매울수가 없었기에 호아킨은 매 경기 선발출전하면서 혹사를 당하면서 정말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게된다. 결국 망했어요.

결국 2006년 월드컵에서의 오른쪽 윙 주전은 리버풀 FC에서 빛나는 간지를 내뿜던 루간지 이스 가르시아에게 넘겨주고 만다. 근데 이스 가르시아도 기복 엄청 심한데...

그렇다보니 베티스는 그래도 아직은 팀의 아이콘인 호아킨을 이적시키게되는 초강수를 두게되며, 호아킨은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정든 베티스를 떠나며 유리몸미남들이 바글바글한 빅클럽 발렌시아 C.F.로 이적하게 된다. 호아킨 역시 그래도 아직은 미남이다. [5]

1.2. 발렌시아 C.F.

2006년 8월에 25m 유로로 발렌시아 C.F.로 이적하여 첫 시즌에 35경기 출장 5골을 기록했다.

마침 발렌시아의 왼쪽 윙에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센테 로드리게스가 있었기 때문에 2006-07시즌부터 게임에나 나올 전설의 윙어라인인 좌센테 우아킨이 가동되나...싶더니 비센테의 잦은 부상으로 가동이 얼마 안 되었다.(...) 게다가 적응이란게 있다지만 좀 지지부진한 활약이었기에 팬들의 실망감이 좀 컸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최고의 돌파력과 득점을 보여주며 다음시즌의 발렌시아의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희대의 먹튀 로날드 쿠만이 감독으로 오면서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때 호아킨의 안습행보가 정말 두드러졌는데, 쿠민이 호아킨의 플레이를 두고 30유로 수준이라고 디스한 것부터 시작하여[6] 본 포지션이 오른쪽 윙어인 호아킨을 왼쪽 윙이나 원톱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는 등 정말 별 방법으로 다 굴려졌다.[7]

그 후 나이 에메리 감독이 들어오면서 호아킨은 다시 비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아직 유리몸인 비센테와 함께 출전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후안 마타, 다비드 비야, 다비드 실바 등과 함께 발렌시아는 다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다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좋은 활약을 하여도 후배이자 새로운 경쟁자 파블로 에르난데스의 등장과 함께 부동의 주전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 호아킨이 그래도 아직 꿇리는건 아니지만 파블로의 좋은활약은 호아킨에게 꽤나 부담되는 사실.

그래도 아직은 주전인지라 비야, 실바가 나간 뒤 비야의 7번을 결국 호아킨이 받게 되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래도 아직은 오른쪽 주전은 호아킨이었던 것.

2010-11시즌 현재도 그래도 아직은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11월에 라 리가 돌파 성공률 순위 1위에 랭크되기도. 특히 다시 등장한 비센테와 함께 좌센테 우아킨의 진수를 보여주고있다. 그래도 아직은 정상급.

1.3. 말라가 C.F.

2010-11 시즌이 끝난 후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수를 영입하고 있는 말라가 C.F.에 영입되면서 발렌시아 C.F.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2011-12 시즌에는 리그에서 23경기에 출전해 2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그래도 아직 나쁘지 않은 활약상을 보였으며, 팀은 프리메라리가 4위를 차지해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2012-13 시즌에는 리그에서 34경기에 출전해 4골 6어시스트를 기록해 전 시즌보다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AC 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1-0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크게 공헌하는 등 그래도 아직은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1.4. ACF 피오렌티나

2013-14 시즌을 앞두고 말라가의 재정 악화로 인해 세리에 A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첫 시즌에는 리그에서 26경기에 출전해 2골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래도 아직 클래스는 살아있다.

2014-15 시즌에는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선보이며 피오렌티나의 중심 선수로 거듭났으며, 피오렌티나 또한 호아킨의 활약과 맞물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2. 국가대표 활약상

2002년 월드컵 대회 중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전에서 120분 내내 대한민국을 괴롭혔다. 당시 우승 후보라던 나라들과의 평가전에서도, 월드컵 이후 당시 우승팀 브라질에서도 어느 한 명 제대로 뚫은 적이 없던 영혼의 5백(정확하게는 7백에 가까운 구조)을 시전하던 대한민국의 수비수들을 상대로 '유린'이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당시 호아킨은 레알 마드리드 C.F. 이적이 거의 확실시되던 분위기였기에 더더욱 경기력이 극에 달한 상태였던 것.

그러나 4번째 키커로 나와 이운재에게 막혀 페널티킥을 실축(땡큐 호아킨)했고, 홍명보의 페널티킥이 성공하면서 결국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으로 끌어올려주신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이 문제의 PK로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게 된다. 귀국한 후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그를 위로해 주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그리고 10년 후 영국의 어떤 선수가 공교롭게도 홍명보가 보는 앞에서 호아킨과 똑같은 짓을 한다....
그런데 2년 뒤, K리그에서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한 선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2006년은 사실상 주전 자리를 내줬으며, 소속팀인 발렌시아에서의 부진이 겹치면서 유로 2008부터는 주전자리를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완전히 넘겨주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호아킨이 없으니 스페인이 우승했으니...

3. 여담

호아킨을 두고 나오는 별명으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줄여서 그아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이러브사커등 해외축구를 보는 올드팬들에게서 나온것으로 추정이된다.[8]앨런 스미스리즈시절세리에 7공주에 버금가게 많이 써먹은 말로써, 세계제일의 오른쪽윙어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떠오르자 축구 좀 오래본 올드비들이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 라고 말한것이 원인이 되어 해외축구 갤러리의 해충들이 이들을 깔려고 써먹은 말로 사실 유행어로서는 그래도 아직 한물간지 오래다.

오히려 이 말은 호아킨이 유로2008 이후로 퇴물(...)취급받자 호아킨을 옹호하기 위한 팬들의 발언으로 자리잡았다. 꽤나 안습한 별명임에도 지금은 호아킨을 대표하는(?)말 중 하나가 되었다.

10월 25일 챔스 경기 후에 호아킨 사진과 함께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올라왔다.

여담이지만 이 글의 여러 부분에 '그래도 아직'이라는 표현이 곳곳에 있다. 26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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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는 2000년대 스페인 축구 역사에서 최악의 사건 워스트 10 안에 들어가기도했다.
  • [2] 축구에서는 정규시간에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선수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갔을때 실축할 가능성이 높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된 것이다.
  • [3] 이 소식을 접한 호아킨은 정말 살빠지도록 울었다고 하는 후문이 있다.
  • [4] 하지만 그래도 아직 04/05년도 시즌에 레알의 페레즈회장이 직접 언제 오냐고 하였을 정도.
  • [5] 이적확정 후 마지막 인터뷰에서 호아킨의 눈물을 흘리며 했던 "저는 떠나지만 그래도아직은 '영원한 베티코(베티스의 팬) 입니다' 라는 인터뷰가 워낙 인상깊어서 발렌시아 팬들 사이에서 강제로 빼내온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 [6] 호아킨은 이에 대항해 "당신이 여기와서 가장 고민한 건 '저녁식사 때 무슨 와인을 먹을까' 밖에 없잖수?" 라고 받아쳤다.
  • [7] 하지만 이 흑역사로 인해 포지션 다양화를 장착하게 되어 각종 전술 변화 속에서 윙에서 미드필더, 원톱까지 다양하게 굴려지지만 어떤 위치에서도 제 몫을 해내는 만능형 선수로 거듭나게 되었다.
  • [8] 사실 DC 인사이드에서 가장 먼저 나온 발언이다. 당시 최강의 윙어로 꼽히던 호날두를 모두가 칭송하는 가운데 갑툭튀한 어떤 익명 닉네임이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이라고 댓글을 달았고, 그 순간 해당 게시물은 조소와 비난의 댓글들로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