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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오 함마

last modified: 2015-02-12 15:57:23 Contributors


그분의 통산성적, 저 나이는 도미니카 출신 선수인데다가 출전가능 나이를 맞추다 보니 누락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이제한 때문에 1961년생으로 등록되었다.

그리고 1984~1985,1998~2005시즌 성적은 이미지 크기 문제 때문에 잘려나갔다고 한다.

Contents

1. 프로필
2. 개관
3. 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가?
4. 일화
5. 진실

1. 프로필

이름 헨리 오 함마(Henry O'Hammer)
생몰년도 1967년 3월 9일 - 2007년 12월 25일
출신지 도미니카 공화국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투수,외야수,지명타자
입단 1984년 외국인 아마추어 특별 드래프트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84~200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4번 (1984~1991)
프로야구 출범 헨리 오 함마 (1984~1991) 김상현 (1992~199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번 (1991~2005)
정학수(1986~1989) 헨리 오 함마 (1991~2005) 이승화 (2006~2012)


롯데 자이언츠의 잊혀진 레전드
현역 시절 롯데의 살아있는 레전드 [1]

2. 개관

그 남자에겐 언제나 이런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롯데 자이언츠 전설적인 프랜차이즈급 외국인 선수. 그 누구보다도 롯데 자이언츠와 팬들을 사랑한 남자. 그러나 프론트의 압박과 KBO의 농간에 휩쓸려 결국 그 존재마저 부정당한 비운의 남자. 영원한 부산 갈매기. 한국에서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혈중 담석증이라는 희귀 불치병에 걸려 투병 끝에 2007년에 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원년 팬들은 헨리 오 함마의 이름을 언급하면 눈시울부터 적신다고,

3. 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가?

배번은 입단 당시에는 34번을 받았지만, 재계약하면서 1번으로 바뀌었으며 퇴출될 때까지 줄곧 1번을 달았다.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6타수 2홈런 4안타 1볼넷 7타점의 맹타를 휘두르고 당해 삼성 감독이 약물의혹을 제기하며 난리를 피웠지만, 도핑 테스트에서 헨리는 깨끗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의혹은 끊이지 않았으며, 헨리의 커리어 내내 따라붙는 의혹이었다.[2]

한국인이 아닌 용병이 리그의 전설이 될 정도의 맹활약하는 걸 고깝게 생각하던 KBO가 헨리가 롯데 자이언츠에서 퇴출된 이후 약물의혹을 빌미삼아 모든 공식 기록을 삭제,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3]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와도 갈등이 있어 팀 자체의 공식 보도자료에도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4. 일화

  • 1이라는 등번호에 대한 애착이 강해 유니폼을 도난당했을 때도 다른 선수의 유니폼을 빌리되 빌린 유니폼에 청테이프로(...) 1을 만들어 붙이고 나간 전력이 있다.

  • 부산갈매기를 롯데의 응원가로 사용하게 된 것도 헨리 때문이다. 유부남이던 헨리를 사랑한 한국인 여성 순이에 대한 추억을 담아 부산갈매기를 듣던 헨리는 롯데 응원에서 부산갈매기를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퇴출을 예감한 것인지, 마지막 시즌의 최종 경기에서 부산갈매기를 틀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 헨리 오 함마가 떠난 이후 롯데에는 1번 저주설이 생겼다. 팬들은 헨리의 1번을 영구결번시킬 것을 요청했지만 구단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 1번을 다는 선수들의 성적은 다 시원찮았다는 전설. 설마 이승화가 이 것 때문에... 영구결번을 원하는 팬들이 단체로 헨리의 1유니폼을 불사르는 퍼포먼스를 펼쳤다는 전설도 있다.

  • 뉴욕 양키스에서 KBO를 초토화시키던 헨리에 대해 오퍼를 한 바 있으나 거절. 이 때 헨리의 답이 걸작.

"물론 메이저리그는 최고의 리그다. 하지만 사직의 롯데 자이언츠 관중은 최고의 팬이다. 그래서 난 이 곳에 남아있다."

  • 현대가 사기 유닛으로 군림하던 시절 에이스 정민태와의 승부에 나선 헨리. 상황은 9회 무사에 주자 1/3루, 11:4로 현대가 리드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민태가 견제구로 주자 2명을 잡고 단번에 상황은 9회 2사 주자 없음.

    분노한 헨리의 머릿속에 불꽃이 타올랐고, 헨리는 정민태가 꽂은 회심의 몸쪽 직구를 제대로 후려쳐 8점짜리 홈런을 쏘아 올려 11:4에서 11:12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 이대호사직 장외홈런 기록이 늦춰진 것은 헨리 때문이다. 퇴출 이후 사직구장을 찾은 헨리가 사직구장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이대호의 장외홈런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만 것이다. 헨리는 빗자루를 들고 타구를 받아쳤고, 타구는 방향을 바꾸어 그라운드로 돌아갔다고 한다.

  • 헨리의 무시무시한 활약 앞에 투수들은 모두 데꿀멍 상태로 헨리를 피했다. 결국 1.5리터 페트병을 들고 타석에 들어선 헨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수들은 모두 그를 피했다. 유일하게 헨리를 상대한 용자는 강병규.

    몸쪽으로 날카롭게 떨어지는 커브를 보고 코웃음을 친 헨리는 페트병으로 잠실 장외홈런을 만들어 냈다(...)

  • 손민한이 마무리 알바를 뛰던 2005년, 손민한은 그만 9회 초 무사 만루를 만들고 만다. 스코어는 5:4. 누구나가 다 동점을 예상한 순간 양상문 감독은 승부수를 띄운다. 헨리의 마무리 등판. 연호하는 오함마 소리와 함께 마운드에 올라선 헨리.

    헨리는 견제구로 주자 3명을 모두 잡아 투구수 0개짜리 세이브를 따내고 내려갔다.

  • 박정태가 주장이던 1999년 헨리가 박정태를 찾았다. 박정태와 함께 술을 마시며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 중 성지가 나왔다. 눈을 부릅뜨고 헨리가 했다는 말.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 롯데는 할 수 있는 모든걸 쏟아붓는 심정으로 기론을 투입한다."

  • 1984년 후기리그 막판, 헨리는 투수 알바를 뛰던 중 삼성 장태수의 강습타구에 정강이를 가격당해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강병철 감독은 한국시리즈 엔트리 제출 전날, 전격 헨리의 한국시리즈 엔트리 등록을 선언해 버린다.

    헨리는 "감독님요, 너무한거 아입니꺼. 아직 뼈도 다 안 붙었심더." 하지만 강병철 감독은 역사에 남을 말을 남기게 된다. "헨리야 우야노, 여기까지 왔는데..." 헨리는 "네, 알겠심더!"라고 씩씩하게 외치고 재활훈련에 박차를 가한다.

  • 한국시리즈 7차전, 최동원이 연투에 지쳐 9회말 주자 3루의 위기에 처하자 강 감독은 전격적으로 헨리를 등판시켰고, 헨리는 그를 부상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장태수를 하프스윙 삼진으로 처리하고 롯데의 우승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비록 정규방송 관계로 최동원의 강판 장면까지만 남아있지만, 1985년 한국프로야구연감의 표지에는 포수 한문연과 진한 포옹을 하는 헨리의 모습이 자랑스럽게 남아있다. [4]

5.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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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는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시작된 낚시극. 한 뉴비가 올린 질문에 헨리 오 함마라는 농담 섞인 리플을 달기 시작하더니 롯갤 전체에서 헨리 오 함마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방송에 나온 유명 블로거 모 씨가 방송에서 헨리 드립을 치면서 분위기는 안드로메다로(..) 일단 외국인 용병제도가 90년대 후반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조금만 한국프로야구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낚일 리가 없다.

결론은 낚시니까 속지 말자.

애초에 마지막에 설명된 한국시리즈도 롯데 팬이라면 당연히 9회에 최동원의 공에 헛스윙으로 삼진 당하는 장태수가 나오는 장면을 알 것이니...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사실 헨리 오 함마는 들이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이래 주었으면...'하는 소망이 담긴 일종의 팬에 의해서 만들어진 아이돌이다. KBO가 본격적인 스포엔터테이먼트의 길로 가는 시점에서 이런 선수(?)가 팬들 사이에서 만들어 진 이유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여담으로 위의 스탯은 윤학길의 성적이다.(...) 또한 등번호 34번도 도위창코치의 등번호이고 등번호 1번 또한 한 때 대도라 불렀던 전준호의 등번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8점 홈런이란 얘기는 이 사진에서 나온 드립이다.


그런데 실제로 8점 홈런이 나왔다.

참고로 샤다라빠의 롯데 유니폼 마킹이 헨리 오 함마다.(...)

오 헨리와는 전혀 관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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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틀린 말은 아니다. 1984,1992년 우승과 1995년 준우승과 588, 그리고 1999년 준우승과 88885를 찍고 퇴출됬기 때문. 하지만 롯데가 8년 만에 4강 가는 것은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
  • [2] 하지만 송승준이 자신의 자서전 '나의 꼴레발'에서 헨리는 약을 한 적이 전혀 없었으며 선수들이 마시는 영양 드링크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못을 박아 기나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 [3] 현재 모든 인터넷 유저가 항목을 작성, 수정할 수 있는 리그베다 위키에서 야구 관련 인물, 롯데 자이언츠/선수목록 항목이나 그를 언급하는 문장에 삭제선을 긋는 이유는 인간들처럼 그를 미워해서 삭제선을 긋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를 존경하고 기리는 의미에서 그리고 위대한 선수를 홀대한 KBO의 병신짓을 까기 위해서 긋는다는 것을 이 항목을 방문하는 모든 위키러에게 공지하는 바이다.
  • [4] 참고로 헨리는 큰 경기에 아주 강한 면모를 보였다. 1984년 한국시리즈 1세이브, 1992년 한국시리즈 .568 3홈런 9타점, 1995년 플레이오프 .438 8타점, 1999년 플레이오프 2승 1세이브 0.88, (그의 롯데에서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이 된) 200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단 한 타석 출장했지만 그것이 임창용에게 때려낸 결승 2루타였고, 이것은 2009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이전까지 롯데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승리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