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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화

last modified: 2015-02-27 11:25:1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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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역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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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감독시절 자 우리꺼 하자

Contents

1. 소개
2. 선수시절
3. 코치-고교 감독 시절
4. 현대캐피탈 감독 시절
5.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배구선수, 前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감독이었다. 1969년 8월 28일 생. 현재는 진주 동명고등학교 배구부 감독 겸 체육 교사다.

신장 195cm, 체중 102kg. 포지션은 레프트였으며 실업 시절 현대자동차써비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성급하게 프로감독으로 나가는 실수로 인해 '명선수는 명감독 되기 어렵다'라는 말의 산증인이 되신 분.

2. 선수시절

진주 동명고등학교를 거쳐 1988년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으며 1987년 제5회 대통령배 대회[1] 남자부 신인상을 수상했다. 4학년으로 올라가기 전이었던 1990-1991 대통령배 대회에서는 소속팀인 한양대학교의 주포로 맹활약하며 한양대학교가 대학팀 최초로 대통령배 대회 정상을 차지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이런 활약으로 일찌감치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아시아의 거포라는 별명을 가진 강만수 감독의 뒤를 이은 공격수로 평가받았으며, 1990년대 초반 당대 일본 최고의 배구스타인 나카가이치 유이치(中垣内祐一)의 라이벌로 불렸다. 비주얼이 살짝 모자라보일지 몰라도 대한민국 배구에서 최고의 토털 패키지형 공격수에서 올타임 베스트에 들만한 천재 선수였다.

1992년 졸업을 앞두고 실업팀들의 스카웃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현대자동차써비스는 91-92 슈퍼리그 한양대학교 멤버 중 졸업반이었던 88학번 하종화, 문양훈, 윤종일, 장재원 4명[2]을 데려가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해 스카우트전쟁을 벌였고 무려 7억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었다. 여기에 럭키금성이 돌연 영입경쟁중이던 윤종일과 장재원의 영입을 포기했고 고려증권과 영입경쟁을 벌였던 경기대학교의 207cm 장신 센터 제희경까지 빼오는 슈퍼리그 역사상 최고의 돈지랄을 선보여 대학 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했다. 이것이 배구 올드팬들에게 알려진 일명 88학번 싹쓸이.[3] 그러나 그들이 모인 현대자동차써비스는 기존 베테랑들이 은퇴하고 한양대팀을 통째로 뜯어와 프로화한거나 마찬가지라 팀으로써 완성도가 부족했고 특히나 세터 장재원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한국 최고의 세터 신영철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상무, 선수 10명만으로 어렵게 꾸렸던 고려증권에 밀려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이 경험이 쌓이고 손발을 제대로 맞추기 시작한 1993-94 시즌 대통령배에서 팀을 정상으로 올리며 이 대회에서 2번째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그러나 1994년 말 군 입대를 놓고 현대차써비스와 상무의 감정 대립이 발생하면서 선수 생활에 중대한 기로를 맞게 된다. 왜냐하면 1991-92 시즌 상무의 대통령배 우승 이후 실업팀들이 상무에 군입대를 시키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대표팀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하종화는 곧바로 군 입대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현대차써비스는 그를 상무로 보내지 않고 방위병으로 입대시켰다. 이 당시는 보충역 판정을 받아 방위병 입대 대상이 되었던 선수들도 상무에서 복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위병이 폐지되고 보충역이 공익근무요원으로 전환되면서 상무는 현역 대상자들만 받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이렇게 되자 1974년생 이전 배구 선수들 중 보충역 대상자들은 공익요원 복무를 택하게 된다. 이들은 재검을 받지 않는 이상 기존 방위병의 복무 기간만 복무하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하종화는 일반 부대에서 복무하게 되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상무로 옮겼다. 그러나 선수 등록이 늦어지는 바람에 1994-95 시즌 슈퍼리그에는 뛰지 못했다.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했을 때에는 이미 임도헌이 간판 스타로 자리잡고 있었고 신인인 후인정이 새로 가세한 상태였다. 하종화는 더 이상 예전같은 기량은 보이지 못했고 1999-2000 시즌 슈퍼리그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 뒤에 은퇴했다.

3. 코치-고교 감독 시절

은퇴 후 곧바로 현대자동차의 코치를 맡았으나 2003년 송만덕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항명 파동 때 코치직에서 물러난 후 낙향했다. 이후 공백기를 거쳐 모교인 진주 동명고등학교가 배구부를 재창단하자 감독을 맡으며 팀을 여러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광국, 전광인이 당시 그가 지도했던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하지만 2008년 동명고 감독 시절 대입입시 커미션 행위에 의한 배임 수재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던 흑역사도 있었다.

4. 현대캐피탈 감독 시절

현대캐피탈은 2010-2011 시즌 김호철 감독을 결승 진출 실패의 책임을 물어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하종화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프로는 커녕 성인배구 지도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갑자기 프로에 온 하종화 감독이 지휘한 2011-2012, 2012-2013 두 시즌 동안 현대캐피탈대한항공에 밀려 결승 진출을 하지 못했고 삼성화재를 상대로도 계속 열세를 보였다.호구캐피탈 애초에 고교 감독 외엔 대학교 무대 감독 경력조차 없는 경험 부족인 지도자를 김호철 감독의 후임으로 놨으니... 결국 그는 2012-13시즌이 끝나자 현대캐피탈의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물론 하종화 감독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 현대캐피탈은 故 송만덕 감독 시절에 스카웃해 왔던 선수들(권영민, 장영기, 윤봉우, 이선규, 박철우 등. 그 중 박철우는 삼성화재로 갔지만...)에게 너무 오래 의지해 왔던 반면, 프로화 이후 드래프트로 입단한 선수 중에서 팀에 제대로 정착한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하면서 고령화가 심각한 정도였다.

현대캐피탈에서 물러나 휴식기를 가진 후, 2014년 모교인 동명고등학교에 복직하였다.

5. 기타


두 딸과 함께. 가운데는 작은딸 하혜진, 오른쪽은 큰딸 하혜민.

슬하에 네 자녀가 있다. 특히 큰딸인 하혜민과 작은딸인 하혜진이 아버지를 따라 배구에 입문하여 2010년대 여자고교 배구에서 진주 선명여자고등학교가 강팀이 되는 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하혜민은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2013년에 수시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한때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고, 언니보다 키가 더 큰 하혜진은 아버지를 따라 프로선수가 됐다. 하혜진은 2014 KOVO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도로공사에 지명되어 2014-15 시즌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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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해에는 1988 서울 올림픽 준비로 1988년 대회를 2개월 앞당겨서 진행했다.
  • [2] 여기에 현대는 89학번 라이트 강성형까지 스카웃한다. 나머지 한자리였던 장홍석만 럭키금성행.
  • [3] 이 88학번 싹쓸이 때문에 삼성화재의 창단과정에서 싹쓸이에 쉴드를 치는 일부 빠들도 있지만, 현대의 88학번 싹쓸이는 협회가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쇼미더머니의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