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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헨토

last modified: 2015-01-27 20:19:47 Contributors

프란시스코 헨토 로페스
Francisco Gento Lopez
생년월일 1933년 10월 21일
출생지 스페인 칸타브리아 주 과르니소
(Guarnizo, Cantabria, Spain)
별칭 La Galerna del Cantabrico(칸타브리아의 광풍)
포지션 왼쪽 윙어(Outside-left)
등 번호 11
유소년 선수 경력
연도
?~? SD 누에바 몬타냐
?~? 유니온 클럽 아스티예로
?~? 라요 칸타브리아
프로 선수 경력
연도 클럽
1952~1953 라싱 산탄데르
1953~1971 레알 마드리드 CF
국가 대표 경력
연도
1956 스페인 B
1955~1969 스페인
감독 경력
연도
?~? 카스티야 CF
1974 CD 카스테욘
1977~1980 팔렌시아 CF
1980~1981 그라나다 CF

Contents

1. 개괄
2. 상세
3. 칸타브리아의 광풍


1. 개괄

프란시스코 "파코" 헨토. 스페인 국적의 전 축구 선수, 감독으로 레알 마드리드 CF의 전설이다. '프란시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 '파코'가 애칭이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이자 드리블러이며, 우승 청부사이다.

2. 상세

1952/1953 시즌에 라싱 소속으로 데뷔한 뒤, 한창 전력 쇄신에 열을 올리던 레알 마드리드의 눈에 띄어 곧바로 다음 시즌에 입단해 11번을 배번받게 된다. 그리고 압도적인 속도를 바탕으로 한 드리블과[1] 전문 윙어 치고는 높은 득점력을 앞세워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다. 자신보다 더 위대한 선수들이 팀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소속 팀 마드리드는 세계 최강의 전력으로 유러피언 컵 5연패라는 대업을 이룩하게 된다. 특히 AC 밀란과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펠레 스코어 역전승'을 완성한 결승 득점은 그의 커리어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기존 스타들이 하나둘씩 떠나며 저승사자 군단이 해체되는 와중에도 헨토는 꾸준히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팀은 대대적인 개혁을 거쳐 이제 Ye-yé 마드리드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헨토만은 베테랑으로서 끈질기게 자리를 지켰고,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아 6번째 유러피언 컵을 들어올리게 된다. 이후 1970/1971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했는데, 1963/1964 시즌에는 폰테베드라전(3-1 승리)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라 리가 2000호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은퇴한 뒤엔 감독, 레알 마드리드 홍보 대사 등을 역임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통산 출전 횟수 6위, 득점 7위에 올라 있다. 만약 레알 마드리드의 올타임 베스트 11을 구성한다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헨토와 경쟁하게 된다. 다만 헨토는 현대 축구에선 흔하지 않은 클래식 윙어의 대표 격인 선수이므로 호날두나 그 이전의 지네딘 지단 같은 선수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힘들다.


헨토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6회, 라 리가 우승 12회로 각각 반 세기 내내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전자나 후자나 사실상 경신하기 힘든 대기록이다. 무엇보다 이 기록은 18년 동안의 선수 생활을 통해 쌓은 것인데, 18년은 야구로 쳐도 상당히 긴 편이며 축구 선수들에게는 단순히 현역으로 버티기에도 버거운 시간이다.

참고로 3형제가 모두 레알 마드리드에서 현역 선수로 활동한 집안 내력을 가지고 있다.

3. 칸타브리아의 광풍

'La Galerna del Cantabrico(칸타브리아의 광풍)'라는 별명의 유래에 대해선 일화가 하나 존재한다.

레알 마드리드는 산 마메스 원정에서 아슬레틱 클럽에 5-0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아슬레틱의 서포터들은 경기 종료 후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고, 모든 선수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간 이후에도 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포르타(Saporta, 당시 레알 마드리드 부회장)는 선수들로 하여금 다시 경기장에 들어가 인사를 하도록 했다. 그러자 관중들은 더 큰 박수와 환호로 답례를 해 왔다. 다시 선수들이 퇴장을 시도했지만 박수 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러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헨토, 관중들이 너에게 보내는 박수다. 나가 봐라."라고 말했다. 헨토가 경기장으로 나오자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 사건은 스페인의 모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이후 그는 '칸타브리아의 광풍(La Galerna del Cantabric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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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00미터를 11초 만에 주파했는데 공을 단 상태에서도 그와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 [2] 'Galerna'는 스페인의 북쪽 해안에서 부는 강풍을 뜻하는 단어이고, 칸타브리아는 그 인근에 위치한 주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