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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클루이베르트

last modified: 2015-03-22 23:14:32 Contributors


디에구 코스타
이름 파트릭 스테판 클루이베르트
(Patrick Stephan Kluivert)
생년월일 1976년 7월 1일
국적 네덜란드[1]
포지션 포워드
신체조건 189cm, 80kg
국가대표 79경기 40골
소속팀(선수시절) AFC 아약스 (네덜란드)(1994-1997)
AC 밀란(네덜란드)(1997~1998 )
FC 바르셀로나 (스페인)(1998~2004)
뉴캐슬 유나이티드(잉글랜드)(2004~2005)
발렌시아 CF(스페인)(2005~2006)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 (2006~2007)
릴 OSC(프랑스) (2007~2008)
소속팀(코치) AZ 알크마르 (2008~2009)
브리즈번 로어 (2009-2010)
NEC (2010-2011)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012~)
소속팀(감독) FC 트벤테[2] (2011~)

안드리 셰브첸코 이전의 끝없이 하락한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의 표본.[3]

네덜란드 국적의 은퇴한 스트라이커. 국내에서 세계 4대 스트라이커로 호사가들이 칭하고, 한시대를 풍미하고 전성기시절 국대의 원톱자리를 놓고 주전경쟁을 하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생일이 똑같다.

Contents

1. 플레이 스타일
2. 클럽 경력
2.1. 네덜란드
2.2. 이탈리아
2.3. 스페인
2.4. 잉글랜드
2.5. 다시 스페인으로
2.6. 이후
3. 국가대표
4. 기타

1. 플레이 스타일

189cm의 장신에서 뿜어나오는 피지컬로 전방을 초토화시키던 전형적인 타깃 스트라이커. 전성기시절 헤딩 능력은 동시대 선수인 비어호프가 있었으니 최고라 하긴 무리가 있었으나 그를 포함해 등지는 플레이 등 타겟으로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며 루드 반 니스텔루이, 로이 마카이, 에르 반 후이동크, 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등의 출중한 스트라이커를 전부 밀어버렸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원톱. 이때 당시 로이 마카이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득점왕 출신, 하셀바잉크, 반니스텔루이는 EPL 득점왕 출신이였다.이들을 전부 주전경쟁에서 밀어버린 최고존엄.

2. 클럽 경력

2.1. 네덜란드

유럽에서 알아주는 AFC 아약스의 유스출신으로 데뷔시즌 이미 네덜란드의 전설이였던 프랑크 레이카르트를 필두로 크 오베르마스, 엣하르 다비즈, 클라렌스 세도르프, 날드 데부어, 랑크 데부어 형제, 리 리트마넨, 카엘 라이지거, 에드윈 반 데 사르등 당시 햇병아리 선수들과 함께 당시 최강팀이였던 밀란 제네레이션을 꺾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견인한다.[4] 클루이베르트는 이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고 전세계의 주목과 함께 특히 마르코 반 바스텐의 은퇴이후 니엘 마싸로, 얀 사비세비치로 만족하지 못해 반 바스텐의 후계자를 찾던 AC 밀란의 관심을 끌게 된다.
이후 2시즌을 주전으로 활약하다 AC 밀란으로 이적한다.

2.2. 이탈리아

당시 초특급 유망주로 꼽히던 엣하르 다비즈, 옌스 레만와 함께 AC 밀란으로 향하지만 다비즈는 당시 최고의 딥 라잉 미드필더 였던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에게, 레만은 바스티안 로시[5] 마르코 반 바스텐의 후계자로 주목을 받던 클루이베르트는 로베르토 바지오, 조지 웨아등에게 밀려 후보신세로 전락해 불만을 품고 1년만에 팀을 떠나게 된다.[6]

2.3. 스페인

결국 FC 바르셀로나로 헐값에 이적하여, 1년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한 호나우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최전방 공격수로 낙점된다.[7] 아약스 시절 자신을 이끌었던 루이스 판 할 감독과 다시 재회하여 드디어 기량을 만개하여, 히바우두, 클루이베르트, 루이스 피구라는 당시 역대 최강급 공격진의 일원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나 계속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운이 없었는지 팀을 떠날때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8] 유로 2000을 정점으로 슬슬 기량하략이 눈에 띄었지만 하필 당시 바르샤에서 루이스 판 할을 다시 기용한지라 히바우두와 세르히는 재계약을 포기하고 각각 AC 밀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자유계약으로 이적해버리고, 기껏 영입한 히카르두 콰레스마, 시망, 후안 로만 리켈메 등은 이상한 포지션에 세우는 기행을 선보이는 와중에 클루이베르트는 하비에르 사비올라와 투톱을 이루며 그럭저럭 스텟을 쌓아주었지만 전성기만큼의 임펙트는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03-04시즌 결국 판 할을 경질하고 네덜란드 국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클럽팀 감독경험으로는 스파르타를 강등으로 인도한 프랑크 레이카르트감독을 임명하는 초 강수를 둔다. 레이카르트도 전반기에는 클루이베르트를 기용하였으나, 눈이 썩는 경기력으로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결국 사비올라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린다.[9] 시즌이 끝나고 04-05 여름 이적시장에서 마요르카의 떠오르던 공격수 사무엘 에투의 영입으로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10] 바르셀로나 시절 기록은 182경기 90골로 경기당 약 0.5골 꼴.

2.4. 잉글랜드

클루이베르트의 새로운 안식처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이였다. 아무리 기량이 하략했어도 클루이베르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루드 반 니스텔루이를 밀어낸 부동의 네덜란드 원톱 스트라이커였기에 팬들과 언론의 기대는 대단하였다. 하지만 리그적응 실패, 부상 및 부진등으로 25경기 6골이라는 악몽스러운 기록을 세우고 발렌시아 CF로 이적하게 된다. AC 밀란 시절이후 최대의 흑역사였지만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2.5. 다시 스페인으로

이미 기량이 하락한 클루이베르트를 영입한 구단은 발렌시아 CF였다. 하지만 당시 떠오르던 신예 다비드 비야에게 밀려 10경기 1골을 기록하는 최악의 커리어를 기록하고 1년후 다시 팀을 떠나게 된다.(...) 이때의 폭풍삽질로 2006 독일 월드컵참가가 물거품이 된것은 덤.

2.6. 이후

이후 06-07시즌은 PSV, 07-08 시즌을 프랑스의 릴 OSC에서 보내나 전부 기대이하의 활약을 보이며 쓸쓸하게 은퇴하게 된다. 전성기 시절 전 세계를 호령했던 스트라이커의 말년이 이렇게 허무할줄 누가 알았는가. 동갑내기 반 니스텔루이가 06-07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피피치를 수상하고 유로 2008에 참가하는등 계속 멋진활약을 보인것과는 대조적. 현재는 트벤테의 유스감독과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코치로 일하고 있다.

3. 국가대표

뤼트 판 니스텔로이, 로이 마카이등 네덜란드의 쟁쟁한 스트라이커를 죄다 묻어버린 부동의 원톱 스트라이커였다. 통산 79경기 40골로빈 반 페르시가 2013년 기록 경신하기 전까지 네덜란드 A매치 통산 최다 골 기록 보유자였다.

다만, 유로 96에서는 부상으로 거의 뛰지 못하다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넣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첫경기 벨기에전에서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한국 경기에 뛰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네덜란드 부동의 국대 스트라이커라는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알다시피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네덜란드가 예선탈락으로 아예 못나왔으니까(...).

클루이베르트 국대 커리어의 정점은 유로 2000으로, 유고전 해트 트릭 포함. 5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한 것.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은 예선탈락해버렸고,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유로 2004때는 국대 승선은 했으나 딕 아드보카트가 그를 여러가지 문제로 기용하지 않아 결국 유로 2004가 마지막 국대가 되었다.

4. 기타

기량이 한순간에 몰락한 선수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신체와 경험이 완숙되어 가장 기량이 빛난다는 20대후반에 저니맨이 되어 소속팀마다 이정도로 망한 월드클래스급 공격수를 찾는 것이 어려울정도.[11] 특히 06-07시즌 동갑내기의 같은 국적소속 반 니스텔루이가 라리가에서 26골을 넣어 피피치가 된것과 대조적.

기량이 빨리 몰락한 이유는 다른거 없다. 불성실한데다 멘탈이 별로였기 때문. 이 선수가 친 가장 큰 사고는 1995년 아약스시절 일으킨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했고 운전면허 박탈에 24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은 것.[12] 이것도 당시 죄질에 비해 낮은 형량이었다고 언론에서 까였고 1996년에는 성추행 의혹도 있었다. 아약스를 떠나 해외로 간건 이런 문제때문이었다. 클루이베르트와 비슷한 이유로 몰락한 스트라이커로는 세리에 팬들의 자랑이였다가 금지어까지 추락한 아드리아누가 있다.

불성실하고 방탕했었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지도자로 전향한 후에는 차근 차근 커리어를 쌓으며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월드클래스 포워드였다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공격수 조련에 일가견을 보이는 모습. 대표적으로 현재 토트넘 핫스퍼에서 뛰고 있는 무사 뎀벨레의 경우 클루이베르트와 함께 한 시즌에 커리어 처음으로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등 빼어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의 지도력만 꾸준히 보여준다면 조만간 1군 팀 감독으로써의 모습을 볼 수 있을듯.....

전부인 하고 사이에서 아들이 세 명, 그리고 재혼한 와이프 하고 사이에서 또 아들을 낳아서 아들이 무려 4명이나 있다. 오오 네덜란드애국자 전부인 하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세 명, 퀸시, 저스틴, 루벤은 모두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막내 아들인 셰인도 조금 더 자라면 축구를 하게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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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수리남 출신으로, 똑같이 수리남 출신으로는 대표적으로 엣하르 다비즈, 루드 굴리트, 클라렌스 세도르프 등이 있다.
  • [2] 유소년 팀
  • [3] 셰브첸코는 30대 초반 새로운 리그의 적응과 마누라의 등쌀등 주변의 상황으로 인한 잘못된 선택을 보여줬다면 클루이베르트는 부상과 슬럼프등의 멘탈문제로 얼마나 망가지는지 잘 보여준다.
  • [4] 이 우승을 마지막으로 아약스는 현재까지 챔스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감독은 이후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등에서 성공적인 감독생활을 했으나 특유의 똥고집으로 최악의 결과를 도출시키고 항상 경질된 루이스 판 할. 그 중 압권은 히바우두를 왼쪽날개로 고정시켜버린것. 요즘 축구판으로 따지면 리오넬 메시를 왼쪽 윙포워드만으로 출전시키는 정신나간 짓을 벌였다고 비유할수 있다.
  • [5] 밀란제네레이션 시절의 주전 골키퍼. 클럽에서의 위용과 다르게 국가대표에서는 시대별로 노 조프, 루카 팔류카, 지안루이지 부폰등에게 밀려서 인지도가 낮은편.
  • [6] 세리에 A 경기는 당시 22팀 42경기였으며 클루이베르트는 26경기를 출전하여 7골을 넣었다. 어린선수치고 많은 골을 넣었지만 팀의 레전드인 반 바스텐의 후계자이자 즉시전력감으로 데려온 선수가 이래서야(...) 이후 안드리 셰브첸코가 영입되면서 반 바스텐 이후 확고한 주전 공격수를 차지한다.
  • [7] 호나우두의 후계로 영입된 선수는 히바우두지만 상기했다시피 판 할감독은 히바우두를 왼쪽 윙포워드로 고정시킨다.그럼에도 미친 듯한 활약을 보여줬다
  • [8] 바르셀로나의 대외컵 암흑기 시즌은 드림팀 1기 말년이던19 94년도 AC 밀란에게 결승전에서 4:0으로 떡실신 당한후부터 04-05시즌 전까지 계속 유지된다. 심지어 클루이베르트 합류전 시즌에는 안드리 셰브첸코에게 농락당하며 예선에서 떨어지는 수모까지 겪는다.
  • [9] 참고로 사비올라는 빅&스몰의 투톱 스트라이커로 바르샤식 4-3-3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수이다. 이런 타입의 선수에게 밀렸다는 것은...
  • [10] 이 직후 4-3-3 전술을 채용함으로써 투톱 전문인 하비에르 사비올라 역시 임대를 전전한다. 사비올라의 경우 팀을 제대로 잘못만나 망한 케이스지만.
  • [11] 반등에 성공한 셰브첸코는 제쳐두더라도 이 분이 뒤를 이어가고 계신다.
  • [12] 때문에 미국 투어에는 입국 금지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