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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말디니

last modified: 2015-04-13 23:32:43 Contributors

Maldini.jpg
[JPG image (Unknown)]
전체 이름 파올로 체사레 말디니
(Paolo Cesare Maldini)
생년월일 1968년 6월 26일
국적 이탈리아(Italy)
출신지 밀라노(Milano)
신장 186cm
포지션 풀백(Full-back), 센터백(Centre-back)
유스 경력 AC 밀란(1978~1985)
클럽 경력 AC 밀란(1985~2009)
국가대표 126경기 7득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프랑코 바레시
(1991~1994)
파올로 말디니
(1994~2002)
파비오 칸나바로
(2002~2010 )

AC 밀란 말디니 家 영구 결번
No. 3

2005 FIFPro World XI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프랭크 램파드
MF
클로드 마켈렐레
MF
지네딘 지단
MF
호나우지뉴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존 테리
DF
카푸
GK
디다

1995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조지 웨아
2위
파올로 말디니
3위
위르겐 클린스만
1994 Ballond'or
수상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2위
로베르토 바조
3위
파올로 말디니
2003 Ballond'or
수상
파벨 네드베드
2위
티에리 앙리
3위
파올로 말디니

Contents

1. 소개
2. 선수시절
2.1. 플레이 스타일
2.1.1. 공격력
2.1.2. 수비력
2.2. 퇴장? 그게 뭐죠?
2.3. 커리어
2.3.1. 클럽 커리어
2.3.2. 국대 커리어
2.3.3. 그 외
2.4. 부전자전
2.5. 위대한 기록들
3. 기타
4. 경력
4.1. 우승
4.2. 준우승
4.3. 국가대표팀
4.4. 리그 기록
4.5. 개인 수상

1. 소개

"현 시점에서 리오넬 메시가 최정상에 있고 카카가 깊은 인상을 줬으며 지단은 의심할 나위 없는 천재였으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파올로 말디니다."
- 알렉스 퍼거슨
AC 밀란의 영원한 카피탄이자 밀란, 아주리, 그리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왼쪽 측면 수비수[1]
프랑코 바레시, 디에고 마라도나, 마르코 반 바스텐, 로타어 마테우스, 로베르토 바조, 호마리우,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히바우두, 안드리 셰브첸코, 알레산드로 네스타, 프란체스코 토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호나우지뉴, 파비오 칸나바로,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물론 이건 극히 일부분이다!)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과 공식 경기에서 모두 상대해 본, 혹은 동료로 같이 뛴 축구 선수.[2]
필드에 뛰는 순간부터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그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
현역 프랜차이즈 스타인 푸욜이나 긱스, 토티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 있었을 때의 라울조차도 그의 아성에 미치지는 못했다.
여담으로, Maldini를 재배치하면 'Di Milan'. "밀란을 위한!" 이란 뜻이 된다.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말디니 가문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냥 우연으로만 생각하기엔 운명적이다.
80년대부터 00년대 중,후반까지 축구사를 관통한 역사 자체이며 산 증인. 그와 함께 필드를 뛰었던 선수들은 세월을 못이기고 하나 둘 역사의 뒤로 사라졌지만 말디니는 굳건하게 20년 넘는 세월동안 산 시로와 밀란 그리고 이탈리아를 지켰다. 그리고 최고였다.

100년이 넘는 축구사의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해서 역대 월드 베스트 11을 뽑는다고 해도 당당히 뽑힐 수 있는 선수.
프란츠 베켄바워, 프랑코 바레시, 가에타노 시레아, 니엘 파사렐라, 비 무어, 리아스 피게로아와 함께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수비수. 거기다 저 6명은 모두 리베로 보직의 선수거나 센터 백인 데 반해 말디니의 주포지션은 왼쪽 풀 백이다. 물론 30대 중반 이후에는 체력 문제로 센터 백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풀 백으로도 뛰었다.

2. 선수시절

1985년 1월 20일, AC 밀란 vs 우디네세. 세르지오 바티스티니의 부상으로 교체된 말디니, 이 때 나이 고작 16세. 더 놀라운 건 17세의 나이일 때 AC 밀란의 주전이 되었다. 흠좀무... 그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오로지 AC 밀란을 위해 활약했다. 자신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와 함께 AC 밀란 최고의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다.

2.1. 플레이 스타일

처음엔 왼쪽 풀 백이었지만 2002년부턴 센터 백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고 나중엔 오른쪽에도 기용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원래 그가 오른발잡이였다는 것. 왼쪽에 주로 기용될 것이 확실시되자 왼발을 오른발과 같이 쓰기 위해 죽도록 연습했다고 한다.[3]

2.1.1. 공격력

개인기가 좋아서 다른 수비수들이 공격수 사이에 둘러싸이면 주로 뻥축구를 하는 것과는 달리 말디니는 개인기로 공격수를 농락하고 드리블하여 오버래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흔히 말디니의 플레이를 '우아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의 이런 훌륭한 개인 능력에 있다. 이런 개인 능력의 진수가 가장 잘 발휘된 장면은 이탈리아가 3 백을 쓰고 윙 백으로 말디니가 나선 유로 2000인데, 특히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말디니가 측면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는 지단도 어쩌지 못했고 경기는 이탈리아가 잡고 있었다. 물론 말디니는 당시에도 노장이었다. 프랑스의 골은 말디니의 체력이 떨어진 이후에 나왔다.

##
이 영상을 보라. 도대체 이게 어딜 봐서 수비만 잘하는 풀 백이라고 하겠는가. 전성기 시절 그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했다.

2.1.2. 수비력

수비 능력은 역사상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훌륭하다. 수비수로서 가져야 하는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갖췄다. 그 중에서도 상대의 공격 방향을 예측하여 그 맥을 끊어 버리고 공격하지 못하도록 구석으로 밀어 버리는 능력은 절륜 중에서도 절륜. 유로 2000에서 네덜란드와의 4강전에서 당대 최고의 스피드 윙어인 오베르마스가 말디니를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돌파하지 못하고 막혔다. 지금도 '말디니 오베르마스' 라고 치면 그날 경기에서 말디니와 오베르마스의 1대 1 경합 동영상이 있다. 말디니의 수비력을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장면. 특히 이 경기는 이른 시간에 이탈리아의 퇴장이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오베르마스 역시 대단한 선수[4]기에 말디니를 돌파할 뻔한 모습도 보여주지만 그 때마다 말디니가 반칙을 써서라도 그를 확실하게 저지했다. 동료들 입장에서는 든든할 수밖에 없는 수비력. 그러니까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최근의 로벤이 컨디션도 빨딱 서 가지고 돌파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단 한 번도 돌파를 못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다 오베르마스만 돌파를 시도한 게 아니라 오른쪽 풀 백이었던 젠덴이 오베르마스와 계속 스위칭하면서 돌파한 것. 사실상 혼자서 2명을 상대했다는 건데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다는 건 경이적이다.[5]

필요없는 첨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윙, 풀 백으로서는 역대급 수비력을 자랑했지만 말년에 뛰었던 중앙 수비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 축구 커뮤니티나 축구 게시판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역대 베스트 11이라는 주제로 글이 올라올 때 말디니를 센터 백 자리에 놓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축구 지식도 없으면서 허세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주포지션인 레프트백으로 당당히 역대 No. 1으로 꼽히는 선수를 왜 굳이 주포지션 베스트에 안 놓고 부포지션인 센터 백 자리로 놓는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6] 포포투에서는 80년대 이후 최고의 센터 백 11위에 뽑히기도 했는데, 네임 밸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7] 주포지션인 레프트백으로는 단연 1위. 2위가 카를로스다.[8]

2.2. 퇴장? 그게 뭐죠?

더 놀라운 사실은 20년이 넘는 커리어 중, 퇴장당한 건 딱 2번 이라고 한다. 그 말은 말디니가 파울을 할 때도 상당히 지능적으로 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위의 오베르마스와의 1대1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절대 이 선수가 신사적으로 축구하는 선수라서 퇴장이 없는게 아니다. 손으로 밀기 다리로 걸기 모두 다 폭넓고 더럽게 구사한다. 단 심판이 카드를 꺼내야 하나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게 하는 수준으로. 축구황제 호나우두를 비롯해 지네딘 지단,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호나우지뉴, 루이스 피구 같은 선수는 말디니가 가장 힘들었던 수비수 중 한명이라고 밝혔다. 반면 말디니 자신은 호나우두가 밀란으로 이적할 때 "호나우두는 여지껏 내가 마크했던 공격수 중 두 번째로 막기 힘든 선수"라며 격찬했다. 말디니가 아닌 다른 평범한 선수였으면 '두번째는 무슨 허세부리고 있네'라고 취급되었겠지만 말디니가 꼽은 첫번째가 마라도나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격찬 맞다(...)

처음 마라도나와 붙었을 때 '에이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뭐 다를 게 있겠어?' 라고 생각하고 마라도나와 경기에서 부딪혔고 당연히 그 경기에서 몇번의 신체적인 충돌이 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허벅지가 쑤셔서 보니 멍이 나있었다고...

2.3. 커리어

국대엔 88년, 19세의 나이에 승선되면서 그때부터 2002년 은퇴하기 전까지 국대에서도 언터처블이었다. 아주리에선 총 126경기를 뛰면서 아직도 국대에서 최다 경기를 소화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이것은 칸나바로에 의해서 기록 경신이 되었다.

2.3.1. 클럽 커리어

말디니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많은데, 설명하려면 입이 아플 정도. 챔피언스 리그 우승 5회, 세리에 A 우승 7회, 수페르코파 우승 5회, UEFA 슈퍼컵 우승 5회, 인터컨티넨탈 컵 우승 2회, 피파 클럽 월드 컵 우승 1회까지. 상당히 사기적인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2.3.2. 국대 커리어

화려한 클럽 커리어를 뒤로 하고...

국대에선 콩라인.

국대에선 클럽과는 다르게 우승컵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디니는 4번의 월드 컵(90, 94, 98, 2002) 와 2번의 유로 컵(96, 2000)에 진출했는데, 90년 이탈리아 월드 컵에선 3위, 94년 미국 월드 컵에선 준우승, 이어 유로 2000 결승전에서도 트레제게에게 통한의 골을 먹고 준우승에 그쳤다. 따라서 국대에서는 무관의 제왕.

일단 국가대표 데뷔는 1988년 이었는데 확실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 답게, 88년에 데뷔하자마자 그해 유로와 올림픽에 참가한다. 유로 4강, 올림픽 4위로 그 한해를 마무리 한다.

월드컵 단일 대회 역사상 최강의 수비 라인으로 평가받고 월드 컵 단일 대회 최장 시간 무실점을 기록한 90년 월드 컵 키퍼 왈테르 젱가에 말디니-바레시-베르고미-페리로 이어지는 라인 중 한 명이었다.[9] 여러모로 수비에서는 레전드.

2002년 월드 컵에서는 16강에서 우리나라에게 패배해 탈락. 더군다나 이 경기에서 이천수에게 뒤통수를 까이는(...) 안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2002년 월드 컵은 안 좋은 기억밖에 없는 생애 최악의 대회라고 한다. 이 경기만 이겼으면 로타어 마테우스를 제치고 월드 컵 최다 경기 출전, 최다 시간 출전 기록자에 오를 수 있었으나 무산[.

흔히 90년대 말부터 00년대 초, 중반까지 이탈리아 수비 라인의 베스트를 말디니-네스타-칸나바로-잠브로타 로 뽑는데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이 라인이 제대로 가동된 적은 유로 2000과 2002년 월드 컵 조별 리그 첫경기 에콰도르전밖에 없었다.

특히 유로 2000에서는 그마저도 결승전에서는 4강전에서 잠브로타의 퇴장으로 발동 될 수 없었고... 그것은 결국 결승에서 통한의 역전패로 이어진다.

그리고 2002 월드 컵은 조별 리그 첫 경기를 제외하고는 부상당한 네스타 땜빵으로 들어간 마테라치의 돌고래짓에 허우적대다가 결국 마테라치의 커버 플레이를 해주던 칸나바로가 경고 누적으로 16강전에 못 나가게 되었다. 이 직전 시즌 말디니의 선수 생활에 손꼽히는 부상이 있었고 실제로 까딱했으면 참가를 못할 뻔했었다. 이 부상의 여파가 월드 컵까지 이어지는 불운이 있었다. 거기다 네스타의 대회 중 부상과 칸나바로의 경고 누적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말디니를 센터 백으로 기용했는데 한국과의 16강전은 연장후반 안정환의 헤딩을 제대로 커버 못해서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졌다. 참고로 말디니가 국가 대항전이나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커맨더 센터 백으로 선 경기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쨌든 94년 월드 컵에서의 말디니는 윙어와 무한 스위칭을 하며 상대의 오른쪽을 공격시에는 초토화, 수비시에는 우주방어로 고사시키는 포지션이었다. 특히 한창 팔팔했을 때 참가한 94년 월드 컵에서는 로베르토 바조,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셋이서 월드 컵 결승에 진출시켰다고까지 평가받으며[10] 사람들이 모르는 것 중에 하나가 94년 월드 컵 결승전 MoM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로 2000까지 계속된다.

확실하게 센터 백으로의 포지션 체인지를 한 건 06년 쯤이었고, 그 직전 시즌까지만 해도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로 대표되는 후덜덜한 라인의 왼쪽에서 군림했다. 이후 스탐이 떠나고 카푸가 슬슬 노쇠화 되고 말디니의 체력도 떨어지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센터 백으로 완전히 보직을 변경했다.

이 즈음해서 예전같은 오버래핑보다는 네스타와 함께 안정된 수비로 안습 시절 밀란의 구세주로서 공격 조작보다는 안정된 수비를 추구했으나 은퇴 시즌에 마지막 홈 경기와 원정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삘 받으셨는지 아니면 팬들에게 옛추억을 주려 하신 건지 갑자기 센터 백에서 상대방 진영까지 올라오셔서 패스를 찔러주시고 중거리포를 때리시는 등의 리베로 플레이를 보여주셨다.

마르첼로 리피는 파올로 말디니에게 2006년 월드 컵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했고, 그 전에는 트라파토니가 말디니에게 2004년 유로 대회를 같이 하자고 제의를 했지만, 말디니는 두 제의 모두 거절.

근데 이탈리아는 2006년 월드 컵에서 우승해 버렸다. 안습.

말디니가 은퇴한 직후 2010년 초에 마르첼로 리피는 이탈리아 축구 협회 측에 요청하여 이탈리아 vs 북아일랜드 경기를 말디니의 국대 마지막 경기로 정하려고 했지만, 이 역시 거절되었다.

2.3.3. 그 외


말디니는 부상이 크게 없는 선수로 또 유명하지만, 2001/02 시즌에는 저주가 걸렸던(…) 산 시로 구장에서 그만 부상을 당해 15경기를 뛰는 데 그친 바 있다.[11] 하지만 다음해 29경기를 소화하면서 부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에서는 웬만한 젊은 수비수보다도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아스날전에선 평점이 제일 높았다. 사실 그 경기를 보면서 가장 혀를 찼던 것은, 상대 팀 아스날의 주장이라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말디니가 프로 데뷔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새파란 것이었으니 이 사람 참(파브레가스 87년생, 말디니 1군 데뷔 85년)...

저 유명한 말네스카 라인이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에만 만났다면 그 당시 선수들이 밀란이 챔스를 몇 번은 더 먹었을 거라고 호사가들은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90년대 말 00년대 초라면 이들 각자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었거나 전성기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 말 그대로 수비계의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는 공격진만 갈락티코스로 만들지 말고 수비진도 이렇게 만들란 말이다! 말네스카보다 카를로스 이에로 엘게라 살가도 라인이 실점 더 적은게 함정 그리고 함정 뒤에서 울고 있는 카시야스 정작 말네스카가 만났던 00년대 중반에 네스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3명은 슬슬 정점에서 내려오는 시기였다. 그리고 저 4명 모두가 사이좋게 돌아가면서 부상을 달아서...

원래는 2007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할 예정이였다. 재계약을 시도하던 밀란과의 협상도 연봉 문제로 진전이 안 되었지만, 5위로 그치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긴 밀란이 안타까웠는지 2008년까지 더 뛰겠다고 발표를 했고, 다음 해에도 그 때 쯤 또 한 시즌 연장. 2009년에는 결국 2위로 시즌을 마침과 동시에 은퇴를 했다. 그가 뛴 경기는 총 902경기(챔피언스 리그 등 포함) 로, 오로지 밀란에서만 뛴 경기다.

은퇴 시즌인 08/09 시즌 말기에는 유베와의 경기에서 키엘리니한테 빡쳐서 키엘리니의 목을 조르는(...) 평소 말디니답지 않은 거친 행동을 보이면서[12][13] 경고를 받기도 했고, 그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는 밀란 팬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밀란 팬들은 말디니를 존중하지만, 우리의 캡틴은 영원히 바레시라고 했는데, 이는 예전 2004/05 이스탄불에서 벌어졌던 결승전에서 밀란 팬들이 밀란의 드라마틱한 패배에 분노하여 비난하자 말디니가 역으로 팬들을 비난했던 것에 대한 보복이였다나 뭐라나. 또 다른 설은 밀란 보드진의 막장 경영 때문에 애꿎은 말디니가 희생되었다는 것.

어쨌든 이 일은 유럽 축구계의 저명한 선수, 인사들 모두가 '병신짓'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희대의 병크였다.[14] 그래서일까, 바르사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08-09 챔스 우승 이후 우승의 영광을 말디니에게 돌리는 등 그에 대한 존경심을 전했다.

이후 첼시로 가 버린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과 함께 첼시로 간다는 루머가 있었고, 실제로 안첼로티가 말디니에게 코치직을 제의했었다. 그러나 말디니는 이를 거절했고, 최근에는 밀란 유스 팀의 코치를 맡는다는 루머가 있다.

2.4. 부전자전

두 아들인 크리스티앙 말디니와 다니엘 말디니도 지금 현재 AC 밀란 유스 팀에서 성장 중이며 둘다 수비 쪽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고... 다만 큰 아들 크리스티앙 말디니는 브레시아 유스팀으로 임대를 간 상태이다...

만일 두 아들 중 한 명만 AC 밀란 성인 팀에 데뷔만 하게 된다면, 아부지 후광 때문에 성격이 웬만큼 개차반만 아니면 주장 완장을 채워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말디니 家는 3대가 유럽 굴지의 명문 클럽의 주장을 역임한 가문이 된다.[15]

그의 등 번호인 3번은 영구 결번 되었으며, 말디니는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이 나중에 성인 팀에 데뷔를 할때 그 번호를 물려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파올로(말디니)의 등 번호 3번 역시 아버지였던 체사레 말디니의 3번을 물려받은 것이니, 어쩌면 등 번호마저 3대가 이어서 달게 될 지도.


... 다섯 살짜리가 벌써부터 카테나치오를 하고 있다.
5살짜리가 사람은 내버려두고 공만 슬쩍 빼내는 것도 놀라운데 잘 보면 태클을 하기 직전 일부러 속도를 줄이고 있다(...). 참고로 동영상에 세도르프는 그냥 세계적인 선수가 아니라 말디니와 마찬가지로 FIFA 100인 선수 중 하나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 다른 세 개의 팀[16] 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며,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 붙박이 멤버이기도 했다. 흠좀무... 그래봐야 661 흑형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꼭 영입하고 싶었던 선수라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를 경기장에서 만나 자신이 얼마나 그를 영입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자 체자레 말디니는 미소지으며 "제 할아버지도, 제 아버지도, 저도 AC 밀란에서 뛰었습니다. 제 아들도 그리 해야지요."라고 답했고 퍼거슨 감독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아무튼 크면 얼마나 잘해줄지 기대가 되는 선수...



라고 생각했는데, 유스 레벨에서도 파올로의 두 아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명성을 잇기엔 너무도 평범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큰 아들이 20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때에는 1군에 올라와서 훈련 기회를 받고, 2014-15 시즌부터 프리마베라의 주전으로 뛴다니 일말의 기대감은 놓지 말자.

2.5. 위대한 기록들

다음은 말디니에 관한 기록들.

  • FIFA 100인의 선수 중 한명.
  • 월드 사커 잡지에서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바 있다. 이는 월드 사커 잡지 사상 수비수에게는 최초로 수상되었음.
  • 프란츠 베켄바워, 바비 무어, 엘리아스 피게로아, 가에타노 시레아, 다니엘 파사렐라 그리고 프랑코 바레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수비수로 평가받고 있음.
  • 94년 피파 월드 컵 결승전 MoM
  • 셀틱전을 통해 챔피언스 리그에서 100번째 경기를 달성하였다. 100번 이상 경기를 가진 선수는 올리버 칸(은퇴), 루이스 피구(은퇴), 데이비드 베컴(은퇴), 호베르토 카를로스(은퇴), 라이언 긱스(은퇴), 클라렌스 세도르프(밀란 감독), 폴 스콜스(은퇴), 라울 곤잘레스(알 사드) 뿐이다.
  • 2004/05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말디니의 골로 2개의 기록이 갱신되었다. 하나는 결승전 최단 시간 골 기록, 또 하나는 결승전 최고령 득점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이...
  • 밀란에서는 902번의 경기를 가졌다. 흠좀무.
  • 인터콘티넨털 컵에 5회 진출. 이는 코스타쿠르타와 같은 기록이다.
  •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선 8번의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최다 우승 기록자인 프란시스코 헨토(레알 마드리드)와 동일한 기록이다.
  • 부자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을 경험하였다.[17] 파올로의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는 주장으로서 처음으로 밀란에게 빅 이어를 안겨준 바 있다.[18]현재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장식한 알파가 체사레라면 오메가는 파올로라고 볼 수 있다.
  • 월드 컵에선 23경기를 뛰었는데, 이 기록을 넘는 선수는 로타어 마테우스(25번)밖에 없다. 최근엔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24번째 경기를 뛰며 말디니의 기록을 넘은 또하나의 레전드가 되었다.(물론 모든 경기가 풀타임은 아니었기에 말디니보다 플레이 시간은 적다.)
  • 월드 컵에서 뛰었던 23경기는 모두 풀 타임 출장이다.
  • 월드 컵에서 무려 2217분을 뛰면서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2위는 2052 분을 뛴 마테우스.
  • 세리에 A에서 58경기 무패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1991년 ~ 1993년)
  • 22세에 26개의 타이틀을 얻었다.
  • 월드 사커에서 1999년에 선정한 20세기 역대 최고의 선수 21위(말디니 이상의 순위에서 이름을 올린 수비수는 베켄바워와 무어, 그리고 바레시. 각각 순위는 베켄바워는 4위, 무어는 14위, 바레시는 19위). 해당 링크
  • 월드 사커에서 2013년에 선정한 20세기 역대 베스트 11에서 당당히 왼쪽 풀 백을 차지했다. 참고로 월드 사커에서 뽑은 역대 베스트 11 수비 라인은 말디니-베켄바워-바비 무어-카푸. 말디니는 이 수비 라인에서 유일하게 월드 컵 우승 경험이 없지만 당당하게 왼쪽을 차지한 것을 보면 말디니의 위대함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 풋볼지 선정 지난 60년간 최고의 선수부문 1위에 선정되었다. 이건 꽤나 괄목할 것인데 어떤 조사기관을 찾아봐도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뽑히는 베켄바워를 제치고 1위에 선정된 것이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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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풋볼 매니저에서 기묘하게 부상을 당한 짤방이 돌기도 했다.[19]

4. 경력

4.1. 우승

  • AC밀란 (1985/86 - 2008/09)
    • Serie A (7) : 1987/88, 1991/92, 1992/93, 1993/94, 1995/96, 1998/99, 2003/04
    • Coppa Italia (1) : 2002/03
    • Supercoppa Italiana (5) : 1988, 1992, 1993, 1994, 2004
    • European Cup/Champions League (5): 1988/89, 1989/90, 1993/94, 2002/03, 2006/07
    • UEFA Super Cup (5) : 1989, 1990, 1994, 2003, 2007
    • Intercontinental Cup/FIFA Club World Cup (3) : 1989, 1990, 2007

4.2. 준우승

4.3. 국가대표팀

4.4.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84/85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 0 0 0 0 0
1985/86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7 0 6 0 6 0
1986/87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9 1 7 0 - -
1987/88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6 2 1 0 2 0
1988/89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6 0 7 0 7 0
1989/90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1 6 0 8 0
1990/91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6 4 3 0 4 0
1991/92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1 3 7 1 - -
1992/93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1 2 8 0 10 1
1993/94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1 2 0 4 0
1994/95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9 2 1 0 11 0
1995/96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0 3 0 8 0
1996/97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1 1 3 0 6 0
1997/98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0 7 0 - -
1998/99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1 1 2 0 - -
1999/00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7 1 4 0 6 0
2000/01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1 1 4 0 14 0
2001/02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5 0 0 0 4 0
2002/03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9 2 1 0 19 0
2003/04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0 0 0 9 0
2004/05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3 0 0 0 13 1
2005/06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4 2 0 0 9 0
2006/07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8 1 0 0 9 0
2007/08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7 1 0 0 4 0
2008/09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0 0 0 2 0

4.5. 개인 수상

  • 브라보 상[20] : 1989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올스타 팀 : 1988, 1996, 2000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 1990, 1994
  • UEFA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MVP : 2003
  • FIFA 올해의 선수 : Silver Award
  • 발롱도르 브론즈 어워드 : 1994, 2003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 1994
  • Serie A 올해의 수비수 : 2004
  • 피파 100인의 선수
  • UEFA 올해의 팀 : 2003, 2005
  • FIFPro 월드 베스트 XI : 2005
  • ESM Team of the Year: 1994–95, 1995–96, 1999–00, 2002–03
  • UEFA 유럽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수비수 : 2007
  • UEFA 챔피언스리그 공로상 : 2009
  • Marca Leyenda: 2009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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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호사가들은 라이트백은 무조건 카푸지만 취향에 따라 레프트백에 말디니 대신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넣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매체에서 꼽는 역대 베스트 11의 왼쪽 풀백은 대다수 말디니이다. 국내에 해축이 보급된 시기는 말디니가 나이를 먹어 센터백을 수행했던지라 대다수 국내팬은 잘 모르지만 전성기 시절 말디니의 오버래핑은 카를로스 못지않은 엄청난 공격력을 뽐냈다.
  • [2] 아쉽게도 리오넬 메시 는 공식 경기에서 만나 보지 못했다. 05/06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바르셀로나와 밀란이 붙었지만 메시는 그 때 부상.
  • [3] 말디니가 정말 대단한 것은 죽도록 연습한 덕분에 프리 킥과 같은 데드 볼 상황에서도 왼발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 아무리 양발을 잘 사용하더라도 데드 볼 상황에서는 주로 자신있는 발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의 연습량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유로 2000 4강 네덜란드전 승부차기에서 왼발로 킥을 했다. 결과는 실축이었지만.
  • [4] 90년대 후반에는 단연코 월드클래스 윙어였다. 2000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기록한 250만 파운드의 이적료는 당시 네덜란드 선수 이적료 최고가를 경신한 기록. 다만 바르샤 이적 이후 부상으로 인한 스피드 저하로 폼이 확 죽어버리며 조기은퇴를 하고만다.
  • [5] 혼자서 2명을 상대하면 당연히 뚫리니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서는 좀 과장된 서술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2명을 정확히는 번갈아가면서 상대한 건데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놀라운 플레이였던 것은 맞다.
  • [6] 이 경우 레프트백은 브라질의 카를로스나 프랑스의 리자라쥐를 놓는 경우가 많다.
  • [7] 포포투의 이 칼럼에서 라이트백 포지션에서 릴리앙 튀랑을 11위에 올려 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센터 백 포지션에서 튀랑은 9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 [8] 물론 기준이 올타임 베스트 레프트백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80년대 이후 최고의 레프트백 2위였던 카를로스의 위치가 확 뒤로 밀린다는 의미. 브라질 내에서만 하더라도 월드 컵 4회 출전에 2회의 우승을 이끈 니우통 산토스가 있고, 인테르의 전설인 아친토 파케티라든가, 토탈 풋볼의 수비 핵심이었던 트 크롤 등이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말디니는 꿋꿋하게 올타임 베스트 레프트백 No. 1을 지키고 있다. 대단한 위엄.
  • [9] 2010년에 스위스가 깼네 뭐네 하는데 키퍼도 다르고 두 번 대회에 걸쳐서 이어진 건 조금...
  • [10] 바레시는 부상으로 아웃. 기적적으로 결승전에서 복귀한다. 역으로 바레시의 공백을 완벽하게 커버했던 코스타쿠르타는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 불참.
  • [11] 그래서 데려온게 칼라제다.
  • [12] 카카와의 공중 볼 경합 중에 키엘리니의 손이 카카의 얼굴에 닿았는데 그걸 본 말디니가 "너 이 새끼 왜 카카 때려"하면서 목을 조른 것.
  • [13] 이 일로 키엘리니는 완전 상처를 받았는데, 다름 아닌 키엘리니의 우상이 바로 말디니이기 때문. 키엘리니는 프로 데뷔 시절부터 레프트 백과 센터 백을 오갈 수 있는 차세대 말디니로 각광받기도 했고, 본인도 말디니를 따르다 못해 본인은 그에 비하면 미천한 몸이라고까지 하며 하악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당시 장면을 보면 멱살은 잡혔으나 싸우거나 화를 내기는 커녕 말디니에게 하소연하는 키엘리니의 모습에서 억울함과 서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실제로 나중에 울었다고... 안습. 결국 말디니가 추후에 사과했다.
  • [14] 상대였던 로마의 감독 스팔레티도 격분하였다.
  • [15]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도 밀란 주장출신이다. 참고로 98년 프랑스 월드 컵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대단한 가문.
  • [16]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AFC 아약스
  • [17] 이런 사례는 말디니 부자를 포함하여 딱 세번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마누엘 산치스 마르티네스와 그의 아들 마누엘 산치스 온티유엘로(마누엘 "마놀로" 산치스 온티유엘로). 바르셀로나의 카를레스와 그의 아들 세르히오 부스케츠. 신기하게도 모두 부자가 같은팀이었다.
  • [18] 결승 상대는 당시 구트만의 저주를 첫타로 맞은 에우제비우벤피카였다.
  • [19] 자세히 보면 첫 문장에서 팀 닥터와 말디니의 이름이 바뀐 것을 볼 수 있다.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닐텐데
  • [20] 이탈리아의 스포츠 전문지 《궤린 스포르티보》(Guerin Sportivo)가 매년 유럽의 젊은 축구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