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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오 칸나바로

last modified: 2015-03-25 21:23:48 Contributors


광저우 헝다 감독
파비오 칸나바로 (Fabio Cannavaro)
생년월일 1973년 9월 13일
국적 이탈리아
출신지 나폴리
신장 176cm
포지션 센터백
소속팀 나폴리(1992~1995)
파르마(1995~2002)
인테르(2002~2004)
유벤투스(2004~2006)
레알 마드리드(2006~2009)
유벤투스(2009~2010)
알 아흘리 클럽(2010-2011)
국가대표 136경기 2득점
스태프 알 아흘리 클럽 (2013~2014 / 코치)
광저우 헝다 (2014~ / 감독)

2006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티에리 앙리
FW
사무엘 에투
MF
카카
MF
지네딘 지단
MF
안드레아 피를로
DF
잔루카 참브로타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릴리앙 튀랑
GK
지안루이지 부폰
2007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디디에 드록바
FW
리오넬 메시
MF
스티븐 제라드
MF
카카
M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DF
카를레스 푸욜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GK
지안루이지 부폰

2006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파비오 칸나바로
2위
지네딘 지단
3위
호나우지뉴
2006 Ballond'or
수상
파비오 칸나바로
2위
지안루이지 부폰
3위
티에리 앙리
2006 FIFA 월드컵
골든 볼
지네딘 지단
실버 볼
파비오 칸나바로
브론즈 볼
안드레아 피를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파올로 말디니
(1994~2002)
파비오 칸나바로
(2002~2010)
지안루이지 부폰
(2010~ )


Contents

1. 소개
2. 클럽
3. 은퇴이후
4. 국가대표
5. 여담


1. 소개

공은 내 앞에서 멈춘다.[1]


본격적으로 해축이 보급된 시절의 이미지 덕분에 대머리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지만 나폴리, 파르마, 인테르 초반 시절에는 풍성한 머리칼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정작 대머리가 아니라는 것이 함정. 긴 머리가 경기에 방해가 되서 삭발을 했다. 은퇴 이후에는 다시 머리를 기르고 있는 중이다.

말이 필요 없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수비수. 역대 세 번째 수비수 발롱도르 수상 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리고 리베로가 아닌 수비수로는 최초이다. 논란이 있긴하지만 대체적으로 실력은 당대 이탈리아 대표팀 파트너였던 알레산드로 네스타에게 접어주는데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제외하면 평범한(?) 월드 클래스 수비수라 평가받는다.네스타는 왜 발롱도르를 못받았나? 왜냐하면 국대만 가면 부상신이 몸소 점지해주니깐

2. 클럽

칸나바로가 10대 청소년일 때, 칸나바로의 고향 팀 나폴리에는 축구의 신이 경기장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자라면 대부분 그렇지만, 칸나바로도 축구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나폴리 유스 팀에 들어간 칸나바로는 곧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딱히 공격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비수를 시키기엔 루저여서 영 믿음직하지 않았다. 하지만 칸나바로는 뛰어난 위치 선정과 점프력으로 제공권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세리에 A에 데뷔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나폴리에서 재정난이 오자 어쩔 수 없이 칸나바로는 파르마로 이적하게 된다.

칸나바로는 파르마에서 대활약하며 98/99 시즌 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 컵 우승을 선사했다. 다만 인테르 시절은 부상 때문에 다소 부진했다.

2004년 유벤투스로 이적한 칸나바로는 절정을 맞는다.[2] 잠브로타-릴리앙 튀랑-칸나바로-제비나로 이루어진 유벤투스의 수비 라인은 통곡의 벽이었다. 이들을 넘는 것만 해도 빠듯한데, 그 뒤에는 역시 레전설인 잔루이지 부폰이 버티고 있었다. 유벤투스는 스쿠데토를 얻었다.

하지만 칸나바로의 하강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다가왔다. 바로 칼치오폴리가 그것.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등되자 칸나바로는 카펠로 감독을 따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칸나바로는 레알에서도 2번의 우승을 차지하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였지만 다시 유벤투스로 돌아왔을 때는 노쇠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었다. 결국 2009년 유벤투스는 칠벤투스가 되었다.

칸나바로의 몰락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유벤투스에서 뛰기에는 기량이 갑자기 급하락하여 09/10 시즌이 끝나고 방출, 알아흘리로 이적하였다. 이어서 1년 뒤인 2011년 6월 21일,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보였다는 사유로 알아흘리 구단 측이 공식적으로 방출을 선언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비수가 말년에 이렇게 허망하게 은퇴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3]

3. 은퇴이후


은퇴 후 알아흘리에서 기술 이사직으로 3년간 일하기로 계약했다고 한다. 2014년 11월 5일 스승 마르셀로 리피 감독의 뒤를 이어 광저우 헝다 감독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2015년 2월, 탈세 혐의로 나폴리 법원으로부터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4. 국가대표


유로 2000에는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카테나치오의 축을 이루며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2002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감독은 3-4-1-2 포메이션을 사용했는데, 파올로 말디니 - 알레산드로 네스타 - 파비오 칸나바로라는 정신나간 조합이 완성되면서 극강의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트라파토니 감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선에서는 4-4-2를 사용했는데, 칸나바로는 네스타와 조합을 이뤄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이탈리아의 경기력은 저조했다.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도중 부상으로 아웃되고 칸나바로는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경고를 받으면서 16강 전에 출장정지를 먹는다. 그렇게 네스타와 칸나바로가 빠진 이탈리아는 대전에서 한국과 16강전을 치르는데(...)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칸나바로는 그로소-마테라치(네스타는 또 초반에 부상을 당했다)-잠브로타와 함께 또다시 철벽 수비진을 이뤄낸다. 젠나로 가투소가 4백을 보호하고, 그 뒤에 철의 장벽을 치고, 그 뒤에 부폰이 버틴 이탈리아 수비진은 역대 최소 실점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핫 이슈는 죄다 대머리 프랑스인에게 집중되었다

칸나바로는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의 공로를 인정받아 발롱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축구 인생의 최정점에 올라선다. 그러나 2010년 들어 유벤투스에서도 노쇠화 때문에 기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비판에도 칸나바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했고, 이건 거의 재앙 수준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탈리아 4백은 꿀 대진 취급받았던 조별 리그에서 유린을 당했다. 슬로바키아에게 3골이나 허용한 것은 칸나바로의 빛나는 축구 인생에서 흑역사라고 할 만하다. 끝내 2:3으로 패배하였고, 팀의 광탈을 막지 못한 채 눈물을 훔치고 쓸쓸하게 라커 룸으로 퇴장하는 칸나바로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불과 4년 전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4번째 우승의 주역이자 팀의 주장으로서 월드컵을 번쩍 들어올렸던 영광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처절한 몰락이자 캐안습. 박수칠 때 떠나라는 진리를 몸소 일깨운 사례라 할 수 있겠다.

5. 여담

칸나바로는 센터백으로는 보기 드물다는 루저(176cm)이다.[4] 하지만 뛰어난 위치 선정, 점프력으로 인해 결코 제공권에서 밀리지 않으며, 대인 방어도 아주 탁월했다. 이탈리아 수비진을 지휘했다는 점에서도 커맨더형 수비수로도 탁월.[5] 수비수로서 발롱도르 수상, 월드컵 우승, 포포투가 뽑은 80년대 이후 가장 위대한 센터백 1위에 오른 것 등, 세월은 이기지 못했지만 칸나바로가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남을 것은 분명하다.[6]

그를 상징하는 장면은 바로 오버 헤드 킥으로 공중 볼을 처리하는 것. 오버 헤드 킥을 하면 시야와 몸의 균형이 사실상 무너지는데 칸나바로는 그럴 경우에도 정확한 타점으로 깔끔하게 공을 처리했다. 괜히 따라하지는 말자. 넘어져서 몸만 아플 뿐이다.

현역 시절에 가장 많이 비교되었던 것은 아르헨티나의 로베르토 아얄라였다. 단신이지만 월드클래스 센터백으로 군림했다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동생 파올로 칸나바로도 축구선수이며 US 사수올로 칼치오에서 수비수로 뛰고 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포트 추첨을 해 대한민국에게 꿀 조(?)를 편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반대로 호주, 코스타리카, 미국에게는 지옥을 선사했다 고마워요 칸나바로 형 월드컵만 되면 한국을 도와주는 이탈리아 하지만 한국은 그 꿀 조에서 처참하게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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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The ball stops here. 칸나바로 본인이 한 말은 아니고 나이키에서 광고에 삽입해 준 문구이다.하긴 자기 입으로 말하려면 오글거리긴 할 듯 유래는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상징과도 같은 명언인 'The buck stops here.'.
  • [2] 이적 과정에서 루치아노 모지의 협박이 있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내용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너 유벤투스 안 오면 그날로 국가 대표팀과는 영원히 이별이다."
  • [3] 꽤나 파워풀한 수비 능력 때문에 부상으로 골골대는 게 일상 생활이었다. 그래도 칸나바로 정도 클래스라 오래 간 것이다. 당장 스타일이 가장 유사한 리버풀의 제이미 캐러거카를레스 푸욜을 보면 알 수 있다. 푸욜은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유리몸이 되어버렸다.
  • [4] 비슷한 선수로 FC 바르셀로나의 주장 카를레스 푸욜(178cm), 로베르토 아얄라가 있다.
  • [5] 네스타랑 있을 때는 네스타가 지휘했고, 수비수로서 완숙한 후에, 그러니까 나이가 꽤 들고 나서야 지휘력을 갖추고 발휘할 수 있었다.
  • [6] 다만 실력은 알레산드로 네스타에게 한수 접고 들어간다. 하지만 발롱도르 수상, 2006 월드컵 우승 팀의 주장 등 상징적인 요소들로 인해, 후대에 크게 기억될 선수는 칸나바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