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타카하타 이사오

last modified: 2018-05-26 12:18:42 Contributors

高畑 勲(たかはた いさお)
일본애니메이션 감독.


일본 미에현 이세시 출신으로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했다. 불문학을 전공해서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것도 프랑스의 장편 애니메이션 "왕과 새"의 원형이 된 1952년 작 "사시의 폭군"을 본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학 졸업후 도에이 동화에 입사하여 "개구쟁이 왕자의 큰뱀 퇴치"에 투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터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TV애니메이션 "늑대소년 켄"으로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도에이 동화에 입사한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열악한 도에이 동화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조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였고 결국 노조활동의 성과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의 연출 (사실상 감독)을 맡았다.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은 작품성에선 인정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론 실패하여 결국 타카하타는 미야자키와 함께 도에이를 떠나 A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후 미야자키와 함께 A프로덕션에서 오오스미 마사아키가 강판된 루팡 3세의 연출을 담당하는 한편, 판다코판다(한국 제목은 팬더 아기팬더)의 TV판과 극장판의 감독을 맡았다. 니폰 애니메이션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여러 세계 명작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 "플란다스의 개"(1975), "엄마 찾아 삼만리"(1976), "빨강머리 앤"(1979)들을 잇달아 연출하였다.

1981년 자린코 치에의 첫번째 극장판을 감독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에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첼로켜는 고슈"를 감독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이를 계기로 하여 1985년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창설하게 된다.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 배달부 키키" 등의 미야자키 작품에서 프로듀서 혹은 음악 연출을 맡는 한편 자신의 작품도 만들어서 1988년 "반딧불의 묘", 1991년 "추억은 방울방울", 1994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을 감독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에 비해 화려하기 보단 수수하고 차분한 스타일을 즐겼고, 세계명작동화 시리즈들을 만들었지만 미야자키에 비해서 일찌감치 일본색이 강한 작품들을 연출했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치밀한 묘사로 토미노 요시유키는 "감히 말한다면 미야자키와 타카하타의 연출실력은 구로사와 아키라보다 위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을 정도다.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로서 미야자키의 사상에 타카하타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으로는 좋은 콤비이기도 했고 미야자키에게 연출면에서도 영향을 끼쳤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두 사람이 함께 작품을 만드는 일은 사라졌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의 작풍이나 사상이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어떤 강연에서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의 스튜디오다. 그는 임원이지만 나는 다르고..."라고 해서 일각에선 타카하타 이사오가 99년 이후로 신작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미야자키가 지브리를 틀어쥔 탓이 아니냐는 분석을 하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사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미야자키의 비중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타카하타의 비중이나 존재감은 확실히 이전에 비해서 매우 옅어졌다. 감독 본인 역시도 성실한 타입은 못 되기에 고령화에 따른 체력 저하와 함께 창작 의욕을 많이 잃은 상태.

애초에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미야자키와는 달리 타카하타는 각본, 연출 타입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탓에 자신이 구상한 것을 구현할 애니메이터가 필요하해 실제 작품의 제작 속도가 느리다.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때는 느린 제작 속도 탓에 프로듀서가 몇 번이나 교체되기도 했었다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는 한 프로그램에서 "가능한한 빨리 타카하타의 신작을 내놓고 싶다." 라고 발언한 바 있다. 실제로 몇몇의 기획은 이미 각본단계까지 나가긴 한 모양으로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의 발언이 진심이라면 향후 3~4년 안에 타카하타의 신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싶었고 이는 이후에 타카하타 감독의 신작에 참여할 제작스탭을 공고, 마침내 2013년 가구야 공주 이야기로 무려 14년만에 신작을 내놓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와 2013년 여름에 동시개봉될 예정이었으나 콘티 작업이 예상보다 늦어져 동시개봉은 불발되었다.

카구야 공주 이야기 개봉과 함께 프로듀서가 밝히는 작업 과정의 뒷 비화가 공개되었는데,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얼마나 제대로 작업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렸는지 알 수 있다. (원문 한글 번역)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도 '귀찮아, 하기싫어'를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며 작업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쪽은 의욕을 가지고 제대로 작업을 하는데, 타카하타 이사오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추진력과 실행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야자키는 애초에 모든 애니메이터들의 작업을 전부 세세히 컨펌하는 완벽주의도 있고 나이와 체력 저하를 생각하면 아직까지 굉장히 성실하게 작업에 임하는데, 타카하타 이사오는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명작들을 만들어낸 거장이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으며, 자신의 고집만으로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는데 두배 세배로 손이 가는 작업 방식을 고수하여 작업 일정을 지연시키고 스탭들을 고생시켰다.

타카하타 이사오의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