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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마켈렐레

last modified: 2014-12-15 00:44:01 Contributors


이름 클로드 마켈렐레 신다
(Claude Makélélé Sinda)
생년월일 1973년 2월 18일
국적 프랑스
출신지 콩고 민주 공화국 킨샤샤
신장 170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스토퍼)
프로입단 1991년 스타드 브레스트 입단
선수시절 소속팀 스타드 브레스트(프랑스)(1991)
낭트 아틀랑티크(프랑스)(1991~199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프랑스)(1997~1998)
셀타 비고(스페인)(1998~2000)
레알 마드리드(스페인)(2000~2003)
첼시 FC(잉글랜드)(2003~2008)
파리 생제르맹 FC(프랑스)(2008~2011)
스태프 커리어 파리 생제르맹 FC(프랑스)(2011~2014 / 어시스턴트)
SC 바스티아(프랑스)(2014 / 감독)
국가대표 71경기

2005 FIFPro World XI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프랭크 램파드
MF
클로드 마켈렐레
MF
지네딘 지단
MF
호나우지뉴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존 테리
DF
카푸
GK
디다


Contents

1. 개요
2. 클럽
3. 스태프

1. 개요

프랑스의 전 축구선수(미드필더)이자 마홀딩.[1] 뛰어난 대인 마크 실력과 패스 길목 차단 능력, 팀의 수비 조율 능력에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강점이라 불리는 엄청난 체력과 지구력 또한 갖추고 있었으나 동시에 수비형 미드필더니까 패스는 못해도 괜찮다는 그야말로 수비형 미드필더의 정석.[2] 워낙 피지컬 괴물이라 지존급 키핑 능력으로 압박 밀도가 낮은 하프라인 아래에선 공을 어떻게든 운반해내는 능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패스가 너무 구렸기 때문에 하프라인 위로는 포지션을 올리지 못했다. 특히 이러한 마켈렐레의 장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점은 수비 테크닉 부분이다. 마켈렐레는 압도적인 피지컬떡대로 중원을 패대기치는 팀 동료 에시앙과는 달리 꾸준한 체력과 지구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마킹하며 볼을 정확히 컷팅해내고, 필요하다면 옐로우 카드를 받지 않는 선의 교묘한 파울로 상대의 템포를 끊어놓는 플레이가 일품이었고 이런 기술적인 수비능력 덕분에 그는 34살의 노령에도 2006년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에 발탁되어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이상하게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영혼의 듀오로 손꼽는 경우가 많은데, 마켈렐레-비에이라 조합은 잉글랜드의 스티븐 제라드-프랭크 램파드 조합만큼이나 현시창인 경우였다. 프랑스의 흑역사였던 레몽 도메네크의 업적이 마켈렐레 비에이라 조합의 완성과, 독일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2. 클럽

1991년 스타드 브레스트에 입단하였으며, 바로 다음 해에 1부 리그의 낭트 아틀랑티크로 이적했다. 94/95 시즌에는 크리스티앙 카랑뵈와 호흡을 맞추며 탄탄한 미드필더진을 이끌며 낭트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허나 낭트에서 마르세유로 이적 후 1년 가량 뛰다가 스페인의 셀타 데 비고로 이적하여 2년간 뛰며 기록했다. 이때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갈락티코 정책으로 세계적인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끌어모으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뛰던 기간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그야말로 우주마저 정복할 기세였다. 물론 실제로도 우주를 정복할 만한 활약을 보였다. 마켈렐레는 레알의 지나치게 공격적인 성향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조율하기 위한 역할을 맡았으며, 수비진이 허술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약이 있었기에 팀의 공격진이 무너지지 않고 상대 팀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결국 우주방위대급의 공격진과 마켈렐레의 경기 조율을 마탕으로 2002년 레알은 엄청난 전성기를 누리며 2001/2002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2/2003 리그 우승 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허나 데이비드 베컴이 이적하면서 레알은 상대적으로 네임 벨류가 낮은 마켈렐레를 소홀히 하고 베컴을 중요시하자 마켈렐레는 이에 반발하였고, 레알은 최대의 병크라 불리는 마켈렐레의 방출을 저지르고 만다. 결국 마켈렐레는 당시 로만의 부임으로 스타들을 끌어모으던 첼시 FC로 이적했다. 그의 이적 후 레알은 팀 밸런스가 무너져 06/07 시즌까지 단 하나의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후회하여 마켈렐레의 뒤를 이을 수비형 미드필더를 찾았지만...결과는 좋지 않았으니 안습.[3][4]

첼시 FC로 이적한 후 두번째 시즌부터 그의 두번째 전성기가 순식간에 찾아왔다. 주제 무리뉴 감독의 부임 후 무리뉴 감독의 지도 하에 첼시의 허리를 맡게 되면서 레알 시절 못지 않은 대활약을 펼치게 된 것이다. 당시 에시앙-마켈렐레-램파드는 EPL 미드필더진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 압박으로 무장했으며 첼시는 수비적인 경기를 한다고 비판받았으면서도 미드필더진의 엄청난 강력함을 보여주며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마켈렐레가 첼시에서 뛰며 수많은 트로피를 들고 좋아하는 동안 레알 마드리드 수뇌부들은 트로피 하나 얻지 못하는 현실에 땅을 치며 후회했다.역시 믿고 쓰는 레알산

허나 나이가 들면서 활동량과 압박이 예전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결국 07/08 시즌 이후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했다. 다행이도 첼시는 레알 마드리드와는 달리 그의 부재에도 미드필더진이 크게 무너지지 않았으나 대신 잘못된 감독 선임으로 다음 시즌을 거의 말아먹게 된다.[5]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대표팀과의 인연이 없던 선수였다. 1995년에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나 당시 프랑스는 그가 없어도 될 만큼 엄청난 미드필더진을 거느리고 있었기에 주전 발탁은 꿈에도 꾸지 못할 정도였으며, 처음 출전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도 딱 덴마크전 한 경기에 출전했으나 2-0으로 패배했고 팀은 세네갈의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노장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전 미드필더로 발탁하여 대활약을 펼쳤다. 조별 예선에는 지네딘 지단과 마찬가지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토너먼트에서는 달랐다. 파트리크 비에이라 등 당시 퇴물이라 불리던 다른 노장 선수들과 함께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 등의 정상팀을 박살내는데 기여했다.[6] 안타깝게도 팀은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격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여 준우승했지만.

2010~2011 시즌을 막으로 파리 셍제르망에서 은퇴하였다.

3. 스태프

은퇴이후 2011년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어시스턴트로 선임되었다. 2014년 5월 23일 SC 바스티아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간이다. 그러나 성적부진으로 2014년 11월 3일 경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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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마지우개란 별명은 FM2006에서 대인 마킹만 붙히면 마킹한 선수를 담궈버리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에게 붙은 별명이다.
  • [2] 뻔히 보이는 패스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었다. 좋은 패스가 아주 안 나오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단&피구&라울 등의 플레이를 보던 레알팬들은 마켈렐레의 패스를 '뻔히' 보인다며 깠다고 한다.
  • [3] 그의 이적 후 물색하여 찾아낸 수많은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인 라스 디아라 왈 '날 마켈렐레랑 비교하지 말라능!', 또 다른 미드필더인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경우 오히려 레알에서 인테르로 이적 한 뒤 포텐이 터졌다;;
  • [4] 마케렐레 이후 레알을 거쳐간 미드필더는 미친개 마스 그라베센, 리옹에서 미친활약을 보여줬던 하마두 디아라, 상기한 캄비아소, 세리에와 분데스리가를 씹어먹었던 당시 최고의 수미중 한명인 에메르손, 주목받던 영건인 르난도 가고아무도 기대안한 이과인이 더 잘컸다을 영입하지만 기대이하였고, 라스 디아라를 영입하고 겨우 중원이 진정된다.
  • [5] 첼시는 미드필더진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레알은 이 때 마케렐레만 갈아댄 것이 아니다. 그나마 중원을 잡아줄 세르지우 콘세이상, 스티브 맥마나만도 바이바이.
  • [6] 특히 브라질전에서는 그 유명한 판타스틱 4를 막아내며 팀의 1-0 승리에 큰 공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