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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라니에리

last modified: 2017-02-26 14:59:07 Contributors


이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Claudio Ranieri)
생년월일 1951년 10월 28일
국적 이탈리아
출신지 로마
포지션 수비수
신장 182cm
소속팀 AS 로마 (1973/74)
FC 카찬차로 (1974/75 - 1981/82)
칼치오 카타니아 (1982/83 - 1983/84)
US 팔레르모 (1984/85 - 1985/86)
지도자 캄파니아 푸테올라나 (1987/88)
칼리아리 칼치오 (1988/89 - 1990/91)
SSC 나폴리 (1991/92 - 1992/93)
ACF 피오렌티나 (1993/94 - 1996/97)
발렌시아 CF (1997/98 - 1998/9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9/00)
첼시 FC (2000/01 - 2003/04)
발렌시아 CF (2004/05)
파르마 FC (2007)
유벤투스 FC (2007/08 - 2008/09)
AS 로마 (2009/10 - 2010/11)
인터 밀란 (2011/12)
AS 모나코 (2012/13 - 2013/14)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2014)
레스터 시티 FC (2015/07 - 2017/02)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감독 시절
4. 기타
5. 기록
5.1. 선수 시절
5.2. 감독 시절

1. 소개

前 레스터 시티 FC의 감독.
레스터 시티를 맡기 전까진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좋게 말하면 긴급 소방수, 리빌딩의 귀재, 나쁘게 말하면 실컷 팀 만들어놓고 후임 감독 좋은일만 시키는 호구 감독 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며 은근히 B급 명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리빌딩의 귀재 라는 말이 유명하지만 적긴 해도 우승 경험도 있는 감독이다. 그리고 지나 온 클럽들을 살펴보면 'B급명장'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도 않고 트로피를 차지 하기 위한 강한 무언가가 없어서 그렇지 수준급의 이탈리아 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첼시와 발렌시아 1기 때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항상 후임 감독 좋은 일만 시킨 감독은 절대 아니며 발렌시아 2기때 처럼 골칫덩이를 남겨준 케이스도 있다(...).

2. 선수 시절

고향팀인 AS로마에서 1973년 22살의 나이로 데뷔하였으나 고작 6경기 뛰고 1974년 당시 세리에 B클럽인 카탄자로로 이적 후 9시즌동안 225경기에 나오며 시즌당 평균 25경기 정도 출장하며 주전선수로 활동했다. 카탄자로가 비록 2부리그 클럽이었지만 1977년에는 1부리그 승격을 하기도 했고 라니에리가 이적한 후 한시즌만에 다시 세리에 B로 강등되어 지금까지 1부리그 승격은 없으니 타이밍 좋게 이적한 셈.

1982년 당시 세리에 B에 소속되있던 카타니아로 이적하여 한 시즌만에 1부리그로 승격을 시켰고 1984년에는 카타니아의 지역 라이벌인 팔레르모로 이적하여 2시즌동안 활약한 뒤 35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3. 감독 시절

은퇴후 1986년에는 라메치나, 1987년에는 푸테올라나 같은 아마추어 리그 소속팀 감독을 경험한 라니에리는 1988년 당시 3부리그(세리에 C1)팀인 칼리아리 감독으로 부임하고 2년만에 연속 승격(3부리그->2부리그->1부리그)시켜 1990/91시즌 세리에 A에 올라가고 첫 1부리그 시즌인 1990/91 시즌 리그 14위를 기록한다. 나폴리는 이런 괄목한 성적을 기록한 라니에리를 주목하였고 1991/92 시즌 라니에리를 나폴리의 감독으로 임명한다. 첫 시즌인 1991/92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그 다음시즌 리그 11위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다. 다만 이 당시 안프랑코 졸라라는 나폴리의 레전드를 발굴하기도 하였고 당시 19살의 어린 수비수인 파비오 칸나바로를 1군으로 승격시켜 경험을 쌓게 해주기도 하였다. 남 좋은일 시키는 호구 스러움은 이때부터 시작

곧바로 2부리그로 강등되어있던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1993/94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하여 그 다음 시즌 바로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다. 3시즌동안 10위-4위-9위로 중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였고 1995/96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재임시 루이코스타와 프란체스코 톨도를 영입하여 주전으로 발돋움 시키기도 하였다.

1997/98 시즌에는 발렌시아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곧바로 미구엘 앙굴로, 가이스카 멘디에타, 프란시스코 파리노스를 1군으로 승격시켰고 카니자레스를 영입하여 팀의 기반을 다지기에 들어간 라니에리는 첫시즌에는 리그 9위를 기록했지만 두번째 시즌인 1998/99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고 코파 델 레이컵 우승을 차지 했다. 라니에르가 만들어놓은 발렌시아는 후임 감독인 헥토르 쿠페르가 그대로 이어 받아 1999/00,2000/01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고, 뒤 이어 라파엘 베니테즈감독의 리그 우승까지 이어진다.

199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감독으로 감독직을 옮기지만 그 전 클럽에서의 좋은 모습과는 달리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팀을 2부리그로 강등을 시킨다.[1] 솔라리, 바라하, 하셀바잉크, 호세 마리, 발레론 같은 선수들이 포진되어있었지만 선수들을 잘 융합시키지 못하면도 있고 팀 자체가 재정적인 문제를 겪으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 프런트 진과의 불화 또한 강등의 이유 중 하나.

곧 바로 2000년 9월에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당시 영어를 쓰는데 제한이 있었던 라니에리지만 운 좋게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의 선수와 코칭 스태프들이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고 2000년과 2001년에 랑크 램파드, 엠마뉴엘 프티, 바우더베인 젠덴, 예스퍼 크론카르, 윌리엄 갈라스 등을 영입하며 팀의 기반 다지기에 들어갔고 기존에 첼시에 머물면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았던 지안프랑코 졸라를 중심으로 팀을 운영한다. 2000/01, 2001/02 시즌 연속 6위를 기록하며 중위권을 꾸준히 유지하였고 2002/03시즌에는 극적으로 리그 4위를 기록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따낸다. 리그에서의 꾸준한 성적과는 달리 팀은 재정적인 문제로 빚이 많았었는데 이 당시에 축구에 흥미를 가진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FC의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인수 후 수많은 빚은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로만의 재정을 바탕으로 스콧 파커, 마켈렐레, 크레스포, 조 콜, 무투, 글랜 존슨, 후안 베론, 웨인 브릿지, 데미안 더프 등을 영입하였고 2003/04 시즌엔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호성적을 거두지만 로만이 기대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는 미치지 못하자 라니에리를 경질시킨다. 하지만 라니에리가 첼시 시절 영입하였던 램파드와 조콜, 마켈렐레, 웨인 브릿지, 데미안 더프, 윌리엄 갈라스 등은 후에도 주제 무리뉴감독 체제 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로만 체제 이후 첼시에도 상당한 공헌을 한 셈이다. 게다가 존 테리가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약을 한것도 라니에리 감독이 부임하기 시작한 2000/01 시즌 때 임을 감안하면 첼시에서도 라니에리의 리빌딩 후임 감독 좋은 일 시키는능력은 발휘된 셈.

해임된지 1년도 안되서 발렌시아의 부름을 받고 5년만에 발렌시아로 복귀한다. 이탈리안 커넥션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당시 세리에 A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마르코 디 바이오, 베르나르도 코라디, 스테파노 피오레, 에밀리아노 모레티 등 이탈리안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시즌 초반에 UEFA 슈퍼 컵에서 포르투를 꺽고 우승을 차지, 그 후 초반 6경기에서 승점 14점을 얻는 등 순항을 보였으나 그 이후 팀이 급격히 무너져 리그 막판에는 리그 7위로 추락하였다. 한 시즌만에 발렌시아에서 물러난다. 발렌시아에서의 급격한 부진의 이유는 전 시즌인 2003/04 시즌 리그 우승과 UEFA 컵 우승을 하며 더블을 차지 할 정도로 완성된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라니에리가 이탈리안 커넥션을 구축하고자 데려왔던 이탈리아 선수들이 기존 발렌시아 선수들과 융화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더블의 결정적인 공헌을 한 아이마르를 내쳤으며 이탈리아 선수들이 약속이나 한듯 제대로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진에 빠지면서 팀 자체가 무너져버렸다는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2005년 이후로 감독직을 시작한지 19년만에 백수생활을 즐기게 된 라니에리는 1년 반뒤인 2007년 2월에 파르마 감독으로 10년만에 세리에 A로 복귀한다. 파르마 부임 당시 파르마의 승점은 겨우 15점으로 강등권이었다. 그런 파르마를 라니에리는 당시 임대와있던 쥐세페 로시를 내세워 남은 10경기에서 17점의 승점을 따내 극적으로 1부리그 잔류에 성공한다. 그 뒤 풀햄과 맨체스터 시티, 팔레르모와 연결이 되었으나 모두 무산되었다.

라니에리는 그 후 2007년 6월에 유벤투스의 부름을 받아 유벤투스 감독에 임명된다. 이 때는 유벤투스 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심했는데 2006년 칼치오폴리사태로 2부리그로 강등된 유벤투스를 (비록 델 피에로, 다비드 트레제게, 지안루이지 부폰 같은 에이스들이 남아있었지만) 재빠른 팀 수습으로 2006/07 세리에 B우승으로 1년만에 승격시킨 데디에 데샹 감독이 프런트와의 불화로 계약 1년만에 경질 되었기 때문. 프런트와의 불화는 그렇다쳐도 능력자체는 팬들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샹의 후임으로 라니에리가 임명된것에 의구심을 품는 팬들도 있었다. 유벤투스 감독직 부임 이후 빈첸초 이아퀴낱, 즈네덱 그리게라 등을 영입하며 첫 시즌에 리그 3위를 기록하며 곧 바로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거머쥔다. 2008/09 시즌에는 애증의(?)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인터 밀란의 감독으로 부임되어 상당한 화제거리가 되었다. 2008/09시즌에도 순항 중이었으나 리그 막판 두달 동안 리그 7경기에서 6무 1패를 기록하는 부진에 빠져 리그 우승컵을 인터밀란에게 넘겨준 라니에리는 결국 시즌 종료 후 유벤투스 이사진에 의해 경질 된다.

경질된지 4달도 채 되지 않아 2009년 9월 고향팀인 AS로마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시즌 초반 제노아와 유벤투스에게 패배하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그 후 25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며 인터밀란과 우승 레이스를 벌였으나 승점 2점이 부족하여 준우승에 머무른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인터밀란에게 패배하여 리그와 FA컵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무패행진과 FA컵 준우승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그 다음 시즌은 2010/11 시즌에서는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샤흐타르에게 패배하였고 리그에서는 중반 계속되는 부진 끝에 2011년 2월 이사진에 의해 경질된다.

2011년 10월 가스페리니의 뒤를 이어 시즌 중반에 인터밀란 감독으로 부임한다. 초반에 리그 8연승을 기록하며 인터밀란의 재건을 이끄는 가 싶었지만 귀신같이 7연패를 당하며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보여주며 부임한지 1년도 안되어 2012년 3월 해임된다.

해고된지 두달도 안되어 곧바로 AS모나코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AS모나코는 2부리그에 있었는데 공개된 재산만 11조원이 넘는 러시아 갑부의 구단주 취임으로 강팀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 리빌딩 전문가 라니에리를 선임한것. 첫시즌에 곧바로 2부리그 우승을 하며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고 2013/14시즌에는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구단주의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니면 리빌딩은 다 되었다 싶었는지 2014년 5월 경질되었다.

그 후 2014년 6월 그리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유로 2016 예선에서 4경기 연속 무승에 유럽 최약체인 피파랭킹 187위 페로 제도에게 안방에서 0-1로 패하는 수모를 당하며 조 꼴찌로 추락, 결국 전격 경질당했다.

그 뒤 2015년 7월에 프리미어 리그로 건너가 레스터 시티 감독이 될 때만 해도 다들 큰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강등권을 면하느냐 아니냐에 신경쓰던 이 팀은 어느새 프리미어리그 2015/2016 시즌 우승을 목전에 둔 팀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초반만 해도 다들 레스터 시티의 상승세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보았으나 라니에리의 지휘력은 그러한 관측을 모두 빗나가게 만들며 돌풍의 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2016년 5월 3일에 레스터의 뒤를 쫓던 토트넘이 첼시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사실상 1위 추격에 실패하면서 팀의 사상 첫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중계권료 및 스폰서의 특별 보너스 등으로 팀과 감독 모두 돈방석에 앉기도.

그러나 이듬해 시즌에서는 팀 플레이의 중핵이었던 '은골로 캉테'의 첼시 이적 후 그의 빈자리를 끝내 메꾸지 못한 가운데 승보다 패를 많이 기록하면서 팀은 다시 강등권으로 추락, 급기야 디펜딩 챔피언 팀이 그 다음 시즌 강등당하게 된 초유의 상황까지 예측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2017년 2월 24일에 레스터 시티는 라니에리를 해임한다. 그러나 레스터의 추락이 감독만의 잘못은 아니었던 탓에 무리뉴를 비롯한 영국 축구계는 레스터 구단 측을 강하게 비판하고 반대로 라니에리를 동정했다. 더군다나, 타임즈와 더 선, 텔레그래프, 스카이스포츠에서 라니에리의 해임은 일부 선수가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기사가 뜨면서 해당 선수들에게도 비난이 쏟아진 상태.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과거 무리뉴가 첼시에서 경질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은 채 흐지부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4. 기타

라니에리는 무언가 자신만의 전술적인 철학이 있다기 보다는 그 때 그때 상황에 맞게 팀을 운영하는 편이다. 주로 4-4-2를 사용하고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지며 교체에 소극적이다 라는 단점이 있지만 이것이 라니에리의 전술이다 라고 불리는 전술은 없는 편. 해외에서도 라니에리의 전술을 분석한 칼럼을 찾기 힘든 점도 있다.

라니에리는 백수생활이 길지가 않고 여기저기 많은 클럽을 오가는데 그게 A급 감독에 비해 몸값이 1/7수준인것도 한 몫한다(...).

5. 기록

5.1. 선수 시절


  • US 팔레르모 (1984/85 - 1985/86)
    • Serie C1 (1) : 1984/85

5.2. 감독 시절


  • 칼리아리 (1988/89 - 1990/91)
    • Serie C1 (1): 1988/89
    • Coppa Italia Serie C (1): 1988/89

  • ACF 피오렌티나 (1993/94 - 1996/97)
    • Serie B (1): 1993/94
    • Coppa Italia (1): 1995/96
    • Supercoppa Italiana (1): 1996

  • 발렌시아 (1997/98 - 1998/99, 2004/05)
    • Copa del Rey (1): 1998–99
    • UEFA Intertoto Cup (1): 1998
    • UEFA Super Cup (1): 2004

  • 첼시 FC (2000/01 - 2003/04)
    • Premier League Runner-up : 2003/04

  • 유벤투스 (2007/08 - 2008/09)
    • Serie A Runner-up : 2008/09

  • AS 로마 (2009/10 - 2010/11)
    • Serie A Runner-up : 2009/10
    • Coppa Italia Runner-up : 2009/10

  • AS 모나코 (2012/13 - 2013/14)
    • League 1 Runner-up : 2013/14
    • League 2 (1) : 2012/13

  • 레스터 시티 FC (2015/16 - )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 : 20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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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히 말하면 라니에리는 2000년 3월에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강등 당시 감독은 임시 감독이었던 안티치 이지만 강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