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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암

last modified: 2015-03-19 15:28:11 Contributors


전성기 시절, 왠지 학자같은 포스를 풍긴다.

현재 모습.
이름 최희암(崔熙岩)
생년월일 1955년 12월 24일
국적 한국
출신지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학교 휘문고-연세대학교
포지션 가드
신체 사이즈 177cm, 82kg
실업입단 1977년 현대전자 남자 농구팀 입단
소속팀 현대전자(1977~1982)
감독 연세대학교 남자 농구단(1986~2002)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2002~2003)
동국대학교 남자 농구단(2005~2006)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2006~2009)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지도자 은퇴 이후

1. 소개

한국의 농구인이다. 1955년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태어나서 휘문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 선수 시절

1977년 현대전자 남자 농구단에 입단하였으나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1982년 은퇴하였다.

3. 지도자 시절

이후 현대건설에 입사해 중동에서 일하다가 귀국해서 삼일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하다가 1986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농구부의 김동원 감독이 갑작스레 물러나자 감독대행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여 정재근, 이상범, 성식, 문경은, 이상민, 김훈, 우지원, 서장훈, 황성인, 조상현 등의 선수를 거느리고 연세대학교 농구부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의 감독 커리어에서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연세대학교 감독 시절 그는 철저한 분업 농구의 신봉자였다. 이 시스템 하에서 연세대 선수들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분담하며 무시무시한 포스를 발휘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선수들은 자신에게 특화된 역할 이외에는 큰 발전을 보이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슛하는 기계 취급을 받던 문경은우지원.

이후 2002년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현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강동희, 김영만 트레이드와 우지원 영입 등의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색깔 지우기 작업으로 비난을 받았다. 감독을 맡자마자 실업 기아자동차 시절부터 팀의 주축이었던 중앙대 출신들을 모두 정리하면서 사실상 팀을 공중분해시키고 그 자리를 자신의 제자들인 연세대 OB들로 채워버린 것인데 결과는 폭망이었다. 2002~2003 시즌에는 6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2003~2004 시즌 초반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그리고 그 시즌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는 시즌 꼴찌를 하였다.

이후 야인으로 있다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동국대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08~2009 시즌까지 팀을 지휘하였다.

4. 지도자 은퇴 이후

현재는 고려용접봉이라는 회사의 중국 지사장으로 있다. 참고로 전자랜드는 고려용접봉의 계열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