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최용수

last modified: 2015-04-07 10:30:41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축구
1.1. 개요
1.2. 선수 경력
1.3. 지도자 경력
1.3.1. 2012년
1.3.2. 2013년
1.3.3. 2014년
1.3.4. 2015년
1.4. 지도 스타일
1.5. 기타
2.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출신 이종격투기 선수
3.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 등장하는 만화 잡지


1.1. 개요

FC 서울 감독
최용수(崔龍洙 / Choi Yong-Soo)
생년월일 1973년 9월 10일[1]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184cm
소속팀 LG 치타스 (1994~1995)
안양 LG 치타스 (1996~2000)
상무 (군복무) (1997~1998)
제프 유나이티드 (2001~2003)
교토 상가 (2004)
주빌로 이와타 (2005)
FC 서울 (2006)
지도자 FC 서울 플레잉 코치 (2006)
FC 서울 코치 (2006~2010)
FC 서울 수석코치 (2010~2011)
FC 서울 (대행) (2011)
FC 서울 (2011~)
국가대표 67경기 27골

96년 올림픽 대표, 98, 02 월드컵 대표. A매치 65경기 27골.
등번호 10번. 훗날 11번으로 교체.

1.2. 선수 경력

동래고등학교[2] -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1994년 LG 치타스 입단후 신인상을 거머쥐고 1997년 상무에 입단, 1999년에 다시 안양 LG로 복귀하였다. 2000년 LG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그해 MVP를 차지하였다. 그야말로 FC 서울의 레전드.

1996년 아나톨리 비쇼베츠가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은 역대 어느 때보다도 메달권 진입에 대한 기대를 높였는데, 당시 핵심에 선 인물이 최용수와 윤정환이었다.

이후 1997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7골 2어시스트를 몰아치며 바야흐로 최용수 시대를 여는가 했지만, 정작 본선에선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1999년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고 도근과 같이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했으나 낚시였다.(...) 분명히 입단 테스트랑 메디컬 테스트까지는 받았는데 왠지 모르게 컴백. 본인도 왜 그 때 입단을 못한건지 영문을 모르고 있다.(...)[3][4]

Choi_Yong-Soo_JEF_United_Ichihara.jpg
[JPG image (Unknown)]


2001년 당시 한국선수 최고 금액인 3억 원에 제프 유나이티드로 옮겨 이적 첫해에 득점 2위를 기록하였고, 올스타 선정, 2002년에는 J리그 8천번째 골을 넣는 등 활약을 펼쳤다.

2004 교토 상가에 1년간 임대되었다가 2005년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였으며, 2006년 FC 서울의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다 같은 해 8월 5일 은퇴하였다.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서 발군의 파괴력을 보이는 선수였다. 1990년대 대한민국 정상급 스트라이커들이 그렇듯 아시아권에서는 압도적인 제공권을 보였으며, 강력한 슈팅력을 보유했다. 독수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독종 소리를 들을 정도로 승부 근성이 대단했기 때문에 J리그 진출 당시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만년 중하위권을 맴돌던 제프 유나이티드는 최용수 버프를 톡톡히 받아 일약 3위까지 뛰어올랐다.

플레이 스타일은 과감한 몸싸움과 포스트플레이를 펼치는 전형적인 파워형 스트라이커로,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예선 최다 득점을 기록하였다. 월드컵 예선을 보던 이들은 하나같이 최용수를 칭찬했고 인기는 하늘을 찔렀으며 그에 대한 기대도 남달랐다.

다만 같은 시기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경쟁자였던 황선홍이나 김도훈에 비해서 에이리어 밖에서 움직임이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플레이 기복이 심한 편이라, 되는 날에는 언터쳐블이었지만 안되는 날엔 캐버로우하는 문제도 있었다.[5]

결국 미드필더에서 양질의 패스[6]를 넣어줘야 비로서 최용수의 득점력이 산다는 제약과 더불어, 세계적 강호를 상대로는 공격수를 한명 내려 허리를 두텁게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전술적 한계까지 겹쳐 최전방에서 혼자 무기력하게 겉도는 경우가 잦았다.[7] 자연 팬들에겐 국내용이란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8] 결국 커리어의 정점에서 출전한 1998 월드컵 본선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첫경기인 멕시코전때 김도훈이 쥐가 나서 다리에 한방침을 맞아가며 풀타임을 뛰는데도 이미 에이스 취급을 받던 최용수를 아예 투입하지 않아 차범근 감독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고, 두번째 경기인 네덜란드전은 출전하긴했지만 누구 하나 못했다고 할 수 없을 수준으로 0:5로 탈탈 털린경기(...) 그리고 대망의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는 결정적인 찬스 2번(노마크 헤딩 찬스와 각이 제법 열린 1:1찬스)를 날려먹으며 지탄을 받았다. 당시 벨기에전 끝나고 인터뷰도 거부하고 혼자 숙소에서 씩씩대고 있으니까 당시 끗발이 있던 신문선이 방송을 위해 숙소 문 앞에서 '최용수'라고 나지막히 부르니 문을 열어주던 모습이 생방송을 타기도 했다. 여하간 98월드컵으로 한국 축구의 에이스이자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적자로 평가 받던 최용수는 실망감만 안겨주고 그렇게 잊혀져갔다. 특히 당시는 황선홍, 김도훈, 이동국 등 쟁쟁하고 비슷한 유형의 공격수가 넘쳐나던 시절이라 급속도로 자리를 잃어갔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뛰었으나, 이미 절정기가 지난 상태라 이렇다 할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조별리그 미국전에서 노마크 1m 거리에서 골대 위로 독수리슛을 날리는 바람에 폭풍같이 까였다. 절묘한 패스를 넣어줬던 이을용이 슛이 빗나가는 순간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장면이 백미. 사실 이을용이 바로 찔러주지 않고 잠깐 끄는 바람에 수비 압박이 들어왔고 패스가 로빙으로와서 차기 힘들었다고는 해도... 직업이 축구선수에 국대 스트라이커로서는 부끄러운 슈팅이었다. 다만 당시 골반 근육이 찢어져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이을용을 만나 그 얘기만 나오면 서로 탓을 하며 싸운다고 한다

안그래도 2002년 국대에서는 안정환 - 황선홍에 이은 3번째 스트라이커인데다가 팀이 원톱을 쓰는 바람에 출전기회도 별로 없었는데 저런 실수까지 저질러서...미국전 이후 히딩크 감독이 선수단 전원 휴식을 취하게 해도 혼자서 연습했다지만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16강 이탈리아전에는 후반 역전을 노리고 공격수만 5명을 세웠는데 차두리에게까지 밀려서 나오지 못할 정도였으니 뭐.

월드컵 이후에도, 국대경기에 간혹 주전으로 나왔었는데, 당시 지나치게 비대해져 많은 문제를 일으키던 중이었던 붉은 악마 중 일부는 국내에서의 A매치시에 저 월드컵 때의 일을 빌미로 최용수가 공만 잡으면 야유를 보내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1998월드컵 당시 역대 최약체로 평가받던 대표팀을 훌륭히 본선으로 이끌었던 공로에도 불구하고 2002월드컵의 영광의 그림자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선수이다.

현역때는 일본에서 가장 부러워하고 무서워했던 공격수로 통했다. 선호하는 배번은 10번으로 소속팀에서나 국대에서나 별 일없으면 항상 10번을 달고 뛰었다.

1.3. 지도자 경력

2007년 FC 서울에서 현역 은퇴 이후 계속 코치로 일하고 있다가 2011년 황보관 감독의 자진 사임으로 인해 감독 대행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취임 초기부터 짤방 작렬(...)

WRYYYYYYYYYY-!!!!!!!!!!!!!!!!!!!!!!!!!!!!!

취임 이후 5경기에서 4승1무. 일명 형님 리더쉽으로 이전까지 무기력하던 FC 서울을 완전히 바꿔놨다. 과연 이 기세 그대로 살려 감독대행으로 부임 첫 해 대박을 낸 신태용 성남 일화 감독의 코스를 밟을 수 있을 지 기대가 된다.

결국 팀을 리그 3위까지 끌어올리며 시즌을 마감.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에게 패하며 탈락했지만 시즌 초반 리그 최하위까지 쳐지던 팀을 다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만 하다.

하지만 최용수를 다음 시즌에 정식감독으로 선임하는것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렸는데, 반대측은 팀이 전술적으로 부족하다라는 이유를 댔다. 최용수 감독대행 이후 연승을 거두며 순위를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답답하거나 밀리는 경기들이 많았고, 그런 경기들을 간신히 골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이겨왔다. 결과적으로 데얀 의존도가 지나치게 심해졌다는건 큰 문제다. 때문에 최용수 감독대행은 경험을 위해 연수를 보내고 해외의 유명 감독을 데려와야한다는 것. 찬성하는 팬들은 무너졌던 팀 분위기를 다시 살리고 순위를 끌어올린만큼 시즌 초반부터 팀을 만들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12월 9일, FC 서울의 10대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었다. 감독이면서도 권위를 내새우기보단 선수들과 어울릴 줄 알고 스스럼없이 선수들을 대하고,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며 그 누구보다도 안되는 점을 아쉬워하는걸 표현한다. 하지만 경상도 사나이답게 금방 정색하는것이 최용수의 매력.

1.3.1. 2012년

2012년 K리그가 본격적인 승강제를 치루면서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 우승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시즌 초반 수원이 무섭게 1위를 질주하는가 싶었으나 결국 서울에게 덜미를 잡혔고, 결국 30라운드를 마치고 리그 1위 성적으로 상위 그룹에 편성되었다. 31라운를 마친 결과 2위 전북과 승점 5점, 3위 울산과 승점 11점 차이로 한발 앞서나가고 있다. 신임 감독 치고는 정말 잘 나가고 있는 중. 그리고 11월 21일 제주 유나이티드를 1대 0으로 누르고 잔여 3경기 관계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최용수는 K리그 최초로 단일 클럽에서 선수,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서 우승을 경험한 역사를 새로이 쓰게 된다. 이로써 그의 형님 리더쉽은 다시 한번 주목받는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FC서울 팬덤 내부에서조차 감독으로서 역량에 대한 의문이 불거져나왔다.
우선 최대 라이벌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대한 징크스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세제믿윤수원에 연거푸 졌다고 팬들이 버스를 가로막고 청문회감독과 면담을 요구하는 진풍경이 나오기도 했다. FC서울에 호의를 보이지 않는 디시 국축갤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북패에 이은 눕패라고 디스했다

또한 황보관 감독 사임 이후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다잡고 귀네슈-빙가다로 이어지는 FC서울의 팀 컬러에 섣불리 손대지 않은 점은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게 문제였다. 즉 전임 감독의 노선을 그대로 답습하기만 할 뿐 자신만의 비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리그 막판 우승을 확정하고 43라운드 포항 원정에서 아무리 주전 멤버를 뺐고 시합에 임했다고 하지만 0:5로 참패하는 수모를 당하면서 데몰리션 콤비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한가지 더 지적해야 할 점은 스플릿 시스템 때문에 44경기로 늘어난 살인적인 리그 일정과 더하여 아챔이라는 변수를 대하는 감독들의 선택이다. 먼저 강력한 우승 경쟁자였던 울산은 후반기 리그 우승 포기를 선언하고 아챔에 올인했으며, 전북은 노장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 차출되며 이흥실 코치가 감독대행 체제로 이끌고 있었으나 리그와 아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고 말았다. 결국 김호곤 감독은 아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전북은 리그와 아챔에 개근하다시피한 에이스 이동국이 9월에 퍼져버리며 팀도 동력을 잃는 것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반면 FC서울은 아챔을 뛰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아챔에 참가하지 못한 수원이 봄철 오버 페이스를 한 나머지 여름부터 고꾸라지면서, 최용수 감독의 운영 능력보다 상대팀 감독들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갈린 점이 크다. 이번 우승으로 2013 시즌 아챔 참가권을 획득한만큼 본격적인 검증은 다음해라고 보는 편이 옳다.

1.3.2. 2013년

2013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최용수 감독은 K리그 클래식 2연패와 2013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모두 차지해 더블 우승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게 겨울 이적시장에서 군입대,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에 대해 제대로 보강하지 않아서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고 시즌을 시작했다.

서울이 2011년과 비슷한 추세로 아챔에서는 선전했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는 포항과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인천, 부산, 경남, 울산, 수원, 성남을 상대로 초반 7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해, 서울까들에게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웃음을 들어야 했다. 분노한 서울팬들은 그를 경질시키고 귀네슈 감독을 모셔오라는 등 시즌 전 보다 더 까였다.

참고로 2011년부터 계속해서 보인 선수 로테이션을 거의 하지 않는 단조로운 전술이 2013 시즌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지난 2012년의 경우 전시즌 플레이오프 광탈로 인해 아챔 진출권도 없었고, FA컵도 지긋지긋한 그놈들에게 일찌감치 져서 리그 일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베스트11 복붙의 문제점이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리그+FA컵+아챔을 모두 소화하는 2013시즌 빡빡한 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문제가 폭발한 셈이다.

결국 금강불괴 같아 보였던 데얀이나 하대성 같은 선수들이 하나둘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선수들의 체력고갈로 인한 폼 저하가 가장 큰 문제였기에 그 더운 여름에도 베스트 11을 주야장천 굴리던 최용수 감독의 책임이 크다.

이처럼 로테이션 없이 경기 운영을 한 결과 당장 주전들은 지쳐서 폼이 떨어지고, 가뜩이나 '슬슬 한물 간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던 몰리나는 FC서울 팬들조차 '몰레기'라고 까며 내년 계약 연장할 필요 없이 중국에 팔아버리라고 이를 갈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FC서울은 10년 넘게 재능 있는 새싹들을 일찌감치 유스에 끌어모으면서 젊은 선수층이 두터운 팀인데, 막상 경기는 뛰는 놈만 뛰니 이런 젊은 선수들이 성장을 못하고 줄곳 정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마디로 싹수를 봤을 때는 제2의 기성용, 박주영, 이청용을 노려볼만한 재목은 수두룩한데, 키워내지를 못하고 만년 그냥 유망주로 묻어버리고 있다.
당장 리그의 트랜드가 긴축재정과 고액영입 대신 유망주 키워서 쓰기로 흘러가고 있고, 특히 포항 스틸러스가 잇단 유스출신 대박을 내면서 좋은 본보기가 되는 마당에 정작 감독이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팬들로서는 유망주를 모아왔는데 왜 써먹지를 못하니 하며 복장이 터질 노릇. 더구나 모기업 GS의 자금사정 악화로 인해 2014 시즌은 데몰리션 없이 시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주전과 백업 격차가 크단 점은 마이너스 요소이다. 또한 단순한 전술 역시 까이고 있다.

그나마 지긋지긋한 수원전 징크스를 깨뜨린 게 다행이지만, 부산으로 옮긴 세제믿윤에게 변함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

덕분에 성효부적까지 나왔다(...)

결국 FA컵에서는 부산에게 패해 8강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초반 부진을 딛고 차곡차곡 승점을 따내며 무사히 상위권에 안착했다. 결국 최종 성적은 4위.
그리고 대망의 아챔은 종합 스코어 3:3,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광저우 헝다에게 우승컵을 내주고만다.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3년 참조.

결국 이때를 기점으로 종신감독 드립이 흥하기 시작했다. 아챔 결승전은 객관적 전력을 봤을 때 서울이 조금 밀린다는 평을 받긴 했으나, 그래도 한번 해볼만하다는 쪽으로 팬들의 의견이 모였다. 그런데 스플릿과 맞물린 자비심 없는 일정이 문제였다. 9월 25일 아챔 4강전 서울 홈, 10월 2일 아챔 4강전 이란 원정, 10월 6일 리그, 10월 9일 리그 슈퍼 매치. 이처럼 해외 원정의 피로를 풀 시간도 제대로 없이 바로 리그 일정을 소화해야했고 설상가상 슈퍼 매치까지 끼어있었다. 더구나 서울이 아챔 결승에 오르면서 10월 26일 서울 홈 경기가 잡히는데, 앞선 10월 20일은 리그 우승을 노리는 울산과 경기를 치뤄야 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결승 1차전은 올인인만큼 사전 컨디션 조절은 필수였는데, 문제는 자존심이 걸린 슈퍼매치와 우승의 향방을 가늠할[9] 울산전 둘중 어느 쪽을 버리느냐였다. 그리고 최용수 감독의 선택은 슈퍼 매치. 덕분에 슈퍼 매치에서는 승리했지만 울산전에선 0:2로 패했다.
결승 1차전에서 아쉽게 비겼을 때 팬들은 '아예 2주동안 주전의 체력을 비축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승 2차전, 어렵사리 중계를 시청하던 팬들은 일제히 뒷목을 잡고 이뭐병을 외쳐야 했다. 홈에서 2:2 원정에서 1:1, 당연히 원정다득점을 생각해서 어느 순간 모험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오히려 후반 막판 수비 라인을 내리고 지킨다(...)

그리고 AFC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우승팀 광저우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서양인이고, 최용수 감독은 아직 젊은데도 불구하고 결승까지 팀을 끌어올린 점을 인정한 결과. 서울팬들로선 울지도 웃지도 못할 지경

1.3.3. 2014년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감독. 그러나 수업료가 참 비싸다.

2014 시즌은 33라운드 일정을 치른후 성적에 따라 A B 스플릿으로 나눈 뒤 5라운를 더 치뤄 팀별로 총 38라운드를 뛰게 된다.

시즌전부터 서울의 전력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가장 큰 문제는 데얀의 이적이었다. 7년간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K리그 외국인 선수 통산 최다골, 역대 최다골 2위에 오른 레전드 데얀의 빈자리는 기존 선수진으론 메우는게 불가능했다.

데얀과 3시즌간 데몰리션 콤비를 이뤄 리그를 평정했던 리그와 아챔을 병행하며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노쇠화까지 겹쳐 13시즌 후반기부터 폼이 뚝 떨어졌다. 2014시즌 외국인 선수 가운데 연봉 1위라는 비싼 몸값때문에 처분하는 데 실패. 그리고 무릎 부상으로 전반기를 사실상 공치게 되었다.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 수비수라는 찬사를 받은 아디도 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여기에 미드필더진에서 빌드업을 책임졌던 주장 하대성마저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하면서, FW-MF-DF 세 라인에서 핵심 선수가 고스란히 팀을 이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남아있는 네임드는 차두리, 고명진, 김진규, 김용대 정도였고 나머지는 폼이 하락했거나 주전경쟁에서 밀렸거나 아니면 아직 경험이 부족한 유망주들이었다.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최용수 감독은 2014 시즌을 3백 체제로 운용할 것임을 천명했다. 최용수 감독은 유로 2012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이탈리아의 3백 시스템을 인상깊게 보고 이때부터 3백 활용을 결심하고 2년간 연구해 왔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대전에서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쓰리백과 포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이웅희를 영입하고 외국인 슬롯 하나를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모두 가능한 장신 수비수 오스마르로 채웠다. 그리고 13시즌 후반기부터 쓰리백을 시험적으로 가동해 보기도 했다.[10] 이미 차두리, 최효진, 김치우 같은 수준급 측면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어 아주 불가능하진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선수들이 생소한 쓰리백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전반기 서울은 총체적인 난국에 부딪치게 된다.

시스템이 생소했던 윙백들이 요령껏 시스템에 녹아들지 못해 체력소모가 극심했고 이는 후반전만 가면 양쪽 측면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여기에 중앙 수비수 김진규와 골키퍼 김용대까지 집중력을 잃은 모습을 보여주어 수비진이 말그대로 허물어졌다. 공격진이 나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데얀 대신 원톱으로 세운 에스쿠데로는 본래 윙이었고 퍼스트 터치나 슈팅이 좋은 선수가 아니었기에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몰리나가 빠지나 세트피스 활용도 여의치 않았고 미드필더진은 하대성의 빈자리를 못채워 허리에서 빌드업이 안됐기 때문에 극심한 빈공에 시달렸다. 한마디로 초반에는 공격도 안되고 수비도 안됐다.

상황이 너무 안좋다보니, 리그 2경기와 아챔 3경기도 총 5경기를 치른후 일시적으로 4백으로 회귀했지만 무너진 팀 스피릿은 회복되지 않았다.

순위승점득점실점
1포항227122210
2전북20622147
3제주19613109
4전남175231110
5울산15433127
6수원154331311
7부산12334810
8상주101721012
9경남10244816
10서울923568
11성남923535
12인천4046214

위 표는 4월 27일 10라운드까지 마친 시점에서 FC 서울이 받은 성적표다. 전통적으로 FC 서울이 슬로 스타터 기질이 있긴 했으나,[11] 이정도면 강등을 걱정해야 했다.

그리고 5월 3일 리그 11라운드, 리그 꼴지이자 무승 팀 인천을 맞이하여 0:1로 패했다. 이 믿어지지 않는 결과에 축구팬들은 '썩어도 준치인데 아무리 못해도 하위 스플릿 정도로 그칠 것이다'는 쪽과 '지금 전력으로는 곧장 강등이냐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루냐 문제일 뿐'이라는 쪽으로 나뉘어 한바탕 설전을 주고받기도 했다.

대대광강이 사라져 하위권 경쟁이 어느때보다 치열해 졌고, 월드컵 브레이크로 약체팀들이 혹서기에 체력을 보전할 수 있게되었기에 팬들의 걱정은 점점 커졌고 경질론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그에서 졸전하는 와중에도 아챔에서는 꾸준을 승점을 쌓아 16강전에 안착했고, 16강에서 만난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상대로 원정 다득점 승을 거두어 8강에 올랐다.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가 8강 상대로 결정되어 걸어가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가 성사된채 월드컵 브레이크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때부터 반등이 시작되었다.

일단 강등권까지 처박힌 성적을 조금씩 끌어올으며 상위스플릿 다툼을 벌일 정도로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가장 큰 개선점은 감독 생활 4년만에 로테이션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게 꽤 성공적이라는 점이다. 서울은 최용수 감독 취임이래 12시즌 리그 우승, 13시즌 아챔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최용수 감독이 능력덕이라고 보는 이는 드물었는데, 여기에는 황선홍처럼 전술적으로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도 있지만 1년 내내 베스트11만 돌리고 로테이션을 모른다는 점이 가장컸다. 김현성, 박희성 등 유망한 젊은 선수들에게 경기력을 성장시킬 기회를 부여하지 않했고 이재권은 일부러 트레이드해서 데려와 놓고 벤치만 데웠다. 이때문에 서울은 데몰리션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높았으며, 아챔참가로 일정이 빡빡해진 13시즌 그 부작용이 터져 리그와 아챔을 모두 날렸다.

그리고 데몰리션이 떠난 14시즌. 시즌 초반을 완전히 말아먹으면서 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는듯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조금씩 자신의 단점을 개선해가기 시작했다. 로테이션을 제대로 운영하며 리그성적과 아챔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시즌 제대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박희성, 고광민, 이상협, 김남춘, 최현태 같은 선수들이 기회를 부여받았고,[12] 대전에서 데려온 이웅희도 3백의 핵심으로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여름들어 로테이션을 활용하고 수비수들이 3백에 적응하자 조금씩 성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단 강등권은 확실하게 벗어났다.

8월 20일 스틸야드에서 열린 1차전에선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8월 27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아시아 챔피언스 2차전 홈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승부차기 스코어 3-0으로 승리. 4강에 안착했다. 몰리나, 에벨톤, 에스쿠데로, 김치우 등 작년같으면 무조건 나왔을 주전선수들을 과감히 제외시키고 고광민, 박희성, 윤일록 같은 젊은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내 승리를 낙아챈 점도 고무적이다. 올시즌 리그와 아챔, FA컵까지 지겹도록 맞붙고 있는 서울과 포항인데 시즌 초반 서울이 헤맬때 패배한 것을 제외하면 서울이 우세를 보이며 FA컵과 아챔에서 포항을 물먹였다. 현 시점에서 최강희 감독과 함께 K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황선홍 감독을 상대로 감동님 소리까지 들었던 최용수 감독이 우세를 보이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9월 10일 성남원정에서 2-1 역전승을 거둬 같은 날 수원에게 2-0으로 패한 울산을 제치고 6위에 등극, 드디어 상위 스플릿 진입에 성공했다.

9월 10일까지 진행된 판도로 봤을 때 상위 스플릿 잔류를 놓고 가장 유력한 경쟁 상대는 5위 전남과 7위 울산이다. 전남은 모기업 경엉사정이 악화일로를 걸으며 저비용고효율 스쿼드를 꾸린만큼 장기 레이스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다. 한편 울산은 조민국 신임 감독이 부임한 여파로 팀이 정상궤도를 일탈해 삐걱대는 상태다. 더구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축구 대표로 울산은 김신욱과 김승규를, 전남은 김영욱 안영우 이종호를 보내 전력 누수가 심한 것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3년차 햇병아리 감독에 불과하지만, 일부 축구팬들은 조심스럽게 40대 또래 감독들 가운데 차후 대표팀 감독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지 않겠냐며 장래를 점치고 있다.[13] 전술한 바와 같이 3년동안 여러차례 팀과 감독 모두 위기를 맞이했는데도, 군말이 새어나지 않게 '선수들을 잘 단속'하면서 어떻게든 '끝까지 버텨내서 성적을 내는' 뚝심은 감독으로서 커다란 장점이다.[14] 또 유려한 공격축구를 선호하는 신태용, 황선홍 감독과 달리 선수비 후역습의 간결하고 실용적인 축구를 추구하는 점도 세계 무대에서 대표팀의 위상과 전력을 고려해봤을 때 궁합이 맞는다.

9월 13일 인천과의 경기로 승점 40점을 돌파. 11승 8무 7패 승점 41점으로 5위에 올라있다. 현재 3위 수원과의 승점차이는 고작 3점.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와있다. 현재 기세대로라면 충분히 티켓 획득이 가능한 상태. 덕분에 서서히 서울팬들이 최용수빠로 변하고 있다.

웨스턴 시드니와의 0-0 홈경기 무승부로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부터 3경기 연속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다. 연장전까지 도합 300분 무득점이다.[15] 웨스턴 시드니가 서울과 마찬가지로 선수비 후역습 스타일이라 지루한 경기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고 예상대로 되었다. 웨스턴 시드니가 원정골을 기록하고 홈에서 잠궈버리는걸 우려했는지 홈에서도 그다지 공세지향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후술하겠지만 현재 서울의 공격력으론 웨스턴 시드니 정도의 팀을 상대로 원정골 허용하면 만회하기 힘들다.

이후 리그에서도 무재배를 거듭해 전북전(0:0)과 경남전(1:1)에서 연달아 무승부를 기록했다. 웨스턴 시드니와의 1차전이나 이후 벌어진 2경기나 노출된 문제점은 같았다. 서울의 수비력은 변함없이 굳건했으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스코어러 부재에 계속 발목을 잡히고 있다. 전북전에선 홈에서 1군으로 나온 전북을 상대로 1.5군을 내보내 공격은 잘막았고 결정적인 찬스도 잡았으나 박희성이 그 찬스를 날리면서 무득점에 그쳤고 경남전에서도 에벨톤과 박희성이 결정적 찬스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데얀은 떠났고, 몰리나는 노쇠화로 폼이 죽었다.[16] 모기업 GS도 연고지 밀착, 유스 시스템 정비, 해외교류 등 구단 내실다지기에 집중하면서 10년 같은 대박영입은 안하는 상황. 11시즌 몰리나 영입 이후로 빅사이닝이 없다.[17] 12시즌 이재권, 13시즌 윤일록, 14시즌 이웅희, 강승조로 매년 유망주, 준척급으로 1~2명만 데려왔으며 이들중 윤일록은 13시즌 바로 중용되었고, 이웅희와 강승조도 14시즌 중반 최용수 감독이 베스트 일레븐에 대한 고집을 버리면서 기회를 부여받아 잘 뛰고있다. 2시즌 벤치에서 쌩으로 날리고 경찰청 입대한 이재권만 불쌍하게 되었다. 근래 K리그 대기업 구단들중 이적시장에서 가장 활발한 구단은 전북으로 09년 시즌 이후론 꾸준히 이적 시장 큰손으로 활동중이다.

저렴한 자원이 필요하여 데려온 하파엘 코스타는 상반기에 워낙 부진했던지라 손해를 감수하며 에벨톤을 맞임대로 땡겨오는 딜을 했는데, 그렇게 데려온 에벨톤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맥을 못추고 있다. 기존의 에스쿠데로는 원톱감이 아니라는 사실만 다시 한번 확인시켰고 유망주 박희성도 문전에서 미숙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앙 공격은 기대할게 못된다. 두두와 이상협만 남기고 공격진이 전멸했던 07년 귀네슈 부임 첫해와 유사한 상황이다. 그래서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측면에서 활력을 불어넣던 윤일록이 아시안게임에 차출되어 갔다. 게다가 조별 예선에서 오른쪽 인대 부상을 입어 4~6주를 끊어서 복귀후에도 한동안 결장해야 하며 추후 폼저하가 우려된다. 왼쪽의 김치우는 왼다리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어 수술대에 올랐다.

14시즌 서울은 실점을 잘안하지만 득점도 많이 못하는 팀이다.[18] 선제골을 먹으면 뒤집는게 쉽지 않고 주어진 찬스를 바로바로 못살리면 약팀 상대로도 덜미잡힐 위험이 높다. 즉, 답답하다고 함부로 공격적으로 나가는것도 쉽지않다. 때문에 리그, FA컵, 아챔 모두 굉장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없던 골결정력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건 아니라서 최용수 감독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19]

10월 1일 웨스턴 시드니와의 호주 원정에서 0-2로 패배. 2년 연속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원인은 역시나 약한 공격력이었다.

30라운드 울산전에서 3-0 대승을 거두어 울산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은 31라운드 상주전에서 연이은 원정경기로 인한 체력저하를 극복치 못하고 0-1로 패했으나 32라운드 전남전에서 모처럼 터진 몰리나를 앞세워 2-1로 승리. 상위스플릿 잔류를 확정짓고 재차 아챔 진출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10월 22일 FA컵 준결승에서 상주를 1-0으로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FA컵 결승전에서 결국, 성남 FC에게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FA컵 우승을 놓치고,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힘겨워지는 듯 했다.

이런 와중에 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는데, FA컵 우승을 놓치고 4위를 기록하던 서울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리그 3위로 진출하는 것뿐인데 3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승점이 3점차인 포항 스틸러스가 반드시 패배하고 서울이 반드시 이겨야 가능했기 때문. 포항은 비기기만 해도 아챔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나마 득실차는 이미 서울이 더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기기만 한다면 거의 99%의 확률로 3위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포항은 홈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경기[20]하고, 서울은 제주 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제주의 황일수에게 골을 먹히더니 포항-수원 경기도 김광석이 골을 넣으며 완전히 희망이 사라지는 가 했다. 그러나 6골로 팀 내 최다 득점자이던 윤일록이 동점골을 넣더니 옆 동네 경기에서도 이동국을 제치고 득점왕을 노리고 있던 산토스가 동점골을 넣었다. 게다가 얼마 안 가 시즌 내내 인민 먹튀 취급받던 정대세까지 골을 넣으며 아챔 진출 조건의 반이 이루어졌고, 결국 후반 45분에 오스마르가 역전골을 넣으면서 3위로 역전 성공. 아챔 진출에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과 수원의 관계는 슈퍼매치라고 할 정도로 타 팬들을 인정하지 않지만 꽤나 인지도 높은 라이벌 관계인데 그 라이벌인 수원이 서울의 아챔 진출을 도와준 격이었다.

다만 올 시즌 성적을 말하자면 그리 만족스럽다 볼 수는 없다. 2년 연속 리그 우승팀이 급작스런 전술 변화로 인해 초반에 크게 무너지고, 전술에 적응한 뒤에도 안정화된 수비에 비해 그리 늘어나지 않은 득점력을 생각하면 분명히 아쉬움이 많은 시즌.

아무튼 서울 프런트는 시즌 중반 이후의 모습을 괜찮게 평가했는지 3년 재계약을 제안했다. 그러나 14년 연말에 김주영이 중국 상하이로 이적하면서 내년 전력 약화를 고민하게 되었다. GS가 최근 건설사업 필두로 적자가 많이 발생한 탓에 올해도 눈에 띄는 영입없이 상당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1.3.4. 2015년

아챔 플레이오프에서 하노이를 7:0으로 격파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이는 듯 싶었으나, 개막 직전 세르히오 에스쿠데로가 중국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리그 개막전부터 울산-전북-포항에 매 경기 2골씩 먹히며 3연패를 기록하였다. 아챔리그 조예선에서도 1승 1무 1패로 3위로 밀려난 상황. 일단 박주영을 영입하긴 했지만 이적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합류 시점이 4월 초로 잡혀있어 반등할지는 지켜보아야 할 듯.

1.4. 지도 스타일

권위적이지 않고 소통을 중시하며 뒤끝이 없어 선수들이 부담스러워 할 지도자는 아니다. 유머러스한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듯 인터뷰나 언론플레이도 수준급. 본인이 FC 서울 한 구단에서 선수, 코치, 수석코치, 감독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기에 장악이 용이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러차례 힘든 상황이 닥쳐왔음에도 별 진통없이 팀을 추스려 나간 점은 인정해 줄 만하다.

이장수 재임기 서울의 플레이 스타일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세뇰 귀네슈 시기 빠른 템포의 패싱게임이 장착되어 전자는 극복했지만 젊은 유망주들이 중심이 되고 베테랑들이 케어를 못 해준 탓에 후자는 극복하지 못했다. 때문에 서울은 항상 팀 캐미스트리에 문제가 있다는 평을 들었고 08, 09시즌 잘나가다 시즌 후반 고꾸라졌다. 이 문제는 빙가다 감독 재임기 베테랑이 어느정도 극복되었으나 빙가다 감독은 1년만에 떠났고 주축 선수들이 유출되었다. 설상가상 후임 황보관 감독은 완전히 무능력했다. 이 모든 문제점은 11시즌 11경기 3승 4무 4패란 처참한 성적으로 이어졋다.

그 상황에서 등판한 최용수는 귀네슈가 정착시킨 공격축구와 빙가다때 잡히기 시작한 팀 스피릿을 모두 계승하는데 성공했다. 11, 13, 14시즌이 모두 스타트는 최악이었고, 유일하게 처음부터 치고나간 12시즌에도 중국 이적이 불발된 데얀과의 갈등이란 변수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처럼 제 성질 못이겨 자멸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스타 플레이어가 없어도 조직력을 바탕으로 치고 올라가는 팀이 되었다.

귀네슈 시기 안티들의 주요 레퍼토리였던 거친 플레이도 무공해 축구란 기치아래 완전히 추방, 클래식에서 가장 파울 적은 구단으로 변모시켰다. 아직 경력이 짧지만 분명 선수단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우수한 감독이다. 2012년부터 쓰리백을 준비해온 점에서 알 수 있듯 장기적으로 플랜을 짜는 능력도 괜찮고 초반 대차게 말아먹은 14시즌에도 최소실점 2위를 달릴 정도로 수비라인 구축에 일가견이 있다. 13시즌까진 백업 멤버들을 활용하지 않고 베스트11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14시즌부턴 로테이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단점이라면 전술 다변화가 있다. 일단 전술뇌가 없는 감독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한 지장이다. 데몰리션의 후광과 화려한 공격축구를 추구하는 감독이 아니란 점이 더해져 황선홍, 최강희에 비해 머리 나쁘고 선수빨로 먹고산단 이미지가 붙었는데, 14시즌 수차례 대결한 황선홍 감독은 여우라며 경계했고 최강희 감독과의 지략대결 결과도 좋다. 문제는 플랜A가 안먹힐때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해서 극복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점이 가장 잘 드러난 점이 광저우 헝다와의 13년 AFC 결승전. 되든 안되든 과감한 공격이 필요한 순간에 되려 수비적으로 나가서 맥없이 트로피를 내줬다. 14년 34라운드 전북전에선 평소와 달리 전북이 수비적으로 나오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다 경기를 내주기도 했다.

또 다른 단점은 공격진 운영과 육성. 1년에 1골 넣는다던 정성훈, 강수일을 각성시키고 전문 스트라이커 없는 포항을 14시즌 전반기 팀득점 1위에 올린 황선홍 감독에 비해 본인이 공격수 출신임에도 공격수 육성이 시원찮다. 13시즌까지 로테이션을 모르던 사람이라 김현성, 박희성 같은 공격수 유망주들이 육성이 전혀 안됬다. 본인이 리그 정상급 타겟맨이고 김현성, 정조국같은 장신 공격수가 있음에도 제대로 쓰질 못한다. 이로인해 데얀이 떠난 14시즌부터 심각한 빈공에 시달리고 있다. 공격시 빠르고 오밀조밀한 패싱게임과 과감한 롱볼전술을 혼합하는 최강희, 황선홍과 달리 정말 다급한 상황이 아니면 롱볼축구를 아예 안하는 지라 장신 타겟맨 김현성은 거의 쓰임을 못받았다. 과감한 중거리 슈팅 역시 좋아하지 않는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윤주태가 그래서 중용못받는다는 설이 있다.

1.5. 기타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인 서용빈과 친구사이이다. 94년에 나란히 LG 스포츠단에 입단했다고. [21] 지금 축구와 야구 사이가 안 좋다고 하지만 그시절에는 두가지 다른 종목이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니. 가끔 잠실 야구장LG 트윈스 경기를 직접 관람하러 오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2012년 K리그 올스타전 당시 골을 넣고 마리오 발로텔리를 패러디한 골 세리머니를 보여줬다. 몸은 발로텔리와 좀 거리가 있지만. 이 세리머니로 인해 살로텔리, 뱃살텔리 등의 별명이 탄생했다.


동래중-동래고-연세대 선배로 사적으로 꽤 친한 사이인 세상에서 제일가는 믿음직한윤성효 감독과는 애증의 관계이다. 최용수 감독은 윤성효 감독이 수원에 있을 때 수원에게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 상성 중에서도 극상성인 셈. 윤성효 감독이 수원을 떠나 부산으로 간 이후에 수원 상대 열세는 뒤집어 졌으나 이번엔 부산에게 쩔쩔매서 윤성효 감독의 호구 소리들었지만 14시즌 부산이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면서 윤성효 징크스도 극복했다. 14시즌 전반기에 성적이 바닥을 치며 스트레스가 극심할때 윤성효 감독에게 전화해서 농담삼아 부적 좀 빌려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라디오스타에서 안정환폭로에증언에 따르면 국가대표 소집 때마다 안정환에게 족발 심부름을 시켰다고한다. 아 형이 무슨 기술 축구야. 몸빵 축구지 본인은 이에대해 안정환도 같이 잘 먹었다는 말과 함께 특별히 족발을 좋아하는건 아니고 당시 대표팀 숙소였던 장충동 타워호텔 인근에 유명한 족발집이 있다보니 자주 시켜먹게되었다고 밝혔다.

현직 K리그 감독중 언변이나 인터뷰 스킬이 가장 좋은 편이라 최리뉴라 부르는 서울팬들도 일부 있지만 축구팬들 전체적인 평가로는 인터뷰를 잘하는 감독으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말 재치있게 한답시고 무리수를 몇 번 두었기 때문. 예컨대 슈퍼매치에 앞서 수원 서정원 감독을 디스하면서 '난 서 감독과 달리 원클럽맨'이라고 한다던가.... 잠시 스크롤을 올려서 선수경력 부분을 읽어보자 다만 무대를 국내에만 한정하면 원클럽맨이 맞다. 특히 서정원 감독이 안양 시절 해외진출 이후 국내 복귀할때 수원으로 복귀한 것이 지지대 더비를 가열시켰고, 그것이 현재의 슈퍼매치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최용수의 서정원 디스는 충분히 개연성을 지닌다.

최강희 감독이 전북 상대할 때 수비만 하지 말고 공격적으로 해보라고 한 데 대해서는 '3류 멘트'라며 무시했는데, 정작 최용수 감독 본인이 데얀-몰리나 데리고 있을 때 무공해축구라며 다른팀들이 수비위주 축구 한다며 언플했던 걸 기억하는 축구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다.

2.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출신 이종격투기 선수


1972년 8월 20일생.
1995년 WBA 슈퍼 페더급 챔피언 획득. 1998년 8차 방어 실패.
2003년 은퇴. 통산전적 34전 29승(19KO) 1무 4패.
2006년 K-1 데뷔.
2009년 파이트머니 미지급 문제로 불화, 사실상 K-1 은퇴. 통산전적 2승 1패.

199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를 대표하는 복서였다. 1995년 WBA 슈퍼 페더급 챔피언 획득 이후 7차 방어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8차 방어 실패 후 타이틀 재탈환에 실패하며 2003년에 은퇴를 했다. 최용수 이후 대한민국의 간판 복서는 인주와 故 요삼으로 이어진다.

WBA 챔피언 경력으로 K-1에 참가해 큰 기대를 모았다. 한편으론 세계 챔피언이었던 그가 생활고를 단단히 겪으며 고생끝에 K-1에 참가한 사실이 알려져 한국 복싱계의 암울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은퇴 이후 사기를 당한 것(5억 정도를 날렸다고 한다) 역시 진출 이유이기도 했다.

또한 최용수가 복싱계를 떠날 때, 요삼 선수는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자기는 끝까지 복싱을 하겠다고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몇달 후 시합이 끝나자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져 더욱 주변을 안타깝게 하였다.

그러나 현역 시절에도 컨디션이 고르지 못하고 어떨 때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어떤 때는 저조한 식이라 챔피언으로 롱런하지 못했다. 복싱을 그만둔 뒤로는 사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 때문에 택배회사에서 운전수를 했다고도 한다.

K-1 최초 데뷔전과 2차전을 승리했지만, 하필이면 다음 상대는 당시 적수가 없다던 마사토였다. 복싱에서 은퇴한지 3년이나 지난데다가 고작 2전 경력의 선수를 단체 최고의 선수와 붙이는 어이없는 매치업으로 처음부터 마사토를 위해 준비한 떡밥 매치였다는게 정설. 게다가 최용수는 현역 때 슈퍼페더급(60kg이하)인 선수를 70kg급 선수와 붙이는것 자체가...

복싱과 K-1의 결정적 차이점인 의 유무로 인해, 마사토의 상단킥 준비동작을 펀치로 착각해 고개를 숙이면서 상단을 맞은 게 원인으로 다운이 되고 만다. 결국 3라운드에 세컨에서 타월을 던져 기권패를 한다.

격투기 팬들은 약점인 킥을 보강해 조금 더 활약해 주길 바랐지만, K-1이 조금씩 막장으로 흐르면서 계약 문제로 트러블이 생겼다. 당시 K-1의 계약금이 10억이니 하는 언플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던 터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결국 계약금은 제대로 받지 못한듯. 결국 더 이상 격투기 무대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나이도 현재 40대이기 때문에 전성기는 지났다는 평가다.

현재 경기도 시흥시에서 복싱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3.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 등장하는 만화 잡지

풀네임은 월간 최용수. 오로지 꿈마니소드마스터 야마토를 연재했던 곳. 어원은 아마도 1번[22]인듯.
----
  • [1] 실제로는 1971년생으로 유상철, 최진철과 동기이다.
  • [2] 축구 명가로 유명한 명문고다. 전통적으로 야구보다는 축구쪽에 투자를 하는 학교이며 박정태, 박지철등을 배출해 낸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는 IMF를 맞이해 해체되었지만 김호, 김호곤, 최용수, 윤성효등을 배출한 동래고등학교 축구부는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다.
  • [3] 이후 이영표를 PSV에 내보낼 때 안양LG 관계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협상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임했다는 발언이 있다. 실제로 협상을 잘 했어도 웨스트햄 입단이 되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협상 자체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는 이야기. 덧붙여 김도근은 에이전트가 억지로 붙인 덤이었는데 워크퍼밋 발급 조건이 미달돼 갈수도 없었다.
  • [4] 젊어서는 이게 정말 한스러웠지만 나이들고 나서는 초탈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이 해외진출하려고 하면 웨스트햄으로 보내겠다고 자학개그를 자주 한다.
  • [5] 이건 이런 타입의 공격수들이 원래 그렇다. 팀 기복 + 본인 기복이라.
  • [6] 이방면에서 천재 미드필더라 불리던 윤정환은 독보적이었다. 칼같은 스루패스에 최용수의 폭발력은 당시 국대 축구를 보는 즐거움이었다. 특히 절정에 달했던 아틀란타 올림픽 당시 윤정환-최용수 콤비는 역대 베스트 콤비로 불려도 손색없다.
  • [7] 네덜란드전 전술은 3-5-2이지만 투톱 파트너 김도훈을 처진 스트라이커처럼 썼기 때문에 3-6-1 형태와 흡사했다. 더구나 허리 싸움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사실상 5-3-2(...)로 흘러갔다.
  • [8] 히딩크 이전 한국 축구계는 피지컬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채 막연히 개인기 드립이나 조직력 드립을 쳐대던 시절이었다. 반면 98년 월드컵 상대는 네덜란드벨기에의 장신 떡대들이였으니, 심한 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랄까.
  • [9] 스플릿에선 상위 그룹에 속한 팀들끼리만 일정이 잡히는만큼, 우승 경쟁상대와 싸워 이기면 승점 3점 이상의 데미지를 입히게 된다.
  • [10] 이렇게 차근차근 준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최용수, 서울까들에 의해 아디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거나 배운적도 없는데 할 수나 있겠나 하는 등 말도 되지 않게 까였다.
  • [11] 2013 시즌 10라운드 서울은 2승 4무 4패를 기록, 14개팀 가운데 10위로 쳐져있었다. 다만 이때는 데몰리션이 건재했기에 17득점 16실점으로 득점만큼은 1위 포항과 공동선두를 기록하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 [12] 그간 베스트11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심했는지 21라운드 인천전에서 로테이션을 돌리자 4년만에 로테이션 돌린다고 기사가 떴다.
  • [13] 물론 K리그 팬들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K리그 감독을 그런식으로 유출시켜선 안된다는 이유 등으로 다들 반대한다.
  • [14] 많은 사람들이 잘 까먹는데 황선홍 감독도 감독 초년병이던 부산 시절 3년간은(부산구단의 형편없는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좋은 소리 못들었다. 그리고 수원 시절 윤성효 감독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30년 역사의 K리그는 무능력자가 선수빨로 우승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무대가 아니다.
  • [15] 승부차기까지 포함해도 무실점이다. 흠좀무
  • [16] 다만 데몰리션이 건재했다면 최용수 감독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틀을 깨부수지 못해 FC 서울의 유망주들은 여전히 벤치만 데웠을 것이고 팬들의 재평가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감독이 되기위해 거쳐야 할 시련으로 볼수도 있다.
  • [17] 이때도 몰리나의 존재감이 커서 그렇지 유출이 더 심했다. No.2 공격수 정조국과 핵심 센터백 김진규가 해외로 떠나고 측면 수비수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이 동반 입대했다. 2명이 한꺼번에 빠진 우측 풀백은 고요한을 풀백 전업 시키기 전까지 답이 안나왔다.
  • [18] 쉽게말해 전북이나 포항같은 강팀과 붙어도 질 것 같지 않은데, 경남이나 상주같은 약팀이랑 붙는다고 이길 것 같지도 않은 팀이다.
  • [19] 팀내 최다골 기록자가 윙어 윤일록(5골)이다. 결정력 문제는 한시즌 혹은 몇시즌 통째로 투자해서 기존 공격수를 키우던가 겨울에 새로 공격수를 수혈하는 방법밖에 없다.
  • [20] 이 경기 전까지 수원은 10년 동안 포항 원정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다.
  • [21] LG 트윈스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 '쌍둥이 마당'에 올라온 일화에 따르면, 구리 챔피언스파크로 임찬규 선수를 보러 온 어린이에게 최용수 감독이 챔피언스파크 건물 2층에서 축구공을 던져 선물했다고 한다.
  • [22] 격투가 최용수가 K-1에 데뷔하여 일본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보다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연재 시작이 더 빨랐다는 점. 다른 에피소드에서 홍명보라는 마법봉이 등장한다는 점 등을 볼 때 1번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