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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아

last modified: 2015-06-25 20:14:39 Contributors

Zenobia. 지금의 시리아에 위치한 팔미라(Palmyrene Empire) 왕국의 여왕.

Contents

1. 개요
2. 대중문화

1. 개요


사막유목민베두인족 출신으로 거무스름한 피부에 하얀 치아를 가진 미녀였다고 전해진다. 체력도 강해서, 말을 타지 않고 도보 상태에서 몇 시간 동안 병사들과 행군을 할 정도였다고.

그녀의 남편은 데나투스였다. 그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황제 푸르에게 로마 제국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생포되어 로마 제국이 혼란에 빠졌을 당시, 샤푸르를 기습하여 그를 도망가게 만들어 로마로부터 동방 총독의 직위를 받았을만큼 유능하고 기민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데나투스가 조카에게 암살된 이후, 팔미라는 제노비아가 통치하게 된다.

당시, 팔미라의 종주국이었던 로마 제국은 군인 황제들의 난립과 잇따른 내전으로 인해 브리튼과 갈리아, 스페인에 갈리아 제국이라는 정권이 들어섰을 만큼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 틈을 노려 제노비아는 중계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군사력 증강에 투자하여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와 이집트까지 점령하여 팔미라를 동방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과 오데나투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바발라투스를 팔미라의 왕으로 앉히고, 그에게 로마 황제의 칭호인 페라토르를 붙여주기까지 했다. 물론, 팔미라의 실권은 제노비아 자신이 쥐고 있었다.

팔미라를 정복하기 위해 쳐들어온 로마군을 몇 번이나 격파하고, 유럽으로 쫓아보냈을 정도로 군사적 능력도 걸출했다.[1]

에드워드 기번마제국 쇠망사에 의하면, 당시 팔미라의 군대는 기수와 말이 모두 갑옷을 입은 중장기병과 가볍게 무장을 한 상태로 활을 쏘는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팔미라의 기병대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사산조 페르시아의 중무장 기병인 카타프락토이와 유사했던 모양.

그러나 서기 270년, 장군 출신으로 로마 황제가 된 아우렐리아누스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팔미라 군대는 결사적으로 항전했지만 참패를 거듭하고 끝내 팔미라마저 함락된다. 그리고 팔미라는 로마군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고 폐허로 전락하고 만다.

제노비아 본인은 로마군에게 체포되어 로마까지 끌려갔는데, 그 이후 그녀의 행적은 확실치 않다. 죽었다는 말도 있고, 그녀와 그녀의 딸들이 로마 원로원의 귀족과 결혼해서 오랫동안 잘 살았다는 말도 있다.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 12권에서 그녀를 비판적인 어조로 서술했다.[2] 남편인 오데나투스는 로마제국 동방 총독의 지위에 만족했지만 제노비아는 팔미라를 독립시키려 했기때문에 터무니 없는 짓거리를 했다는 게 시오노의 평가.

  • 그러나 이런 평가는 대단히 악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로마제국은 3세기의 위기라는 상황속에서 제국내 영토의 건사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로마제국에게 충성을 다하겠는가. 결과적으로 팔미라가 독립을 모색하고 로마에 맞선 것을 죄악시 하는 태도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로마가 1, 2세기처럼 강력했으면 팔미라가 독자노선을 걸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성의 몸으로 죽은 남편을 대신해 한 나라를 다스리면서 전력으로 부딪친 로마와 최후까지 맞서며 몇 번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 하지만 한편으로는 '간을 보지 않은'(눈치 것 정세판단을 한다는 측면) 그녀의 행동이 결코 잘한 것은 아니다. 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는 스스로 강대국이 아닌한, 줄타기를 잘 해야하는 것이 숙명이다. 충성을 할 필요는 없어도 어그로를 잔뜩 끄는 짓을 할 이유는 없다. 제노비아는 자신이 한 어그로 때문에 망한 것일 뿐이다. 한반도의 백제 의자왕이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상황판단에 중대한 착오를 일으킨 결과, 백제가 망한 것도 비슷한 케이스다.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가 좀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제정세에 어두워 로마의 어그로를 잔뜩 끈 제노비아 역시 자업자득인 것은 부인 못할 일이다.

그녀의 고향인 시리아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시리아의 화폐에 그녀의 도안이 들어가 있을 정도.

2. 대중문화

이름을 따온 것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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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직접적인 군사 지휘는 그녀가 아닌, 자부다스라는 장군이 맡아서 했다. 하지만 유능한 인물을 알맞는 자리에 배치하는 것도 통치자의 능력. 더구나 악티움 해전에 참가했다가, 바로 겁을 먹고 도망가버린 클레오파트라와 비교하면 훨씬 용감한 셈.
  • [2] 이상하게도 시오노 나나미는 본인도 여성이면서 클레오파트라나 제노비아 같이 여성 권력자들을 싫어하고 경멸한다. 이유가 뭘까...여자의 적은 여자 마초빠에 로마빠라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