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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KCC 이지스

last modified: 2016-01-13 01:44:5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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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마스코트
전주 KCC 이지스
Jeonju KCC Egis
창단년도 1977년(현대) / 2001년(KCC)
구단명 변천 현대중공업 실업농구단 (1977년 ~ 1989년)
현대전자 실업농구단 (1989년 ~ 1996년)
대전 현대 다이넷 (1997년 ~ 1999년)
대전 현대 걸리버스 (1999년 ~ 2001년)
전주 KCC 이지스 (2001년 ~ 현재)
연고지 대전광역시 (1997년 ~ 2001년)
전라북도 전주시 (2001년 ~ 현재)[1]
모기업 KCC그룹
구단주 정몽익
단장 최형길
감독 추승균 (대행)
영구결번 11, 4
홈구장 전주실내체육관 (수용인원 4,800명)
홈페이지

Contents

1. 구단 현황
1.1. 선수단
1.2. 우승 기록
1.2.1. 세부 우승 기록
2. 구단 소개
2.1. 현대중공업 실업농구단 (1977~1989)
2.2. 현대전자 실업농구단 (1989~1996)
2.3. 대전 현대 다이냇 (1997~1999)
2.4. 대전 현대 걸리버스 (1999~2001)
2.5. KCC 이지스 (2001~현재)
2.5.1. 허재 감독 시대
3. 역사
3.1. 역대 감독
3.2. 역대 선수
3.2.1. 주요 선수 (이적)
3.2.2. 주요 선수 (은퇴)
3.2.3. 주요 외국인 선수
3.3. 소속 선수 타이틀
3.4. 역대 성적
3.5. 역대 신인드래프트
4. 기타

1. 구단 현황

1.1. 선수단

2014-15 시즌 전주 KCC 이지스 선수단
감독 추승균 (대행)
코치 정선규
가드 1.한성원 5.정의한 6.염승민 7.김태술 9.박경상 13.김지후 17.신명호 23.김민구 24.장민범 34.김효범
포워드 3.김일두 8.정민수 10.김태홍 12.신상언 15.디숀 심스 21.이진혁 33.정희재
센터 0.하승진 32.타일러 윌커슨

1.2. 우승 기록

타이틀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5회, 1997-1998, 1998-1999, 2003-2004, 2008-2009, 2010-2011)
KBL 정규리그 우승
(3회, 1997-1998, 1998-1999, 1999-2000)
역대 플레이오프 성적
챔피언 결정전 (5승 3패)
1997-98 (정규 1위, 승), 1998-99 (정규 1위, 승), 1999-00 (정규 1위, 패)
2003-04 (정규 2위, 승), 2004-05 (정규 2위, 패), 2008-09 (정규 1위, 승)
2009-10 (정규 3위, 패), 2010-11 (정규 3위, 승)
4강 플레이오프 (8승 3패)
1997-98 (정규 1위, 승), 1998-99 (정규 1위, 승), 1999-00 (정규 1위, 승)
2001-02 (정규 3위, 패), 2003-04 (정규 2위, 승), 2004-05 (2위, 승)
2005-06 (정규 5위, 패), 2007-08 (정규 2위, 패), 2008-09 (정규 3위, 승)
2009-10 (정규 3위, 승), 2010-11 (정규 3위, 승)
6강 플레이오프 (4승 2패)
2000-01 (정규 6위, 패), 2001-02 (정규 3위, 승), 2005-06 (정규 5위, 승)
2009-10 (정규 3위, 승), 2010-11 (정규 3위, 승),2011-12 (정규 4위, 패)

1.2.1. 세부 우승 기록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팀
1997 1997-1998, 1998-1999 1999-2000
부산 기아엔터프라이즈 대전 현대 다이냇 청주 SK 나이츠
2002-2003 2003-2004 2004-2005
대구 오리온스 전주 KCC 이지스 원주 TG삼보 엑써스
2007-2008 2008-2009 2009-2010
원주 동부 프로미 전주 KCC 이지스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9-2010 2010-2011 2011-2012
울산 모비스 피버스 전주 KCC 이지스 안양 KGC인삼공사
KBL 정규리그 우승 팀
1997 1997-1998, 1998-1999, 1999-2000 2000-2001
부산 기아엔터프라이즈 대전 현대 다이냇
대전 현대 걸리버스
수원 삼성 썬더스

2. 구단 소개

KBL의 프로농구단. 연고지는 전라북도 전주시. 전신은 현대전자 실업 농구단(농구대잔치 시절) - 대전 현대 다이냇 - 대전 현대 걸리버스. 농구대잔치 시대 이전부터 삼성전자(現 서울 삼성 썬더스)와 더불어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양대 구단이었고, 농구대잔치가 시작되고 기아 농구팀이 창단된 이후엔 기아자동차(現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 함께 농구대잔치를 대표하는 3강 중 하나였다. 프로농구 초창기에도 이와 같은 라이벌 관계는 이어져서 초창기 프로농구 흥행 보증 수표이기도 했다. 2001년 모기업이었던 현대전자의 자금난을 이유로 금강고려화학(KCC)이 인수함과 동시에 전주로 연고지 이전을 하여 전주 KCC 이지스가 되었다. KBL에서도 우승 5회와 준우승 2회를 기록한 명문구단.

2.1. 현대중공업 실업농구단 (1977~1989)

현대전자 시절에는 이충희의 입단 후 이충희와 운동능력 좋은 센터 김성욱 등의 멤버로 전성시대를 누렸으며, 이 시기 대학팀으로는 처음으로 농구대잔치 결승까지 올라왔던 허재, 김유택, 한기범의 중앙대를 (편파판정 의혹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충희의 경이적인 득점력을 앞세워 격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넘어간 후 이충희의 부상과 이어진 은퇴, 김성욱 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며 한국을 떠났고, 나름 잘 해주던 멤버였던 임달식이 허재를 코트에서 두들겨 팬 후 1년동안 선수자격 정지를 당하고 그대로 코트를 떠나는 일 등이 벌어지면서 전성기의 멤버들이 싹 사라졌고, 결국 이름만 명문구단 꼴로 전락한다.

2.2. 현대전자 실업농구단 (1989~1996)

1990년대로 넘어온 후 1994년부터 신잔머리신선우가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재정비하기 시작한다. 중앙대 출신으로 당시 대형 센터로 취급받던 정경호를 영입하고 유도훈이 활약해주고 하면서 팀은 재기의 노력을 했는데, 프로화를 앞두고 우수한 선수들을 스카웃한 후 이렇게 스카웃한 이상민, 조성원을 몽땅 군 복무로 보내 버리는 과감한 일을 벌였다. 거기다 얼마 후 한양대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치던 추승균까지 스카웃하는데 성공했고, 이들의 합류를 기다리며 프로 출범에 참여했다. 다만 프로농구 참여에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서장훈의 진로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2.3. 대전 현대 다이냇 (1997~1999)

프로 원년, 군대로 보낸 선수들이 아직 제대 하기 전이었던 데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도 그다지 좋은 선수를 못 뽑으면서 프로 원년인 1997 시즌에 현대 다이냇은 뒤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그저 상무 보낸 이상민조성원, 그리고 대학 졸업반인 추승균만 바라보며 유도훈이 고군분투하던 시기.

하지만 군 복무로 보낸 선수들이 전부 복귀한 1997-98 시즌, 제대한 이상민과 조성원, 졸업한 추승균으로 이루어진 신예 3인방에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온 도웰과 든든한 센터 제이 웹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뽑으면서 약점이 보이지 않는 라인업을 구성, 정규시즌에서 승승장구를 계속했다.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대결한 챔피언 결정전에서 허재의 미친 듯한 활약에 패배 직전까지 몰리기도 하나 조성원이 대폭발하먼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2]

1998-99 시즌에는 기존 멤버에 새롭게 올라운더 외국인 센터 재키 존스를 영입, 앞선 시즌보다도 완벽한 베스트 5를 이루어냈다. 패스 능력이 출중한 재키 존스의 리바운드 후 롱패스에서 이어지는 속공 레이업 혹은 조성원 추승균의 노마크 3점이 잘 나오고 잘 먹혀서 경기에 안 나오면 심심했을 정도. 다시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대결한 챔피언 결정전에선 전 시즌보다 손쉽게 상대를 꺾으며 KBL 2연패를 달성했다. 특히 이상민-맥도웰이 픽앤롤 플레이는 상대팀이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비기였다.

2.4. 대전 현대 걸리버스 (1999~2001)

이후 팀명을 현대전자의 휴대전화 브랜드인 걸리버를 따라 전환했다.

1999-00 시즌. 현대는 재키 존스를 청주 SK 나이츠로 보내고 인사이드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인 센터 로렌조 홀을 영입했다. 로렌조 홀은 당시 역대 최고의 하드웨어(203cm , 128kg)를 자랑하던 센터로서 몸싸움이 벌어지면 상대팀 용병들이 뻥뻥 나가 떨어질 정도로 골밑에서 파괴력은 역대 최강급이었고, 이를 통해 정규시즌에서 현대 다이냇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청주 SK 나이츠의 서장훈과 이를 갈고 나온 재키 존스 라인업에 맥도웰과 로렌조 홀이 밀리면서 패배하고 만다.

이 시즌 이후 로렌조 홀과 재계약을 맺지 않는데, 이에 대해 로렌조 홀이 거친 플레이를 통해 여러 선수를 중상 입힌 일이 있다 보니 타팀들의 반발이 심했고 현대를 제외한 다른 9개구단이 합심해서 홀을 재계약하면 가만 안있을 분위기여서 공식적으론 조건이 안맞아서 재계약이 무산된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암묵적인 영구제명을 시킨것이라고 한다. 로렌조 홀은 자기를 깡패취급한다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홀의 거친플레이는 선을 넘는 경우가 많았고 변명의 여지가 없기는 했다. 이 린치에 가까운 플레이때문에 대구 오리온스의 전희철은 홀에게 가격당한 이마에 붕대를 감아야 할 정도로 가장 피해를 많이 봤다.

2000-01 시즌에는 조성원을 트레이드로 보낸 후 맥도웰을 센터로 내세우는 스몰 라인업을 내세워 봤으나 맥도웰이 센터로서는 아무래도 스몰 사이즈라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한다.

2.5. KCC 이지스 (2001~현재)

KCC 이지스로 바뀌고 처음 맞는 2001-02 시즌. 당시 감독이던 신선우는 팀에 큰 변화를 가한다. 그때까지 함께 해온 맥도웰을 포기한 후,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가 포스트업을 하고 외곽슛을 쏘는 이른바 토탈 바스켓볼을 들고 나온 것. 이를 위해 다시 재키 존스를 영입하고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하나 시즌 직전 재키 존스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팀은 나락에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재키 존스가 부상에서 돌아오자 토탈 바스켓볼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팀은 연승을 거듭하고 가볍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선 탈락을 했다.

2002-03 시즌, 앞선 시즌에 보여준 게 있었고, 거기다 이현준을 오리온스에 내주고 누가 봐도 이현준보다 훨씬 좋은 전희철을 데려온 때문에 팀은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단숨에 꼴찌후보로 전락한다. 기존 토탈 바스켓볼의 핵심이었던 재키 존스가 마약 복용 혐의로 한국을 떠나게 되었고, 때문에 외국인 선수 두 명을 전부 물갈이 했는데 그 용병들이 죄다 망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인천 SK 빅스에서 뛰었던 요나 에노사와 LG에서 뛰었던 칼 보이드를 데려왔지만 추락하는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학 시절부터 해서 오리온스 때까지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플레이를 했던 전희철은 신선우 감독의 빡빡한 패턴 플레이 스타일 농구에 전혀 적응을 못하며 그냥 슛 덜 들어가는 외곽 슈터 역할밖에 못하고 만다. 결국 20승 34패, 9위로 시즌을 마친다.

2003-04 시즌에는 토탈 바스켓볼을 포기하면서 전희철을 보내고 다시 조성원을 데려오고, (뒷돈 의혹이 많긴 하지만) 해외 리그에서 이미 훌륭한 득점력을 보여줬던 선수인 찰스 민랜드를 영입하면서 다시 한번 강팀으로 군림했다. 거기다 당시 바닥을 벅벅 긁고 있던 모비스와의 변칙적인 외국인 선수 임대트레이드로 두고 두고 욕을 먹긴 했지만[3] 우승을 달성했다.

2004-05 시즌. 앞선 시즌에 우승을 달성한 KCC 이지스였으나 주전 멤버들은 몽땅 30대 이상의 나이에 부상에 시달리는 터라 KCC는 민랜드 하나 덕에 버티는 팀이란 말을 듣기도 했으며,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상대가 시즌 후반기에 단테의 신곡 테 존스의 태풍을 몰고 다니던 SBS스타즈였기에 KCC에 기대를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한데 어이없게도 시즌 내내 악평을 듣던 외국인 선수 제로드 워드가 3점슛을 퍼부어대며 당시 단테 존스의 활약 속에 승승장구하던 SBS를 침몰시켜 버렸고, 이를 통해 KCC이지스는 또 한번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하면서 TG삼보와 대결하게 된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제로드 워드는 여전히 3점슛을 퍼부어 댔고 KCC의 선수들은 TG삼보의 김주성과 왓킨스 트윈타워의 팔을 대놓고 잡아 끌 정도로 육탄공세를 펼쳤으나 결국 역부족, 챔피언결정전에서 패배한다.

2.5.1. 허재 감독 시대

2005-06 시즌을 앞두고 신선우는 LG 감독으로 떠나버렸고, 뜬금없게도 대신 감독을 맡게 된 사람은 누구나 TG삼보의 미래 감독이 될 줄 알았던 허재였다.

선수로는 훌륭했던 자가 감독으로는 말아먹는 일이 많았던 만큼 코치 과정도 없이 바로 감독을 차지한 허재에 대한 우려가 많았는데, 일단 2005-06 시즌에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어진 2006-07 시즌, 주전들의 노쇠화 속에 팀은 추락을 거듭하고 허재도 감독으로서 전혀 팀을 수습해내지 못하면서 KCC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 꼴찌로 떨어진다.

2007-08 시즌을 앞두고, FA로 풀린 서장훈과 임재현을 영입하는 큰 변화 속에 다시 강팀으로 올라서려 했는데, 그 와중에 그때까지 영원히 기둥일 것만 같았던 이상민이 팀을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

당시 KCC에서 FA로 풀린 서장훈과 임재현을 영입하면서 보호선수 명단을 제출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FA로 잡은 선수는 무조건 보호선수 명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KCC는 팀의 간판 선수인 이상민과 추승균 둘 중 한명을 저울질하다 '설마 누가 이상민을 데려가려고?' 하는 생각으로 이상민을 보호선수에서 제외시켰는데, 서장훈의 전 소속팀이었던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는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지명하고 말았던 것. 아이러니하게도 서장훈이 KCC로 오게 된 이유는 '학교 선배인 이상민과 같이 뛰고 싶어서' 였다고. 지못미.

결과적으로 이상민을 대체하게 된 임재현은 허재의 학교 후배 챙기기냐는 비아냥 속에 봉사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붙게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서장훈은 여전한 위력을 발휘하면서 KCC는 앞선 시즌 꼴찌에서 단번에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상대는 토사구팽당했다며 이를 갈던 이상민이 있던 삼성 썬더스. KCC이지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단 1승도 못 거두고 탈락하고 만다.

2008-09 시즌, 꼴찌로 떨어졌던 시절 덕에 얻은 드래프트 1순위로 하승진을 뽑은 KCC는 서장훈과 하승진이 공존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확실한 우승 후보중 하나로 지목받았다. 하지만 웬걸, KCC는 팀으로서의 플레이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모래알스런 모습 끝에 추락을 계속한다. 서장훈은 하승진으로 인해 자신의 비중이 지나치게 줄어드는 걸 용납하지 못했고[4], 임재현은 여전히 눈 감은 포인트가드같이 뛰었으며, 하승진은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채 키 큰 일반인스런 모습만 보여줬다. 결국 서장훈과 허재의 갈등이 이어지고 그나마 자리라도 차지해주던 하승진까지 부상으로 빠지면서 KCC는 붕괴 직전, 아니 붕괴 자체인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런데 시즌 도중에 KCC는 큰 변화를 겪는다. 하나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트레이드로 서장훈을 보내고 강병현-조우현-정선규를 영입한 것, 현금을 주고 어음을 받은 격이라던 이 트레이드는 전자랜드의 득이라는 의견이 당시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KCC에 엄청난 득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는 임재현을 식스맨으로 내리고 드래프트 당시 허재가 왜 뽑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까지 듣던 신명호를 주전으로 올린 것, 이를 통해 느린 하프코트 공격 위주에 수비는 좋지 못했던 KCC는 신명호-강병현-추승균으로 이어지는 앞선 수비의 압박과 거기서 파생되는 빠른 역습을 가진 팀으로 갑자기 완전 변신을 해버린다. 거기다 어음이라던 강병현은 현찰로서 활약해내면서 어이없는 턴오버와 나락에서 팀을 구하는 에이스 노릇을 뒤섞어서 보여줬고, 전성시대를 함께한 이상민도 없고 조성원도 없는 팀에서 추승균은 변함 없는 기둥으로 활약하며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어 나갔다. 이런 변화 속에 KCC는 차츰 상승하기 시작한다.

부상에서 돌아온 하승진은 이런 갑작스런 팀의 변신에 전혀 적응을 못하면서 깽판까지 치기도 했지만, 허재의 구슬림 속에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는 서서히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거기다 식스맨 역할을 하게 된 임재현은 외려 부담이 줄어들자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고, 이를 통해 KCC는 한 경기 안에서 확실하지만 느린 높이 중심의 팀과 낮지만 빠른 스피드 중심의 팀으로 2단 변신을 해대면서 상대팀을 연이어 격파, 우승후보에서 꼴찌후보로 전락했던 팀이 다시 우승후보로 꼽히게 되었다.

결국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선 KCC에 복수하겠다던 서장훈이 버틴 전자랜드[5]를 외려 격파했고, 결승에선 역시나 복수심에 불타던 이상민이 있던 삼성 썬더스마저 격파하면서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소리없는 남자라던 추승균은 결승전 MVP를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새삼 드러냈다.

2010-11 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를 기록했지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꺾고 결승에 진출, 부산 KT 소닉붐을 격파한 원주 동부 프로미와 벌였다. 강은식과 추승균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도 6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통산 5번째 우승 달성.

2011-12 시즌은 디펜딩 챔피언인 만큼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으나, 정규시즌은 역시나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막판 분전에도 불구하고 4위를 기록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PO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 만큼 강력한 챔프 후보로 꼽혔지만, 정규시즌 막판 당한 전태풍의 부상이 팀에 치명타로 작용하고 말았다. 상대였던 5위 모비스에 힘 한번 못써보고 3연패로 광탈.

2011-12 시즌이 끝나고 전면적인 리빌딩이 불가피해졌다. 하승진은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으며, 전태풍은 한 팀이 혼혈선수를 3년 이상 보유하지 못하는 리그 규정에 의해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거기에 15년 동안 팀을 묵묵히 지켜준 추승균은 은퇴를 결정했다. 임재현과 용병을 제외하면 스쿼드에 고만고만한 B급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며, 설상가상으로 임재현조차 FA자격을 획득한 상황. 대놓고 2013년 드래프트에 풀리는 대학 최대어 김종규를 노려야 되지 않나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승진이도 없고, 태풍이도 없고, 승균이도 없고... 그래도 크고 작은 선수가 8명이나 빠져나간 SK 와이번스보다는 나을지도설상가상으로 로터리픽 뽑기 전문가허재1.5%의 확률을 뚫고 1순위로 뽑은 외국인 선수 커트니 심스는 발목 부상이 길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시즌 창원 LG 세이커스와 함께 2약으로 예상했다.

예상대로 홈 개막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를 상대로 52:64라는 큰 점수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고양 오리온스 상대로도 패배. 경기 후반에 한점차까지 따라갔으나 임재현을 제외하고는 해결사가 없었다. 임재현과 아이들 득점을 너무 못해서 그렇지, 실점도 비교적 적었다. 결국 1라운드를 1승 8패로 마쳤는데 사실 1승도 KT가 그 날 너무 못해서 빡친 전창진 감독이 작전타임도 부르지 않는 등 최선을 다하지 않았었다.

2군선수를 올려도 엔트리를 못 만들어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부터 이한권을 트레이드로 데려오고, 그마저 시즌아웃당하자 1.5%를 뚫고 뽑은 1순위 심스를 SK로 보내는 대신 크리스 알렉산더와 김효범을 데려왔다. 프로농구 사상 최초의 1등팀과 꼴찌팀의 트레이드인데 꼴찌팀이 먼저 제안했다.

2012년 3라운드까지의 모습은 막장 of 막장이다. 공격, 수비 모두 기록상 최하위를 맴돌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전자랜드의 최다패 기록마저 경신해 버릴 포스이다. 심지어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농구 팬들은 KCC는 아마(혹은 농구대잔치)로 보내버리고 상무를 대신 프로리그로 올리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답이 없다. 강병현이 오면 나아지...려나? 했는데 훨씬 나아졌다. 그래서 꼴리온스의 최저승률 기록은 넘사벽일 것 같다.

2월 6일 KT전, 8일 LG전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면서 시즌 3번째 2연승을 거두었으나, 그 후 2월 10일에는 인삼공사를 제외한 다른 모든 팀KCC의 천적으로 군림하게 된 서울 SK 나이츠를 상대로 71:89로 패배하면서 또다시 3연승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인삼공사를 가볍게 꺾고 오리온스를 4쿼터 대역전쇼로 뒤집기에 성공했지만 바로 다음날 체력문제로 전자랜드에게 22점차 대패 또다시 3연승에 도전에 실패.

5라운드에서는 5승4패. 5할을 넘었다!!! 그러나 크리스 알렉산더의 부상으로 용병을 안드레 브라운만으로 버티고 7연패-1승(LG)-1패를 했고 2012-13 시즌은 예상대로결국 꼴찌로 마무리했다. 그나마 LG에게는 4승2패로 우세, KT에게는 3승3패로 동률. 하지만 서울 SK, 울산 모비스, 인천 전자랜드에 전패하면서 세 팀이 상위권에 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6-07 시즌과는 달리 두자리 연패는 없었지만, 5연패를 빼고 모두 1~8연패를 최소 한번씩 해봤다.

2013년 9월 30일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경희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민구를 지명하였다. 그리고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코치인 퍼슨을 영입했다. 척 퍼슨은 1987년 인디애나 페이서스소속으로 신인왕을 수상했고, 라이플맨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NBA에서 정확한 슈터로 날렸던 인물인데다 한때 래리 버드와 플레이오프에서 득점맞대결을 펼치기도 하고, 불과 몇년전만 해도 LA 레이커스에서 코치를 하던 인물이라 국내 팬들은 진짜 퍼슨이야? 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시즌 전 하위권 후보로 높게 점 쳐졌지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개막전에서 1점차 터프한 승리를 거두더니, 이후 홈 개막전에서 전년도 정규시즌 우승팀인 서울 SK 나이츠를 압도적인 스코어로 이겨버리고[6] 중간에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게 43점차 대패라는 굴욕을 당하지만 이후 강병현을 주축으로한 외각포와 용병 타일러 윌커슨이 엄청난 득점력과 로터리픽 멤버 김민구의 합류로 11월 3일을 기준으로 6승 3패, 4위의 성적을 거두며 선전하고 있다. 게다가 식물 용병이라 욕먹던 아터 마족을 버리고, BJ리그와 풀 개런티 계약을 해지한 리언 타운스를 영입했는데 2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선보이며 전 용병과는 월등한 차이를 보이며 팀의 전력을 강화했다. 1라운드를 4연승 포함 6승 3패로 마쳤지만, 2,3라운드에 각각 3승, 4,5라운드는 각각 2승만 거두고 5연패만 4번이나 하며 감독마저 짤린인삼공사와 감독마저 사퇴한삼성보다 오히려 아래를 달리고 있어서 2월 22일 현재 17승 32패로 9위를 달리고 있다. 윌커슨은 평균득점 20점이상으로 꾸준히 제 몫을 해주고 있지만물론 턴오버도 적지 않다, 타운스는 심리적인 문제로 자신의 기량이 민폐가 될까봐 자진퇴출을 결정하고 델본 존슨을 대체선수로 영입했다.#레더와는 다르다!!
이 와중에 KCC는 2월 6일 SK전을 이겼지만 8일 동부의 14연패 뒤 2연승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군산시에서 열린 경기에서도 맥없이 패하면서 KCC 창단 이래 최초로 LG에 6전 전패를 기록했다! 심지어 LG는 KT와 함께 전년 시즌 답이 없던 KCC의 희망이자보약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는 둘다 독약이 되었다. 게다가 11/26 첫 대결에서는 둘과 같이 막장경기를 만들며 시청률서 농구를 누르는남자 배구와 비교가 되게 만들었다.[7]

시즌이 끝난 뒤에는 팀의 몇 안되는 볼거리중 하나였던 외국인 선수 일러 윌커슨과 재계약을 맺는데 성공했고, 하승진의 복귀에 따라 다시 대권을 노리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강병현, 장민국김태술을 사인앤 트레이드로 트레이드 하는데 성공해 김태술, 김민구라는 좋은 가드진을 형성했고, 재필김일두자전거맨을 트레이드 하며 우승을 다시 노리나 했는데... 김민구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며 시즌아웃에서 선수생활의 위기를 맞게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2014-15 시즌은 완전히 폭망 수준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남농계의 타어강.[8][9]
하승진이 돌아왔지만 다른 선수들이 전혀 받쳐주지 못하고 있으며 기대했던 김태술도 본인의 장기인 리딩 능력마저 상실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구의 공백이 KCC에게는 크게 타격이 되었다고 보인다. 11월 29일 기준으로 5승 15패의 성적으로 서울 삼성 썬더스와 공동 9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세부 지표에서는 약팀의 전형적인 기록을 보여주었다. 툭하면 다실점 경기를 보여주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고 있다. 2012-13 시즌의 재림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다. 승진이도 있고 태술이도 있는데 그러나 서울 삼성이 훨씬 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KCC는 12월 기준으로 9위에 랭크되어 있다.

결국 6라운드를 앞둔 2015년 2월 9일 허재 감독이 자진 사퇴하였다. 더불어 2010년부터 허재 감독을 보좌했던 천정열 코치까지 물러났다. 남은 경기는 추승균 감독대행 체제로 치를 예정이다. 추 감독대행을 보좌할 코치로는 정선규 스카우터가 임명되었다.

결국 마지막 경기결과와 상관없이 9위를 확정지었다. 이렇게 삽질했는데 9위라니 도대체 꼴찌는 뭐하는 놈들이냐? 이번 시즌 KCC농구단은 12승 42패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대농구단이 kbl에 참가한 이래 역대 최악의 성적이다.

3. 역사

3.1. 역대 감독

역대 감독
이름 연도 전적 선수시절
데뷔 출신 대학 포지션 은퇴
신선우 1997~2005 247승 170패 1977 서울 연세대 가드 1983
허재 2005~2015 252승 279패 1988 춘천 중앙대 가드 2004

3.2. 역대 선수

3.2.1. 주요 선수 (이적)

주요 선수
이름 소속기간 이적 현소속 대학 포지션
전태풍 2009~2012 2012 kt GIT 가드

3.2.2. 주요 선수 (은퇴)

주요 선수
이름 소속기간 은퇴 현소속 대학 포지션
이상민 1995~2007 2010 삼성 (감독) 연세대 가드
추승균 1997~2012 2012 KCC (코치) 한양대 포워드
표명일 2002~2007 2012 명지대 가드
이지승 1997~2001 2005 고려대 포워드
조성원 1997~2000
2003~2006
2006 명지대 포워드
서장훈 2007~2008 2013 연세대 센터

3.2.3. 주요 외국인 선수

주요 선수
이름 소속기간 국적 현소속 포지션
조니 맥도웰 1997~2001 미국 포워드
찰스 민렌드 2003~2007 미국 포워드

3.3. 소속 선수 타이틀

KBL 타이틀 홀더 (현대-KCC 소속 한정)
시즌 타이틀 이름
2011-2012 특별상 추승균
2010-2011 파이널 MVP
베스트5 (센터)
하승진
하승진
2009-2010 베스트5 (가드)
베스트5 (센터)
전태풍
하승진
2008-2009 파이널 MVP
신인선수상
베스트5 (포워드)
수비5걸 (가드)
추승균
하승진
추승균
신명호
2007-2008 베스트5 (센터) 서장훈
2005-2006 수비5걸 (포워드) 추승균
2004-2005 우수수비상
자유투상
수비 5걸 (포워드)
추승균
추승균
추승균
2003-2004 파이널 MVP
우수후보선수상
기량발전상
베스트5 (포워드)
자유투상
수비 5걸 (포워드)
외국선수상
득점상
수비 5걸 (센터)
베스트5 (센터)
이상민
표명일
표명일
추승균
추승균
추승균
찰스 민렌드
찰스 민렌드
R.F 바셋
R.F 바셋
2002-2003 수비5걸 (포워드) 추승균
2001-2002 베스트5 (가드)
자유투상
수비 5걸 (포워드)
우수후보선수상
수비 5걸 (센터)
이상민
추승균
추승균
정재근
재키 존스
2000-2001 모범선수상
3점슛상
스틸상
추승균
조성원
이상민
1999-2000 외국 선수상
3점슛상
베스트5 (가드)
베스트5 (포워드)
수비 5걸 (포워드)
수비 5걸 (센터)
리바운드상
블록상
자유투상
조니 맥도웰
조성원
조성원
추승균
조니 맥도웰
조니 맥도웰
재키 존스
추승균
1998-1999 MVP
파이널 MVP
외국 선수상
우수수비상
어시스트상
블록상
베스트5 (가드)
베스트5 (포워드)
수비 5걸 (포워드)
이상민
조성원
조니 맥도웰
추승균
이상민
재키 존스
이상민
조니 맥도웰
추승균
1997-1998 MVP
외국 선수상
모범선수상
베스트5 (가드)
베스트5 (포워드)
이상민
조니 맥도웰
조성원
이상민
조니 맥도웰
1997 수비5걸 (가드) 이지승

3.4. 역대 성적

통산 팀 성적
연도 팀명 순위 전적 승률 포스트시즌 타이틀 감독
1997 현대 7위 7승 14패 0.333 신선우
97-98 현대 1위 31승 14패 0.689 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부산 기아 (4승 3패)
4강 플레이오프
vs 대구 동양 (3승)
이상민 (M) 신선우
98-99 현대 1위 33승 12패 0.733 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부산 기아 (4승 1패)
4강 플레이오프
vs 원주 나래 (3승)
이상민 (M) 신선우
99-00 현대 1위 33승 12패 0.733 챔피언 결정전
vs 청주 SK (2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vs 안양 SBS (3승)
신선우
00-01 현대 6위 20승 25패 0.444 6강 플레이오프
vs 청주 SK (2패)
신선우
01-02 KCC 3위 30승 24패 0.556 4강 플레이오프
vs 서울 SK (2승 3패)
<#FAE7B5> 6강 플레이오프
vs 안양 SBS (2승)
신선우
02-03 KCC 9위 20승 34패 0.370 신선우
03-04 KCC 2위 39승 15패 0.722 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원주 TG (4승 3패)
4강 플레이오프
vs 창원 LG (3승)
신선우
04-05 KCC 2위 34승 20패 0.630 챔피언 결정전
vs 원주 TG (2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vs 안양 SBS (3승)
신선우
05-06 KCC 5위 29승 25패 0.537 4강 플레이오프
vs 울산 모비스 (1승 3패)
6강 플레이오프
vs 부산 KTF (2승)
허재
06-07 KCC 10위 15승 39패 0.278 허재
07-08 KCC 2위 33승 21패 0.611 4강 플레이오프
vs 서울 삼성 (3패)
허재
08-09 KCC 3위 31승 23패 0.574 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서울 삼성 (4승 3패)
4강 플레이오프
vs 원주 동부 (3승 2패)
6강 플레이오프
vs 인천 전자랜드 (3승 2패)
하승진 (신) 허재
09-10 KCC 3위 35승 19패 0.648 챔피언 결정전 패
vs 울산 모비스 (2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vs 부산 KT (3승 1패)
6강 플레이오프
vs 서울 삼성 (3승 1패)
허재
10-11 KCC 3위 34승 20패 0.630 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원주 동부 (4승 2패)
4강 플레이오프
vs 부산 KT (3승 1패)
6강 플레이오프
vs 서울 삼성 (3승)
하승진 (신) 허재
11-12 KCC 4위 31승 23패 0.574 6강 플레이오프
vs 울산 모비스 (3패)
허재
12-13 KCC 10위 13승 41패 0.241 허재
통산 17시즌 468승 392패 0.544 챔피언 결정전 5회 우승
정규리그 3회 우승

3.5. 역대 신인드래프트

역대 신인 지명 선수
연도 순번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1998 전체 10번 구본근
(연세대, 센터)
박영진
(건국대, 가드)
미지명
1999 전체 10번 길도익
(명지대, 포워드)
정종선
(중앙대, 포워드)
미지명
2000 전체 9번 정훈종
(중앙대, 센터)
강대협
(고려대, 가드)
미지명
2001 전체 10번 허중
(연세대, 가드)
성준모
(한양대, 포워드)
미지명
2002 전체 8번 손준영
(중앙대, 포워드)
서영권
(동국대, 포워드)
미지명
2003 전체 7번 전병석
(연세대, 포워드)
안종호
(한양대, 포워드)
송유섭
(중앙대, 포워드)
2004 전체 1번 양동근[10]
(한양대, 가드)
지명권 포기 미지명
2005 전체 9번 강은식
(한양대, 센터)
진상원
(연세대, 포워드)
미지명
2006 전체 9번 윤호성
(중앙대, 포워드)
백주익
(연세대, 포워드)
김정윤
(단국대, 가드)
2007 전체 6번 신명호
(경희대, 가드)
유병재
(동국대, 포워드)
미지명
2008 전체 1번 하승진
(연세대, 센터)
김태환
(단국대, 가드)
미지명
2009 전체 1번[11] Anthony Akins
(GIT, 가드)
지명권 포기 미지명
2010 전체 6번 하재필
(고려대, 센터)
박병규
(경희대, 포워드)
미지명
2011 전체 9번 정민수
(명지대, 포워드)
김태홍
(고려대, 포워드)
미지명
2012 전체 10번 장민국
(연세대, 포워드)
노승준
(고려대, 포워드)
미지명
2012 전체 4번 박경상
(연세대, 가드)
정희재
(고려대, 포워드)
미지명
2013 전체 2번 김민구
(경희대, 가드)
염승민
(고려대, 가드)
미지명
2014 전체 4번 김지후
(고려대, 가드)
한성원
(경희대, 가드)
미지명

4. 기타

이상민이 떨어져 나간 뒤로는 이상민 팬들이 대거 이탈, 구단의 인기가 예전만 못해졌다는 말이 있었으나, 연고지인 전주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인기는 크게 줄지 않았다. 드래프트 1순위로 뽑은 하승진과 혼혈선수인 전태풍, 그리고 강병현이 새로운 스타가 되었고 결정적으로 현대 시절부터 팀의 상징이었던 추승균도 2011-12 시즌까지는 여전히 뛰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 추승균은 은퇴. 팀의 코치로 전업하였다.

허재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풍겨나오는 아스트랄함과 기묘한 병신력도 팀 인기에 한몫을 한다는 듯하다.

전신인 현대 시절에 정규리그 1위를 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한 적은 있으며, KCC에 들어와서 정규리그 1위를 하지 못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가서 우승을 하기도 한다.

이상민이 은퇴하자 그의 등번호였던 11번을 영구결번시켰다.

공식 홈페이지에 보면 알수 있듯이 구단 주소가 서울로 되어있다. 경기만 전주에서 하고 연습체육관은 용인의 범 현대家 연수원[12]에 있다는게 사실인듯. 그래서 이것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좀 된다. 연고지인 전주고 출신의 선수도 별로 없다.

참고로 팬들에게는 장판이라고 불린다. KCC에서 만든 장판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여진 듯.

역대 유니폼은 현대시절에는 녹색 - 노란색, KCC에서는 파랑색 - 남색&하늘색 컬러 위주이다.

마스코트는 현대시절에는 초식공룡이었던 트리케라톱스 마스코트와 인간체 마스코트가 존재했으며 팀명 변경으로 걸리버라는 마스코트를 거쳐서 지금 KCC에서는 이지스라는 하늘색 몸체에 주황색 방패를 단 마스코트가 있다.

허재 감독과 김민구의 경우, 각각 아산인천서 도플갱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전설은 전설을 닮았다. 참고로 이 팀은 두 번의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에 한 번 조차 연루 안된 유일한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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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3-14 시즌부터 연고지를 전북으로 확대. 군산에서도 경기를 한다.
  • [2] 그런데 97-98 챔피언 결정전의 MVP는 모두다 알다시피 허재였다. 이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 [3] 무스타파 호프+2004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 <-> R.F.바셋 트레이드였다. 이 시즌 KCC는 우승을 달성하고 그 다음 시즌에도 R.F.바셋을 잔류시켰으나 04-05시즌부터 용병 자유계약제가 실시되는 바람에 보다 레벨이 높은 선수들이 유입, 바셋은 첫 경기부터 삼보의 왓킨스에게 탈탈 털리며 결국 두 경기만 치르고 짐을 싸고 말았다..만, 실제로는 바셋이 구단에 뒷돈을 요구했으나 구단에서 거절, 그로 인해 태업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반대로 1순위 지명권을 받은 모비스는 양동근을 지명하며 팀의 주역으로 키워내는데 성공하는 등 우승의 대가 치고는 개운치 못한 결말이었다.
  • [4] 그냥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출전시간이 20분대로 급락했다. 한창대의 선수, 게다가 여전히 국내선수 중 손꼽히는 기량을 가진 선수가 로테이션 멤버가 된 것이다.
  • [5] 물론 전랜의 전력이 KCC보다 한참 떨어졌던 것도 있다. 서장훈 트래이드 당시 전랜은 바닥권이었고, 언론에서는 "서장훈이 소속팀을 플옵에 진출시키지 못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서장훈 징크스 운운했는데 결국 이대로 된것. 이후에 서장훈이 문태종과 함께 전랜을 정규리그2위로 끌어올리고 MVp후보로까지 거론된 걸 생각하면 전랜 입장에서 서장훈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물론 KCC입장에서도 어차피 쓰지못할 트윈타워를 포기하고 특급 유망주이자 훗날 손꼽히는 가드로 큰 강병현을 얻었으니 이른바 win-win트래이드였다.
  • [6] 게다가 이 패배는 SK가 1라운드에 거둔 유일한 패배다!
  • [7] 전주 홈경기였는데, 1쿼터 역대 최소 득점 기록을 기존 19점에서 14점(KCC 6-LG 8)으로 경신하며 63-68로 졌다. 그런데 이날 계양체육관서 열린 대한항공러시앤캐시의 배구 경기에서 3세트 스코어가 56-54였다. 도대체 얼마나 슛을 못 넣으면 이러냐? 오죽하면 외국인 선수도 농구하는 것 같았다고 그러더라
  • [8] 원래대로면 기아랑 같은 모기업 둔 남자 농구단이 걸려서 폭망해야 했는데거긴 남농의 유느님이 있잟아?, 그 팀이 아예 같은 모기업 산하 프로 팀들과는 2013년 이후 연관이 없었다. 역시 만날 때 잘 만나야 한다.
  • [9] 반대로 KCC는 타어강 원조같은 동네 출신의 국제적으로 잘나가는 팀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하필 602 대첩 직관가고 시구했던 타어강 수원 분점과 같은 숙소를 쓰고있던 점이 작용한 게... 2014 코보컵 우승해도 통했던 촉새의 위엄
  • [10] KCC와 모비스의 무스타파 호프와 R.F 바셋의 트레이드에 따른 조건으로 드래프트와 동시에 모비스로 이적했다. 실질적으로 KCC가 아닌 모비스가 선발한 것.
  • [11] 귀화혼혈선수드래프트 1순위에 배정되면서, 2009년 해당 드래프트 20순위를 가지게 되었다.
  • [12] 과거 '현대그룹 연수원'으로 부르던 곳으로, 현재는 기존의 현대그룹 계열 연수원에, 왕자의 난 이후 금강고려화학(KCC) 연수원, 모비스 연구소 등이 추가로 입주해 있다. 다만, 여기에 입주해 있는 KCC와 여자배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연습체육관은 프로화 이전부터 오랫동안 써와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