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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last modified: 2015-04-09 18:38:53 Contributors


인천 유나이티드
정식명칭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영문명칭 Incheon United FC
법인명 ㈜인천유나이티드
구단형태 시민구단
소속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창단연도 2003년
연고지 인천광역시
홈구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 20,186명 수용
상징색 파란색 , 검은색
용품 스폰서 험멜
셔츠 스폰서 신한은행, 인천국제공항[1]
구단주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대표이사 김광석
감독 김도훈
마스코트 유티
홈페이지 http://www.incheonut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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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시스템
U-18 팀 인천 대건고등학교
U-15 팀 인천 광성중학교
U-12 팀 인천 유나이티드 (U-12)

Play, together!

K리그 13번째 구단으로 중하위권의 시민구단이다. 최고성적은 K리그 준우승(2005년)이다.

Contents

1. 구단의 과거와 현재
2. 시즌별 역사
2.1. 2010년
2.2. 2011시즌
2.3. 파란만장했던 2012시즌
2.4. 꿈에도 그리던 상위 스플릿! 2013시즌
2.5. 2014시즌
2.6. 2015시즌
3. 역대 감독
4. 라이벌
4.1. 경인더비, FC 서울
4.2. 수원 2중대, 천적관계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
4.3. 032 더비, 부천 FC 1995
5. 문제점 및 사건사고
5.1. 프런트의 무개념
5.2. 부천과의 충돌
5.3. 만성 적자
5.4. 승강제에 대한 반대
5.5. 2011 시즌 허정무 감독 청문회
6. 그외
6.1. 응원가
7. 리그베다 위키에 등재된 인천 선수


1. 구단의 과거와 현재

2010년까지 메인 스폰서가 GM대우였고 초대 단장이자 현 대표이사인 안종복, 전임 감독인 장외룡을 비롯하여 경영진과 선수단에 과거 대우 로얄즈와 관련된 인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인유를 로얄즈의 후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양 구단은 직접적인 계승 관계가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별개로 취급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우 로얄즈를 계승하는 팀은 부산 아이파크로 인천과는 연고지부터 시작해서 아무런 관계도 없다.

초대 감독으로 독일 출신의 베르너 로란트를 영입했고 2004년 3월 1일에 벌어진 창단 기념 경기에서 J리그감바 오사카를 4-0으로 대파하며 큰 기대를 받았지만 K리그 2004 시즌 전기 리그에서 꼴찌인 13위를 기록하면서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침체된다. 심지어 0:5로 관광당한 적도 있었다. 다름아닌 대구 FC와의 원정경기. 그 이후로 박이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때까지 대구 FC에게 만날 때마다 패배했다.

그 후 베르너 로란트 감독이 사임하고 장외룡 감독 대행 체제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팀이 살아나기 시작했으며, 2005 시즌에는 준우승까지 달성한다. 이 과정은 인유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 잘 나와있다.[2] 2005 시즌 준우승으로 장외룡 감독에겐 외룡사마란 별명이 생겼다. 이는 K리그 시민구단 중 역대 최고 성적이다.

시민구단의 한계상 열악한 재정 탓에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룬 선수들을 다른 돈 많은 구단들에게 팔아 이적료로 수입을 남기는 셀링 클럽이다. 그렇게 선수를 팔고도 꼴지를 기며 적자에 쪼들리는 시민구단들이 비일비재하고 인천도 적자로 인해 재정과 성적에 위기가 왔었다. 인천에서 매각한 선수들을 전부 모아놓으면 리그 올스타에 준할 정도로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이정수, 최태욱, 이근호[3], 최효진, 김치우, 라돈치치, 데얀, 유병수, 정인환 등이 있다. 요즘에는 전북 현대의 선수 셔틀노릇을 하고 있다. 2012 시즌 종료후엔 사실상 수비진을 뜯어내다 시피해서 정인환, 정혁, 이규로를 내주더니 2013 시즌 종료후엔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과 공격수 한교원을 전북으로 보냈다. 그리고 2015 시즌을 앞두고 문상윤까지 전북으로 보냈다. 때문에 구단내 선수들이 특출나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 팬들은 기쁨 반, 다른 팀에게 뺏길까 노심초사하는 걱정 반의 감정을 느낀다.

2013년 9월 16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5년 간 100억원 규모의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천 일보 기사 당초 요구보다는 낮은 금액이지만 점차 연간 지원액을 늘려갈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는 시민구단인 인천은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셈. 더이상 선수 장사를 안 해도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 20억 지원금액은 그리 크지 않은 숫자고 실제로 2013시즌이 종료되기도 전 설기현, 김남일, 한교원 등이 팀을 떠날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결국 설기현 빼고 다 떠났다관련 기사 그리고 실제로 2014년 연말에 2달치 월급이 밀려 일부 선수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는등 안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홈구장은 2011년까지는 인천 문학경기장 주경기장. 하지만 문학경기장이 아무래도 종합 경기장이다보니 축구 관람에는 어려움이 있어 축구 전용구장인 숭의 아레나 파크를 따로 건설하여 2012년부터 사용 중이다. 중소 구단에 어울리는 작고 아담한 구장으로, 종합경기장처럼 트랙이 없이 바로 앞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EPL급 시야를 자랑해 직관하기 매우 좋은 구장이다.

2004년에 파이 외잘란이라는 희대의 망나니를 영입해 이득을 본 적이 있다. 외잘란은 2002 월드컵 터키 대표팀 출신이라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제대로 하는 건 없었고 전북의 에드밀손의 발목을 아작내는 등 경고와 퇴장으로 얼룩진 경기를 펼쳐 6개월 동안 고작 8경기만 출전했다. 그후 'K리그는 관중수가 적다'고 까다가 그가 원하던 관중이 많은 구단인 우라와 레즈로 120만 달러에 이적했다. 공짜로 영입한 선수에게 50만 달러만 주고 120만 달러에 팔았으니 인천에게는 70만 달러나 득이었다.

참고로 외잘란은 일본에 가서도 7경기에서 6번의 옐로카드와 3번의 레드카드를 받을 정도로 망나니 진수를 보여주었고 결국 1시즌만에 분데스리가로 갔는데 거기서도 상대선수를 팔꿈치로 치면서 퇴장과 같이 여러 경기 출전금지 당했다.

2008년부터 성적을 내기 위해 수비축구로 전환하고는 관중이 많이 줄었다. 팬들에게 수원 2중대라 불릴 정도로 수원에 약한 모습을 보였으나, 2009년 수원의 몰락과 함께 그 징크스는 깨졌다.

2009 시즌은 5위로 6강 플옵에 진출했으나, 4위 성남과 6강 플레이오프 전에서 성남 일화의 선수가 2명씩이나 퇴장당한 상태에서도 최악의 골 결정력을 보이며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3:2로 패배했다.

구단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공식 등록된 중학부 축구 팀이 드는 인천지역에서 '미들스타 리그'라는 아마츄어 중학생 리그를 매년 혹은 격년제[4]로 운영중이다. 인천 지역 남자 중학생들은 이 경기를 통해 어쩌다 부평고나 도화기계공고 같은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뽑히기도 하고, 인유의 U-18팀인 대건고등학교에 스카웃 되기도 한다. 다만 도서지역과 강화지역은 지역 특성상 참가가 힘들다. 대체적으로 연수지역과 계양지역 중학생들이 강한 편.

장외룡 감독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호나우두앙리가 나이 들어 은퇴할 때쯤 되면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한 적도 있다. 팬들은 그냥 지방구단 흥보 차원에서 한말로 이해했다(...).그리고 둘다 은퇴했지만 안왔다

일본어 위키에서는 인유가 '유나이티드'라는 명칭을 유럽에서의 쓰임새와 달리 단순히 이념적으로 사용한 거라고 서술했지만, 사실은 유럽에서도 여러 구단이 통합된 게 아니더라도 '유나이티드'는 간지뜻이 좋아서(...) 엄청나게 자주 쓰인다.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쓰면서 여러 구단이 통합되지 않은 가장 대표적인 구단이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다. 맨유는 철도 회사의 실업 팀에서 프로 팀으로 전환한 경우이며 통합된 구단은 없다.

2. 시즌별 역사


2.1. 2010년


2010 시즌 항상 신나게 해오던 선수팔기를 안한 유일한 해다.

이적해 나간 선수라고 해야 김상록(부산), 박재현(그리스) 정도로 2년간 확실한 주전은 아닌 선수들이었다. 기존 멤버가 그대로 남아 있고 감독도 적응기가 끝난 2년차가 되었으니 뭔가 다른 분위기를 기대하게 해주었다.

시작과 동시에 연속 홈경기에서 전남(1:0), 광주(2:0)를 이기며 달라진듯 했지만 바로 이어진 성남 원정에서 6:0 이라는 창단이후 최다 실점 패배를 찍어주셨다. 후반 17분동안 무려 4실점...

이후 신나는 4연패를 찍으며 승점 자판기 노릇을 하다가 똑같이 막장짓을 하고 있던 포항을 만나 유병수의 대폭발로 4:0 홈승리를 찍으며 분위기를 반전한다. 유병수는 이날 시즌 첫 득점이자 4골을 모두 집어 넣었고, 이후 4경기 9골을 작렬, 득점선두로 올라간다.

이후 무난한 팀들(대구, 대전, 강원)과 대진으로 다시 승점을 쌓고 있는 중. 초반에 승점을 까먹지만 않았더라면. 경질론이 나돌던 페트코비치 감독도 목을 보전하게 되었고 5월 현재 리그 8위.
유병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가 발표되고 나자 한풀이라도 하듯K리그에서 미친 듯이 골을 몰아넣고 있다. 안습...

시즌초부터 부인의 건강악화로 팀에 휴가를 얻고 잠시 떠난 일도 있던 페트코비치 감독이 월드컵 휴식기에 구단과 상호계약해지 방식으로 본국으로 떠났다.
전반기 연패와 연승이 감독의 휴가복귀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볼 때, 덕장 스타일의 페트코비치 감독이 떠나면서 팀의 후반기 전망에 불안요소가 더해졌다.

역시나 월드컵 이후 무한연패로 승점자판기가 되었다. 일찌감치 FA컵도 탈락하고 2010 시즌은 조기 마무리로 들어가려는 상황에서...

2010년 8월. 월드컵 끝나고 포항으로 갈 줄 알았던 무재배의 달인께서 생뚱맞게 인천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K리그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게 9월 12일 현재 부임 후 2연무를 기록했다.
9월 19일 경기에서 대구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며 복귀 첫 승을 기록했다. 이후 새로운 라이벌 더비를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나선 서울과의 경기에서 0-2로 완패했고 다음 라운드에선 약체 대전을 맞아 유병수의 해트트릭으로 3골차로 앞서가다 후반 중반부터 내리 3골을 허용하며 보기드문 3-3 무재배를 연출했다. 전남 원정에서는 서로 무기력한 경기로 0-0 무재배. 경남과의 경기에서도 2:2로 비겼다!
3연무라는 흠좀무한 기록에 팬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2010년 11월 7일 정규리그가 종료된 시점에서 허정무 감독의 K리그 시즌 전적은 2승 6무 3패. 참고로 허정무 감독 부임 전의 인천의 성적은 6승 1무 10패 무승부 경기가 하나밖에 없었다. 모두 패해서 탈이지

사실 이는 짖궂은 축구팬들의 농담에 가까운 것으로, 속사정을 뜯어보면 좀 다르다.
2010년 페트코비치 감독의 기록은 승-승-패-패-패-패-패-승-무-승-승-승. 그러다 급작스레 사임한 뒤 인천은 팀이 붕괴, 또 다시 패-패-패-패-패 포풍 5연패를 찍으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새로 부임한 허정무 감독이 팀을 추스려 2승 6무 3패를 기록하여 성적을 끌어올렸다.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결국 2010 시즌 최종 순위는 11위.

2.2. 2011시즌

2011 시즌 8라운드 현재 2승 3무 3패로 14위. 그나마 잘 캐던 무승부는 죄다 어디로 가고 4월 30일 리그 7라운드에선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2:6으로 캐관광을 당하지 않나, 리그가 아닌 컵대회이긴 하지만 이후 5월 5일 벌어진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선 1:4로 역시 떡실신.

그 와중에 5월5일에는 서포터의 물상식한 행동#으로 욕을 먹는가 하면 5월 6일에는 주전 골키퍼이던 기원선수가 자동차 안에서 자살한 것으로 밝혀져(과연...) 축구계와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후 대전 원정에서 2:1 역전승, 부산전 0:0 무, 광주 원정에서 1:0 승, 그리고 12라운드 수원전에서 창단 이후 수원전 홈경기 무승 징크스를 깨는 2:1 승으로 5승 4무 3패로 6위를 기록중이다. 승점 상으로는 공동 4위 (SK, 전남, 인천)을 기록중이며 13라운드 경기 결과에 따라 최대 3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다. 13라운드 상대는 12라운드 현재 5위를 기록중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 13라운드 전남과 1:1 무승부, 14라운드 울산과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15라운드는 경인더비로 뜨고 있는 서울 원정. 여기에서도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현재 5위를 기록 중. 16라운드 광주와 2:2 무승부, 17라운드 성남과 2:2 무승부. 리그 9경기 무패지만 5연무 달성

무승부가 많아 역시 무무열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돈의 2011년 리그 속에서 지지않는 축구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며 허정무 감독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무서운건 무승부가 많아서그렇지 중반 이후로는 패배가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진출 골키퍼에다 핀란드 언론에서 2010 핀란드 리그 최고의 골기퍼로 보도된 권정혁 선수를 영입하여 영입직후 17라운드 성남전에 선발출장 시켰고. 2실점했지만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수원전 패배 이후로 또 무를 캐기 시작하더니 지금 리그 성적은 5승 10무 4패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허정무컵 우승자는 뻔하군 이후로도 연이어 무재배 진수를 보여주며 10경기 연속 무승,8무 2패를 기록하며 5승 12무 5패를 기록했다가, 허정무 감독이 팬들에게 소환당하고 8월 27일 11경기만인 23라운드 대전 시티즌 안방경기에서 2:0으로 이겼다.

11시즌 리그 최종성적은 13위. 결국은 6승 14무 10패로 최다 무승부,그리고 허정무와 같이 허정무컵 우승. 망했어요.

2.3. 파란만장했던 2012시즌

자세한 사항은 인천 유나이티드/2012시즌 문서를 참고

2.4. 꿈에도 그리던 상위 스플릿! 2013시즌

2.5. 2014시즌


2014년 K리그 클래식 잔류에 성공했지만, 프런트 측에서 김봉길 감독에게 책임을 물어 12월 19일 경질했다. 이 소식을 접한 축구팬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 몇년째 알짜배기 선수를 전부 내다팔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인천의 스쿼드 가지고 챌린지 강등을 모면한 것만 해도 매직소리를 듣는 판국에, 성적부진을 경질 사유로 내세웠으니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12월 20일 이임생 전 싱가포르 유나이티드 감독을 선임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김봉길 전 감독에게 전화 한통 딸랑 넣어 해지를 통보한 게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24일 이임생 감독이 감독직을 거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폭탄선언' 이임생 "인천 감독 안 맡는다"

12월 25일 어느 인천 관계는 이임생 감독과 계약이 결렬된 것은 맞지만 계약 세부 조건에서 이견을 보인 때문이며 언론 일각에서 흘러나온 김봉길 감독 해임 건 때문에 거절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날 한 언론에서 인천이 제시한 조건이 계약기간 1년코칭스태프 선임도 프런트 뜻대로였다고 폭로했다. 인천은 이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어디까지나 구두계약일 뿐 정식 문서를 작성한 것도 아니니까 진실은 저 너머에

3. 역대 감독

1.베르너 로란트(2004)[5]
2.장외룡(2005~2008)[6]
3.일리야 페트코비치(2009~2010)
4.허정무(2011~2012)
5.김봉길(2012~2014)
6.김도훈(2015~현재)

4. 라이벌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답게, 주로 수도권이나 경기도권 팀들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

4.1. 경인더비, FC 서울

K리그 팀중에 FC 서울과 사이가 좋은 팀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그중에서도 특히 인천은 지리적인 인천-서울 사이의 미묘한 라이벌 감정과 해마다 끊이질 않는 양 측 서포터즈들간의 충돌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불구대천의 원수사이다. 자금이나 규모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두팀이지만 인천의 맹렬한 라이벌 의식 덕분에 상대전적은 그렇게까지 밀리지는 않는 편. 인천이 처음 리그에 참여한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인천의 전적이 약간 앞서있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인천이 이기질 못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는 중.(정규리그 기준) 다만 상암 원정에선 지독히도 승률이 좋지 않았으나 2013년 3월 9일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9년만에 첫 원정승리를 기록하였다. 서울에게는 수원과의 슈퍼매치 다음가는 라이벌 더비로 자리잡았다.

4.2. 수원 2중대, 천적관계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

반면 수원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약하다. 2014년 기준 통산 상대전적 5승 6무 18패라는 경이로운 전적을 갖고있다. 윤성효 감독 부임 이후엔 그나마 좀 할만해졌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상대. 2012년 숭의 아레나 파크에서의 역사적인 홈 첫경기에서도 수원은 자비없이 2:0으로 무참히 홈 첫경기를 패배로 장식해 주었다. 반대로 2013년에는 25R에서 인천이 수원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역사적인 첫 상위 스플릿 입성을 결정짓는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4.3. 032[7] 더비, 부천 FC 1995

지리적으로 인천부천서울보다도 훨씬 가깝다보니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기전엔 부천 SK를 응원하는 인친 시민들도 많았다. 그리고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고 이 두 팀은 032더비라 하여 많은 명경기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부천sk는 이후 제주로 연고지를 이전해 제주 유나이티드가 되었고, 두 팀간의 대결은 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지만 부천 FC 1995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032더비가 다시 부활하였다. 재밌는건 현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김봉길의 아들 김신철이 부천에서 뛰고 있다는것. 이래저래 다시 만난다면 재밌는 경기가 될것으로 예상된다.


5. 문제점 및 사건사고


5.1. 프런트의 무개념

일을 잘 하는 것 같지만 여러 문제를 빚어왔다. 돈 때문에 정인환을 카타르로 임대보내려 했다가 거절당했고, 결국은 시즌이 끝난 뒤 22억에 정혁, 이규로와 함께 정인환을 전북에 넘기며 팬들의 비난을 사게 된다. 그러나 이후 전북으로 넘어간 정인환이 온갖 인천 디스 발언으로 어그로를 끌자 정인환 트레이드건에 대해서는 그냥저냥 넘어가는 분위기. 2013년 개막전 때 종교단체 산하 봉사단체인 위러브유를 초청했다가 괜히 팬들의 반발만 사기도 했다. [8] 그리고 2014시즌 끝난 후 봉길매직을 강제 종료시켰다...하...님들아

5.2. 부천과의 충돌

기사화는 안된 사건. 2011년 부천에 유소년팀을 창단에 부천도 인천권역으로 편입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부천에는 챌린저스 리그팀이긴 하지만 이미 부천 FC 1995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K리그 팬들은 남의 연고지를 왜 침범하냐면서 폭풍같이 들고 일어났지만 인천 구단 프런트는 그 항의를 모두 씹고 강행했다가 결국 철회했다. 그리고 창단 당시에도 부천측과 심각한 마찰이 있었다. 송내역 문서 참조.

팬들과의 충돌도 있었는데 심판판정에 불만을 가진 부천 팬 2~3명이 인천 홈구장에서 열린 경기인데도 W석까지 넘어와 심판과 선수들에게 너트를 던지면서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3 시즌부터 부천 FC 1995K리그(2부 리그)에 참가하면서 빠르면 2014 시즌에 리그에서 만날 수도 있다.

5.3. 만성 적자

2010년 영업적자 52억원, 2011년 영업적자 34억원 등 2년 연속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은 -12억으로 자본 잠식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원래 인천은 타 시,도민구단과 달리 웬만한 기업구단급으로 예산을 사용했으나 2010년 이후부터는 광고 수입이 줄어들면서 적자가 나기 시작한 것.

5.4. 승강제에 대한 반대

시민구단이라 승강제 반대를 하는 것을 이해하는 팬들이 많지만 실상은 시민구단이 기업구단급으로 돈을 쓰면서 성적 안나온다고 승강제 반대하는 것에 대해 까는 축구팬들도 많다. 게다가 2012년 이사회에서 '왜 승강제를 하느냐','그깟 AFC 챔피언스 리그 따위 나가서 뭐하느냐'라고 발언해 축구팬들의 십자포화를 맞기도 했다.

5.5. 2011 시즌 허정무 감독 청문회

10경기째 무승에 시달리던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리그 최하위를 달리던 강원 FC와의 경기 마저 무승부를 기록하자 출입구를 막고 허정무 나와!를 시전한다. 당시에는 허정무나 프론트가 뒷구멍으로 도망갔지만(...) 허정무 감독은 팬들의 청문회에 응하겠다고 답하고 K리그 초유의 청문회가 벌어지긴 했는데...보기 결국 팀의 발전을 위한 토론 자리기 보다는 그냥 무작정 감독 까기, 분풀이 성 이벤트가 되어 결국 팬과 감독 선수 구단 모두에게 앙금만 낳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근데 지금 허정무가 남겨놓은 유산을 보면 까일만도 하다.

하지만 실상은 원래 구단 서포터즈와 프런트간의 정기적인 친목 축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고 그 날은 프런트측에서 치맥을 제공한다고 했었는데 그 와중에 허정무가 기자까지 데리고 갑툭튀한 것. 바닥에 자리 펴고 앉아서 치킨을 뜯고 있는데 감독이 찾아온 것이었다. 감독과 대화하는 자세가 불성실했던 장면은 팬들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는 기사의 내용과 달리 오해받는 부분이 많고 애초에 사전 얘기도 없이 갑자기 기자까지 데리고 나타났다는것 자체가 문제였다.

6. 그외

과거 인천 문학 경기장을 주경기장으로 썼을땐 같은 한지붕 문학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인천 SK 와이번스와 묘한 관계에 있기도 했다. 경기시작전이나 끝난 시간이 되면 서로 원수와 같은 두 스포츠의 팬들이 사이좋게 문학경기장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또한 한 쪽에서는 경기를 진행 중인데 다른 한 쪽에서는 폭죽을 터뜨리며 경기에 방해를 주기도 하는 등 구단 간의 협조도 부족한 모습이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서포터즈는 미추홀보이즈(MEETYOUHALL BOYS)였으며[9] 규모는 작지만 적극적인 행동력과 특유의 공격성(...)으로 다른 대형 구단들의 대형 서포터즈들과도 전혀 밀리지 않는 전투력을 선보인다. 다만 그 특유의 공격성과 배타성 때문에 타 구단의 서포터즈들과 종종 충돌을 일으키는 편.

근데 사실 서포터즈들 뿐만 아니라 일반 팬들도 강성이다. 응? 여기도 원체 하위권에 있던 시절이 많았고 정 좀 붙일라 하면 다른 팀에 선수들을 빼앗기는게 일상이다보니 자연스레 극성스러운(...) 팬층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경기장을 가보면 구석에 걸터앉아 자유롭게 막걸리를 걸치며 구수한 욕설을 날리는 아재팬들을 쉽게 볼수있을 정도로 8~90년대 응원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몇 안되는 구장이다.

가수 장윤정의 남동생 장경영은 한때 축구선수였는데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선수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몇년 못뛰고 은퇴했다.

6.1.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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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인천국제공항공사 운영 공항
  • [2] 그 덕에 부산 아이파크와 울산 현대는 본의 아니게 악당(?)팀이 되어버렸다. 끝판대장은 이천수. 지못미
  • [3] 인천 시절 2군 MVP를 하긴 했지만 인천에서 제대로 활용하진 않았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대구 FC가 잘키웠다고 보는 게 맞겠다.
  • [4] 연도개최가 가끔 지연되거나 빨라지거나 할 때가 있다.
  • [5] 이스탄불 더비에서 종종 언급되는 페네르바흐체의 6-0 대승리 당시 감독이기도 하였다. 당시 툰자이의 선취골을 보고도 태연히 서서 펩시콜라를 들이키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 [6] 2007시즌에는 장외룡 감독이 유학을 다녀오면서 한시즌 통째로 박이천 감독대행이 이끌었다.
  • [7] 부천은 경기도임에도 지역번호를 031이 아닌 인천과 같은 032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이름.
  • [8] 구단 측의 얘기는 처음에는 봉사단체인줄 알고 초청했으나 종교단체인걸 알고 조용히 그냥 보고 가달라고 부탁했으나 결국 그 꼴이 났다고 한다
  • [9] 2014년 9월부로 해체
  • [10] 안산 경찰청으로 입대
  • [11] 구단의 레전드
  • [12] 상주 상무로 입대
  • [13] 3번 항목, 2015 시즌 현재 주장
  • [14] FC 서울에서 임대
  • [15] 2015 시즌 현재 부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