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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

last modified: 2015-04-07 09:55:15 Contributors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올스타 베스트10
선동열
(투수)
이만수
(포수)
장종훈
(1루수)
박정태
(2루수)
김재박
(유격수)
한대화
(3루수)
양준혁, 이순철, 장효조
(외야수)
김기태
(지명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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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순철(李順喆)
생년월일 1961년 4월 1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전라남도 강진군
출신학교 광주서림초-전남중-광주상고-연세대
포지션 3루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5년 해태 타이거즈 1차 지명
가족 부인 이미경[1], 아들 이성곤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85~1997)
삼성 라이온즈 (1998)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주루코치 (1999~2000)
LG 트윈스 작전·주루코치 (2001~2003)
LG 트윈스 감독 (2004~2006)
우리 히어로즈 수석 겸 주루코치 (2008)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 (2012~2013)
백넘버 해태 타이거즈 14번
삼성 라이온즈 8번
코치&감독 시절 81번, 78번

1985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윤석환(OB 베어스)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김건우(MBC 청룡)

1985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광은(MBC 청룡)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한대화(해태 타이거즈)
1988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광은(MBC 청룡)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김일권(태평양 돌핀스)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고원부(빙그레 이글스)

1991, 1992, 1993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이호성(해태 타이거즈)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이호성(해태 타이거즈)
김응국(롯데 자이언츠)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전준호(롯데 자이언츠)
김재현(LG 트윈스)
박노준(쌍방울 레이더스)
윤덕규(태평양 돌핀스)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4번(1985 ~ 1997)
김현재(1982-1984) 이순철(1985 ~ 1997) 박진철(2001 ~ 200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1998)
박규대(1996 ~ 1997) 이순철(1998) 빌리 홀(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1번(1999 ~ 2000)
이순철(1999 ~ 2000) 이종두(2006 ~ 2009)

LG 트윈스 역대 감독
이광환 (2003) 이순철(2004~2006.06.05)[2] 김재박 (2007~2009)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LG 트윈스 코치, 감독 시절
3.1. 감독으로서의 평가
4. 해설자 시절
5. 우리 히어로즈 코치 시절
6.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6.1. 2011년
6.2. 2012년
6.3. 2013년
7. 다시 해설자로
8. 기타
9. 연도별 성적

1. 소개

대한민국야구인. 前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자 現 SBS, SBS Sports의 해설위원, 現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회장이다.

해태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라면수비의 원조이자 이종범 등장 이전까지 최강의 테이블 세터.
LG 트윈스 팬들에게는 선수 보호 그런거 없다를 시전한 천하의 금지어이자 웬쑤.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타어강의 조연급.
그리고 해설계의 거성, 모두까기 인형.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1997년까지 쭉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서 뛰다가 해태에서 방출된 뒤 1998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1년의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은퇴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와 LG 트윈스의 코치를 거쳐 2004년 LG 트윈스의 감독이 되었으나, 성적 부진으로 2006년 시즌 중반에 자진사퇴하고 만다. 2007년에는 MBC ESPN의 해설자로 활약. 2008년에 신생 팀 우리 히어로즈의 코치로 활동하였고 이듬해에는 2009 WBC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WBC 이후 MBC ESPN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돌아와 활동했고, 2011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선동열 감독 취임과 함께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별명은 이름의 '철'자를 금속의 종류 중 하나인 의 원소기호 Fe를 붙여서 바꾼 '순Fe', '순페이'[3], 비난해설로 인해 생긴 '이거성', 모두 다 까고 모두에게 까인다고 붙은 '모두까기 인형' 등이 있다.

2. 선수 시절

하하 제가 제 소개를 하려니까 어색하네요.
- 마구마구에서 해설위원이 이순철일 때 선수 이순철 본인이 등장하면 나오는 멘트.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선동열이나 이종범도 못 해본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의 신인왕이 되었다. 입단 당시 포지션은 3루수였다. 이후 1986년 3루수 한대화가 OB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되어 영입되자 외야수로 전향했다. 그 후 김일권에 이어[4] 해태의 붙박이 1번 타자로 뛰면서 세 번의 도루왕과 네 번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특히 외야와 내야 모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인물이며, KBO 역사상 모든 타순에서 홈런을 날린 적이 있는 유일한 선수. 중견수 수비에 있어서는 역대 최고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면수비의 원조이자 대가격의 인물.

TV 중계로 야구를 보고 있노라면 타자가 공을 때린 다음, 외야를 잡아주면 내가 지금 여기 나와서 이딴 공이나 잡고 있어야 겠냐 투수 이XX야라는 표정으로 세상 만사 귀찮음은 다 끌어안은 표정으로 공을 캐치하곤 했다.[5] 사실은 타자의 특성에 따른 정확한 수비위치 예측과 '딱'소리와 거의 동시에 낙구지점을 파악하는 뛰어난 타구판단에 빠른 발이 더해져서 중계화면을 외야로 돌리는 그 짧은 시간에 이미 수비위치를 잡고 공을 잡아내는 최고급 수비. 김C가 선수 시절에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이순철이었는데 존경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고 브레인 서바이벌에서 밝힌 적이 있다. 이후 이병규에게 라면수비의 계보는 계승된다.

팀 내에서는 유명한 군기반장이였으며 해태 2군 감독으로 있던 김성근조차 어떻게 하지 못한 임창용의 머리 염색을 하루아침에 다른 2군 선수들과 함께 스포츠 머리로 변신시킨 전력이 있다.

이외에 선수협 결정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는데, 당시 해태 소속인 이순철과 김대현이 차를 몰고 가다가 김대현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도 불구하고[6] 아무런 보상 등을 받지 못하자, 다른 프로 선수들이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적극적으로 선수협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야구 선수협의 설립에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느 정도 합당한 근거[7]를 제공한 인물. 하지만 구단주들의 압력과 보복성 트레이드로 인해 무산되었고, 21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선수협이 창설된다. 물론 선수협이 제대로 자리잡기까지는 또 수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도루왕을 달성하기도 했던 1988, 1991, 1992년도가 대표적인 그의 전성기며, 이종범이 등장하기 전까지 매년 20개 안팎의 도루와 두 자릿수 홈런(1987년에는 6개)을 기록해줬다. 다만 타율이나 안타 측면에서는 롤코 기질이 있었던 듯하다.

1988년에는 .313의 타율에 58도루를 해내며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 이순철의 존재 때문에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되었던 그 김일권이 62도루를 하면서 이 기록은 깨진다[8]. 1990년에도 김일권이 도루왕을 달성, 역시 구관이 명관이었나 했지만 이순철은 1991년에 56도루를 하면서 부활한다. 다만 타율은 .276으로 조금 모자란 편이었다. 하지만 17홈런을 포함하면서 호타준족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992년은 그의 최고의 시즌이었다. 44도루로 도루왕은 물론 타율 .309에 152안타로서 최다안타왕도 달성. 홈런도 21개나 쳐내며 20-20 클럽에 들었고, 76타점을 쓸어담았다. 허나 이번에는 이정훈이 .360에 25홈런 21도루를 기록하면서 묻혔다. 둘 다 선수들의 평균 신장보다 작은 키였지만 엄청난 펀치력을 보여주었다. 이종범부터 본 세대에는 "이 사람 누구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그가 뛰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안다. 그는 이종범 못지않은 최강의 톱타자였다는 것을.

1993년 이후 이종범의 등장으로 그의 팀내 입지는 급격히 추락하게 되는데, 비슷한 스타일의 이종범은 타격과 스피드, 장타력 등 모든 면에서 이순철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92이순철 vs 93이종범을 비교하면 이순철이 한수 위이다. 하지만 1993년 투고타저도 있고 이순철의 급격한 하락도 있기 때문에.. 이순철이 1993년에 전년도와 비슷한 성적을 냈었다면 이종범은 1번을 칠 수 없었다. 그 이후 그는 병살을 좀 많이 쳤다. 1995년에 20개를 쳤을 정도니...게다가 당시 이종범이 출루율, 타율이 좋았기 때문에 그가 친 병살이 더욱 눈에 잘 띄었다.

이후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성적도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하와이 스프링캠프 때 선수들과 해태 코치진 간의 갈등이 심화된데다가, 선수 대표격이었던 이순철의 유남호 폭행 사건[9]으로 김응용 감독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주장이었음에도 199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됬고 1997 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에서 방출당했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하여 1년 뛰고 바로 은퇴식도 없이 조용히 은퇴.

그래도 시간이 지난 후에 김응용 감독과의 껄끄러운 관계는 청산하고 화해한 듯하다. 김응용 감독은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이순철, 선동열과 간간히 만나서 골프도 친다고 언급했다. [10]

3. LG 트윈스 코치, 감독 시절

삼성 라이온즈 No.81
이순철(李順喆)

LG 트윈스 No.81
이순철(李順喆)

간단히 요약하자면 코치 시절은 괜찮았지만... 감독 시절은 막장. 양상문 리버스 버젼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하여 1년의 선수생활 후 은퇴한 이순철은 삼성 라이온즈의 주루코치가 된다. 하지만 2년 뒤 2000년 시즌 후 사이가 좋을 리 없는 김응용이 삼성의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LG 트윈스로 자리를 옮겼다.


코치 시절의 평가는 굉장히 좋았다. 선수들도 '편하면서 잘 가르쳐주는 코치'라면서 좋아했고 주루코치나 작전코치로서의 능력 또한 최상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담이지만 코치시절 올스타전 이벤트인 '올드스타전'에 출전해서 잠실 야구장 펜스를 넘기는 홈런도 때려냈다. 아주 살짝 넘어갔지만.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이광환의 뒤를 이어서 2004년 3년 임기의 LG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아...안돼!!!

그러나 이 3년은 LG 팬들에겐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도 싫은 최악의 시간이자 악몽 그 자체였으며, 선수단, 감독, 팬들 모두에게 안 좋은 결과만 나오게 된다. 그 결과 이순철은 LG 팬들로부터 감독도 아닌 금지어, 천하의 개쌍놈으로 굴러떨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돈 들여서 사온 선수는 죄다 먹튀였으며(진필중, 마해영), 성적은 나오지 않는데다(6-6-8)[11],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훈과 1994년 신인 3인방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등은 모두 FA 혹은 트레이드로 타 팀에 이적하거나 은퇴하게 된다. 이 중 김재현은 트레이드로 SK로 갔음에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이들의 은퇴는 대부분 프런트의 주도 하에 일어난 일이었으나 이상훈의 경우 부임 당시 감독과의 불화가 언론에서 부각되다가 이상훈이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는 등 실제 비난의 화살은 그 프런트가 내세운 감독인 이순철에게 갔다고 일부는 주장하기도 했다. KIA팬들의 실드 이러한 주장은 KIA팬들의 푸쉬를 받은 것이 맞지만 분명한 근거가 있는 사실이다. 신바람 야구의 대명사 이광환은 "'기둥 세 개가 한꺼번에 빠지면 집이 무너진다. 내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날 자르고 그 세 명을 정리했다.”라고 밝히고 있다손윤칼럼스포츠2.0 펌글[12][13]. 다만 나중에 일어난 이종범 선수의 은퇴권유나 위 선수들을 은퇴시킨 후에 한 언플을 볼 때 그가 해당선수들 은퇴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건 개뿔납득하기 힘들다. 일례로 은퇴할 당시에도 어느정도 기량이 있어서 타 팀에서도 영입할려고 했던 유지현을 공수주 전부 안돼서 쓸모없는 선수로 매도했었다.그리고 유지현은 LG가 아닌 팀으로 가는 것은 싫다며 트레이드를 포기하고 은퇴한다.

무엇보다 그의 치명적인 문제는 그렇게 팀의 프랜차이즈를 내쳐놓고선 대체전력 육성에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김재박은 없는 자원 속에서도 이대형, 우규민, 최동수, 김정민 등을 중용해서 성공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는 감독으로서 엄청난 차이다. 더불어 이순철은 신인 육성에서도 계속된 실패를 거듭했는데, 박병호정의윤, 이성열을 너무 일찍 1군에 불러 타격기술뿐만 아니라 멘탈까지 망가뜨렸고, 그가 있을때 지명한 투수들인 장진용, 신창호 등은 그냥 볼거없이 패망. 당시 스카우터였던 이효봉지명 삽질로 팜을 박살내고 있었는데도 그냥 눈뜨고 지켜만 봤다. 이 때문에 LG는 2010년대 초반까지 중간층(1981~빠른 1988년생) 선수들의 부재에 시달렸었다.(특히 타자쪽에서)[14]

LG팬들이 그에 대해 치를 떨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원인이 바로 이동현. 이동현은 2001~2002년에 맹활약하면서 LG 마운드의 샛별로 떠올랐지만 이 시기에 무리한 후유증으로 인해 팔꿈치 부상을 당하고 재활중이었는데 이순철은 그런 이동현을 재활이 미처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등판시켰다가 이동현은 또 탈이 났고 결국 이동현은 5년 여에 걸쳐 세 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기나긴 시간을 재활에 매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이순철이 남긴 유명한 한 마디가 있었으니, "재활은 마운드 위에서 하면 된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발상인가![15] 이후 이동현은 2010년에 기적 같은 재활을 하긴 했지만 그 기간동안 그를 바라보는 팬들과 선수 본인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간혹 이를 김성근 감독의 혹사로 보는 의견도 있지만 이동현 본인이 그 후 쉬어야 할 때 무리하게 등판시켜서 부상을 당한 것이라며 돌려서 순FE를 깠다.

이순철이 LG감독 시절 저지른 또 하나의 대표적인 병크 중 하나가 2004년에 김재현이 FA로 SK에 이적했을 당시 보상선수 사건이다. 당시 정우람, 윤길현, 채병용 등의 젊고 싱싱한 투수들 중 적어도 하나는 보호선수 명단에 끼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였다. 특히 채병용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이는 김재현을 잃은 대신 팀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허약한 마운드를 보강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이순철은 SK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선택이라면서 보상선수로 전 LG선수였던 내야수 안재만을 지명했다. 안재만은 SK, LG 어디서나 주전감은 아니었고 보상선수를 통한 소중한 전력보강 기회만 날려먹은 셈이었다. 게다가 SK는 롯데에서 방출되어온 만능 내야수였던 김태균까지 영입하면서 SK의 전력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어쨌든 덕분에 SK에 남은 투수들은 팀의 주축투수로 성장했고 안재만은 KIA로 트레이드된 뒤 은퇴했다. 이거 또한 뒤의 감독인 김기태와 비교되는 것이, 주력 3명을 FA로 날렸지만 보상선수 지명에서 팀의 미래를 위해 유망주들을 지명해[16]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면서 이득을 봤다.

그의 인격적인 면을 잘 드러낸 일이 우규민 사건이다. 2006년 5월 11일 삼성과의 경기 도중 김창희의 강습타구에 머리를 직격당하고 쓰러진 일이 있었다. 당연히 모두들 부상을 우려했고 당장 후송해서 검사받아야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순철은 이를 팔짱만 끼고 지켜보다가 우규민이 다시 일어나자 그대로 계속 공을 던지게 했다. 다행히 우규민은 큰 부상을 입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감독의 선수에 대한 배려가 어느 수준인지 잘 보여주는 일화였다. 그 어떤 쉴드로도 커버가 안 되는 사건. 저런 응급처치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임수혁 사건이 잠실에서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죠, 팬덤의 기본이 안 되어있어요

결국 2006년 5월 말 격분한 LG팬들이 얼굴을 가리고 '순철아 우리는 네가 정말 창피하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게 되었고,[17] 다음날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에 항의하다 퇴장 명령을 받게 되자 방망이를 집어던진 다음 6월 5일 자진 사퇴하고 수석코치 양승호에게 감독 대행을 넘겼다.

전지훈련에서의 유남호 폭행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순철 본인에게도 흑역사였던 시절이기도 하다.

3.1. 감독으로서의 평가

경기 운영능력은 최악. 야구라는 문구가 그의 몰상식한 경기 운용을 상징한다. 중간계투 운용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 없이 매 경기마다 5~6명 이상의 투수가 등판하기 일쑤였고 이런 운용은 결국 계투진에 엄청난 부하를 일으키면서 팀 성적이 바닥을 치는 원인이 됐다. 2005년 LG의 전체 투수 등판횟수는 606회로 8개구단 최다, 2006년에는 535회로 전체 2위다. 이마저도 2006년 후반기는 양승호 감독대행이 팀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줄어든 덕이다. 김성근감독의 벌떼야구도 있지 않냐고 따질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김성근의 투수 운용엔 계획성과 선수의 체력에 대한 안배는 어느 정도는 갖춰져있으며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불펜투수를 육성하면서 성적을 낸다. 이순철의 출첵야구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후임 감독이었던 김재박과 성적을 비교해보면 이순철 305경기 129승 170패 6무 승률 0.431, 김재박 385경기 158승 217패 10무 승률 0.410으로 이순철이 근소한 차이로 승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순페이는 휘청이던 팀에서 부임하자마자 이상훈을 내쫓는 등 팀을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대체전력 발굴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김재박은 그가 바닥까지 말아먹은 팀 추스려서 5위까진 해봤다. 기껏 1년 잘 써먹은 박명환이나 옥스프링이 2~3년차에 나가떨어지는 등 차라리 성적에 관해선 김재박쪽에 실드쳐줄 건덕지가 많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감독은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김재박이 욕만 먹는 수준이라고 한다면 이순철은 아예 금지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영구결번감인 여러 레전드들을 대책없이, 특히 이상훈을 감독이 직접 내쫓은 것 때문에 이순철하면 아직도 대다수의 LG팬이 아직도 이를 갈 정도다.[18]

대표적인 노력파에 코치시절 보여준 능력도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으로서는 부진했던 이유로는 사실 LG선수들이 막장이라서 그렇다는 '순페명장론'이 대두된 일이 있다. 물론 LG팬을 놀리는 개그지만. 또 그렇게 볼 수만도 없는 것이 실제로 이순철의 작전이 자주 먹혀서 팀에 유리하게 작용한 적이 꽤 있다. 특히 2005년의 경우 한 경기 피치아웃 5번 시도해서 4번 맞췄지만 포수의 송구 미스 및 패스트볼 등으로 실패하는 등 일부에서는 감독으로써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LG선수들의 학습 능력이 딸려서 그랬다는 의견도 LG팬들을 제외한 나머지 팬들 사이에선 꽤나 신빙성있게 제기되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선수보는 안목[19]이나 경기운용능력, 그리고 통솔능력을 볼 때 그가 LG 트윈스 감독을 맡는 동안 능력을 보였다고 여겨지는 분야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특히 선수들을 자주 비판하는 특성 탓에 반감을 사기 쉬웠던데다, (LG 프런트측의 압력이 있기도 했지만)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할 고참 선수들을 마땅한 대안도 없으면서 전부 내치기까지 했다. 이런 실책들은 고스란히 김재박, 박종훈 감독 시기에 일어난 팀내 분란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분란들은 김기태 시절에 와서야 겨우겨우 잠잠해지고 이는 LG가 2013년에 비밀번호를 끊는 원동력이 되었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분명 야구지식은 많은데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자세 때문에 선수들과 융화하기 어려운 타입. 특히 LG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이런 타입의 감독은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주루, 작전 등 제한된 분야에서 코치로서 능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선수를 보는 이상한 안목, 선수단 통솔 실패, 과도한 혹사로 인한 선수들 부상 등은 감독으로써 그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보다도 못한 감독이라면 롯데 시절 백인천 말곤 없다 이만수 역시 추가 될 계획이다. 코치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감독으로서는 그릇이 안되는 대표적인 경우. [20]

결국 이런 막장 행보 때문에 당시 롯데의 8888577의 마지막 77을 찍은 강병철, 2007년 기아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서정환과 같이 야구 커뮤니티에서 무지하게 까였으며, 스타를 보던 팬 한정으로 앞의 강병철과 KTF 매직엔스를 막장으로 인도한 김철이랑 엮이며 일명 3Fe로 또 까였다.

4. 해설자 시절

감독직 사퇴 이후, 미국으로 코치연수를 떠나면서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지만, 07년도 MBC ESPN의 깜짝 해설자로 등장하게 되면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당시까지의 무난한 해설과는 달리, 그는 현장에서 뛰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타자와 투수의 미묘한 심리전, 다음에 이어질 볼배합이나 작전, 도루주자의 움직임 등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해 주었다. 특히 이순철은 투수의 구질 분석에 능했는데 이후로 해설진을 평가하는 기준 중 구질 분석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추가될 정도였다. 사실 능한게 아니라, 허구연이나 하일성 같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을 하지 않아 뒤떨어진 거라고 하는게 맞다. 물론 허구연은 소위 부뤠이킹 볼로 상징되는, 구종보다 공의 궤적과 로케이션에 집중하는 해설이라고 해 줄 수도 있지만 하일성은…. 역으로 가네요
당시 같은 방송사에서 해설을 했던 이효봉 역시 위의 내용 해설에 능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당시 해설진의 해설 능력만 놓고 봤을 때 독보적인 원탑을 고수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이효봉이 많이 꼽혔다.

하지만 이순철의 해설은 위의 내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순철의 해설의 핵심은 바로 못하는 선수를 가차없이 질책(특히 정수근)하여 시청자(특히 롯데팬)들의 '까고싶은 욕구'를 대리만족 시켜줌으로서 해설계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언제부턴가 Dcinside 야구 갤러리에서는 무한도전 박명수의 별명을 본따 그를 이거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해설은 인기몰이를 했던 반면에, 현장의 지도자들을 무시할 정도의 지나친 자신이 옳다는 류의 해설과 특정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이라는 악평을 듣기도 하였다.

그가 깐 목록만 해도 선수, 낡은 경기장, 팬, 앰프, 조명탑, 인조잔디, 감독, 날씨, 심판 심지어 치어리더까지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는 검은색 배트도 잘 안보인다고 깠다. 어느 팀, 어느 선수든 3연전 중 첫 경기부터 그에게 까이면 그가 해설하는 3일 내내 까였다. 만약 한창 까이던 선수가 홈런을 친다면 잘 받아쳐서 그렇게 됐다기 보다는 무조건 상대 투수의 실투로 인한 것이었다(…).

그가 모든 것을 까게 될만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정리된 유형은 없다. 이순철이 현역 시절 마찰을 빚었던 선수도 지금은 딱히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레이더망은 항상 켜져 있었다. 혹시 잠잠하다고 안심하지 마라 그저 그의 레이더가 쉬고 있을뿐이다!

다만, 이종범, 양준혁 같은 레전드급 선수의 경우는 거성 해설자조차도 아직 건드렸다는 소식이 없었다. 어디 까일 만한 선수도 아닐 뿐더러 함부로 갔다가는 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는 단순히 무차별적으로 까는 게 아니라 깊은 생각(?)을 가지고 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꼭 레전드가 아니라도 최기문 처럼 경험이 많고 착실하게 자기 플레이를 하는 노장들은 그다지 터치를 안 하는 스타일.

이런 여론에 자신도 신경을 쓰고 있는지 비판 해설을 조금 아끼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특히 2010년 투수 리드 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강민호가 시즌 초반 다 죽어가는 얼굴로 덕아웃에 앉아있는 일이 많아지자 갈매기마당 유저(일명 갈마충)를 제외한 대다수 롯데 팬들은 강민호 실드에 나섰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실수를 지적하던 이순철은 예상치 못한 롯데팬들의 비난 여론을 맞이하게 된다. 그 후 강민호에게 방송중에 대놓고 '내가 너를 무자비하게 깐게 아니라고 말 좀 잘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과거에 비하면 많이 수그러든 모습을 보였다.

사실 둘 사이는 나쁘지 않고 오히려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다. 강민호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순철이 따로 챙겨주는 것도 많은 듯했다. 강민호를 대하는 행동도 자세히 보면 신경써주고 있는 티가 났다.츤데레인가 그 후 2012년 김민아 아나운서가 쓴 기사에 의해 강민호가 '제일 선호하는 해설자'라고 인증했다.

하지만 많은 팬들이 이순철에 대한 오해를 푼 가장 큰 계기는 아들디스(…)이다.

2009년에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를 해설하면서 거기 출전하고 있는 자기 아들[21]까지 깠다. 대만 전에서 삼진을 2번 당한 아들을 향해 "아들이 삼진왕인데 안 나오는게 도와주는 것이다"라는 멘트를 날렸다. 흠좀무. 그래도 '기죽지마라. 나도 대표선수 시절 14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적도 있다'고 아들을 위로했다고 하는 거 보면 아버지의 정은 못 속이나 보다. 그리고 이후 아들은 아버지가 수석코치에 임명되자 아버지에게 응원의 글을 보내면서 부자간 돈독한 정을 보여주었다.#


2010년 트위터에서도 아들디스가 나오자 이순철 해설 스타일을 뒤늦게 알고 오해를 푸는 팬들이 많아졌다. "아들도 까는 양반인데 뭔들 못까겠나"라나…. 근데 이 와중에 스플래시 데미지를 얻어맞은 한때는 거물 유격수 재목 김주찬

5. 우리 히어로즈 코치 시절

우리 히어로즈 No.81
이순철(李順喆)

2008년 우리 히어로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했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이광환의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 때문에 불화가 생겼고, 결국 김시진 복귀 이후 둘 다 경질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LG에 있을 때 이광환의 후임이 이순철이었고, 사이가 좋을 리 없는 둘을 두었으니... 경질 이후에는 2009 WBC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WBC가 끝난 후 해설가로 복귀하였다.

비록 이광환과의 불화는 있었지만, 선수들 훈련 지도나 젊은 선수들의 태도 개선, 주루 플레이의 개선에는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는 평가다. 다만, 애당초 이 팀 자체가 선수들의 연봉 삭감으로부터 비롯된 태업과 선수들과의 친화 관계가 없던 것 때문에 수석코치로서의 업적은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다.

6.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KIA 타이거즈 No.78
이순철(李順喆)

6.1. 2011년

2011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위 짤방은 재평가 받기 시작했다.해당 영상 해당 영상은 MBC의 야구 해설프로인 '야구 읽어주는 남자'. 당시 팀에서 필요한 역할이 달랐다며 좋게 넘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이용규의 탈쥐효과를 인정한 셈이다(…). 그리고 순페기물 만난 KIA 타자들은 극심한 슬럼프에 하지만 이용규의 활약보다 더 대단한게 이순철이 현역 시절 기록한 1번타자 20-20이다. 용규가 20홈런 치라고 해봐라

기사에 따르면 현역시절 선동열 감독과는 언제고 한 번은 다시 같은 팀에서 팀을 말아먹어보자며 이끌어보자며 약속을 한 모양이다. #

팬들은 최희섭양현종의 멘탈을 개조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본인도 같은 생각인지 부임 첫인사 때부터 최희섭 길들이기에 들어갔다. 상견례 때 선동렬 감독의 인사 후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자기는 대화울렁증이 있다며 손사레를 치면서 "나는 최희섭과만 대화하면 된다.다른 선수들은 안해도 된다.(최)희섭이랑만 얘기하면 다 해결된다"라고 말하며 웃었다고. #

6.2. 2012년

하지만 2012년 시즌을 앞두고 그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졌다. 단적인 예가 발전 가능성이 거의 없어보이는 신종길에게 꽂혔다는 것. 마무리 훈련 최고 성과라는 드립이 나왔으며 도루왕 할 것 같다는 말을 직접 할 정도라서 세간의 우려는 높아져만 갔다. 어차피 최희섭만 뻥뻥 터지게 하면 상관없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선수보는 눈이 과연 좋은지는 2012년 시즌이 시작되면 자명해질 듯. 선동열 감독이 사실상 타격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서 이순철 수석코치에게 타격을 다 맡기는 상황이라는 말이 있는 마당이니 그의 능력에 따라 김기아 타선이 될지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될지 두고 볼 일.

2012년 3월 31일 이종범의 갑작스런 은퇴에 개입했다는 게 알려지자 KIA팬들에게 선동열과 함께 열심히 까였다. KIA에서도 금지어로 등극할 기세. 그와 선동렬이 은퇴/이적시킨 수를 생각하면 이정도야. 아 이번엔 KIA 프런트가 어거지로 밀어낸건가?

SK와의 개막 2연전에서 허접한 경기력으로 2연패 당하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특히 공격야구 드립쳐놓고 잔루만 잔뜩 적립하는 상황이라. 더구나 선동열이 타자들은 전적으로 이순철에게 맡겼기 때문에 타격코치 이건열과 함께 신나게 까였다. 선동열은 작년 KIA 야구 안 봤다고 해도 해설하며 봐온 이순철이 과거 조범현이 했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라.

삼성전에서도 형편없는 경기력은 계속. 특히 팀 타율이 1할대호랑이 사랑방에서 조차 개새끼라며 깠다. 특히 양아들 신종길이 8푼대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까일 예정. 여기에 김원섭, 차일목, 홍재호 등 하위타선은 그야말로 길가의 돌멩이, 논가의 허수아비 수준이라 그냥 욕처먹었다. 수십억 들여 애리조나 간 선수들보다 겨우내 땡깡부리고 국내서 홀로 훈련한 최희섭이 훨씬 잘하니 말 다한셈. 삼성[22], LG, 우리[23] 시절 키운 선수 없는 무능한 코치가 KIA 온다고 달라질리 없었다. KIA 팬들은 주둥이만 살았을 뿐이라고 씹었다.

6월이 되어도 KIA 타선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특히 SK와의 2연전에서 이틀 연속 영봉패를 당하기까지 하니 이순철과 이건열을 사람 취급하는 KIA팬은 깨끗하게 멸종하다시피 했다. 6월 7일 현재 KIA의 팀홈런 개수는 14개로 강정호보다 2개나 적다. 팀내 홈런 1위가 4개 친 최희섭이었다. 거기다 뜬금없이 공 줍다가 종아리 근육 파열 당해 가지가지 하는 새끼라고 욕처먹었다. 그나마 워낙 어그로갑인 이건열이 있어서 묻어가는 형세였지만 다들 경질되고 일본인 타코가 들어오길 바랄 지경이었다.

6월의 수석코치로서의 모습과 해설자로서의 모습을 대조해서 보면 '말은 쉽다'라는 관용어구가 연상될 지경. 해설자 시절 보여준 풍부한 야구이론들은 결국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인증시켜주고 있으니 실로 입야구의 아이콘이라 불러도 할 말 없게 되었다. 때문에 KIA팬들은 KIA에서 쫓겨나 다시 해설복귀한다면 이전처럼 모두까기인형질을 못할거라고 예상. 하지만 그럴 인간이면 LG에서 쫓겨난 이후 입을 다물었겠지.

이건열이 결국 2군에 내려가면서 타격을 전담하게 되었다. 언젠 안그랬냐? 팬들은 오십보백보라며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 답답해했다. 그런데 2012년 6월 26일부터 KIA의 타선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것도 홈런 한방에 의한 득점이 아닌 안타를 비롯한 발야구에 의한 작전야구...어? 근데 이건 이순철의 공이라고 보기는 무리다. 삼성에서 트레이드로 건너온 조영훈이 활력소가 된 것 + 전임 조범현 감독때 했던 특타를 부상을 이유로 그만두게 했다가 성적이 안 나오니 다시 시작하면서 타선이 불 붙은 것. 결국 2011년 조범현이 풀어놓은 숙제를 깽판치다가 답이 안 나오자 다시 원상복귀한 셈.

시즌이 지나면서 차일목이나 박기남 등 일부 선수들이 예상 밖의 활약을 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기복이 심한 타선을 붙들어놓지 못하고 있어서 욕을 먹었다. 어제는 맹타를 휘두르던 타선이 오늘은 침묵하는 등….

그러나 8월 들어 KIA 타선이 시즌 초, 즉 기복이고 뭐고 없이 그냥 꾸준히 못하는 개막장 타선으로 회귀하면서 다시 폭풍처럼 까였다.

결국 KIA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2012년 시즌을 마무리했다. 선감독이 타격코치로 김용달을 영입하게 되면서 이순철은 자연스레 수석코치의 임무만 수행하게 되었다. KIA팬들은 제발 수코 역할에만 충실하라즉 타격엔 관여하지 마라는 의견을 표했다.

와중에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면서 스승을 따라 한화로 이적할 가능성이 있다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입야구라는 표현과 이순철의 야구이론을 폄하하는 것은 조금 맹목적이고 단순한면이 없지않아있다.

이순철이 선수 시절 때는 말할 것도 없이 리그 최고 수준의 외야수 였음은 말할 것없다.
또한 LG감독을 맡기 이전의 코치 시절 때 역시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는 코치로서 인정받는 인재였다.
그리고 박병호,이성열 등 그의 감독 역사상 흑역사로 치부되던 LG시절에도 선수를 보는 안목만큼은 훌륭했으며 KIA시절 때 그가 공을 들였던 신종길조차도 13년도부터 기량을 만개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스스로의 가치를 선수와 코치로서 증명해왔던 이가 코치로서 한 두 해 실패를 경험했다해서
입야구라하는 것은 야구라는 것이 개인의 손에만 의존하지 않고 수 많은 변수에 시달리는 복잡한 종목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또한 이 일전에 스포츠 채널에서 가장 선호하는 해설자를 조사해본 결과 이순철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이순철을 뽑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순철 선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됬다는 말을 했다.

선동열 감독 사임 이후 공개된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보인다. #
감독이 수석코치와 각 부문 코치를 통해서 선수에게 오더를 전달하는 수직적 체계였다는 일화와 더불어, 2012년 대패한 사직 경기에서 [24] 수석코치가 고참이자 간판급인 4타수 무안타인 모 선수 [25] 를 공개적으로 질책하여 해당 선수가 부진에 빠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6.3. 2013년

4월까지는 잘 나갔지만, 이후 팀이 급격히 무너지며 선동열 감독과 함께 까였다. 선동열 감독이 경질되면 이순철 코치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 거라 예상한 팬들도 있지만, 구단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그를 10월 5일 김평호, 조규제, 박철우 코치와 함께 재계약 포기 통보를 통해 해임했다.

대부분의 KIA 타이거즈 커뮤니티에서는 선동열과 함께 팀을 망친 원흉으로서 해임을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非 타이거즈 야구팬들도 해설계의 거성 복귀를 환영 후임감독으로 즉위를 기대했던 몇몇팬은 아쉬움을 가지고...

파워블로거 박동희에 의하면 이순철 자신이 선감독 대신 팀 부진의 책임을 진것이라고 한다.이거시 바로 프랜드 쉴드

10월 6일, 수석코치에서 물러나기 전에 선동열의 통보가 있었다고 한다. 이전 버전에서는 선동열이 종용했다는 식으로 기술되었는데 [26] 기사를 보면 선동열이 주도해서 이순철을 잘라서 뒤통수를 친게 아니라 프런트가 결정한 해임을 미리 알려주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선동열은 이번 시즌의 졸렬한 지휘로 코칭스탭의 조각권은 없어진 상태고,[27] 코치 인사는 프런트가 전적으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초반에 1위를 달리다가 8위까지 미끄러진 것은 당연히 선동열이 책임져야 하지만, 프런트는 선동열은 일단 현대자동차그룹 고위층이 영입한 데다가 프랜차이즈 스타이기 때문에 함부로 자르기 힘드니[28] 바로 그 아래인 수석코치에게 책임을 물은 것 같다.

7. 다시 해설자로

다시 야인이 된 이순철은 수석코치에서 해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해설가로 복귀했다. 다만 이번에는 SBS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발탁되었다. 이로써 MBC SPORTS+는 전문가를 잃었다 대우는 해설자 중에서도 최고라고 한다. MBC SPORTS+ 시절과는 달리 SBS 지상파 중계에서도 활약중인데, SBS가 중계한 KIA삼성의 대구 개막전 경기를 통해 해설자로 복귀했다.

그리고 SBS Sports 해설위원 중에서 김재현 위원과 함께 2014시즌 우승후보로 SK 와이번스를 지목하였다. 2014년 7월 현재, SK는 8강 진행 중

첫 중계 하자마자 정우영을 까면서 모두까기 인형 어디 안 간다는 것을 선보였다.
이순철: "정우영씨. 야구중계 언제부터 하셨죠?"

정우영: "2007년 부터였죠."

이순철: "오래됐네요. 그 정도 됐으면 타자의 타격자세만 보고도 어떻게 칠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는거 아니예요?"

그 뒤 정우영은 물론이고 이동근 캐스터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해설가로서 활약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역시 비난을 피할 수가 없는데 원래도 그런 감이 있었지만 2014년 올해 들어 유독 말이 많아져 오히려 정신이 없다고 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자기 할 말은 다 하면서 캐스터가 말 할 시간은 주지 않는게 포인트. 게다가 캐스터가 말 하는 와중에도 말을 끊고 들어와 자기 할 말을 다 한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타자는 물론이고 투수가 교체되어 그 선수의 기록 등을 얘기하는 시간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계속해서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해설을 들어보면 구질 설명 등 유익한 얘기도 많지만 누군가를 까는 내용과 쓸데없는 헛소리도 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
이런 소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말까지 빠르면서 더더욱 시청자들이 좋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아웃사이더가 입에 모터를 달았다 카더라.
그래도 나름 퀄리티 높은 해설을 보여주며 전체적으로는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말 수만 어떻게 줄인다면 최고의 해설이 될 거라는 의견이 많다.


모 게임의 홈페이지 설문조사 가장 선호하는 해설자 1위로 뽑혔다. 근데 자기 뽑아준 사람도 깔 듯

자기 아들 이성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마저도 모두까기 인형 클라스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8. 기타

  • 학창시절에는 축구선수 출신이었다. 관련 기사.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에 입문했었는데 도중에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야구부로 들어갔다고 한다.[29]

  •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SK 김성근 감독과 함께 대표적인 노력하는 야구인으로 언제나 메모를 손에서 놓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기개발에 힘쓰는 인물. 그런데 모팀의 명예기자인 어떤 분은 공부를 안 한다고 대차게 까버린 적이 있다. 흠좀무.

  • 2회 WBC 준비 과정에서 KBO에 의해 타격 코치로 추천, 선임되었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이 3월 6일 대만전에서 대만을 9-0 우주관광 보내버리고. 다다음 경기인 3월8일 중국전에서 김인식 감독에게 이범호 3루수 기용을 적극적으로 건의, 이범호는 여기서 2점홈런을 때려내면서 중국전 관광에 한몫했다...고 언론에 주장. 비록 감독이 굳이 부정하거나 하진 않았으니 믿어야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언론에서 띄어준 감도 있고 본인 스스로가 국제전에서는 따로 코치가 상대에 대해서 알려줄수 있는게 없으니 선수들이 잘 한 거라고 밝혔다.

    이 양반 예전에도 잘한 건 자기 덕 - 못한 건 선수 탓으로 돌리는 데에 일가견 있기에 문제. 예전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LG 감독 당시의 문제들을 은근슬쩍 선수(피해자)들 탓으로 돌려 공분을 사기도 했고.

  • 한편으로는 당시 LG 선수들이 태업했다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기에 선수들 탓을 안 하기도 뭣 하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LG가 2013년에 비밀번호를 끊내서 그런 얘기는 거의 없어졌다.

  • 김태균의 타법을 사무라이 타법으로 비유해 욕을 배부르게 먹기도 했다. 단순한 비유일 뿐인데 뭐가 문제냐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순철 자신조차 사무라이의 검 궤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주제에 꼭 그와 같은 비유를 할 필요는 없었지 않았나 하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 사무라이 재팬 디스를 위한 발언이였다.

  • 2009년, MBC ESPN에서 다시 해설가로 돌아왔으며, 다시 거성 소리를 들으면서 열심히 깠다. 그를 감독으로서 겪어본 엘빠들을 제외한 타팀 팬들은 이렇게 작두타듯이 설명하는 그가 왜 감독으로 실패했는지 이해를 못 했다. 하지만 이순철이 다시 KIA 코치로 가자 타팀 팬들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 덧붙여 마구마구에서도 그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MBC ESPN에서 나왔던 명대사를 많이 써먹는 듯. 아래는 방송에서 나왔던 어록.

    • "하하 저희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 "저는 지금 말초신경이 팍팍 서고 있습니다"
  • - 2007년 5월 4일 사직 경기에서 3:1로 지고 있다가 8회말 1사 1루에서 이대호오승환에게 동점 투런 홈런을 뽑아내자 한 명언. 이대호의 마지막 타석이 되자 아무런 말이 필요 없다면서(심지어 한명재 캐스터까지 약간 자제시키면서) 그냥 지켜보겠다고 했는데 곧이어 이대호의 홈런이 터졌다[30][31]. 관련 영상

    • "저는 저런 손맛을 아는데요, 한명재 캐스터는 아세요?"
    - 홈런을 한번도 못 쳐봤다는 한명재 캐스터를 놀리면서 한 말. 관련 영상

    • "시청자 분들은 아마 이해를 못하실겁니다."

    • "제 말이 맞죠? 무슨 쪽집게처럼 생각드시겠지만 제가 야구를 해봤기 때문에 아는 겁니다."

    • "한명재 캐스터, 지금 이 상황이 뭔지 아시겠어요? ('너는 모르겠지'란 뉘앙스)"[32]

    • "넘어갔어요. 소름"

    • "왜 이러십니까." (해태 타이거즈 시절 활약상이 나오고 한명재 캐스터가 칭찬하자 정색하면서)

    • "...방송이나 하시죠." (계속 한명재 캐스터가 과거의 활약상을 칭찬하자)

    • "아 왜 그러세요. 자꾸 그러시면 해설 안하고 묵언수행할겁니다." (2014년 4월 15일 KIA-한화전 7회말 시작 직후 정우영 캐스터가 이순철을 포함한 프로야구 레전드를 언급하자.)

  • 그리고 트위터를 시작했다! 이순철의 트위터 경기 해설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써놓고 있는데, 띄어쓰기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다. 기계치는 기계치인가보다(...). 삼성 모바일로 작성했다는게 뜨는것 봐서는 핸드폰으로 올리는것 같다. 점점 띄어쓰기가 잘 되어가는 편. 가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한동안 트윗글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안드로이드폰으로 바꿔서 사용법 익히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여전히 기계치다...

  • 가끔씩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고 철 생각이라고 적어놓아서 야구팬들을 폭소케했다. 흠좀무.

  • 2010년은 자타공인 연장전의(그리고 장기전) 사나이. 방송3사 해설자가 12명정도는 되는데, 2010년 벌어진 36회의 연장전중 9번 중계에서 해설을 했다. 그리고 2010년 최장시간 경기 1, 2위도 역시 이 사람의 몫.

  • 2010년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해설진의 승자예상을 하다가 특유의 비난해설을 하면서 의외의 적중률을 보였다. 역시 모두까기인형. 아니, 밸런스 조절자인가? 그런데 적중했다! 역시 야구 보는 눈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 네이버 라디오볼에서 밝히길 소녀시대 중에선 수영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 여담으로 트위터에 스마트폰 갤럭시 S를 깐 적이 있다.

  • NC 다이노스의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오른 적도 있었다. 밑에 후보로 거론되는 감독들의 인터뷰가 있는데 이순철의 인터뷰를 보면 내심 복귀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수 있겠다. 링크 그러나 결국 김경문두산 베어스감독이 선임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 하지만 이렇게 까는 그도 2011년 5월 12일 방송중에 대놓고 이 선수에게 디스를 당했다. 수훈선수 인터뷰 중. (손아섭 : 제 수비에 대해서 믿어주시고 봐주시면 좋은 모습 보여드릴테니 비난보다는 격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순철 : 저 비난 안했는데요. 손아섭 : 다 들었어요.) 영상

  • 넥센 히어로즈 투수 김성태의 보크를 지적했다가 김성태에게 트위터로 제대로 까였다.

  • 2011년 9월 2일 마구마구 홈페이지에 불암이 그린 레전드 카툰이 올라왔다. 허허 제가 제 소개를 하려니까 어색하네요카툰 보기

  • 한국의 첫 여성 승마선수로 알려진 이미경씨와 결혼했다. 연세대 재학시절 마주치자마자 이순철이 첫눈에 반해 열심히 대쉬한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 여담이지만 천호식품의 대표이사인 김영식 회장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 얼굴부터 시작해서 헤어스타일, 옷 입는 것과 앉아있는 폼까지 똑같다고. 말투 차이가 있는데, 이순철은 전라도 사투리, 김영식 회장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 차이. 마침 천호식품의 광고가 야구경기 공수교대 광고시간에 나가서 광고 출연설이 나오게 만들었다.

  • 2014년 8월 6일 NC 대 롯데의 사직 경기에서 관중이 경기장에 쓰레기를 투척하자 저런 관중은 다시는 야구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깠다. 그러나 그 말을 한 당사자가 2006년 방망이 투척 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방망이는 이물질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 2014년 8월 6일에는 송승준이 타구에 급소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끈기있는 모습을 칭찬하며 (송승준의)"가슴을 보십시오."라고 말했는데 하필이면 그 때 방송화면으로 치어리더의 가슴모습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가슴드립 1분 24초부터

  • 2014년 12월 1일 기사를 통해 FA시장에 거품이 지나치다며 나름의 대안을 내놨는데...이순철의 진심 "FA 광풍 대안? 보호선수 15명으로 줄여라" 그야말로 FA 제도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방법을 해법이랍시고 제시해 야구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안그래도 KBO의 현 제도로는 준척급선수들이 FA를 신청하기 어려움이 따르는기에 보상제도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몇년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는 실정에서, 오히려 보호선수를 줄여야한다는건 그냥 특A급 선수가 아니면 FA는 꿈도 꾸지 말라는 소리밖에 안되는 셈이다. 여러모로 선출이 할 만한 발상도 발언도 아니라는게 중론.

  • FA시장 이야기 이전에 김광현, 양현종, 강정호포스팅을 하여 메이저리그에 간다는 이야기로 한참 달구어져 있을 때 양현종이 가장 전망이 밝고, 그 다음이 김광현, 강정호가 가장 전망이 어둡다는 의견을 내었다. 하지만 결과는 양현종이 가장 참담했고 강정호는 김광현과 양현종의 포스팅 금액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포스팅 액수가 나왔다. 역으로 가나요

9.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1985 해태 타이거즈 99 369 .304 112 18 5
(3위)
12 50 67
(1위)
31
(3위)
.477 .365
1986 88 319 .257 82 14 3 14
(5위)
40 53 19 .451 .325
1987 98 265 .215 57 12 1 6 29 34 12 .336 .291
1988 108 406 .313 127
(2위)
26
(1위)
2 13 52 81
(1위)
58
(1위)
.483 .404
1989 101 373 .241 90 13 1 12 46 58 24 .378 .333
1990 114 381 .249 95 20 0 12 51 65 26
(2위)
.396 .356
1991 115 434 .276 120 21 3 17 50 83
(3위)
56
(1위)
.456 .373
1992 122 492 .309 152
(1위)
22 3 21 76 101
(2위)
44
(1위)
.494 .389
1993 102 367 .253 93 12 3 11 44 47 29
(3위)
.392 .341
1994 85 314 .322 101 19 2 8 54 42 18 .471 .386
1995 96 328 .201 66 12 2 7 30 36 13 .314 .278
1996 111 351 .219 77 13 2 5 41 49 26
(5위)
.311 .304
1997 77 216 .213 46 6 2 5 28 31 12 .329 .296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1998 삼성 라이온즈 72 160 .213 34 9 1 2 21 21 3 .319 .291
KBO 통산
(14시즌)
1388 4775 .262 1252 217 30 145 612 768 371
(5위)
.411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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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연세대학교 동문이기도 하며, 승마 국가대표를 지냈다.
  • [2] 시즌 도중 중도 사임. 감독 대행으로 부임한 인물은 2011~2012년 롯데 감독을 맡았던 양승호.
  • [3] 일본인 이름 같다며 놀리는 사람도 있다.(뒤통수 제대로 친 미즈노 슌페이 같기도 하다.)
  • [4] 불고기 화형식 사건 등으로 김일권과 앙금이 쌓였던 김응용 감독은 대체 자원으로 이순철이 등장하자 그를 차기 리드오프로 점찍은 이후 김일권을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해 버렸다. 그리고 이순철도 이종범이 등장한 후 하위 타선을 맴돌다가 1997년 김창희마저 들어오자 숙청된다
  • [5] 이 귀찮은 모습으로 플레이 하는 것 때문에 김C가 이순철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 [6] 여기서 이순철은 의자를 젖히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7] 나중에 언론에서는 "모든 문제점은 이순철 때문이다"라는 개드립을 쳤다.
  • [8] 이후 1993년 전준호가 75도루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갱신, 1994년 이종범84도루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는다. 이 기록은 2010년대에 접어든 후로도 깨지지 않고 있다.
  • [9] 사실 이 사건은 이순철이 엉겁결에 휘두른 주먹에 공교롭게도 유남호 코치가 얼굴을 맞아서 시작된 것이다.
  • [10]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만화로 알아보는 이순철 선수 생활
  • [11] 2006년 시즌 도중에 짤리긴 했지만.
  • [12] LG팬을 비롯한 대개의 야구팬은 네이버의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그 댓글란을 중심으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고 긴 분석기사나 칼럼은 자세히 읽어보지 않는다. 3인방을 이순철이 퇴출시켰다고 믿고 있는 LG팬들 뿐 아니라, 프런트가 퇴출시켰다는 주장을 지지하며 이순철 실드치던 KIA팬들 역시도 이 출처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결론은 그냥 감정적인 문제
  • [13] 물론 이러한 사실이 이순철의 무능과 다른 여러 삽질, 프런트에 대한 과잉충성똥꼬빨아주기을 덮을 수는 없으며 얼마든지 팬으로서 욕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감독감이 전혀 아닌 인물을 감독으로 앉히고 입맛대로 팀을 주물러댔던 프런트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후에도 LG프런트는 팬들을 뒷목잡게 하는 행보를 꿋꿋이 밀고나간다.
  • [14] 이순철과 이효봉이 말아먹은 황폐해진 LG의 신인팜을 재건한 사람들은 바로 염경엽김진철이다. 이 둘이 비록 팀내 파벌을 형성했다는 루머로 욕먹긴 하지만 염경엽은 2008년 드랩에서 오지환, 문선재, 정주현, 한희 등을 지명해 팀의 중심 유망주로 만들었고, 2009년에 온 김진철이 지명한 신정락, 임찬규, 유강남, 이천웅, 영진, 조윤준, 최성훈, 강승호 등은 곧 다가올 팀내 세대교체에 대비할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이순철 시대의 신인발굴 실패는 독이 되고 만 셈.
  • [15] 흔히들 이 말을 우규민에게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블로그를 검색해 보면 우규민이 아니라 이동현에게 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정작 우규민은 저 때 소화 이닝 수도 적었고 무엇보다 보여준 것도 많지 않았다. 우규민에게도 (밑에도 나오겠지만) 데드볼에 맞은 상태에서(것도 머리를!) 연투를 시켰다는 미 친 놈 아 소리 들을 만한 일화가 있지만...
  • [16] LG가 데려온 보상선수들은 윤지웅, 나성용, 임정우인데, 이들은 2011년도 신인지명에서 높은 순번(윤지웅이 1번, 나머지 둘은 3번)이었다.
  • [17] 5년 뒤에 SK 와이번스에서 데자뷰 되었다.
  • [18] 이상훈이 두산 코치가 됬다고 비난하는 LG팬도 이순철에 의해 쫒겨난 것을 잘했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가 현역일때는 LG하면 이상훈!!, 이상훈하면 LG!!라는 말이 있었고 LG를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며 수억원대의 연봉을 포기할 정도로 LG를 사랑했던 이상훈이 더 이상 LG 트윈스에게 더 이상의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손을 놓아버린 것의 발단을 제공한 것 자체가 평생까임권이다.
  • [19] 구체적으로 보면 추승우를 강제로 살찌워 거포로 만들려는 같은 흑역사급의 백인천과 비슷한 짓을 했었다. 하지만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추승우는 빠른 발을 살려 똑딱질을 하는 쪽이 더 적합했다.
  • [20] 이렇게 코치로선 괜찮지만, 감독감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유백만, 유남호, 서정환, 박종훈 등도 비슷한 경우다. 이순철의 경우는 LG 팀컬러와는 상성이 극단적으로 안맞았던게 더 욕을 먹는 원인이 되었다.
  • [21] 이성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화에 지명되었다가 연세대에 진학했다. 이후 2014년도 신인드래프트두산 베어스에 지명되었다.
  • [22] 여기서는 오래 있지 않다 보니 키우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그래도 별 쓴 소리 안 나오고 넘어간 걸로 봐서는 무난하게 지나간 듯.
  • [23] 이 때는 사실상 1년도 안 있으면서 선수들과 감독, 프런트가 분열된 상황이었는데 이택근의 주루 센스를 키우는 등 오히려 선방했다.
  • [24] 5월 19일로 추정
  • [25] 이용규와 최희섭이 해당되나, 최희섭으로 추정
  • [26] 관련기사 이순철의 지인이 "최근 선 감독이 따로 면담을 하고 이 수석에게 (경질에 대한)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27] 조범현은 우승한 후 발언권이 높아진 후에야 자기에게 껄끄러운 수석코치인 김종모를 자르고 자기 마음대로 조각을 할 수 있었다.
  • [28] 거기다가 KIA 타이거즈는 역대 모든 감독들, 즉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조범현을 모두 계약 내에 자르는 무리수를 두어왔다. 이는 그룹 감사에서 누누히 지적되어온 부분이다. 때문에 선동열은 좋든 싫든 계약기간인 3년차까지 간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 [29] 2014년 FIFA 월드컵 당시 정우영 SBS 캐스터는 이순철 위원이 스티븐 제라드프랭크 램파드도 깠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힌 바가 있다(…). 사스가 모두까기!
  • [30] 사실 이 경기에서도 이순철은 이대호가 4월 29일 두산전에서 도루하다가 다쳐서 그 앞 두 경기 결장했다고 까고 있었다.
  • [31] 마구마구에서도 이태산이대호가 나오면 이 말을 말한다. "자, 이대호 선수 타석이군요. 저는 말 하지 않겠습니다. 보시죠." 사실 이대호말고도 모든 타자가 들어설때도 말은 안한다.
  • [32] 한때 '한명재 캐스터 무시하는거냐'란 비난도 있었는데 사실 두 사람 사이는 굉장히 친하다. 그냥 농담 정도로 생각하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