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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축구인)

last modified: 2015-03-22 02:39:52 Contributors


이름 이상윤(李相潤 / Lee Sang-Yoon)
생년월일 1969년 4월 10일
국적 대한민국
출생 대전광역시
179cm
프로입단 1990년 일화 천마
선수시절 소속팀 일화 천마 (1990~1999)
FC 로리앙 (1999)
성남 일화 천마 (2000)
부천 SK (2001)
국가대표 29경기 12골
코치 / 감독 부산 아이파크 코치 (2011)
충남 일화 천마 감독 (2012)
성남 FC 수석코치(2013~2014)
성남 FC 감독대행 (2014)
별명 팽이, 토끼, 가레스 상윤[1], 사냐 아빠(...)

1993년 K리그 MVP
홍명보(포항제철 아톰즈) 이상윤(일화 천마) 고정운(일화 천마)

199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기근
FW
고정운
MF
김현석
MF
이영진
MF
김주성
MF
최강희
MF
이상윤
DF
용환
DF
현용
DF
테드
GK
풍주
199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상해
FW
상철
MF
판근
MF
신태용
MF
동해
MF
이상윤
MF
김봉길
DF
영일
DF
종화
DF
동관
GK
사리체프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2.1. 리그
2.2. 대표팀
3. 축구 해설자/지도자
4. 명언


1. 개요


엠스플! 남바완이에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성남 FC 전 감독대행. 현재 MBC SPORTS+ 해설위원.

선수 시절에는 빠른 발을 무기로 뛰던 오른쪽 윙어 혹은 측면 미드필더였다. 저돌적인 클래식 윙어들밖에 없었던 당시에는 희귀한 기교파 윙어로서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른바 '헛다리짚기'를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인 선수이며, 상대를 등졌다가 턴 해서 돌아나오는 페인트 모션은 쓸 때마다 화제를 불렀다. 단순한 피지컬과 주력을 이용한 돌파와 치고 달리기 일색이였던 윙어들 틈바구니에서 기술로써 리그를 제패하고 대표팀까지 승선한 근성가이.

같은 시기 대표팀과 리그에서 한솥밥을 먹은 고정운과 비교하면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축구선수 치고는 피지컬이 약간 부족했다. 그래도 신태용, 김도훈, 남열, 안익수, 고정운 등과 같이 성남 일화 천마의 3연패를 이끈 레전드로 존경을 받고 있다. 178cm에 체중은 68kg였다고 하는데, 그나마 평상시 체중이 저렇고, 훈련을 하고나면 65kg 시합을 뛰고나면 62kg까지 떨어졌다니... 흠좀무

A매치 29경기 12골을 기록한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A매치 출전경력이 다소 적어보이지만 득점률이 40%에 달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큰 경기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었던 장면이 많아서 골든 보이 이미지가 있다. 지금은 황선홍의 골키퍼 앞에서 몸을 날려서 공중에서 차 넣은 결승골만이 기억되는 98년 4월 1일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완전 구석에 꽂히는 절묘한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넣은 선수가 바로 이상윤이다.

선수생활을 은퇴한 이후, 틈틈히 축구 해설자로 활동했으며, 특유의 가래 끓는 걸걸한 목소리가 마치 막걸리를 마시고 해설을 하는 것 같다고 해서 이른바 '막걸리 해설'로 불리면서 더욱 유명해졌으며,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이상윤 어록'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상윤은 술을 전혀 못 마신다고 한다.#

2. 선수 시절

2.1. 리그

1990년 성남 일화 천마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특히 1993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일화가 K리그 3연패를 하는데 주역이었다.

1993년 K리그 MVP를, 199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95년 20-20 클럽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 30-30, 2001년 40-40 클럽에 가입했다. 이 스탯만 봐도 알겠지만 리그에서 수위권을 다툴 만한 공격력을 가진 미드필더였다. 통산 71득점.

여담으로 성남 일화 천마 항목을 보면 나오지만, 팀의 연고이전의 역사가 좀 복잡하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1990년 서울 시절에 데뷔해서, 천마 시절에 리그 3연패 위업을 달성했고, 성남 일화 천마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개인적인 리즈시절을 맞는다.

다만, 한창 절정을 달리던 시기 뜻밖의 풍파를 겪는데, 1995년 팀내 최다 득점자였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여겨서 이적을 요청했다가 박종환 감독에게 찍혀서 임의탈퇴 신분이 된다. 결국 3개월 동안 잉여취급을 받다가 박종환 감독에게 싹싹 빌어 팀에 복귀했지만, 이 경험은 상당한 상처가 된 듯 하다.[2]

이후, 빠따 박종환 감독이 팀과 불화를 겪고 해임된 뒤 1997년 벨기에인 레네 감독이 부임하면서 이상윤을 중용했고, 이때 활약을 눈여겨 봤는지 차범근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부른다. 훗날 은퇴 한 뒤 인터뷰를 보면 레네, 차범근 두 감독에게 고마운 감정을 숨기지 않지만 박종환 감독에 대한 말은 딱히 없다(...). 삐돌이[3]

1999년 서정원과 함께 프랑스 르 샹피오나에 진출, FC 로리앙에서 뛰었으나 4경기 출장에 공격포인트(득점+어시스트) 0으로 끝났다.(영문 위키백과에서 참조) 이후 2000년에 다시 소속 팀인 일화로 복귀했다. 2001년 부천 SK로 이적하여 한 시즌을 뛰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2. 대표팀

1990년 노르웨이전을 통해 대표팀에 데뷔했는데,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 골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재미있게도 이 날, 같이 A매치를 데뷔했던 선수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역임했던 홍명보.

이후 황선홍, 홍명보와 함께 차세대 유망주로 꼽히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에 뽑혔다. 그러나 황선홍-홍명보 두 사람은 본선 경기에 출장했지만 이상윤은 를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1992년 다이너스티컵을 끝으로 한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었다. 지금은 좀 쇠퇴한 감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국가대표팀은 전통적으로 뛰어난 윙어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고정운, 서정원 말고도 정윤, 하석주 등 쟁쟁한 선수들과 포지션 경쟁을 벌여야 했으니... 지못미...

그러다 전술한 바와 같이 1998 프랑스 월드컵의 주전으로 뛰면서 일약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특히 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기 직전 후반 42분 극적인 역전골을 넣으면서 대표팀의 에이스로 대접을 받는다. "그저 한 골 넣은 게 뭐가 대단한가?" 궁금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한다. 1996년 아시안컵 식스투 참사 참패 이후로 대중들은 국가대표팀에 대한 불신의 시각을 갖고 있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서 아무리 못해도 일본보다는 잘 해야 한다! 납득할 만한 성적을 내야했다. 또한, 소련 붕괴 이후 새롭게 등장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구소련의 축구실력을 어느 정도 이어받은 경계대상이었다. 지금이야 꿀대진표 소리를 듣지만, 당시엔 그런 암울한 분위기가 은근히 깔려있었다.

그런데, 이 극적인 역전승 덕분에 기분 좋은 2연승으로 승점을 따내면서 최종예선에서 한발 앞선 국가대표팀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원정을 떠나는데... 이렇게 도쿄 대첩의 서막이 올랐다!

결국 대표팀은 일찌감치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고, 예선 내내 최용수, 서정원, 이상윤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대중들은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본선 직전 한중 친선전에서 황선홍이 불의의 부상을 입고 전력에서 이탈하지만 이 조차도 그리 염려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당시 분위기는 한마디로 '황선홍이 없어도 최용수, 이상윤이 골 넣어서 이길거임.' 이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본선 첫 경기 멕시코 전에서 이상윤은 정줄을 놓았다. 좋게 말하면 컨디션 난조겠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플레이를 연발하면서 삽질이란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날 이상윤은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정줄을 놓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결국 가린샤 클럽에 가입하신 하석주의 백태클 퇴장으로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고 멕시코전을 결국 1-3으로 참패를 하게 된다.

훗날, 이상윤이 그 때의 사정을 자세히 밝혔는데..... 1990년대 한국축구의 후진성을 여실해 드러낸 씁쓸한 해프닝이었다. 경기 직전 몸을 풀고 세트피스를 연습하던 도중, 이상윤은 김태영이 슈팅한 공에 얼굴을 맞고 기절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킥 오프(...). 이랬으니 진짜로 정줄을 놓았을 수 밖에.[4] 이상윤 본인도 역시 이 때의 사명감 때문에 억지로 경기를 뛸 것이 아니라 팀닥터에게 상태를 말하고 빠졌어야 했다고 후회스럽다고.

결국 대표팀은 1무 2패로 프랑스 월드컵에서 탈락하고, 이상윤의 영광스러운 시대도 이렇게 아쉽게 끝을 맺었다.

3. 축구 해설자/지도자

1998 프랑스 월드컵 시절 감독이었던 차범근 눈에 들었는지 은퇴 후에 차범근 축구교실의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MBC ESPN의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특유의 막걸리 해설로 주목을 받았다.

해설자로서의 평가는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편인데, 이런저런 잡학이나 유쾌한 농담을 늘어놓으며 재미있게 해설하려 한다는데는 다들 동의하지만 갈수록 그게 심해져서 해설의 깊이가 부족하다. 오죽하면 그가 해설을 맞으면 시끄럽기만 하다며 아예 사운드 끄고보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직접 뛰어본 축구선수가 아니면 알기 힘든 미묘한 부분을 제대로 짚어준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그것도 1~2년이지 계속 발전없이 선수시절 경험으로 우려먹어서 진작에 바닥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만만찮다.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 톤도 호불호를 극명하게 가르는 요소.

선수시절에도 꽤나 유쾌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해외축구 지식에도 해박하여 아스날 FC를 굉장히 좋아한다. MBC ESPN시절 중계를 하다가 아스날 팬이 된 모양. 자타공인 아스날의 팬이기 때문에 아스날 FC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그래서인지 2009-2010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마라도나의 재림이라 불리는 선수에게 4골을 얻어맞으며 아스날이 침몰하자... 나중에는 하라는 해설은 안 하고 거의 흐느끼듯 실소만 남겼다. 덕분에 리오넬 메시를 제치고, 그 날 검색어 순위를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ESPN 시절, 아스날이 대승을 거두자 기쁨을 금치 못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캡쳐되면서 첼지현과 함께 '상윤날'이라는 별명도 한 때 있었다. 12-13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는 포돌스키가 추가골을 넣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빠심에서 우러나온 각종 효과음들을 쏟아내었다!!이야아아 우워어어 오호호 오오오요 또다른 별명인 '사냐 아빠'도 아스날 FC 선수인 바카리 사냐를 좋아하기 때문에 붙었다. 자기 아들도 축구를 하는데, 포지션이 라이트백인데 바카리 사냐같은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스날 뿐만 아니라, 기술축구를 하는 팀에게 호의적인 해설을 하는 편이고 자신의 현역시절 스타일같은 빠르고 기술적인 축구가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

해설직을 할 때는, 풋볼N토크 땜빵전문(...)이기도 했고 내심 고정패널 자리를 노리기도 했다. 그만큼 자주 나오기도 했고. 2013년엔 또다른 축덕용 인터넷 방송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의 1주년 특집 공개방송에 특별 게스트로 초대되어 "이청용보단 제가 더 월드클래스였죠!" 등의 거침없는 드립으로 의외의 꿀재미를 선사하였으며, 역시나 고정출연에 대한 야망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앞으로의 출연도 기대해 볼 만 할듯하다.

2011년 부산 아이파크의 코치로 재직하다가 6개월도 안 되어서 사퇴. 2012년 여자축구 WK리그 충남 일화의 감독으로 선임이 되었으나, 구단 운영주체인 통일스포츠의 갑작스런 팀 해체 결정으로 인해서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안습(...) 이후 다시 엠스플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13년에는 엠스플뿐만 아니라 tbs 교통방송에서도 K리그 클래식의 해설을 맡았다.

제대로된 사냐 아빠 인증(...)좌날두 우메시의 사이에 주목

빠따 박종환 감독 부임 이후 2013년 12월부터 성남 FC의 수석코치로 선정되었다. 이에 축구팬들은 "더 이상 해설을 듣지 못하게 되는것 아니냐?"면서 아쉬워했다.#

그런데, 2014년 4월 22일부터 성남 FC명불허전 빠따 박종환 감독의 또 다시 선수 구타 파문으로 인해 자진사퇴로[5]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수석코치에서 임시로 감독대행으로 승격이 되었다.#

5월 3일 포항을 상대로 3-1로 첫 승리를 거두고 나서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였다.#

월드컵 휴식기 동안 정식(?)으로 감독대행 자리에 올라 성남 FC의 2대 감독 후보에 한발 다가섰지만, 팀이 하위 스플릿에서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형편이라... 그러나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의 제2 부심으로 날카롭게 오프사이드자기 팀 선수의 노골를 잡아내는 모습을 보이며 특별 영상까지 제작되었다.

이후 팀의 성적 부진이 계속되면서 2014년 8월 26일 감독대행직에서 경질당했다.
대행 해임하고 또 대행...성남 파행 운영 감행

이후 아프리카TV에서 소대수 캐스터와 함께 축구 해설을 하고 있다. 주로 EPL 경기를 중계하면서, 역시나 아스날에 대한 무한 빠심을 드러내고 있다. 연말 아프리카대상에서 석주일, 이병훈 등과 함께 특별상을 수상하여 상금 100만원도 득!

10월 26일 전북 vs 수원 경기부터 MBC SPORTS+의 해설자로 다시 복귀했다.

2015년 AFC 아시안컵 8강 일본 대 UAE전 해설을 맡았는데,이날 경기에서 UAE 응원하는 편파하는 해설을 거듭했다.(물론 이상윤 기존 이미지 때문에 편파해설 하더라도 다들 웃고 넘어간다) 연장을 거쳐 승부차기까자 일본이 골을 넣자 아쉬워하고 UAE가 골을 넣자 어린아이 처럼 좋아하며 환호하는 데에서 해충들에 의해 국적을 의심받았다(...).

4. 명언

  • 남바완이에요!
  • 승리의 비둘기
  • 양질의 배추머리
  • 차도남
  • VIP 식사권
  • 후지산이 무너집니다..
  • 위기 뒤에 찬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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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레스 베일과는 전혀 상관 없다. 특유의 걸걸한 가래끓는 목소리(...)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막걸리를 마시고 해설을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막걸리 해설이라고 부른다.
  • [2] 박종환이 2014년에 폭행사건을 '또' 일으켜서 성남 감독에서 사퇴한 이후 임명된 감독이 이상윤이라는게 아이러니하다.
  • [3] 하지만, 박종환 감독의 지도방식이 너무 후진적이라, 지금보다 똥군기가 훨씬 심하던 옛날에도 선수들과의 마찰이 엄청나게 많았다. 딱히 이상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 심지어 2014년에도 선수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켜 사퇴한 것을 보면...
  • [4] 2011년 한일전에서 부상당한 수비수 김영권 대신 투입한 박원재마저 슈팅을 얻어맞고 쓰러지자, 재차 박주호로 교체했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당시 박원재가 일시적으로 '맛이 간'게 또렷이 영상으로 잡혔다.
  • [5]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논란이 일어난 후의 "자진사퇴"는 사실상 짤렸다고 보는게 맞다. 구단 윗선에서 "너 경질 당하고 개망신 당할래? 아니면 미리 자진사퇴하고 체면치레라도 할래?"라는 선택지를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