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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학길

last modified: 2015-01-20 20:10:46 Contributors


박명환 닮았다고 하면 롯데팬들에게 까인다.[1]

LG 트윈스 No.78
윤학길(尹學吉)
생년월일 1961년 7월 4일
출신지 울산광역시
학력 장생포초-부산동성중-부산상고-연세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6년 롯데 자이언츠 1차 5순위 지명[2]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1986~1997)
지도자 경력 롯데 자이언츠 코치(1999~2002)
한화 이글스 코치(2003)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2004~2006)
경찰 야구단 투수코치(2007)
우리 히어로즈 투수코치(2008)
LG 트윈스 투수코치(2010)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2011)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2012)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2014.10.1~)

사람들은 저를 고독한 황태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롯데 팬분들이 계셨기에 전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3.1. LG 트윈스 1기
3.2. 롯데 자이언츠 2기
3.3. LG 트윈스 2기
4. 그 외
5. 선수 시절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롯데 자이언츠의 전 프로야구 선수.

별명은 "고독한 황태자" 이 말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되는데, 당시 다승 1위를 했음에도 선동열이라는 황제에 가려 빛을 못 봤다는 의미도 있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투수다운 투수는 윤학길 하나였다는 의미도 있다. 사실 팀 내에서도 롯데의 초대 에이스 최동원과 그 후의 염종석, 박동희, 주형광 등의 임팩트에 가려진 감도 없지 않았지만 이들이 불꽃처럼 타오르다 사라지는 가운데서도 묵묵히, 가장 오랫동안 마운드의 한 축을 지탱해 온 명투수였다.

최동원의 뒤를 이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까지 롯데를 책임진 에이스, 그리고 크보 역대급의 이닝 이터. 야구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100완투의 전설. 다만 이상군과 마찬가지로 선수와 코치로서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통산기록은 117승 94패 평균자책점 3.33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100완투라는 미친 듯한 기록. 이는 선동열도 하지 못했던 기록[3][4]으로, 그래서 완투 부문 1위에 올랐다. 75승을 완투승으로 따냈다. 20승으로 완봉승 2위[5]에 올랐다. 당연히 이닝도 많이 먹어서 1,863⅔이닝이다.

덤으로 윤학길은 통산 308경기를 출전했는데 이 중에 구원으로 등판한 경기도 상당수라 선발 등판 횟수는 총 231회이다. 즉 231회를 선발등판해서 100완투를 했다는 건데 대충 때려맞추면 두 경기 중 한 경기는 무조건 완투 라는 소리다. 이쯤되면 사람이 아니다.

롯데를 거쳐간 투수들 중 최다승을 올렸다. 생각보다 상복이 박복했는지, 1988년 최다승(18승)으로 다승왕을 따낸 정도가 최고의 기록이다. 상복만 박복한 게 아니라 구단으로부터의 대우 또한 박복했는데, 일례로 1993시즌에 201이닝 12완투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01 이라는 호성적을 올렸음에도 구단에서는 윤학길이 7,800만 원의 고액 연봉자로서 성적부진을 이유로 연봉 재계약 시 연봉을 깎으려 들었다. 윤학길은 12승 투수의 연봉을 깎는다는게 말이 되나며 항의했고 결국 2백만 원 인상으로 마무리했다. 93년의 윤학길은 저 엄청난 이닝과 완투 횟수, 그리고 훌륭한 평균자책점에 비해 승운이 정말 따르지 않았던 시즌이었지만 꼴런트가 승패수만 보고 저런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꼴런트는....

2. 선수 시절

별명답게 고교시절부터 고독한 에이스 생활을 했다.

부산상업고등학교 시절에는 외로운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최동원이 나간 연세대학교에서도 홀로 던지다시피했고,[6] 1984년 1차 지명을 받은 후에도 LA 올림픽 출전을 위해 상무에 입대하고서도 미친듯이 던졌다.

1986년 제대한 후 롯데의 지명을 다시 받아 입단했다. 2년차인 1987년부터 3년 연속 200이닝을 던지면서 신들린 듯한 피칭을 한다. 1990년 잠깐 3승 12패로 주춤했지만[7], 다시 3년 동안 또 연속 200이닝에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올리면서 완벽하게 정착했다. 그러다가 1995년을 끝으로 내리막을 걸어, 1997년 3이닝만 던지고 은퇴한다.

참고로 6시즌이나 200이닝 투구를 하여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시즌 200이닝 투구를 한 투수로 기록되어 있다. 2위는 최동원(1983년~1987년)과 정민태(1996년~2000년)의 5시즌.[8]

염종석과는 반대로 혹사당하면서도 굉장히 장수한 타입으로 혹자는 고무팔이다, 맞춰잡는 타입이라고 하지만 큰 덩치에서 나오는 안정적이고 좋은 밸런스가 100완투로 이끌었다는 게 중론. 실제 윤학길의 투구폼은 덩치에 비해 굉장히 간결하여 야구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쉽게쉽게 던진다는 느낌을 준다. 단 역시 무리는 어쩔 수 없는지 중간중간 1년씩 쉬어가다시피 하는 해가 있었다. 실제 통산 기록을 보면 3년간 빡세게 성적 올리고 1년은 완전히 뻗어서 맛이 간 성적을 올리는 패턴의 반복이다. 이른바 윤학길 3년 법칙. 게다가 이것이 누적되며 30대 중반이 되면서 갑작스럽게 구위가 급저하되어 사람들의 예상보다 이른 36세에 은퇴를 하게 되었다. 혹자는 윤학길이 지금 시대에 태어나 관리를 받고 뛰었으면 송진우 이상으로 장수하는 투수가 되었을거라도 평하기도.

많은 사람들이 안 믿겠지만(특히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 1980년대의 롯데는 1위를 못 해서(…) 포스트시즌이나 한국시리즈를 못가서 그렇지 성적은 나쁜 편이 아니었고, 당시 롯데는 투수 왕국[9]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투수왕국의 황제는 당연히 최동원이었다. 그러나 선수협 파동으로 트레이드된 최동원을 위시해서 1980년대의 투수왕국을 떠받쳤던 투수들이 하나 둘식 떠나가고 새로 들어온 투수들은 시원치 않은 상태에서 1회부터 9회까지 혼자서만 던지면서 망해버린 투수왕국의 유일한 계승자로서 팀 투수진을 거의 홀로 떠받쳐야했던 에이스의 고독함(?)에 대한 동정도 덧붙여 1989년에 스포츠 서울에서 고독한 황태자 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이 별명은 윤학길의 평생 동안 별명이 된다.

사실 이 부분이 윤학길의 비극이자 롯데의 문제점이었다. 많은 이들이 롯데와 투수왕국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중 대표적인 것은, 롯데라는 팀 투수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 롯데의 에이스가 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롯데에 있어서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10]이 취임하기 이전의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 계보는 최동원 - 윤학길 - 박동희 - 염종석 - 주형광 - 손민한으로 이어진다. 이 투수들의 전성기 활약상은 당대 최고라고 단언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누구에게도 쉬이 밀리지는 않았던 투수들이다. 문제는 윤학길을 제외하면 이 선수들의 전성기가 겹치는 시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최동원이 롯데를 떠날 떄가 되어서야 윤학길이 빛을 봤고, 박동희는 그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염종석 역시 마찬가지. 손민한은 부상과 여러 사정으로 전성기가 미뤄졌고, 그 사이에 주형광이 퍼져버렸다. 진짜 웃긴 것은 염종석, 손민한, 주형광이 부산고에서 1년차씩 선후배라는 것이다. 염종석이 3학년일 때 손민한이 2학년, 주형광이 1학년이었다. 그런데 이 세 선수가 롯데에서 제 실력을 같이 발휘한 해는 단 1년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성기가 겹치는 유일한 인물이 윤학길이다. 윤학길만이 최동원과 1년을 뛰어봤고, 박동희와 염종석이 퍼지는 것을 지켜봤으며, 주형광이 에이스로 올라오는 것을 바라봤다.

이 부분이 답이 없는 것으로, 윤학길과 쌍두마차를 이룰만하다 싶은 인물이 나오면 롯데의 혹사에 퍼졌고 다시 윤학길만 믿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투수들 중에서 3명 이상이 동시에 전성기급 기량을 선보인 유일한 시즌이 1992년으로 롯데의 마지막 우승이 있었던 시기이다.[11] 그리고 롯데의 다른 우승은 최동원이 우승한 1984년 뿐이다.

그리고 이 배경은 당연히 투수를 혹사시킨 것도 원인이지만, 롯데의 불펜진이 대대로 약했던 것도 원인이다. 과거 롯데의 계투라고 하면 기억나는 선수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나마 유명한 인물이 마무리 전업한 박동희, 그리고 삼성에서 건너온 노장진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불펜투수가 나눠서 이닝을 먹어줘야 하는 것을 선발 투수, 그것도 대부분은 에이스가 감당해야 했던 것이 롯데의 특징이다. 이것 역시 최동원 이래의 전통이다. 그리고 이것은 롯데의 투수코치들이 대대로 무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학길이 다이닝을 먹은 것은 이런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친 윤학길을 내리고 대신 올릴 계투가 마뜩치 않으니 그냥 선발 윤학길이 끝까지 던진 사례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사실 윤학길이 롯데의 에이스 계보의 한 축을 담당한 선수이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유독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가 큰 경기에서 약한 것도 있었다. 84년 전설을 써내린 최동원과 92년 시즌은 죽쒔으나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펄펄 날은 박동희,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해에 데뷔하여 염라대왕으로 떨쳤던 미친 신인 염종석, 95 플레이오프 MVP였던 주형광에 비해 윤학길이 큰 무대에서 남긴 족적은 거의 미미하다시피하다. 92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이긴 했지만 3차전에 패전투수가 되었고, 95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패를 적립하면서 OB 베어스에게 우승을 헌납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바로 이 점이 큰 경기에 강했던 다른 에이스들보다 평가가 낮은 원인이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가을 야구 티켓을 따기 위해 정규시즌에서 그렇게 미칠듯이 던졌으니 포스트시즌에서는 그 후유증으로 부진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윤학길이 현역으로 뛸 동안 롯데는 92년 우승과 95년 준우승이란 큰 성과를 거뒀지만, 그 이면에는 윤학길의 정규시즌의 맹활약이 깔려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이후 롯데, 한화, 히어로즈 등에서 코치를 역임했으나 처참한 기량만 보여주며 계속 떠돌았다.

양상문, 이상군 등의 화려한 삽질에 묻혀 있어서 그렇지 여태껏 제대로 키운 투수가 거의 없는 크보 최악의 막장 투수코치 중 한 명이다.

3.1. LG 트윈스 1기

2009년 8월 30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영입되었다. 정작 LG의 프랜차이즈 투수였던 김용수는 스카우트 쪽으로 갔다. 그리고 윤학길은 결국 투수 한 명도 제대로 못키우고 짤리고 최계훈 코치가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3.2. 롯데 자이언츠 2기

2010년 10월 21일, 롯데의 새 코치를 맡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롯데팬들은 기껏 양상문을 피해서 좋아라 했는데 그렇게 사람보는 눈이 없나라고 생각했는데 맡은 직책은 투수코치가 아닌 수석코치였다. 박영태와 수석코치라는 단어가 한 문장 안에 없으니 어색하다

선수 시절만 해도 미칠듯한 완투 퍼레이드와 미친 존재감으로 각인되었는데 코치로서는 영 실적이 없다. 양상문, 이상군처럼 대형 사고를 친 적은 없지만 딱히 키웠다 할 선수가 없다. 한마디로 딱 욕먹지 않는 수준의 코치라고나 할까? 거기가 코치로서의 존재감은 오로지 공셔틀로만 기억되고 있다. 빵셔틀이 일진한테 빵 갖다주듯이 투수 교체할 때 공들고 셔틀노릇하는게 별명으로 남을 정도. LG코치일 때는 완투 능력이 병신인 LG 투수진 좀 이닝이터 만들어줬으면 하는 기대도 컸다. 윤학길 자신이 KBO 최고의 이닝 이터였으니 말이다.

2011년 새로 LG의 투수코치가 된 최계훈 투수코치의 성과 덕분에 2010년 LG의 투수코치였던 윤학길은 더더욱 비교가 돼서 까였다.

2012 롯데 자이언츠의 2군 감독으로 보직을 옮겼다. 롯데 2군이 처스 리그에서 막장 성적을 찍으며 역시 고도칸이라는 평가를 받다가, 박준서, 이정민 등 2군에서 콜업된 선수들의 포텐이 뻥뻥 터지며 재평가 분위기가 슬슬 돌았다.고도칸 매직?

그러나 역시 시즌 종료 후 롯데와 재계약하지 못했다. 이유는 2군 리그 꼴찌라는 성적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애초에 롯데 자이언츠 2군에 야수가 너무 부족했던 것과 NC 다이노스의 약진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

3.3. LG 트윈스 2기

2014년 9월 30일 LG 트윈스의 2군 투수코치로 복귀하였다.

4. 그 외

딸인 윤지수는 펜싱 선수이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5. 선수 시절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6 롯데 자이언츠 25 88.0 1 2 2 0 2.76 91 22 40
1987 31 200
(5위)
13 10 1 0 2.57
(7위)
191 65 84
(7위)
1988 35
(7위)
234
(1위)
18
(1위)
10 3
(10위)
0 3.15
(7위)
241 56 123
(2위)
1989 38
(5위)
250
(1위)
16
(3위)
11 2 0 2.70 221 73 141
(3위)
1990 26 143⅔ 3 12 0 0 4.07 157 44 64
1991 34 205
(3위)
17
(2위)
12 0 0 3.25 182 62 99
1992 30 212
(3위)
17
(3위)
5 2 0 3.61 204 61 131
(3위)
1993 28 203
(1위)
12
(8위)
12 0 0 3.01 212 47 92
1994 18 112⅔ 4 7 0 0 5.35 141 28 49
1995 24 159⅓ 12
(10위)
8 0 0 3.28 148 40 71
1996 15 53 3 5 0 0 4.58 55 25 19
1997 4 3 1 0 0 0 12.00 8 3 3
한국 통산
(12시즌)
308 1863⅔ 117 94 10 0 3.33 1851 526 916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1986 0완투 0완봉
1987 13완투
(4위)
2완봉
1988 17완투
(1위)
3완봉
(2위)
1989 18완투
(1위)
3완봉
(5위)
1990 5완투 2완봉
(5위)
1991 11완투
(4위)
3완봉
(2위)
1992 14완투
(2위)
2완봉
(4위)
1993 12완투
(1위)
4완봉
(1위)
1994 2완투 0완봉
1995 6완투 1완봉
1996 2완투 0완봉
1997 0완투 0완봉
통산 100완투 20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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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야갤에서 윤학길사진을 누가 올렸는데 다른 갤러가 "저거 박배추네" 라고 답해서 상당히 까인적이 있다.
  • [2] 1984년에는 1차 7순위로 지명되기도 했다. 상무 입대와 LA 올림픽 참가로 인해 입단을 보류한 듯.
  • [3] 선동열은 의외로 통산 146승 중에서 절반 가까운 68승이 구원승이다. 이는 선동열을 조커처럼 활용했던 김응용의 기용법 덕분이기도 하다.
  • [4] 100완투가 대단해보이지 않는 분들을 위하여 설명하자면, 10시즌 만에 100완투를 했으니 1시즌에 평균 10완투를 하고 간다는 데드볼 시절에나 나올 만한 기록이다. 랜디 존슨이 22시즌만에 100완투를 했다는 걸 기억하자. 투수 분업화가 이루어진 이 시점에서는 나와서도 안 될 기록이다. 2000년대 후반에 그 이닝 잘먹는다는 류현진도 한 시즌에 6완투가 최다 기록이다.
  • [5] 1위는 선동열의 29승. 한참 후에 정민철이 20승을 거두며 공동 2위가 되었다.
  • [6] 이때 윤학길이 상대해야 했던 고려대의 투수로는 선동열, 박노준 등등이 있다.
  • [7] 근데 이 주춤했던 해에도 2승이 완봉승이다. 이 시기는 3년동안 무리한 피칭의 영향으로 다소 구위가 떨어져 있었다. 팀 타선의 문제가 아니라….
  • [8] 최동원과 정민태의 경우 연속 시즌 200이닝이다. 윤학길은 1990년만 아니었다면 7년 연속 200이닝도 가능했다.
  • [9] 부산지역은 예부터 꾸준히 특급 투수들이 무더기로 나온 지역이다. 다만 롯데 에이스 계보를 보면 알수 있듯이 혹사로 인해서 선수 생활을 말아먹은 케이스가 많다. 이 외에도 레전드의 고향 충청도, 현재 초강세를 보여주는 인천 경기, 메이저리거들의 고향 호남지역을 빼놓을 수 없겠다.
  • [10] 로이스터 감독을 통해서 롯데 팬들이 된 이들은 과거 롯데의 역사를 뒤져보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로이스터 감독 시기처럼 장타가 펑펑 터진 적도 없고, 손민한을 제외하면 에이스가 마땅치 않았다고 하지만 10승대 투수가 3, 4명씩 나온 적도 없다.
  • [11] 윤학길, 박동희, 염종석이긴 한데, 이때도 사실 박동희의 정규시즌 성적은 방어율 4점대로 상당히 우울했다. 1992년 시즌 박동희의 임팩트는 순전히 포스트 시즌에 올라와서 기록한 성적에 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