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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균

last modified: 2015-02-05 14:58:33 Contributors



이름 윤동균
생년월일 1949년 7월 2일
출신지 강원도 삼척시[1]
학력 동대문상고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2년 OB 창단멤버
소속팀 OB 베어스(1982~1989)

OB 베어스의 전 야구선수이자 전 감독. 등번호는 10번.

OB 베어스 등번호 10번(1982~1991)[2]
윤동균(1982~1991) 문희성

두산 베어스 역대 감독
이재우 (1991) 윤동균(1992~1994) 김인식 (1995~2003)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야구는 대전에서 시작했다. 대전 문창초등학교와 충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동대문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배명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투수 유망주였지만, 연습경기 도중 팀 동료의 머리를 맞추는 사건 때문에 이후 투수로서의 자신감을 상실, 야수로 전향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업은행, 포항제철에서 실업야구 선수를 했으며,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들어와 1번과 3번을 오가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도를 했다. 1989년 8월 17일 잠실 롯데 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크보 사상 첫 은퇴기념 경기에서 적시 2루타를 치며 큰 인상을 남겼다. 통산 594경기 출장에 0.285의 타율과 277타점을 기록했다.

이후 OB의 코치를 하다가, 1991년 이재우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임하자 감독대행을 맡고, 이듬해 프로선수 출신 1호의 감독에 올랐다. 1992년에는 시즌을 5위로 마감했지만, 1993년에는 시즌 3위까지 올라 준플레이오프에 오르는 등 선전을 하긴 했었다.

그러나...

OB 베어스 항명파동과 연루되어 1994년 감독직을 물러났다.[3]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그 후 야구계에서 완전히 떠나 음식점 경영 등 개인 사업을 하다 2001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코치를 맡아 야구계에 복귀했지만 2002년 말에 이광환 감독이 경질되면서 코치직에서 사퇴했다.

비록 성적에 너무 부담을 못이겨 경력에 큰 흠집을 남겼지만, 김민호, 안경현, 임형석, 장원진 등 훗날 OB의 황금기를 이끄는 선수들을 발굴해 1995년 OB 베어스의 창단 두 번째 우승의 초석을 다졌다는 호평을 듣기도 했다.

현재는 KBO에서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youtube(vAGYrbyiOqk)
여담으로 OB 베어스 초창기의 얼굴마담으로서 광고 모델로 자주 기용됐다. 1990년대 초반 지금도 가끔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D모 제약의 소화제의 광고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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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야구를 대전에서 시작했으나 실제 출생지는 강원도 삼척 원덕면이라고 한다. 류중일이나 이만수처럼 야구를 시작한 곳이 고향으로 잘못 알려진 것과 유사 사례.
  • [2] 사실 그의 등번호였던 10번이 영구결번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 [3] 이 사건으로 OB 베어스의 잔여 경기 몰수패가 논의되었으며 결국 윤동균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선수단의 대대적인 징계로 막을 내렸다. 사태의 원인은 감독의 책임이 크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물러난 건 감독 혼자라는 면에서 억울한 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