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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투 코엘류

last modified: 2015-04-02 15:33:48 Contributors


한때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콧수염. 선수시절부터 기르기 시작한 콧수염이다.


어째 둘 다 표정이 떨떠름하다 복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콧수염을 밀었다.

이름 움베르투 코엘류 (Humberto Coelho)
생년월일 1950년 4월 20일
국적 포르투갈
출신지 세도페이타
포지션 센터백
유스팀 라말덴세 (1964~1966)
SL 벤피카 (1966~1968)
소속팀 SL 벤피카 (1968~1975)
파리 생제르맹 FC (1975~1977)
라스 베이거스 퀵실버스 (1977)
SL 벤피카 (1977~1984)
지도자 SC 브라가 (1985~1986)
SC 살게이로스 (1986)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1997~2000)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2000~200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3~2004)
알 샤바브 FC (2005~2006)
튀니지 축구 국가대표팀 (2008~2009)
국가대표 64경기 7골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3.1.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3.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4. 기타


1. 개요

포르투갈 출신의 전 축구선수 및 전 축구 지도자.

2. 선수 시절

선수시절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 홍명보처럼 리베로 역할을 맡으며 공격에도 가담해 포르투갈프란츠 베켄바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리더십도 상당해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는데 그의 전임 주장이 바로 에우제비우였다.

그러나 선수로서 세계적인 인지도는 떨어졌는데, 이는 그가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시기가 포르투갈의 암흑기였기 때문. 1966년 월드컵 반짝 3위 이후 20년 동안 월드컵 본선무대도 밟아보지 못했고 심지어 유로컵조차 예선통과를 못 하던 시기가 정확히 코엘류가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시기와 겹친다(...).

SL 벤피카 소속으로만 360경기에 출전한 레전드이고, 잠시 파리 생제르맹 FC미국 NASL의 라스베가스 퀵실버스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여담으로 라스베가스 시절 팀 동료들이 굉장했는데 펠레에우제비우였다. ㅎㄷㄷ[1]

1984년에 SL 벤피카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은퇴했다. 프로 통산 424경기 60골, A매치 통산 64경기 6골을 기록했다.

3. 지도자 시절

3.1.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포르투갈 감독직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지도자로서는 이력이 일천하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루이스 피구후이 코스타를 필두로 한 이른바 골든 제너레이션의 개인능력을 극대화하는 전술로 팀을 착실하게 만들어 나갔다.

1998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독일에게 지지 않는 저력을 보여줬으나 우크라이나에게 발목이 잡히며 승점 1점 차이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유로 2000 예선에서는 루마니아에게 1패를 당하며 조2위로 밀리긴 했으나, 기존의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앙 핀투 등에 더하여 시망 사브로자, 세르지우 콘세이상, 벨 사비에르, 울레타 등이 팀의 주축으로 기용되면서 전 포지션에 구멍이 없는 팀이 완성되었다. 누누 고메스, 등 젊은 자원들이 발탁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유로 2000 본선에서는 독일, 잉글랜드, 루마니아와 A조에 배정받게 되었다. 당시 중론은 전통의 강호 두 팀과 다크호스 두 팀이 한 조에 묶여 죽음의 조라고 부르면서도 당시만 해도 유럽축구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포르투갈이 통과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평이 많았다.[2]

그러나 이러한 평가가 무색하게 포르투갈은 첫 경기부터 A조 최강으로 꼽히던 잉글랜드에 3-2 역전승을 거둔다. 전반 초반 베컴의 크로스를 받은 폴 스콜스스티브 맥마나만에게 두 골을 연달아 내주며 역시 포르투갈은 안되나 싶었지만, 루이스 피구가 벼락같은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주앙 핀투와 누누 고메스가 각각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으며 명승부를 마무리지었다. 이 경기는 명승부답게 환상골이 속출한 경기로 유명한데, 피구의 중거리슛은 잉글랜드 골키퍼 이비드 시먼이 꼼짝못하고 공만 쳐다본, 유로 2000 포르투갈 하면 항상 자료화면으로 나오는 그 유명한 골이다. 수비수 발에 맞고 굴절이 됐네 안됐네로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주앙 핀투의 골은 수비를 끌어낸 피구가 우측에 빠져 있던 루이 코스타에게 준 공을 루이 코스타가 정확한 크로스를 올렸고, 이 공을 주앙 핀투가 니어 포스트 방향으로 다이빙 헤딩을 하며 파포스트에 공을 맞추며 득점한, 극한의 헤더 테크닉을 선보인 골이었다. 누누 고메스의 마무리골 역시 루이 코스타의 30미터짜리 전진패스가 만들어낸 작품.

2차전 상대는 예선에서 일격을 당한 바 있던 루마니아였는데 0-0 팽팽한 균형이 계속되던 중 후반전 교체 투입된 코스티냐[3]후반 49분에 아무도 기대치 않았던 골을 넣으며 극적으로 1-0 승리. 이미 2승으로 8강 진출이 확정되었으니 마지막 독일전은 설렁설렁 할 법도 한데 세르지우 콘세이상해트트릭을 앞세워 3-0 완승을 거두며 독일을 영혼까지 털어 버렸다. 진짜 무서운 건 8강전을 대비해 주전골키퍼 바이아를 비롯해 피구, 후이 코스타 등을 빼고 경기한 결과가 저거라는 거다. 이렇게 포르투갈은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한다.[4]

8강전에서 누누 고메스의 멀티골로 터키를 가볍게 2-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서 프랑스를 만나게 되는데, 고메스와 티에리 앙리가 한 골씩을 주고받은 상태에서 연장전 후반 말미에 사비에르가 페널티킥을 허용하고[5] 지네딘 지단이 깔끔하게 성공, 이게 골든골이 되면서 포르투갈의 이변은 준결승에서 마무리된다.

3.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히딩크호 코엘류호 본프레레호

유로 4강의 업적을 세웠음에도 포르투갈 축구협회는 코엘류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고, 코엘류는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잠시 맡았다가 팀이 세네갈의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2002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6] 다시 백수 신세가 된다. 그러다 거스 히딩크의 후임자를 물색하던 대한축구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3년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대한축구협회가 감독직 후보로 마지막까지 코엘류와 저울질하던 상대방이 세네갈 감독으로 코엘류에게 아픔을 안겨줬던 브루노 메추 감독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계약기간은 1년 6개월, 즉 2004년 7월에 열리는 시안컵까지였다.[7]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에서 콜롬비아를 상대로 감독 데뷔전을 치렀고, 이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비록 후반 막판 개그골을 허용하며 패하긴 했지만 일본을 상대로 유례없이 가둬놓고 패는 모습을 보였다. 5월 원정으로 치러진 한일전에서 안정환의 결승골로 승리하며 첫 승을 신고했고,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 남미 강호와의 평가전에서 연패했지만 경기 내용적으로는 선전하며[8]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이 많았다.

그러나 해외파 없이 국내파로만 치른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베트남오만에게 연이어 패하는 이른바 오만 쇼크 사건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제1회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을 제치고 우승하면서 반전의 계기로 삼나 했는데 월드컵 예선에서 해외파 베스트멤버를 총동원하고도 몰디브를 상대로 0:0으로 비기는 대참사가 일어난다.[9] 이에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대한축구협회는 4월 19일 코엘류 감독을 경질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코엘류호는 1년 남짓만에 좌초하게 된다.

코엘류는 포백 수비라인의 정착에 힘썼고, 패스와 테크닉 위주의 전술을 표방했고 조재진, 병국, 김두현, 김동진, 정경호, 최성국 등 젊은 선수들을 과감히 발탁하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의 국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10] 그러나 국민들은 그에게 히딩크를 기대했지만 여러모로 히딩크와 코엘류가 놓인 처지는 판이하게 달랐다. 일단, 코엘류 본인부터가 히딩크와는 정반대로 자율적, 방임적 팀운영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황금세대를 이끌었던 포르투갈에서는 이게 선수들의 개인기량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4강 신화의 단맛에서 아직 깨지 못한 한국에서는 이게 독이 되었다. 또한 월드컵 개최라는 초유의 이벤트를 위해 K리그를 포함한 한국축구 전체가 국가대표팀를 위해 희생했던 히딩크호 때와는 달리, 월드컵 이후에는 K리그 구단들도 무조건적인 희생을 수인하지 않았고, FIFA의 차출규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축구협회의 차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코엘류가 한국을 떠나면서 남긴 "14개월 동안 실제 훈련장에서 훈련한 시간이 72시간에 불과하다."는 말이 이러한 국가대표팀과 K리그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박성화, 최강희 당시 코치도 도움은 커녕 감독의 말을 듣지 않는 등, 온갖 월권을 행사하면서 간섭하였는데 그 전말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조셉 아우구스토 피지컬 트레이너가 증언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오만 쇼크 당시 기술위원이 아무도 국가대표팀에 동행을 하지 않는 등, 대한축구협회의 지원도 히딩크 때에 비하면 부족했고 올림픽 축구의 중요성을 타국에 비해 높게 보는 한국의 풍토도 코엘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래저래 악조건이 겹친 셈이다.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 이후 후진적이었던 행태를 개선해나가는 과도기적 과정에 낀 감이 없지 않다.

결국, 경질당한 코엘류는 이후 포르투갈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잠시 중동, 아프리카에서 알바식으로 감독을 맡았었다. 2020-02-20일 현재는 포르투갈 축구협회 디렉터로 소속중이다.

4. 기타

한국 감독 시절 갓 20세였던 딸의 미모가 화제가 된 바 있다. 한일전 때 서울 월드컵 경기장 관중석에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었는데, 이 때문에 한 때 국내 한정 코엘류의 호칭이 장인어른이었다.

선임 당시 통역 문제로 축구협회가 골머리를 앓았다. 원래는 영어를 잘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그냥 별 문제없을거라 했는데 생각보다 영어 실력이 떨어졌던 것. (...)[11] 그래서 브라질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포르투갈어 통역관을 섭외했으나 코엘류 감독이 직접 통역관 후보들과 면담한 후 프랑스어 통역관이 기용되었다고. 실제로 코엘류 감독은 프랑스어를 영어보다 더 잘 구사했다.

나중에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던 조광래가 이 당시 미친듯이 코엘류를 깠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조광래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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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시절 월드클래스급 선수들에게 미국은 외도 또는 유람격으로 한두시즌쯤 다녀오는 것이 유행이었다. 코엘류가 미국에서 활약했던 시절 NASL 올스타 2진에 선발됐었는데, 1진 멤버가 펠레, 프란츠 베켄바워, 든 뱅크스, 조지 베스트였으니 말 다한거다.
  • [2] 물론 2000년 시점에도 피구와 루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은 월드 클래스 선수들로 분류되었기에 당시 포르투갈의 공격력만큼은 세계 수준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지명도가 부족했던 선수들의 수준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기에 당시 포르투갈은 A조 내에서는 잉글랜드, 독일 다음의 3순위 전력으로 평가받는 편이었다.
  • [3] 2006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혈전에서 퇴장당하는 그 선수 맞다. 사실 후이 코스타를 빼고 홀딩 미드필더인 코스티냐를 넣은 교체 자체가 승점 1점만 챙기자는 의도가 강했다.
  • [4] 여담으로 독일은 이렇게 광탈하면서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멸칭을 얻고, 에리히 리벡 감독이 물러나고 대신 루디 푈러 감독이 선임되면서 절치부심한 결과 2002 월드컵에서 준우승까지 기록한다. 역시 독일의 월드컵 DNA란... 참고로 이 때 같은 시각 잉글랜드도 루마니아에게 패하면서 숙적 둘이 같이 손잡고 광탈했다.
  • [5] 이 판정이 당시에도 엄청난 논란이었고 지금까지도 뒷얘기가 많다. 사비에르가 공으로 손을 쳐냈다기보다 공이 손에 와서 맞은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지단의 골로 경기가 끝난 후에도 포르투갈 선수들은 심판들을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했고, 피구는 지단이 페널티킥을 차기 전부터 이미 분노하며 유니폼을 벗고 피치를 빠져나가기도 했다.
  • [6]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놓고 7경기 무패로 잘나갔는데 최종전에서 세네갈에게 0-1로 뜬금패를 당하며 승점은 동률, 골득실에서 뒤지며 세네갈에 밀려 탈락한다.
  • [7] 하지만 코엘류 본인은 나중에 "나는 한국이 좋고 더 머무르고 싶다."라면서 2006년 독일월드컵까지 지휘봉을 잡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 [8] 우루과이전 슈팅수 기록이 17-7이었다. 못 믿겠지만 한국이 17이다.
  • [9] 이 경기가 한국 시각으로 3월 31일 밤에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만우절 농담을 해도 말이 되게 하라"며(...) 안 믿는 사태가 왕왕 벌어졌다 카더라.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 [10] 참고로 이 당시 기회를 얻었던 젊은 선수들 중 상당수가 이후 2000년대 중후반 국가대표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선수가 되었다. 다만 이 선수들이 2002년 월드컵 선배들을 뛰어넘지 못해 그대로 묻힌 것이 다소 아쉬운 부분.
  • [11] 포르투갈어권, 스페인어권 사람들의 평균적인 영어실력은 언어학적 유사성 덕분에 맘먹고 익히고자 하면 다른 언어 사용자들보다 쉽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도 생각보다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영어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