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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토르 카스트로

last modified: 2015-02-06 18:36:42 Contributors


이름 엑토르 카스트로
(Héctor Castro)
생년월일 1904년 11월 29일
사망년월일 1960년 9월 15일
국적 우루과이
출신지 몬테비데오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169cm / 69kg
등번호 -[1]
소속팀 CA 나시오날(1923~1932)
에스투디안테스(1932~1933)
CA 나시오날(1933~1936)
국가대표 25경기 / 18골
감독 CA 나시오날(1940~1943)
CA 나시오날(1952)
우루과이(1959)

Contents

1. 사고
2. 초기 선수 생활
3. 초대 월드컵
4. 월드컵 이후
5. 감독 생활
6. 수상
6.1. 클럽
6.2. 국가대표
6.3. 개인
6.4. 감독

1. 사고

그는 보통 축구 선수들과 달랐다. 바로 오른팔이 없었던것!!!
13살 때 전기톱을 다루다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그로 인해 그는 외팔이, 불구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박물관에 전시된 카스트로의 사진. 오른팔이 없는 것이 선명히 보인다.

2. 초기 선수 생활

1923년에 CA 나시오날에 입단한 그는 그 해에 바로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으로도 선발이 되었다. 대표팀에서는 그렇게 많은 출장수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출전하면 골을 넣는 일종의 조커로 활약했다. 그리고 나시오날도 그가 데뷔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3. 초대 월드컵

카스트로는 초대 월드컵에서 단 두 골을 넣었다. 5골을 넣은 팀 동료 페드로 세아 등에 비하면 모자란 활약. 하지만 카스트로가 그렇게 월드컵 역사에서 빛나는 이유는 초대 우승팀 우루과이에서 첫 경기의 선제 결승골, 결승전의 쐐기골을 그가 넣었기 때문이다. 즉, 우루과이의 초대 월드컵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였다.[2]


카스트로의 결승전 쐐기골. 앞에서 몸을 날리는 선수는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후안 보타소이다.

4. 월드컵 이후

카스트로는 1932년에 아르헨티나에스투디안테스에 잠시 건너간 것을 빼면 선수생활을 나시오날에서만 보냈다. 1935년에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것을 끝으로 우루과이 대표팀에서 은퇴했고, 1936년에는 나시오날에서도 선수생활을 그만뒀다.

5. 감독 생활

한 마디로 평가하면 프로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최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은퇴한지 3년 후인 1939년에는 나시오날의 수석 코치로 돌아왔고, 나시오날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해에는 아예 정식 감독으로 취임. 1940년부터 1943년까지 4년 연속으로 우루과이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는 정상에 있을 때 물러났다. 그러다가 1952년, 다시 나시오날의 감독으로 복귀하여 또 우승을 시키고 감독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1959년에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한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는 2승 4패로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우루과이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듬해. 그는 55세의 다소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6. 수상

6.1. 클럽

우루과이 프리메라 리가 우승 3회: 1924, 1933, 1934(이상 나시오날)

6.2. 국가대표

월드컵 우승 1회: 1930
올림픽 우승 1회: 1928
코파 아메리카 우승 2회: 1926, 1935

6.3. 개인

월드컵 베스트 11: 1930

6.4. 감독

우루과이 프리메라 리가 우승 5회: 1940, 1941, 1942, 1943, 1952(이상 나시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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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 [2] 여담으로 2010년 대회까지 이렇게 월드컵 우승팀 중 첫 경기의 선제골과 결승전의 마지막골을 넣은 선수는 다음 대회의 이탈리아 공격수 젤로 스키아비오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