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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리베크

last modified: 2015-02-06 18:32:22 Contributors


성명 Erich Ribbeck
생년월일 1937년 6월 13일 (77세)
출생지 독일 부퍼탈
포지션 수비수
소속 부퍼탈 SV (1959/60 – 1961/62)
FC 빅토리아 쾰른 (1962/63 – 1964/65)
지도자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65/66 – 1966/67, 수석코치)
로트바이스 에센 (1967/98)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68/69 - 1972/73)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73/74 - 1977/78)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1978 - 1984, 수석코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84/85)
바이어 04 레버쿠젠 (1985/86 - 1987/88)
FC 바이에른 뮌헨 (1992/93)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5/96)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1998 - 2000)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경력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베르티 포크츠
(1998 - 2000)
에리히 리베크
(1998 - 2000)
루디 푈러
(2000 - 2004)

1. 소개

에리히 리베크는 1950,60년대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주요 분데스리가 클럽과 독일 국가대표의 감독 및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1998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7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9대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과 같이 2년으로 최단 기간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역임했고 자진사퇴라는 부분이 동일한 점이 있지만 클린스만의 경우 부진에 빠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2006 월드컵 3위로 독일 축구의 부활을 이끌고 자진사퇴 했다는 점에서 유로 2000의 부진으로 자진사퇴한 리베크와 차이가 있다.

유로 2000의 실패로 축구팬들에게 제대로 각인이 되었고 루디 푈러와 함께 본의 아니게 독일 축구의 암흑기의 상징(...)이되었다. 사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스위퍼와 3백 등의 사용으로 축구 트렌드의 흐름에 뒤쳐졌고 그 동안 제대로 된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부분은 리베크 혼자 책임질 일이 아니나 어쨌든 감독직을 수행한 이상 책임에서 회피할수는 없다.

2. 선수 시절


부퍼탈 SV와 FC Viktoria Köln 에서 7년 가량 수비수로 활동하였으나 이 두 클럽 모두 하부리그 또는 지역리그에 속한 팀으로 지극히 평범한 선수생활을 했다. 대표에 뽑힌 경력은 없으며 1부리그 활동도 없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1965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어 2시즌동안 코치직을 수행한다. 1967년 2부리그 소속인 로트바이스 에선의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2부리그에 속해있던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으나 헤르타 베를린에게 패배하여 승격에 실패한다.

그 이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부름을 받아 1968/69시즌 부터 1972/73시즌까지 5시즌 동안 감독직을 수행한다. 5시즌 동안 8-8-15-5-8위의 성적을 내며 꾸준히 중위권 팀의 자리를 지킨 뒤 1973/74시즌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감독으로 직을 옮긴다. 1977/78시즌까지 5시즌 동안 6-13-7-13-8위를 기록하며 꾸준히 중위권 성적을 기록한 리베크는 1977/78시즌이 끝나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된 유프 데어발감독의 부름을 받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임명된다.

1984년까지 6년동안 유프 데어발 감독을 보좌하며 유로 1980에서는 우승,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준우승을 이끌었다. 1984년 유로 1984에서 8강진출에 실패한 유프 데어발 감독은 대회 직후 사임했다. 수석코치로 활동한 에리히 리베크였기 때문에 감독직 후보로 올랐으나 1984년 독일 축구 협회는 프란츠 베켄바워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한다. 리베크는 그 이후 수석코치직을 사임한다.

사임 직후 1984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전 시즌 13위를 기록한 도르트문트를 리베크는 14위로 한단계 강등(...) 시키고 도르트문트 감독직을 사임한다. 하지만 곧바로 그 다음시즌 1985/86시즌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부임 직후 85/86, 86/87시즌 연속 6위를 기록하며 UEFA CUP의 티켓을 따낸 리베크는 1987/88시즌 에이스 차범근을 앞세워 UE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트로피를 든다. UEFA 컵 우승이라는 최대의 성과를 낸 리베크는 우승을 차지한 뒤 감독직을 사임한다.

그 뒤 휴식을 취하던 리베크는 1992/93시즌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고 1995/96시즌에는 레버쿠젠으로 복귀했으나 리그 14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한 시즌만에 사임한다.

1998년 베르티 포크츠 감독에 이어 7번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유로 2000 예선에서 터키, 핀란드, 몰도바, 북 아일랜드와 함께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첫 경기인 터키와의 경기에서는 0:1로 패배했으나 핀란드, 몰도바, 북아일랜드를 차례로 잡으면서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예선 마지막경기에서 다시 만난 터키를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터키와의 예선전 성적은 1무 1패. 유로 2000에서 8강 신화를 일으켰던 터키였던것을 감안하면 독일 국대의 유로 2000의 실패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당초 감독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리베크가 감독을 맡는 바람에 수석코치로 임명된 울리 슈틸리케와는 선수 관리 문제와 리베크의 3백 전술에 반대하는 등 격한 갈등을 빚다가 슈틸리케가 물러나고 호르스트 흐루베쉬가 급하게 대체자로 오는 일까지 발생해 팀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유로 2000에서는 포르투갈, 루마니아, 그리고 라이벌 잉글랜드와 같은 조에 배정되었다. 루마니아와 무승부, 그리고 포르투갈과 잉글랜드에게 완패를 당하며 1무 2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8강진출에 실패하였다. 특히 포르투갈전은 에이스인 루이스 피구와 루이 코스타가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음에도 맥없이 깨지고 말았는데 이것은 그 1년 뒤 잉글랜드와의 홈경기 1:5 참패와 함께 독일 국대 역사상 최악의 경기로 뽑힌다.

리베크 본인은 대회전 인터뷰에서 독일 축구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고 자신의 3백 전술이 시대에 전혀 뒤쳐지지 않았음을 수차례 말했으나 결국 유로 2000의 실패로 자기 발을 찍은 셈이 되었으며 리베크 본인도 시대를 못따라간 감독이라는 최악의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유로 2000이후 자진사임한 리베크는 그 뒤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4. 경력

  • 바이어 04 레버쿠젠 (1985/86 - 1987/88, 199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