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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식

last modified: 2015-03-28 01:33:44 Contributors

Contents

1. 배구 입문 및 성장
2. 갈색폭격기의 리즈시절
3. 은퇴 및 지도자의 길
4. 대내외적인 평가
5. 그 밖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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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코치
신진식(申珍植)
생년월일 1975년 2월 1일[1]
출신지 충청남도
출신학교 익산남성고등학교-성균관대학교
포지션 레프트
신체사이즈 신장 188cm, 체중 80kg
소속팀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1996~2007)
지도자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너 (2010)
홍익대학교 (2011~2013)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코치 (2013~)

국가대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2000 시드니 올림픽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6 세계 남자배구선수권대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수상경력
아시아청소년배구선수권 MVP (1992)
한국배구 슈퍼리그 신인왕 (1994)
한국배구 슈퍼리그 인기상 4회 (1995~1997·2001)
한국배구 슈퍼리그 MVP 4회(1998·99·2001·2002)
한국배구 슈퍼리그 베스트6 3회 (1998·99·2001)
한국배구 슈퍼리그 공격상 (2002)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금메달


V-리그 10주년 올스타
세터 센터 센터 라이트 수비형 레프트 공격형 레프트 리베로
남자부 최태웅 이선규 신영석 김세진 신진식 문성민 여오현
여자부 김사니 정대영 양효진 황연주 최광희 김연경 김해란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현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코치.

갈색폭격기라는 별명으로 현역 시절 김세진과 함께 실업배구 77연승 및 겨울리그 9연패의 신화를 쓰며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먼치킨 시절을 이끌었던 남자 배구계의 전설적 인물.

1. 배구 입문 및 성장

신진식의 배구 인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신진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된 전주시 송천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시작된 배구에 재미를 느꼈다. 당시 신진식은 높이뛰기 선수와 배구를 겸할 만큼 운동신경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어린시절 배구인생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배구부가 있는 덕진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6학년 때 송천초등학교에서 덕진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러나 덕진중학교 배구부는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해체가 되고 만다. 자신의 배구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거라 생각했던 신진식은 운이 좋게도 해체된 배구부 선수들 중 몇 명을 익산시의 남성중학교로 전학시키는데 명단에 오르는 기회를 얻어 배구 인생을 이어간다.

남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남성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이호와 함께 좌우 쌍포로 맹활약하며 남성고등학교를 고교 최강 팀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러한 맹활약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17세 미만 배구대표로 뽑혀 제2회 세계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당시 세계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으나, 아쉽게 준결승전에서 패하면서 브라질과 3~4위전을 펼치고 난 후, 신진식은 그 당시 대회에서 자신의 키가 작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서 지속적인 점프 연습과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한 한 박자 빠른 공격을 위해 꾸준한 체력훈련을 시작한다.[2] 이런 노력에 힘입어 그는 애틀랜타 올림픽 예선전에 당당히 대표 선수로 선발될 수 있었고, 일본에서 있었던 올림픽 예선전에서 1990년대 당시 대한민국 배구 대표팀을 깐따삐아로 날려보낸 에이스 카가이치 유이치가 버틴 숙적 일본을 3:1로 누르고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한일전 승리의 주역이라는 점과 일본의 에이스인 나카가이치 앞에서도 대담하게 대결하는 모습 때문에 배구선수 '신진식'이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서서히 팬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덤으로 신진식의 거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갈색폭격기'라는 별명도 붙었다. 어어? 마치 누구 별명인 무기하고 느낌이 비슷하다?

2. 갈색폭격기의 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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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를 졸업을 앞둔 신진식에게 처음 러브 콜을 보낸 팀은 현대자동차서비스였다. 당시 현대자동차서비스성균관대학교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기에, 신진식의 졸업 후 현대자동차서비스가 스카웃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1995년 11월에 삼성화재가 창단되고 같은 삼성그룹 산하였던 성균관대학교와 협력하는 관계로 급진전되면서, 그가 4학년 때인 1996년에 결국 성균관대학교 지원 팀이 삼성화재로 바뀌게 되었고, 학사 문제까지 겹쳐 결국 삼성화재 입단이 확정된다. 사실 당시 삼성화재는 완전 신생 팀이었고 신예스타 김세진 외에는 특별한 스타 선수가 없었기에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던 신진식을 스카웃하려 노력했다. 신진식은 개인적으로도 성균관대학교의 라이벌이었던 한양대학교 출신인 김세진과 대학 시절부터 라이벌로 맞대결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기에, 프로 리그에서도 김세진과 함께 맞대결을 펼치고 싶어서 같은 팀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신진식이 몸담았던 성균관대학교와 협력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진식의 스카웃의 기회를 빼앗긴 현대자동차서비스삼성화재를 상대로 법정 소송까지 진행하는 스카웃 파동이 발생했으며, 이 사건으로 당시 성균관대학교 배구부 감독이자 친현대파인 김남성이 감독직에서 해임됬다.

잡음이 있긴 했어도 결국 신진식1996년 11월 삼성화재에 입단하게 되었다. 1년 먼저 삼성화재에 입단한 김세진과 그는 좌진식, 우세진을 이루고, 갈색폭격기라는 별칭이 부여되는등 삼성화재의 무적 시대를 여는 주인공 역할을 했다. 2001년 1월 7일 대한항공전을 시작으로 삼성화재는 77연승이라는 남자 구기 종목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2004년 배구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현대캐피탈에 3:2로 아쉽게 패하면서 기록이 깨졌을 때, 현대 배구단 관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배구 팬들마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만큼 당시 배구판에서 삼성이란 존재는 창단(스카웃 만행)부터 현재까지 거대한 힘이자 공공의 적이었다. 당시 삼성은 신진식, 김세진, 최태웅, 김상우 등 국가대표에 버금가는 초호화멤버가 주축이었다. 그는 프로리그 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국가대표팀의 주역으로 기량을 발휘하며 아시안 게임에서 2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따내는 등 배구 선수로서 그야말로 화려한 경력들을 쌓는다.

3. 은퇴 및 지도자의 길

10년 이상 한국배구의 대들보로 활약한 신진식은 2007년 5월 소속팀 삼성화재로부터 갑작스런 은퇴 통보를 받는다. 삼성화재는 세대교체를 위해 신진식을 비롯해 김상우, 지섭에게 은퇴를 종용한 것이다. 신진식, 김상우 등 걸출한 스타를 보유한 탓에 수년간 젊은 선수를 뽑지 못했던 삼성화재는 간판스타에 대한 예우보다는 세대교체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갑작스런 은퇴 통보에 당시 신진식은 충격이 꽤나 컸으며, 2007년 12월 1일 개막하는 2007-2008 시즌에 1년 더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아직 은퇴하기에는 이른 시기였기에, 신진식의 은퇴설이 나오면서 다른 구단으로 이적해야 한다는 여론도 꽤나 강했다.[3] 그러나 결국 '친정 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는 주위의 권고에 따라 결국 지도자 연수를 떠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선수 연장 계획을 포기하여 2007년 12월 미련없이 은퇴의 길을 택한다. 삼성화재 구단 측에서는 성대하게 은퇴식을 마련해 주었으며, 그의 은퇴식에는 먼저 현역에서 은퇴한 동료 김세진도 참석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2년간 오스트레일리아 어학 연수 및 지도자 코스를 밟고 2010년 8월 당시 신치용 대표팀 감독을 보좌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배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참여하고, 2010∼2011시즌 프로배구 V리그에서는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기도 하는 등, 차근차근 지도자 준비를 해왔다. 2011년 5월 홍익대학교 감독으로 공식 부임했다. 은사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적극 추천하여 성사된 것인데, 신치용 감독은 신진식이 선수 은퇴 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학할 때도 다양한 자료를 보내주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2013-2014 시즌을 앞두고 신치용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서 홍익대학교 감독직에서 물러나 삼성화재의 코치로 발탁되어 신진식의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과거 라이벌로 프로 무대에서 함께 뛰었고 현재는 삼성화재의 수석코치로 활약 중인 임꺽정 임도헌을 보좌하고 있다.

4. 대내외적인 평가

현역 시절 플레이 스타일은 주공과 보공, 위치에 상관없이 제 역할을 해 내는 올라운드 스타일이었다. 1990년대 중반~후반 당시 배구도사 박희상(現 현대캐피탈 코치)과 비슷하다고 비교될 정도. 후위에 신진식과 박희상이 있으면 국제전에서 수비 문제는 걱정이 없었다.

또한 윙 스파이커 치고는 키가 작지만, 탄력넘치는 점프와 긴 팔[4]로 키 큰 상대편 수비수에게도 밀리지 않았고, 한 박자 빠른 공격이라든지 스파이크 정점 때 상대 블로커의 벽[5]을 이용하여 터치아웃 유도를 많이 이끌어 낼 정도로 순간판단과 VQ가 상당히 뛰어났다. 공이 터져 찢어질 정도의 파열음으로 코트에 꽂아버리는 초강력 스파이크는 그야말로 신진식의 전매특허. 야수가 따로 없다.

다만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주 공격수급이었지 국제무대의 구분으로는 단신 공격수였고, 1990년대 중후반 당시 국가대표 주전 세터 신영철은 현란한 속임수와 횡패스로 기교와 맞춰잡기에 능한 박희상을 더 선호했기 때문에 힘으로 정면돌파하던 신진식과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국대 선발 초반에는 그렇게 대접받지 못했고, 개인 기록도 그저 그랬다. 그 이후 국대 주전으로 기회를 잡은 1990년대 후반에는 배구계의 내분[6] 때문에 월드리그도 보이콧 할정도로 배구계가 막장이 되었던지라 국대 초반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3회 연속 올림픽 예선 탈락이라는 막장스런 결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간신히 병역면제를 따낸 것이 그나마 다행일 정도.

상대 블로커를 이용한 공격을 많이 펼치다보니 어깨 부위에 잔부상이 있었으며, 선수 말년에 가서는 손목을 틀어치는 스파이크를 많이 구사하다보니 손목 부상 또한 많았다.

현재 남자배구 선수들의 기본기 문제에 대해 안타깝게 바라보는 지도자 중 하나다. 신진식이 현역으로 있던 1990년대~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틈새없는 수비력을 바탕으로 근성있는 공격이 한국 배구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공격력만 우선으로 한 채 기본기는 구석 저리로 밀어놓은 현 지도자들의 지도방식과 더불어 기본기가 전혀 없는 선수들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인이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홍익대학교 배구부에서는 기본기를 중시로 한 지도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그 덕택에 그동안 고만고만했던 홍익대학교가 대학대회 준우승을 할 정도로 팀 전력을 끌어올렸다.

5. 그 밖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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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과는 라이벌이긴 해도 연령대도 거의 같고 삼성화재의 리즈시절을 함께 연 주역이라 두 사람의 우정은 꽤나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결혼 전 전성기 시절 사귀던 여자친구들[7]과 함께 만나기도 할 정도였고, 서로의 은퇴식에도 각각 참여하며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찐한 우정은 아래의 짤방 하나로 입증되기도 한다.ANG! 우웩!!


김세진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출연하여 신진식에 대한 언급을 하며 자기보다 여러 모로 나을 정도로 기술과 체력적인 면에서 모두 대단한 선수로 치켜세우기도 했지만 블로킹만큼은 자신이 한 수 위라고 자신있게 주장하기도 했다.[8] 또한 외모 면에서는 자기가 한수 위이며 팬들의 숫자도 자기가 훨씬 많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으며,[9] 대학교 신입생 시절 상경하며 고등학교 때 입던 츄리닝을 대학교 훈련 때도 입으려고 봇짐[10]에 싸가지고 온 순진한 선수였다고 밝혔다. 김세진은 그런 순진한 신진식을 밤문화(?)에 끌어 들였고, 덕분에 신진식은 춤으로 신발이 닳을 정도로 춤을 춘 '댄싱킹'으로 활약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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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인 권세진씨는 성균관대학교 체육학과 동문이자 동갑내기 1년 후배[11]로 조우하였다. 당시 175㎝의 늘씬한 키에 빼어난 몸매로 입학 때부터 많은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당시 대학 최고의 배구스타였던 신진식도 한눈에 반했고, 신진식은 권씨를 알게된 지 이틀 만에 춘계대학연맹전 우승 뒤풀이에 초대하며, 믿음직스럽고 유머 감각이 넘치는 신진식의 행동에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졸업 후 한때 4개월간 헤어진 적도 있었으나 이미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깊어져 결국 1999년에 결혼에 골인했다. 슬하에는 아들 현수, 현빈 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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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건 호적상 나이이고 실제는 1973년 2월 1일에 출생했다고 한다.
  • [2] 1995년 모 신문 기사에 따르면, 당시 신진식은 서전트 점프 높이 80cm에 유난히 긴 팔로 실제 타점이 같은 키의 선수보다 10cm는 더 높았다고 한다. 또한 익산 남성고등학교 시절 교내 고등학교 마라톤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을 했었으니 기본적인 스태미너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특히 과거 사이드아웃 제도였을 때는 남자부 경기가 기본 2시간, 길게는 3시간(...)이 넘어가는지라 선수 개개인에게 철인과도 같은 체력이 요구되던 때에 신진식은 절대 지치지 않는 백만돌이였다.
  • [3] 실제로 예전부터 그토록 신진식을 원했던 현대캐피탈은 얼마 남지 않은 선수 생활이라도 그를 기용하고 싶어 했고 신진식도 이에 동조하며 이적에 대해 상당 부분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 [4] 전성기 때 대략 스파이크 높이가 320cm 대로 예상된다.
  • [5] 여기서 블로커의 벽은 블로킹 잡으러 위로 뻗은 팔인데, 자세히는 윙 스파이커가 큰 공격 시 이용 하는 블로커의 손 부위(주로 손끝)이다.
  • [6] 대표적으로 이경수 사태.
  • [7] 사진 속의 여인들이 바로 신진식의 현재 부인인 권세진 씨(우측), 그리고 김세진의 전 부인 구나연 씨(좌측).(2004년에 이혼했다.)
  • [8] 참고로 김세진은 신장이 197cm로 신진식보다 거의 10cm 가까이 클 정도였으며, 전위에 있을 때 블로킹 실력 역시 발군이다.
  • [9] 1990년대 중반 배구는 농구 못지 않게 인기가 많았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은 대한민국 남자배구 대표팀의 제2의 리즈시절이라고 할 만큼 월드리그, 세계선수권대회 등의 국제대회 성적도 좋았다. 국제전만 있으면 잠실체육관이나 장충체육관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 또한 김세진이나 신진식처럼 인기 많은 선수들은 팬레터도 그에 비례해서 받기도 했다.
  • [10]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심권호는 봇짐 싸가지고 왔다는 말에 "진짜 촌놈이었구나"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 [11] 생일이 빠른 신진식이 1년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