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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last modified: 2015-04-02 10:43:50 Contributors

Contents

1. 배구인
2. 조선시대 인물
3. 언론인
4. 대법관
5. 축구 선수
6. 기업인

1. 배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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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감독
신영철(申英哲)
생년월일 1964년 3월 14일
출신지 경상북도 울진군
출신학교 경북사대부고 - 경기대
포지션 세터
신체사이즈 신장 178cm, 체중 75kg
소속팀 한국전력 (1988~1996)
상무 (군복무) (1990~1992)
삼성화재 (1996~1999)
지도자 삼성화재 코치 (1999~2004)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감독 (2004~2007)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7)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코치 (2009~2010)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감독[1] (2010~2013)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감독 (2013~)

대한민국배구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터였으머, 별명은 컴퓨터 세터. 선수 시절에는 김호철과 더불어 명 세터로 잘 알려졌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의 리즈 시절김호철, 강만수 다음 세대인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남자 배구의 지휘봉을 잡았던 세터다. 플레이 스타일은 극한의 지략 싸움과 변칙, 기교를 중시하는 타입으로 장신 공격수의 호쾌한 오픈 공격보다 손동작을 이용해 블로킹을 따돌리는 짧고 낮고 빠른 토스로 스피드와 맞춰잡기에 능한 변칙 공격수의 활용을 극대화해 게임을 운영했다. 현역 시절에 상무를 우승으로 이끌 때 재필, 진수, 욱환, 동천, 병종 등 평균신장 190cm이 안 되는 단신 군단을 이 테크닉과 조직력으로 이끌었고, 국가대표팀에서는 박희상재필 등 단신 공격수의 활용에 매우 능했다. 그래서 신장이 작은 팀이라도 그의 스타일에서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1994년 세계 배구 선수권대회 8강[2], 1995년 월드리그 6강 진출 때 주전 세터로 활약할 만큼 국제대회에서도 경쟁력이 있던 세터지만 국내에서의 사정 때문에 발목이 잡힌 케이스.

경기대 졸업반 때 터진 스카우트 파동 때문에 럭키금성, 현대자동차서비스, 고려증권 다 못 가고 만년 하위 팀인 한국전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신영철의 입단으로 한국전력은 만년 하위 팀에서 조금 더 좋은 팀이 되었으며, 그가 병역을 위해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1992년에는 상무 배구단 역사상 유일한 슈퍼리그 우승을 했을 때 그 핵심 멤버였다. 그러나 그 때를 제외한 커리어 내내 국내에서 신영철은 그야말로 안습의 꼴찌 팀을 홀로 이끄는 존재였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4번 타자 김기태처럼

한국전력의 코치로 일했을 때부터 신영철과 인연을 맺었던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부임하면서 그를 플레잉 코치 형식으로 영입하는 방법으로 한국전력에서 신영철을 빼오고 1998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만, 이미 그때 30대 중반의 나이에 무릎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신영철은 팀의 우승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고[3] 시즌이 끝난 후 공식적으로 신치용 감독을 보좌하게 된다.

5년간 수석코치에서 머물렀지만 신치용 감독이 삼성화재 감독으로 건재한 이상 감독 기회는 오지 않았고, 2004 시즌 중 진수 감독이 사임한 LG화재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자리를 옮겼다. 감독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LG화재의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2005년에는 선수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4] 6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며, 계약 기간을 1년 남기고 2007년 3월 22일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월드리그를 대비해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으며, 2년 간 프로를 떠나 야인으로 지내던 신영철은 2009년에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세터 전담 인스트럭터로 현장에 복귀했고, 이후 대한항공의 정식 코치가 되었다. 2010년에는 진준택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을 맡았고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여 시즌 중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10-11 시즌에는 팀의 창단 첫 정규 시즌 우승까지 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에 스윕을 당해 준우승에 머물렀다.4년 후 신치용도 이런 일을 겪는다 2011-2012 시즌 역시 정규 리그 2위를 기록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지만, 역시 패배.

그리고 2012-2013 시즌. 사실상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그 부담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시즌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4위로 내려가자 총감독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경질당했다. 그를 대신하여 김종민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한 후 대한항공의 감독에 취임했다.

2013년 4월 2일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7년 만의 친정 복귀. 이로써 2012-13 시즌 V리그 대한항공에서 경질된 지 3개월 만에 다시 프로 무대에 선다. LG화재(현 LIG손해보험)와 대한항공을 거쳐 3번째로 감독직을 맡게 됐다.

그러나 2014년 12월 말 단행한 서재덕 - 권영민, 박주형 임대 트레이드를 규정 위반으로 주도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됨에 따라 소속 팀의 최근 부진과 맞물려 시즌 중 경질이 유력해졌다. 이전부터 폭행 추문으로 사임했던 전과가 있었던지라 문제시됐었는데 한국전력의 부진과 함께 규정위반 사태가 터짐으로써 구단은 물론 KOVO 등에 엄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길어도 올 시즌 후에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 후 한국전력9연승을 하는 등 잘 나가면서 3위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2월 26일 대한항공과의 홈 경기에서 3-1로 승리하여 봄 배구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OK저축은행에게 스윕당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시즌 후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2. 조선시대 인물

申永澈
신숙주의 손자이다. 양주목사, 파주목사를 지낸 인물. 그의 묘갈은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3. 언론인

일제강점기의 언론인 申瑩澈

아동잡지의 주간을 맡았다.

아동의 역사 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했다.

4. 대법관

신영철대법관.jpg
[JPG image (Unknown)]

신영철(申暎澈, 1954년 1월 15일)


5. 축구 선수


성남 일화의 축구 선수.

6. 기업인

신영철(申永喆, 1955년 2월 28일)
작성 금지이므로 http://ko.wikipedia.org/wiki/%EC%8B%A0%EC%98%81%EC%B2%A0_(%EA%B8%B0%EC%97%85%EC%9D%B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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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감독 대행 포함.
  • [2]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축구의 FIFA 월드컵과 비교할 수 있는 최고 권위의 국제대회지만 대한민국은 줄곧 경기 날짜가 아시안 게임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병역면제와 함께 종합대회 우선인 정책에 밀려 세계선수권에 제대로 팀을 구성해 나간 적이 별로 없다. 그것 때문에 국제배구연맹(FIVB)에서 경고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 그런 팀으로 이끌어 낸 8강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가 있는 성적임에도 이 성과는 배구계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1978년 4강 이후 세계선수권 최고의 성적이다.
  • [3] 1998년의 삼성화재는 나쁘게 말하면 용병급 실력자 김세진, 신진식 2명의 뻥배구로 우승하다시피 했다. 위에 서술하듯 신영철의 강점은 낮고 빠른 토스를 앞세운 스피드와 변칙형 배구지만 이는 삼성화재에 맞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하필 상대 팀 현대자동차가 그 해 만큼은 장신 블로커들 천지여서 수도 없이 김세진, 신진식이 낮은 토스 때문에 블로킹의 제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승했으니 두 선수가 얼마나 압도적인 실력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 [4] 선수를 걷어 찬 덕분에 배갤에서는 싸커로 불린다. 그런데 문용관 당시 대한항공 감독도 똑같은 시기에 폭행 사실이 드러나 3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