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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뇰 귀네슈

last modified: 2014-12-14 23:20:05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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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사스포르 감독
셰놀 귀네슈
(Şenol Güneş)
생년월일 1952년 6월 1일
국적 터키
출신지 트라브존
선수시절 포지션 골키퍼
소속팀 세바트스포르 (1972~1973)
트라브존스포르 (1973~1987)
지도자 트라브존스포르 (1988~1989)
볼루스포르 (1990~1992)
이스탄불스포르 (1992~1993)
트라브존스포르 (1993~1997)
안탈리아스포르 (1997~1998)
사카리아스포르 (1998~1999)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2000~2004)
트라브존스포르 (2004~2005)
FC 서울 (2007~2009)
트라브존스포르 (2009~2013)
부르사스포르 (2014~ )
국가대표 31경기

Contents

1. 소개

1. 소개

Şenol Güneş (셰놀 귀네슈)[1]

터키 국적의 대한민국 K리그 FC 서울의 前 감독. 팀을 맡은 기간은 2007 ~ 2009 3시즌.

고향 트라브존의 프로팀 트라브존스포르[2]에서 골키퍼 생활을 했다. 선수로서는 트라브존스포르의 레전드인데, 골키퍼로 453경기에 출전했고, 무엇보다 그가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기에 리그 우승을 6차례 기록했다. 그리고 2010년까지 이 6번의 우승이 트라브존스포르가 차지한 리그 타이틀의 전부다. 그 후,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골키퍼 출진이지만, 전술은 수비보다 공격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터키 대표팀을 맡아 3위로 이끄는 대활약을 펼쳐 그 해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치며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졌고, 2002년 UEFA 올 해의 감독에 선정된다. 이 후 다시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가 해임, 2007 시즌부터 FC 서울 감독을 지냈다. 역대 K리그 감독들 중에선 감독 커리어가 몹시 화려한 인물이다.[3]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뛰어난 편이지만 K리그를 약간은 무시하고 있고 경기에서 지면 심판탓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안티들에게 입네슈라고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연고이전 경력 때문에 뭘하든 일단 까이고 보는 팀 특성상 지나치게 비판을 받은 측면도 있다. 심판 판정항의만해도 2010년 들어 국내파 감독들이 훨씬 더 심하게 돌아가면서 했다.

2006년 처음 등장했을 땐 기존 K리그 감독들의 교과서적인 멘트와 달리, 흥미로운 멘트를 던지는 인물이었다. 우리팀은 우승을 위한 팀, 우리팀 정도면 모든 대회 우승을 노려야 한다 등등.

하지만 2009 피스컵 코리아 대회 4강전에서 FC 서울 선수들이 괜히 심판에게 항의하다 세트 메뉴로 퇴장당하고[4] 포항에 5:2 로 개발린 다음에 말한 '친한 감독 3명이면 우승가능', '야구나 보지 뭐하러 K리그 보나'로 돌출발언이 절정을 이룬다.

비록 컵 대회에선 포항에 털리기 했으나 이때가(2009. 08. 27) 서울이 정규리그에선 1위를 달리던 시점(...)인데다, 하필 상대였던 포항 스틸러스가 스틸러스 웨이로 깔끔한 경기 매너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팀 감독 세르지오 파리아스와 대비되면서 더욱 혹독히 까였다.

감독 역량은 나쁘지 않은데 그 놈의 FC 서울 선수들의 공대기질 때문에 여러모로 도매금으로 까였다. 감독 본인도 뒤에선 선수들 많이 혼내곤 한다는데 선수단 내에서 중심을 잡고 분위기를 제대로 조성해줘야할 김한윤, 이을용 같은 고참급들이 앞장서서 날뛰는 통에 감독 혼자 힘으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5]

그래도 차기 국대 감독을 꼽으면 세르지오 파리아스와 같이 외국인 감독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었을 정도로 능력은 괜찮은 편이었으나, K리그에서 우승컵을 반드시 한 번은 들고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는 결국 이루지 못했다. 2009년 계약 만료인데 처음 3년 계약 당시 2+1(옵션 계약)으로 2009년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약을 했는데 결국 아무 타이틀도 얻지 못한것.

결국 2009년 리그를 마지막으로 FC 서울과 계약 만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서 3년간의 K리그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떠나면서 솔직하지 못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3년간 FC서울을 맡으면서 선수 조련과 전술적인 면에서 그 성과를 부정할 수 없으나, 결국 선수들의 멘탈을 잡지 못했다는 점과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K리그를 거쳐간 비운의 외국인 감독 중 한 명으로 남을 듯 하다.

그래도 이장수 시절의 투박한 축구에서 벗어나 서울의 컬러가 된 빠른 템포와 패싱을 골자로하는 공격 축구를 정립시켰고 이청용기성용처럼 서울의 자랑이 된 젊은 선수들을 발굴한 성과 때문에 서울팬들의 지지도는 매우 높은편. 재임 기간에 트로피는 하나도 없었음에도 서울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탄탄한 기반의 인기구단으로 떠올랐다.[6] 터키에서도 서울의 리그 소식을 꾸준히 전해들어 왔으며 서울의 K리그 우승소식을 접하고 아낌없이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선수단 운영에 있어선 자율을 많이 부여하고 마찰이 있어도 너그럽게 대처하는 편이었다. 이런 성향은 그의 밑에서 지도자 경험을 쌓은 최용수 감독에게도 영향을 미쳐 최용수 감독은 젊은 지도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널널한 스타일로 유명하다.[7] 다소 강압적인 편이었던 이장수 시절보다 화기애애 해지고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올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었으나 젊은 선수들의 멘탈 통제가 제대로 안되었던 단점도 존재했다.

퇴임후 터키 쉬페르리그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으로 부임했고 09/10시즌 튀르키쉬 쿠파스(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비록 3차예선에서 리버풀 FC에게 덜미를 잡혀 일찍 탈락했지만.

2010/11시즌 28라운드까지 페네르바흐체 SK를 승점 2점으로 제치고 1위를 기록 중이다. 선수 시절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해봤지만 감독으로서 우승 경험은 없기에 이번에 감독으로서 팀을 27년만에 리그 우승을 거둘지. 아니면 페네르바흐체의 3년만에 리그 탈환일지 더 두고봐야겠다. 막판 30라운드 에스키히얀스포르 원정에서 아쉬운 0:0 무승부로 골득실에 밀려 2위로 내려가면서 상대인 페네르바흐체의 경기 여부에 따라 우승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리그 33라운드.안탈리야스포르를 3-1로 이겼으나 페네르바흐체가 앙카라귀취를 6-0으로 크게 이기는 바람에 골득실에서 7점으로 떨어져 사실상 우승이 어렵게되었다. 34라운드 시바스스포르(15위)가 페네르바흐체를 반드시 이기거나 비기고 트라브존스포르가 카르디미르 카라북스포르를 이기면 역전 우승이 가능해지지만...시바스스포르가 아쉽게 3-4로 지면서 마지막 경기를 4-0으로 이기고도 트라브존스포르는 27년만의 리그 우승을 놓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챔피언스리그 최종예선에선 포르투갈의 벤피카에게 1무 1패로 밀려 탈락했다.(그리고 벤피카가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에 올라 맨유와 같은 조가 되었다.)

그런데, 터키 쉬페르리그 승부조작으로 우승팀 페네르바흐체의 챔피언스리그 32강 진출권이 박탈되어 트라브존스포르가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 진출권을 얻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조추첨에선 터밀란,릴 OSC,PFC CSKA 모스크바와의 32강 조대전이 이뤄졌다.

자신의 처음이자,트라브존스포르로서도 처음인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인 인터밀란 원정은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체코 출신인 온드레이 셀루츠카가 골을 기록하여 1:0으로 터밀란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낳았다. 그러나 이후론 릴과 인터밀란에게 안방경기를 모두 비기는 아쉬움[8] 속에 모스크바에게 승점 1점차로 밀려 아깝게 32강에서 탈락했다. 그나마 릴을 1점차로 앞서 UEFA 유로파 리그나마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32강에서 만난 PSV 아인트호벤에게 1:2,2:6 대패를 당하면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리그에선 29차전에는 49점으로 3위로 올라섰다. 챔스리그에 주력하느냐 한때 리그 11위까지 떨어졌다가 1월부터 2월까지 6승 1무 1패라는 상승세를 찾고있다.이대로 남은 5경기를 잘 지내면 4강 플레이오프인 쉬페르 피날 진출권을 가져서 리그 우승을 노릴 기회를 가지게 된다.(승부조작 파동으로 11~12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제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페르 피날에서도 3위로 마무리하면서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2012~13리그와 유로파리그에서 모두 고전하면서 리그 11위로 추락하고 유로파리그에서도 약체이던 헝가리 비데오톤에게 2경기 모두 득점없이 비겨서 가진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하며 일찌감치 탈락했다. 2013년 1월 들어서 강등권팀인 엘라지그스포르에게 1:3으로 완패하자 1월 27일 스스로 감독에서 사임하고 옛 팀동료이던 톨루나이 카프카스가 새로운 감독으로 들어왔다.

2013년 6월 들어서 최강희 후임으로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귀네슈를 언급하는 의견도 있지만 과연 어떨지... 6월까진 일단 무직 상태이다. 본인도 후보에 오르내린다는걸 알고 있는지 한국은 나의 두번째 고향이라면서 감독직 제안이 오면 기쁘게 받아들이겠다라고 언급했다. 허정무 부회장이 U-20 월드컵 대표팀의 한국 선수단 대표로 터키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때 한국전을 관전하겠다는 귀네슈 감독과 접촉할것으로 보인다.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귀네슈 감독은 어지간히도 한국 국대 감독직에 욕심이 나는것 같다고 한다. 터키의 클럽팀에서도 감독 제안이 왔지만 이를 거절하고 한국에서 올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는것. 대체로 마르셀로 비엘사감독과 더불어서 최종후보에 오른 두명의 후보중 한명일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엘사 감독도 명장이긴 하지만 1년도 안되는 시간에 한국 축구를 전혀 모르는 비엘사 보다는 K리그 감독을 했고 이청용,기성용등 한국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귀네슈가 더 낫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결국 축협의 하고 싶다는 귀네슈는 결국 축협의 언플 희생양이 되고 하기 싫다는 홍명보 감독을 억지로 찍어 눌러서 시킬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축구 대표팀 감독은 우리 모두의 예상대로 되었다. 그리고 귀네슈감독은 5월말에 부르사스포르와 계약했다. 당분간 한국에 올 일은 없는셈..

한국 대표팀 감독을 강하게 희망한것에서 드러나듯 한국과 FC 서울에 대한 애정은 깊다. 서울 시절 제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이를 도와주려 애쓰기도 하는데 기성용이 셀틱 이적 주전에서 밀려나 폼이 떨어지자 트라스존스포르로 임대해 오려 한바 있으며 릴, 아스날, 셀타, 왓포드의 뒤통수를 연달아 후려갈기고 무적 신세가 된 박주영에게도 관심을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14년 7월 17일 터키언론과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 대표팀 감독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강했고 결국 불발된 것에 대한 회한도 깊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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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터키어 발음은 /ˈʃenoɫ ˈɟyneʃ/ 이며, 국내에서는 '셰놀'이 아닌 '세뇰'이라는 잘못된 표기로 굳어져 있다.
  • [2] 여기서 이을용이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 [3] 챔피언쉽 결승에 나온 독일인 심판이 귀네슈 감독이 나온 걸 알아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UEFA 올해 감독을 차지했던 이 사람이 한국에 있을 줄 전혀 몰랐다고.
  • [4] 이전에 포항은 김형일 선수가 퇴장당했으나 별다른 항의가 없었고, 이미 경기는 3:2로 뒤집어졌으나 추스려서 연장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처음 퇴장 당한 선수 이후 추가로 심판에게 항의하고 포항 선수에게 머리박를 하는 꼴사나운 장면 끝에 결국 두 명이 퇴장당해 전세가 역전되어버렸다.
  • [5] 이 문제는 2010년에 베테랑 선수들을 대대적으로 수혈하면서 해결되었다.
  • [6] 이전에는 박주영 등 스타 마케팅을 활용한 반짝 인기 성격이 강했다.
  • [7] 최용수 감독 스스로 감정 추스리고 선수들 대하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언급한바 있다.
  • [8] 터키 여행을 가서 리그 경기와 챔피언스리그를 직접 본 샤다라빠가 그린 만화만 봐도 여러 기회를 골대에 맞춘다든지 해서 놓친 끝에 인터밀란에게 비긴 걸 아쉽게 그렸다. 만일 이겼더라면 모스크바를 제치고 2점차로 앞서 팀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조 2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만일 대량득점으로 이겼더라면 골득실에 앞서 인터밀란을 제치고 조 1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