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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FC/일화 시절

last modified: 2015-03-29 04:52:35 Contributors

Contents

1. 성적
1.1. 시즌별
2. 역사
2.1. 일화 천마
2.2. 천안 일화
2.3. 성남 일화
2.4. 문선명(통일교)과 일화 천마 축구단
2.4.1. 문수르의 사망, 그리고 해체 위기
3. 관련 항목
4. 리그베다 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선수
4.1. 레전드
4.2. 전 멤버
5. 관련 사이트

1. 성적

K리그의 유일무이한 7성 구단이었으나 해체 위기를 맞았다가 다행히 성남시 소속의 축구단으로 전환하였다.플레이오프 덕을 본 것도 있지만, 반대로 2007년에는 미끄러졌다.

  • 최초 3연속 우승: 1993년, 1994년, 1995년
  • 두번째 3연패: 2001년, 2002년, 2003년
  • 7회차 우승: 2006년

다만 국제대회라든가 국내외의 컵대회에서는 리그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1.1. 시즌별

사실 이제 와서 모든 항목별로 나누고 있으면 리그베타 서버에 부담이 되겠지만...
1989 시즌 1990 시즌 1991 시즌 1992 시즌 전설의 시작, 1993 시즌
2연속 우승 1994 시즌 3연패 및 아챔 우승의 1995 시즌 연고 이전의 1996 시즌 1997 시즌 1998 시즌
1999 시즌 2000 시즌 재개된 신화, 2001 시즌 2002 시즌 다시 3연패, 총 6회 우승의 2003 시즌
아챔코스터를 탄 2004 시즌 2005 시즌 7개의 별, 2006 시즌 아쉬운 2007 시즌 2008 시즌
2009 ~ 2011 시즌[1] 아챔 및 컵 우승의 2010 시즌 마지막 FA컵을 들어올린 2011 시즌 멘탈붕괴 2012 시즌 죽다 살아난 2013 시즌

2. 역사

2.1. 일화 천마

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을 연고지로, 동대문운동장을 홈 구장으로 출범했다.

창단 초기에는 별볼일 없던 팀이었지만, 소련 리그에서 올해의 골키퍼에 선정되기도 한 발레리 사리체프(귀화명 신의손)와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출신 신태용과 이태홍을 영입하면서 점점 운이 트이기 시작했고, 팀내 간판이었던 '적토마' 고정운 등의 활약까지 합쳐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신의손은 너무 뛰어난 활약을 펼쳐서 다른 팀들도 골키퍼 용병을 사용하게 되자 국내 골키퍼들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져[2] 골키퍼 용병은 금지되었다.

이후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때문에 서울에서 강제로 이전을 하고, 이후 천안시로 다시 옮겼으나 몇 년 뒤 성남시의 연고지 이전 제의를 수용하고 성남으로 재차 연고지 이전을 하였다[3][4].

이때 연고를 이전한 3구단[5] 중 하나지만 구단 자체가 팬 끌어모으는데 관심이 없다보니, K리그 인기 구단 중 하나인 북패서울이나 연고이전 이후 과거의 행위에 속죄하고 나름대로 연고지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남패제주에 비해 성남의 흥행이나 팬층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도 얇아 리그 최하위권에 자리한다. 일화의 성남 연고이전에 대해서는 천안 시절 경기장 문제가 크게 한몫을 했던지라, 이후에 발생한 LG그룹서울 연고이전, SK그룹제주 연고이전에 비해서 비교적 비판이 덜한 편이다.[6]

성남 일화 천마의 전통인 맥콜이 새겨진 유니폼은 팬들도 싫어하는 유니폼으로 악명이 높았다(…). 물론 델몬트피자헛이나 버거킹을 뒤집어 쓴 구단보다야... 유명 축구 칼럼리스트인 존 듀어든이 마치 라면 봉지 같다고 평한 이 전통의 맥콜-초정탄산수 유니폼은 용품 후원업체가 프로스펙스에서 로또로 바뀌면서 디자인이 많이 깔끔해졌다. 전반적으로는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가다. 맥콜 스폰서는 잠깐 센트럴 시티로 바뀌었으나,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7] 그나마 예전 디자인과는 다르게 깔끔한 글씨로 바뀌었다. 이젠 맥콜 없으면 허전. 대표 서포터스 클럽은 황기청년단, 천마불사가 있다.

그리고 성남으로 연고이전을 하는데 열약한 인프라 때문에 하였다 하나 천안시에서 조명탑이 있는 경기장을 지어주고 있었고 일화기업의 종교성에 의해 반대시위를 하였다 하나 이는 증거가 없는 거짓으로 밝혀졌고 정작 반대 시위는 성남시에서 하였다.[8](참고로 천안시에는 통일교계열의 선문대가 있는데 천안시민들이 성남FC의 종교색 때문에 시위를 했다면 선문대도 나가라고 시위를 했을것.)

성남을 언급할 때 항상 같이 거론되는 구단의 무성의함은 실로 심각해서, 팬들도 구단이 홍보 따위는 장식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홍보를 안 한다. 아니, 할 줄 모른다. 성남 시내에 경기 안내 현수막이 걸리긴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조차도 그 작은 탄필드에서 관중을 메꾸지 않는 황량함을 자랑한다. 또한 광주의 탈을 쓴 수원버스 720-2번 등 수원-성남을 잇는 시내버스에 버젓이 수원 삼성 블루윙스 홍보 광고가 붙어 있음에도 여기에 대해 공분하는 성남/분당 시민들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다.[9] 그야말로 아스트랄함의 극치다. 때문에 성남은 관중수 뻥튀기하는 구단으로 악명이 높다. 한 예로, 2006년 수원과 챔피언 결정전에는 만원 관중이 들어찼는데, 경기장 수용인원보다 더 많은 관중이 집계되기도 했다.

그래도 광고와 홍보는 옛날부터(?!) 나름 열심히 하긴 했다. 야탑역 광장에서부터 홍보 및 안내를 해준다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가끔 홍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720-2랑 분당선은 어쩔건데?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로 K리그가 반짝 인기를 끌 때 학생들에게 표를 뿌리고[10], 지역 체육회 및 지자치 차원에서 정말 홍보를 많이 했다. 그러나 성남종합운동장(모란) 시절이나 조금 관중들이 좀 있었을 뿐, 탄천종합운동장(야탑)으로 이사한 이후로 관중 수는 시망이다.

물론 야탑역성남대로를 비롯한 곳곳에 현수막을 걸어두는 것을 봐서는 지역 체육회와 협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경기장이 위치한 야탑동, 그리고 넓게는 분당신도시·판교신도시 주민들은 자꾸만 성남시에서 떨어져나가기를 바라고 있거니와 구단에서 아무리 홍보를 해봤자 구성남(본성남) 지역을 연상하게 하는 성남을 팀명으로 쓰는 한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뿐이다. 그렇다고 구성남(본성남-중원·수정) 지역에서 탄천종합운동장으로 축구 경기를 보러 오려면 거리상[11]/감정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도 힘들다. 구성남이든 분당·판교든 다 외면한다. 낙동강 오리알

성남 일화 천마 시절부터 구단 프런트가 아무래도 분당·판교와 구성남(본성남) 두 지역간의 이질감이라는 지역사정을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참고로 성남시는 2010년대 들어 인구수 100만을 돌파한 광역시급 대도시이고, 분당만 해도 외국인 포함 인구 50만이 다 되가는 대도시다. 이렇게 인구도 많고, 분당이라는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동네를 끼고도 변변치 않는 스포츠 연고팀도 없는 지역에서 K리그, AFC 챔피언스 리그 등에서 훌륭한 실적을 내면서도 관중몰이에 실패하는 건 구단 스스로가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싶으면 이름을 분당으로 바꾸던가 성남 FC로 계속 가고 싶으면 성남종합운동장으로 바꾸면 된다. 유스인 풍생고가 구 성남지역인 수정구에 있고, 팬베이스가 구 성남 지역인 것을 고려하면 모란종합운동장으로 홈구장을 옮겨가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그러나 현실적 문제가 크다

K리그에서 나름 명문팀임에도 수원, 서울, 포항이 팀들의 충성된 위키러(...) 덕택에 적어도 2~3경기 간격으로 업데이트가 되는데, 명색이 K리그 최다 우승팀이지만 가끔 타팀 팬들이 들러서 위키를 수정해주고 있을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이야 경기 내용도 꾸준히 업데이트가 되는 편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쫓겨나 충청남도 천안시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 성적이 바닥을 치는 등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2.2. 천안 일화

천안 일화 천마
Cheonan Ilhwa Chunma

일화는 프로축구 출범 후 최초로 서울만을 연고로 한 구단이었는데,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인한 연고지 이전 과정에서 선문대학교 및 일화의 청주 공장 등 통일교 기반이 있는 충청남도 천안시를 선택하였다.

홈구장은 천안오룡경기장으로, 이 경기장은 조명탑이 없어서 연장전 경기로 넘어가면 제비뽑기를 시행할만큼 시설이 매우 열악했던 구장이다. 이 때문에, 천안시는 일화의 유치를 위해서 오룡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전환할 것까지 약속한 상태였다.# 그러나 천안시는 오룡경기장의 부실한 시설은 그대로 두고 1998년 12월에 천안오룡경기장을 대신할 천안공설운동장 착공 계획을 내세우며 일화를 잡아두려 노력했다. 당시 이미 성남시에서 기존 인조잔디 하키구장[12]남종합운동장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경기장 활용을 목적으로 성남시장이 더 좋은 조건을 걸고 천안 일화에 성남 입성을 제의한 바가 있었다. 이 과정을 요약하자면 연고이전의 주된 원인은 인프라 문제였으며, 천안시에 대한 일화의 신뢰 상실이 부차적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미 축구전용구장 전환 약속이 파기된 바가 있으니 착공 계획만으로 일화를 잡아두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한편, 일화 축구단의 연고 이전 계획이 대외로 알려지자 강릉시대구광역시가 유치 의사를 표명하였다./연합뉴스/프로축구 일화, 강릉으로 이전할 듯.

천안시는 이에 대해 천안오룡경기장 대신으로 천안종합운동장이 이미 1998년 12월에 기공을 하여 한창 공사중으로 2001년 착공이 되니 기다려달라고 요청하였으며, 거기에 덧붙여 다음 해 조명탑 설치를 위한 예산을 편성한 상태라고 밝히며 일화를 잡기 위해 노력을 하였고, 천안 일화 서포터스 또한 연고이전 반대활동을 펼쳤지만, 일화축구단 연고지 이전 반대 시민궐기

1999년 싸커월드에 게시된 천안의 연고 이전 반대 활동이 있다고 하는데 정작 사실관련 기사는 없다. 일화는 1999년 12월 27일, 성남시로 연고를 이전했다.일화 연고지 이전에 천안 반발 거세

그러나 천안종합운동장의 완공에는 시간이 꽤 걸렸고, 구단의 위용이 추락한 상태를 만회하려는 차원에서 1999년 겨울 조명탑이 있는 구장을 두 개[13]나 보유한 성남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중패

2.3. 성남 일화

2000년에 성남으로 연고지를 옮겼고, 이후 2001 시즌부터 2003 시즌까지 다시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룩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하기 시작한다. 특히 2003년 K리그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골(28개)을 기록했던 득점왕인 김도훈을 주축으로, 당시 일화도 이왕 연고지를 옮겼으니 팀 분위기도 쇄신할 차원으로 여러 선수들을 현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성적을 내도, 천안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정작 성남에서도 버린 자식 취급받고 있었다.[14] 그래도 조명탑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천안 시절엔 조명탑이 없어 야간 경기를 진행하지 못해 제비뽑기로 승부를 정한 적도 있었으니... 천안 연고시절의 괴로움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우승 또는 상위권을 차지한 덕에 국제대회에도 자주 참가해서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및 준우승 2회, A3컵 우승 1회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07 시즌에는 리그 1위를 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에 지는 바람에 안습하게도 우승을 빼앗겼다. 일화가 이득을 본 일도 있긴 하지만, 축구에서 굳이 상위권 플레이오프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는 강등 및 승격 결정전 밖에 없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상위 스플릿에 못 들어서야 이건 뭐...

한 때 1군은 잔디구장을 빌려서 축구를 하고, 2군의 경우 연고지 팜인 풍생고등학교(모란역 근처 구성남 지역 한복판에 있다.) 모래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는 등의 안습한 상황이 있었으나, 현재 1군의 경우 탄천종합운동장, 성남종합운동장, 안양종합운동장을 번갈아가면서 사용을 하고 있으며, 2군의 경우 탄천변 B구장[15]을 이용하여 훈련을 하고 있다.

풋볼 다이어리 등 축구, 야구 만화로 잘 알려져 있는 샤다라빠가 골수적으로 응원하는 팀이기도 하다. 실제로 샤다라빠의 경우 매주 성남 일화 홈페이지에서 성남만을 위한 카툰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단에서 돈줘서 그리는 웹툰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구단 수뇌부의 구미에 맞춘 웹툰은 아니다. 깔 때는 확실히 깐다. 예외로 2009년 대한축구협회 FA컵에서 성남이 준우승을 했을 때, 그렸던 웹툰은 그 강도가 심해서 게재되지 못했다. 하지만 성남에서는 샤다라빠 본인의 블로그에 만화를 올리는 것은 허락했고, 원고료도 줬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대인배 소리를 들었지만…

2011년 가뜩이나 선수들을 다 팔아제껴버려서 팬들의 원망이 자자한 가운데, 원고료 문제로 샤다라빠마저 계약을 포기함으로서 스스로 구단 홍보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2012 시즌부터 다시 돈이 풀리면서 재계약을 했고, 연재가 되었다. 2013년부터는 다시 작가 개인이 계약을 맺은 골닷컴다음과 작가 소속의 황기청년단 홈페이지에만 올린다. 창단 과정의 문제와 얽히며 부정기 연재중. 덕분에 비시즌 인기 상품이던 터키 축구여행이 쏙 빠졌다.

2012년은 가히 성남의 팬들에겐 재앙에 가까운 한 해였는데, 수많은 돈을 투자한 것에 비해서 돌아온 성적은 ACL 16강, FA컵 무관, 리그 12위 (B그룹) 였다. 이에 팀의 레전드 출신이자 ACL 우승, FA컵 우승 등의 기록을 세운 성남의 레전드 신태용 감독을 자진사퇴 형식으로 해임하고 부산 아이파크안익수 감독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모기업도 손을 떼려는 상황이라 누구나 힘을 내자는 마음이 없으니 뚜렷한 성과가 없었고 자매구단(WK리그 천안 일화 천마)처럼 해체되고 개근하던(...) 국제대회처럼 버려질 위기까지 간다.

2.4. 문선명(통일교)과 일화 천마 축구단

성남 일화 천마
Seongnam Ilhwa Chunma

이름과는 달리, 음료수 회사 일화의 직접적 자회사가 아니었다. 구단의 법인명은 '(주)통일스포츠'였고, 이는 일화와 같이 통일교(통일그룹)의 자회사이다.(^v 고리를 봤다면 알것이다.)

성남이 통일교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개신교도들에게 무한 까임을 당하는 원인이 되었다.[16] 하지만, 성남 일화 천마는 소속 선수 및 스태프들에게 어떠한 종교 행위도 강요하지 않았으며 구단 내에도 통일교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신교 구단인 안산 할렐루야야말로 종교구단스러운 면모를 보였던 바가 있으니 성남 일화를 까는 것은 참 우스운 자기 얼굴의 침 뱉기다. 실제로 2000년 초반 성남을 비난하면서 안산 할렐루야를 K리그로 진출을 시킨다는 개신교계 움직임에 당시 유니텔이나 넷츠고, 하이텔, 나우누리 축구 게시판에선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면서 개신교계만 온갖 쌍욕을 쳐먹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스러운 태도를 보였으니 당연한거다.

그렇다고 통일교 색깔이 전혀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예컨대 법인명 자체가 (주)통일스포츠[17]라 비웃음을 당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당시 구단 엠블럼에 원형 테두리의 좌우 양쪽에 새겨진 부등호 표시 같은 것은 통일교 로고에서 따온 것이다. 이 표시는 성남 엠블럼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통일교 계열 여러 단체의 로고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것이긴 하다.

주요 경기에 교인들이 단체 관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2003년 일본에서 벌어진 A3 챔피언스컵에는 일본 내의 통일교 신자들이 대거 동원되어서 일본 J리그 클럽에 맞서는 성남을 응원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통일교에서 주최하는 피스컵에는 영구진출권을 갖고 있었다(...)

반면, 선수들이 골 세리머니 등에서 종교의식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구성원 각자의 종교에 대한 아무런 제약도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신태용 전 감독의 경우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최성국이 골넣고 기도 세리머니 하는 것도 유명하다. 축구단이 종교와 관련되어도 좋은가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 하도록 하자. 참고로 종교적인 축구클럽이면서 분쟁 더비가 유명한 클럽이 SPL셀틱 FC레인저스 FC로 이들의 맞대결을 올드펌 더비라고 한다.(# 참조)[18]

여담으로 2012년 10월 K리그 이사회에서 연고지를 고양시로 옮긴 안산 H FC(할렐루야)가 '고양 Hi FC'라는 이름으로 2013 시즌 K리그 2부리그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한국판 올드펌(...)이 펼쳐질 것으로 보였...으나, 이후 성남이 시민구단으로 변화하면서 한국판 올드펌이 좌절되었고 기독교 계열 이랜드서울 이랜드 FC가 창설되면서, 2015년부터 챌린지에서 고양 HI FC와의 기독교 구단간의 종교더비가 이뤄지게 되었다.

팬들 중 통일교인이 아닌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통일교도인 팬들도 어느 정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일반 팬들의 활동이 뜸한 비시즌에 문선명을 디스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집중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2.4.1. 문수르의 사망, 그리고 해체 위기

2012년 9월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사망함으로써 성남 일화 구단에 대해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은 K리그 팬들이 우려를 했다. 축구에 애정을 쏟았던 문선명과는 달리, 문선명의 부인인 한학자와 통일그룹 실권을 쥔 4남 문국진은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문선명이 와병 중일 때 문선명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후계구도가 결정되는 대로 축구단 운영에서 손을 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문선명 시절 통일그룹은 문어발식으로 수익성 없는 사업에 돈을 많이 소모했으나, 문선명 사후 긴축경영이 필요하게 된 상황에다 문선명 개인을 뺀 나머지 가족들은 별 애착도 없었던 축구단에서 아예 손을 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문선명 사후에 축구팬들이 걱정한대로 영 좋지 않은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2012년 10월에 WK리그에 참가하고 있던 충남 일화 천마가 해체되고, 피스컵/피스퀸컵이 폐지되면서 성남 일화마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한편, 일화가 축구판에서 손을 떼게 되면 다른 대형기업이 인수하거나 성남-분당에서 발벗고 나서서 시민구단으로 재탄생시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K리그 팬들 사이에서 있었다. 그런데 성남시 내에서는 시민축구단 창단 모임이 성남 일화 위기설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발족됐고, 거기에 성남시의 재정난이 어느 정도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재명 시장이 축구단 창단과 해체된 성남시청 소속 체육팀을 재창단하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실제로 그 논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

이후 일화가 (축구계에서) 일화가 축구단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성남시에서 2013년 6월까지 시민구단 창단 타당성 연구용역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성남시 측에서는 2014년쯤에나 창단 혹은 구단인수가 가능한 것으로 나왔으나 성남시 측에서는 이러한 용역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에 문제가 있는걸로 의심이 점차 확산 중이다. 이 쯤 되면 일화 축구단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질 정도다.

그러던 2013년 8월 23일 자정 무렵, 인터넷 중앙일보에서 일화 축구단이 안산시로 연고를 이전한다는 기사가 떴다. 단순한 연고 이전이 아닌 안산에 팀을 매각하는 형식으로 논의했다. 그런데 9월 들어 일화와 안산시 간의 인수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동시에 천마불사 등 성남 팬을 비롯한 케이리그 팬, 성남 지역 스포츠 관계자가 성남 사수 운동을 벌이고 이에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회가 동조하고 나서자 다시 성남시 측에서 일화 축구단 인수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결국 2013년 10월 2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일화 축구단 인수 및 시민구단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안산시는 경찰청 축구단을 받았다.

모라토리엄을 극복한지 얼마 안 된 성남시에서 올 시즌 평관이 3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팀을 인수하여 수 백억원에 달하는 시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다.

또한, 당장 구단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성적에 비해 흥행은 저조하기 그지 없던 팀을 변화 시키는 것과 시민구단화 첫 해 버프를 넘어 꾸준히 재정자립도 및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스폰서 확보에 있어 지자체장이 압력으로 지역 기업들을 쥐어짜내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큰 일이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격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인데, 덕분에 TF팀과 기존 팬들과의 의사소통, 인사 문제 등에 있어 많은 잡음이 오가고 있으며 당장 시민구단 전환 후의 첫 시즌 일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공산이 크다.[19]

2014년의 자세한 상황은 2014 시즌 내 사건사고 항목 참고.

4. 리그베다 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선수

5.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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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항목을 해체하여 2009 시즌으로 정리할 방침
  • [2]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보면 왜 그랬는지 알 듯. 그쪽은 시장이라도 크지.
  • [3] 성남시 지자체의 연고지 이전 제안을 수용해서 연고지 이전을 했다는 당시, 성남 박규남 단장의 인터뷰를 지금도 KBS 홈페이지에서 추적 60분 다시보기를 보면 볼 수 있다. 추적60분-2001년 3월 25일 방송분 http://www.kbs.co.kr/2tv/sisa/chu60/view/vod01/1250722_75915.html
  • [4] http://www.fntoday.co.kr/bbs/list.html?table=bbs_219&idxno=41178&page=1&total=5&sc_area=A&sc_word=성남 연고지 추적 60분 KBS-추적60분-성남시 연고지 이전 제안 수용 발언 캡처 사진 #
  • [5] 모두 동대문구장에서 쫓겨난 뒤, 우연찮게도 연고지를 다시 옮겼다.
  • [6] 그래도 욕할 사람은 욕하는데 이 경우, 북패남패 사이에 있다고 중패라 부른다. 그런데 성남 팬들조차도 자기들을 중패라고 자폭하면서 부르는 경우가 꽤 있다.(…)
  • [7] 어차피 통일그룹 안에서 돌아다닌 것 뿐.
  • [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05&aid=0000049431
  • [9] 물론 이 얘기는 성남-분당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할 부분. 위에 언급한 경기광주 버스 720-2는 서현역이 종점으로, 분당시(市) 주민들은 구 성남 지역(중원/수정)하고 동질감이 아예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퐈이야라이벌팀으로 이적한 뒤로도 분당선 열차에 홍보 포스터가 버젓이 붙여져 있었던 건?
  • [10] 성남 천마 일화 경기를 관람하고 오는 것이 체육 수행평가였던 중고등학교도 있었다(...)
  • [11] 일단 야탑역까지 오는 건 어렵지 않으나 야탑역 이후에 경기장을 이어주는 버스 노선이 없다. 즉, 경기장 앞으로 한번에 가는 버스노선이 없어 교통편이 은근 불편하다.
  • [12] 1988 서울 올림픽의 필드하키 경기장을 치렀던 곳으로 필드하키계에서는 성지나 다름없던 구장이다. 그런데 그 좋은 구장을 축구장으로 바꾸려고 했으니, 체육계의 비난이 거셀 수 밖에 없었다.
  • [13] 모란운동장/탄천종합운동장
  • [14] 그래도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성남종합운동장 시절에는 관중이 조금 있던 편이였다.
  • [15] 황송공원 축구장을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탄천변으로 정착한 듯.
  • [16] 특히 일화 축구단이 천안시에서 성남시로 연고이전을 했을 때 당연히 성남시 내 여러 교회에서 반대성명을 냈었다. 게다가 당시 성남의 김병량 시장이 분당신도시의 모 대형교회탄필드 맞은편에 있는 큰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던지라 기독교의 입김이 셀 수 밖에 없었다.
  • [17] 심지어 2015년 시즌권 판매 때까지도 모 카드사에는 이 상호로 등재… 즉, 영수증에 성남시민프로축구단이 아닌 통일스포츠로 나온다고.
  • [18] 애초에 축구클럽이란 것의 시작에는 종교가 깊이 개입되어 있다. 유럽에서 축구팀 창단 중 가장 큰 가지의 갈래는 교회 및 마스지드(-이슬람 성원-터키같은 경우), 학교, 군대, 노동자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제의 노동자팀이 어릴 적 팬이던 부자에게 인수를 당해서 오늘의 갑부팀이 되기도 하는 축구판에서 이러한 종교팀이 창단 당시의 주지를 지켜서 모두 종교적 구단으로 남은 것도 아니다. 당장 '유나이티드' 팀명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많은 팀들끼리 이합집산하던 것이 유럽의 축구판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사정상 종교색이 빠진 구단도 많다. 반면, 상술된 셀틱이나 레인저스가 그렇듯이 종교색이 굳어버린 곳도 많다. 우리나라도 일화 말고도 할렐루야 같은 팀도 있고, 지엽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허다한 게 종교 축구팀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남 일화는 창단이 된지 이제야 20년이 약간 넘은 구단으로, K리그로서야 고참이지만 세계적으로 본다면 풋사과에 불과하다. 유럽 쪽은 워낙에 100년 넘은 구단이 허다하여 자랑거리도 못 된다. 결국 이 팀의 종교색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 [19] 현재 샤다라빠를 비롯한 열성 팬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감독 교체로 시작해 엠블럼과 유니폼까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진행되었다. 시민과 팬을 분리하여 놓고는 평관 1만~2만 명을 노리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2013년 최다관중이 수원팬이 절반이었던전 8천여 명이었고 탄천구장은 1만 6천여 명만 수용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한 처사. 팬들은 '차라리 일화 때가 나았다'는 분위기였다.
  • [20] 디시인사이드 내에서의 정식 명칭은 피스스타컵 갤러리. 원래는 한 페이지에 09,10,11 글이 공존할 정도로 망했던 갤을 국내축구 갤러리 성남빠들이 점령해서 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