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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last modified: 2015-04-12 20:01:37 Contributors

라틴어 Archibasilica Sancti Ioannis in Laterano
이탈리아어 Arcibasilica Papale di San Giovanni in Laterano
영어 Papal Archbasilica of St. John Lateran
프랑스어 Basilique Saint-Jean-de-Latran
독일어 Lateranbasilika
스페인어 Archibasílica de San Juan de Letrán
포르투갈어 Basílica de São João de Latrão
중국어 拉特朗圣若望大殿
일본어 サン・ジョバンニ・イン・ラテラノ大聖堂

로마 4대 대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
산 피에트로 인 바티카노 대성당(성 베드로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마리아 대성당)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

성당 정면
사도좌 공석(Sede Vacante)일 때 성좌의 문장인 움브라쿨룸(Umbraculum)과 엇갈린 열쇠.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라테라노 대성당을 상징하는 문장이기도 하며, 건물 정면 기단부에 새겨져 있다.
라테라노 궁전

기본 정보
위치 이탈리아 로마
종교 가톨릭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지위 대성전(Major Basilica)
건축 정보
축성 324년
건축가 알레산드로 갈릴레이
양식 바로크
건축 내역
전체 길이 140m
전체 너비 140m
신랑 너비 65m
 
unesco-worldheritage.png
[PNG image (Unknown)]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름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영어] / [프랑스어]
국가·위치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시국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0년
등재기준 (i)[3], (ii)[4], (iii)[5], (iv)[6], (vi) [7]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콘스탄티누스 1세의 기증
2.2. 훼손과 복구의 반복
2.3. 대대적인 재건
3. 주요 건축
3.1. 산 조반니 광장
3.2.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3.2.1. 정면
3.2.2. 나르텍스
3.2.3. 신랑
3.2.3.1. 발다키노와 교황 제대
3.2.3.2. 12사도 성상
3.2.4. 후진
3.2.5. 경당
3.2.6. 교차랑
3.2.7. 무덤
3.3. 라테라노 궁전
3.4. 세례당
3.5. 성 계단
4. 기타


1. 개요

정식 명칭은 '라테라노의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성 요한 세례자성 요한 복음사가 대성당(라틴어: Archibasilica Sanctissimi Salvatoris et Sanctorum Iohannes Baptista et Evangelista in Laterano, 이탈리아어: Arcibasilica del Santissimo Salvatore e Santi Giovanni Battista ed Evangelista in Laterano, 영어: Archbasilica of the Most Holy Saviour and Ss. John the Baptist and the Evangelist at the Lateran)'이다.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있는 성당 중 가장 오래된 대성당으로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 즉 유일무이한 교황좌가 위치한 곳이다. 위 사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앉은 의자가 바로 교황좌. 이 때문에 '모든 성당의 어머니'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교황이 거주하는 사도 궁전이 위치해 주요 업무와 미사를 거행하는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도 지위가 더 높다. 하지만 성 베드로 대성당의 인지도가 넘사벽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1980년,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나도 내 축일 잇뜸!

전세계 가톨릭 교회는 11월 9일을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Festum in Dedicatione Basilicae Lateranensis)로 기념하며, 로마 보편 전례력상 해당 축일은 선택적으로 기념할 수 있다.

2. 역사

2.1. 콘스탄티누스 1세의 기증

'라테라노'라는 지명은 로마 제국 초기에 라테라누스 가문의 저택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했다. 이곳에는 저택 이외에도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Septimius Severus, 생몰년: 146.4.11~211.2.4, 재위기간: 193.4.9~211.2.4)가 세운 기병대의 요새가 있었으나 312년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Constantinus I, 생몰년: 272.2.27~337.5.22, 재위기간: 306.7.25~337.5.22)가 허물었고, 저택은 그의 소유로 삼았다가 교황에게 기증했다. 저택은 교황이 거주하는 궁전으로 바뀌었고 궁전 곁에는 대성당이 세워져 324년 교황 성 실베스테르 1세(St. Sylvester I, 생몰년: ?~335.12.31, 재위기간: 314.1.31~335.12.31)가 '하느님의 집(Domus Dei)'을 선포하며 봉헌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봉헌보다도 10여년 이상 빠른 것으로, 이를 반영해 대성당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

SACROS·LATERAN·ECCLES·
OMNIVM VRBIS ET ORBIS
ECCLESIARVM MATER
ET CAPVT
(Sacrosancta lateranensis ecclesia
omnium urbis et orbis
ecclesiarum mater et caput)
(전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지극히 거룩한 라테라노 성당)

2.2. 훼손과 복구의 반복

대성당이 처음 들어설 당시에는 밀라노 칙령이 반포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다가 로마 시에는 아직 옛 종교의 신전들로 빼곡했기 때문에 도심에서 상대적으로 외진 곳, 즉 아우렐리아누스 성벽과 가까운 지금의 자리가 건축부지로 선정되었다.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 로마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게 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보면 대성당이 로마 시를 지키는 방어선에 붙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성벽과 너무 가까웠던 탓에 뒷날 반달족로마를 약탈할 때 대성당에 봉헌된 수많은 보물이 말끔하게 털리는 원인이 되었다. 교황 성 레오 1세(St.Leo I, 생몰년: 391/400?~461.11.10, 재위기간: 440.9.29~461.11.10)와 교황 하드리아노 1세(Adriano I, 생몰년: ?~795.12.25, 재위기간: 772.2.1~795.12.25) 때 건물을 복구하기는 했지만 897년의 지진으로 대부분이 붕괴되고 말았다.

이때 파괴었다가 복원된 대성당은 400년 남짓 유지되다가 130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V, 생몰년: 1264~1314.4.20, 재위기간: 1305.6.5~1314.4.20)와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 생몰년: 1245~1334.12.4, 재위기간: 1316.8.7~1334.12.4) 때 재건되었지만 이번에는 6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1360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다음 재건은 교황 복자 우르바노 5세(B. Urbanus V, 생몰년: 1310~1370.12.19, 재위기간: 1362.9.28~1370.12.19) 때 있었다. 2번의 화재에다가 아비뇽 유수로 인해 거주자인 교황이 집을 비우게 되자 주인을 잃은 대성당과 교황궁은 점차 황폐해져 갔고, 이는 아비뇽 유수가 끝난 뒤 교황이 라테란이 아닌 바티칸으로 궁전을 옮기게 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교황의 거처가 이전된 것이지 주교좌 교회의 위상만은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는데, 이 때문에 교황들이 대성당의 전면 재건에 착수하게 된다.

2.3. 대대적인 재건

16세기 로마성당과 궁전 등 공공건축을 주도해 건축붐을 일으킨심시티 교황 식스토 5세(Sixtus V, 생몰년: 1520.12.13~1590.8.27, 재위기간: 1585.4.24~1590.8.27)는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 1543~1607.6.28)에게 명령해 옛 라테라노 궁전을 철거하고 새 궁전을 지었으며,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Constantius II, 생몰년: 317.3.7~361.11.3, 재위기간: 337.5.22~361.11.3)가 357년 이집트에서 로마로 옮겨와 대전차경기장에 세웠던 오벨리스크[8]를 지금의 자리로 이동시켜 1588년 8월 3일 새로운 기단석 위에 올려놔 궁전 앞 광장을 장식했다.

그리고 교황 인노첸시오 10세(Innocentius X, 생몰년: 1572.3.7~1655.1.7, 재위기간: 1644.9.15~1655.1.7)가 임명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9.25~1667.8.3)는 대성당의 신랑 좌우 양쪽에 벽감을 건설했으며, 이 공간에는 1718년에 완성된 12사도의 대형 성상이 자리잡았다. 한편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 생몰년: 1652.4.7~1740.2.6, 재위기간: 1730.7.12~1740.2.6)는 대성당의 새로운 정면부(facade)의 설계도를 공모해 20여 명의 쟁쟁한 건축가들이 여기에 참여했는데, 알레산드로 갈릴레이(Alessandro Galilei, 1691.8.25~1737.12.21)의 설계안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어 1735년에 공사를 마무리지었다. 그가 완성시킨 대성당의 정면부는 신고전주의 양식이었기에 옛 대성당의 바실리카풍 외관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878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 생몰년: 1810.3.2~1903.7.20, 재위기간: 1878.2.20~1903.7.20)는 제대에서 거행하는 의식을 보다 편리하게 치르도록 기존의 후진을 헐고 뒤쪽으로 확장시켰다. 후진의 벽면에 있던 모자이크 장식은 후진을 철거하기 전에 벽에서 떼어낸 다음 신축한 후진에 다시 붙였다.

3. 주요 건축

3.1. 산 조반니 광장

사진 설명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광장(Piazza di San Giovanni Laterano)
산 조반니 광장은 대성당 북쪽 정면과 궁전이 서로 접하고 있다. 광장에 면한 대성당 북쪽 정면 양쪽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은 주세페 발라디에르(Giuseppe Valadier, 1762.4.14~1839.2.1)가 설계했고, '강복의 발코니'라 불리는 북쪽 정면은 도메니코 폰타나가 1686년에 설계한 것이다. 2층 프리즈에는 "SIXTVS·PP·V·AD BENEDICTIONES EXTRVXIT M D·LXXXVI(교황 식스토 5세가 1586년에 건설하고 축복하다)"라는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 광장 가운데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원래 기원전 15세기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세 3세 때 만들기 시작해서 손자인 투트모세 4세 때 완성한 후 테베의 카르나크 대신전 앞에 세웠던 것이다. 로마 제국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는 이 오벨리스크를 로마로 가져와 대전차경기장 중앙 분리대에 갖다놨고, 제국 멸망 후 방치되었다가 교황 식스토 5세가 폰타나로 하여금 지금의 위치로 옮기도록 했다.

3.2.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3.2.1. 정면

사진 설명
정면(Facade)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공모에 당선된 알레산드로 갈릴레이의 설계안에 따라 건설된 정면부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1735년에 지어졌다. 정면의 상층부에는 "CLEMENS·XII·PONT·MAX·ANNO·V·CHRISTO·
SALVATORI·IN·HON·SS·IOAN·BAPT·ET·EVANG·(Clemens duodecimus pontifex maximus anno quinto christo salvatori in honorem sanctorum ioannis bapttistae evangelistae : 클레멘스 12세, 교황 재위 제5년, 구세주 그리스도, 세례자 요한사도 요한의 영예)"라는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 지붕에는 예수 그리스도, 세례자 요한, 사도 요한, 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 예로니모,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아타나시오,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오, 요한 크리소스토모, 나지안츠의 그레고리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베르첼리의 에우세비오 등 7m 높이 성상 15개가 세워져 있다.

3.2.2. 나르텍스

사진 설명
열주랑(Portico)
길이 10m, 폭 50m의 열주랑은 12세기 경에 제작된 프레스코화로 천장이 장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 휘하 로마군예루살렘 공격,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의 세례교황령 기증, 세례자 요한의 참수 등이다. 현관에서 신랑으로 통하는 청동문은 모두 5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중앙에 있는 문은 포로 로마노에 있던 고대 로마 원로원 건물인 쿠리아 율리아의 문을 떼어서 옮겨온 것으로(…) 기원전 1세기경에 제작된 것이라 현재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문이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문은 25년마다 돌아오는 성년에만 열리는 성문(聖門, The Holy Door)으로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1300년에 첫 성년을 선포한 것을 기념해 제작되었다. 나르텍스 끝부분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탕 유적에서 발견한, 4세기 경에 제작된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의 조각상이 있다.

3.2.3. 신랑

3.2.3.1. 발다키노와 교황 제대

사진 설명
발다키노(Baldacchino)
조반니 디 스테파노(Giovanni di Stefano, 1366~1399)가 교황 우르바노 5세 때인 1367년 경에 제작한 고딕 양식의 발다키노 윗부분 감실에는 베드로바오로의 은제 흉상이 보관되어 있는데, 흉상 안에는 두 사도의 두개골이 성유물로 보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 제대(Papal Altar)
발다키노의 바로 아래에는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교황 제대가 있다. 이 제대에서 교황이 직접 주재하는 미사로는 매년 성주간 목요일에 열리는 최후의 만찬 미사가 있다.

3.2.3.2. 12사도 성상

신랑 양쪽에 보로미니가 설계한 12개의 벽감에는 12사도 성상이 안치되어 있다. 1703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공모에 참여한 여러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각각의 크기는 4.25m에 이르며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참여한 조각가들은 카밀로 루스코니(Camillo Rusconi, 1658.7.14~1728), 프란체스코 모라티(Francesco Moratti, ?~1719), 안젤로 데 로시(Angelo de Rossi, 1671~1715.6.12), 주세페 마추올리(Giuseppe Mazzuoli, 1644~1725), 로렌초 오토니(Lorenzo Ottoni, 1658~1736), 피에르 에티엔 모노(Pierre-Étienne Monnot, 1657.8.9~1733.8.24), 소 피에르 르 그로(Pierre Le Gros, 1666.4.12~1719.5.3)이다. 성상들의 배치순서(입구에서 제대쪽)와 사진, 조각가는 다음과 같다.

3.2.4. 후진

사진 설명
교황좌(Papal Cathedra)
반원형의 후진은 코즈마테스크 양식의 모자이크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교황 니콜라오 4세(Nicolaus IV, 생몰년: 1227.9.30~1292.4.4, 재위기간: 1288.2.22~1292.4.4) 때인 1291~1292년에 자코포 다 카메리노와 자코포 다 토리티가 제작했다. 모자이크 중에서 후진 상단부에 있는 금빛 모자이크는 4세기에 만들어졌다가 13세기에 보수를 거친 작품이다. 후진 중앙에는 대리석으로 제작된 로마 교구의 주교좌, 즉 교황좌가 5개의 단 위에 자리해 있어 이 대성당 서열을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더 높게 한다. 역대 교황콘클라베에서 선출되면 제일 먼저 이 대성당을 방문해 교황좌에 착좌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3.2.5. 경당

사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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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코르시니 경당(Corsini Chapel)
코르시니 경당은 1734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 생몰년: 1652.4.7~1740.2.6, 재위기간: 1730.7.12~1740.2.6)가 이 대성당의 정면을 설계한 알레산드로 갈릴레이에게 의뢰해 건축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황의 출신 가문[9]을 경당의 이름에 붙였다. 제대를 장식하는 성화는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모습을 담았으며, 제대의 좌우에 장식된 대리석 조각상은 각각 '겸손'과 '회개'를 상징한다.
제대 왼쪽 감실에는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안장된 자줏빛 석관이 있는데, 원래 판테온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석관 위쪽에는 교황의 청동상이 있고 그 좌우에는 각각 '아량'과 '풍성함'을 상징하는 대리석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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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란첼로티 경당(Lancellotti Chapel)
란첼로티 경당은 프란체스코 카프리아니 다 볼테라(Francesco Capriani da Volterra, 1535~1594)가 1585~1590년에 설계했으며 약 80여년 후인 1675년경에 조반니 안토니오 데 로시(Giovanni Antonio de Rossi)에 의해 재건되었다. 경당의 천장 벽면은 필리포 카르카니(Filippo Carcani)가 만든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입구 오른쪽에는 소 피에르 르 그로가 만든 지롤라모 카사나테 추기경(Girolamo Casanate, 1620.2.13~1700.3.3)의 기념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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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콜론나 경당(Colonna Chapel)
이 경당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로마 시에서 위세를 자랑하며 교황추기경을 배출한 콜론나 가문의 의뢰를 받은 지롤라모 라이날디(Girolamo Rainaldi, 1570~1655.7.15)가 설계해 콜론나 경당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곳을 장식한 세례자 요한사도 요한 사이에 있는 예수를 그린 성화는 조반니 바티스타 가울리(Giovanni Battista Gaulli, 1639.5.8~1709.4.2)의 바로크 양식 작품이다. 제대의 궁륭 안쪽에 있는 성화 성모 대관식(The Coronation of the Virgin)은 발다사레 크로체(Baldassare Croce, 1558~1628)가 프레스코화로 그린 것이다.

3.2.6. 교차랑

사진 설명
왼쪽 교차랑
오른쪽 교차랑

3.2.7. 무덤

알렉산데르 3세 세르지오 4세 클레멘스 12세
마르티노 5세 인노첸시오 3세 레오 13세

여타의 유서 깊은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역대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 하지만 1308년과 1360년에 발생한 두 차례의 화재로 인해 요한 10세·아가페토 2세·파스칼 2세·갈리스토 2세·호노리오 2세·첼레스티노 2세·루치오 2세·아나스타시오 4세·클레멘스 3세·첼레스티노 3세·인노첸시오 5세의 석관은 파손되었고 현재 온전하게 보존된 건 알렉산데르 3세·세르지오 4세·클레멘스 12세·마르티노 5세·인노첸시오 3세·레오 13세의 무덤 6기 뿐이다.

3.3. 라테라노 궁전

사진 설명
라테라노 궁전(Lateran Palace)
라테라노 궁전은 4세기 초부터 교황의 거처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10세기경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어 교황 세르지오 3세가 복구했고, 교황 인노첸시오 3세 때 대대적으로 장식이 부가되었다. 하지만 1307년과 1361년의 화재 및 아비뇽 유수 때문에 궁전은 퇴락했다. 아비뇽 유수가 종식된 뒤 교황 식스토 5세는 새로운 궁전을 짓기로 결정하고 기존의 건물터를 밀어버린 뒤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를 기용했다. 폰타나는 엄격한 균형과 대칭의 미를 중점으로 설계했으며, 공사는 1589년 8월 29일에 완료되었다. 19세기에는 궁전을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해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했으며, 1929년 2월 11일 이탈리아 정부와 체결한 라테라노 조약에 따라 대성당과 더불어 궁전에 대한 바티칸의 주권이 인정되었다.

3.4. 세례당

사진 설명
세례당(Baptistery)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명령으로 대성당이 건설될 때 함께 지어졌지만 본당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 별도의 공간을 가지도록 설계되었으며, 팔각형 형태로 된 초기 세례당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세례에 사용할 물은 클라우디우스 수도교를 통해 세례당으로 끌어와 거대한 세례반에 흘러들도록 했다. 세례당은 5세기 경 교황 식스토 3세에 의해 재건되었다가 1637년에 다시 개축하면서 지붕에 을 덧씌웠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교황 성 실베스테르 1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니코메디아에서 임종 직전에 비로소 세례를 받았으며 그때는 이미 실베스테르 1세도 고인이 된 상황이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세례 경당(Baptistery Chapel)

3.5. 성 계단

사진 설명
성 계단(Scala Sancta)
대성당 맞은편에는 성 계단(이탈리아어 : Scala Sancta, 영어 : Holy Stairs)이 있다. 성 계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을 당할 때 유대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게 나아가면서 밟았던 나무 계단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4세기에 성지순례를 갔던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모후인 성녀 헬레나가 이걸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와 라테라노 궁전에 갖다 놓았다. 원래는 나무였지만 뒷날 흰색 대리석을 덧씌웠다. 1천년 이상 라테라노 궁전에 있었던 성 계단은 1589년 교황 식스토 5세(Sixtus V, 생몰년: 1520.12.13~1590.8.27, 재위기간: 1585.4.24~1590.8.27)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계단을 옮길 때 손상되지 않도록 위에서 아래로 설치해 내려갔으며, 인부들은 공사하는 동안 계단을 밟지 않도록 무릎을 꿇고 일했다. 교황 복자 비오 9세(B. Pius IX, 생몰년: 1792.5.13~1878.2.7, 재위기간: 1846.6.16~1878.2.7) 때인 1853년부터는 예수고난회 수사들이 관리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은 예수의 수난을 떠올리고 그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 성 계단을 무릎걸음으로 기도하며 올라간다. 이 전통은 꽤 오래전부터 지속된 것으로, 마르틴 루터로마에 왔을 때 그도 이 계단을 무릎걸음으로 오르다가 깨달음을 얻고 면벌부 판매로 타락한 교회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계단 위쪽에 있는 예배당에는 천사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예수의 성상이 모셔져 있다.

4. 기타

로마에 있는 4대 대성당과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을 포함한 5개의 성당들은 고대 그리스도교 세계의 5대 총대주교 관구(Pentarchy)들과 각각 연계되어 로마가 5개의 총대주교 관구들 가운데서도 그 정점에 있음을 나타냈는데,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은 로마와 연계되었다.

로마 주교, 즉 교황의 주교좌가 있는 교회라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인지 가톨릭 교회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무너져가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을 한 수도자가 어깨로 떠받치는 꿈을 꾸고는 그 수도자가 청원한 수도회 설립을 인가했는데, 그는 바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였다.

성당 인근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마상으로 오인된 덕분에 파괴되지 않았고, 르네상스 시기에 캄피돌리오 언덕 재개발을 맡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캄피돌리오 광장 가운데로 이동시켰다.

1993년 5월 8일, 요한 바오로 2세마피아의 본거지인 시칠리아를 3일 일정으로 방문했는데 여기서 마피아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교황의 발언이 있은지 3달 가량 뒤인 7월 28일, 마피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차량 폭탄이 터져 건물의 일부가 피해를 입었지만 곧 복구되었다. 2011년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퇴진 운동이 여기서 벌어지기도 했다.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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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 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
  • [프랑스어] Centre historique de Rome, les biens du Saint-Siège situés dans cette ville bénéficiant des droits d'extra-territorialité et Saint-Paul-hors-les-Murs
  • [3]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 [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 [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 [6]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7]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 [8] 기원전 15세기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테베의 카르나크 대신전 앞에 세웠다.
  • [9] 클레멘스 12세는 코르시니 가문 출신으로, 세속명은 로렌초 코르시니(Lorenzo Corsini)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