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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길

last modified: 2014-09-26 18:45:28 Contributors


롯데 자이언츠[1] 역대 감독
팀 창단 박영길(1982~1983) 강병철 (1984~1986)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김영덕 (1984~1986) 박영길(1987~1988) 정동진 (1989~1990)
태평양 돌핀스 역대 감독
김성근 (1989~1990) 박영길(1991) 정동진 (1992~1995)

박영길(1941~)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1. 소개

대한민국의 야구인.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동아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남선전기-육군-한국전력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좌투좌타로 주 포지션은 중견수와 우익수. 외야수 출신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감독이다.

2. 선수 시절

1960년대 실업리그 최고의 강타자였던 김응룡에 비견되어, '좌영길 우응룡'이라 불리며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김응룡 한화 이글스 감독과는 당시 국가대표 룸메이트로 십수년을 같이 보낸 인연으로 현재도 서로 막말을 하며 지낼 정도로 친한 사이. 김응룡 못지 않은 슬러거였지만 정교함까지 갖춘 타자로, 이승엽 이전까지는 올드 야구팬들에게 국내 최고의 좌타자로 인정받았다. 참고로 실업야구 통산 100홈런 이상을 기록한 네 명의 타자 중 한 명이다. 나머지 세 명은 故 박현식 옹(前 감독), 김응룡, 김우열(前 OB-빙그레).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8게임에서 5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이 우승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실업야구 통산 타격왕 6회, 타점왕 3회, MVP 4회를 수상했으며 철저한 체력관리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37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실업리그 롯데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프로야구 출범 직전해인 1981년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 부산 야구의 대부로서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을 주도했으며 초대 롯데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성적부진으로 83년 중도 사퇴. 타격코치였던 38세의 강병철에게 지휘봉을 물려주었다.(롯데는 이듬해인 84년 불세출의 대투수 최동원을 앞세워 우승.)

이후 84년부터는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로 부임한다. 1984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있었던 져주기 게임 당시 삼성 코칭스태프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상대로 롯데를 고르는 것을 반대한 인물이라고.[2] 87년부터는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그 해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팀 타율 3할을 달성.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했으나 막상 한국시리즈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천신만고끝에 OB 베어스를 간신히 꺾고 올라온 해태 타이거즈에게 4연패로 스윕당하는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3]

88년에는 창단 3년차밖에 안 되는 꼬꼬마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와 플레이오프에서 붙어 힘 한번 못 써보고 스윕을 당하는 바람에 결국 해임된다.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뒤에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일하면서 야인으로 지내다가 91년 시즌을 앞두고 김성근감독이 물러난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 당시 태평양은 막강한 투수진과는 달리 사상 최악이라 할 만큼 형편없는 타선으로 유명했는데, 단타와 작전 위주의 스몰볼에 최적화된 김성근의 타격 이론과 정 반대 성향이었던 박영길은 팀 타선의 장타력을 키우기 위해 선수들의 타격폼을 전면적으로 교정하려고 했다. 거기에 김성근이 7.5m로 높혀놓은 인천구장의 펜스를 5m로 내리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동기김경기를 제외하고는 박영길 식의 타격이론을 소화할만한 선수가 태평양에는 없었고, 그해 팀 성적 5위라는 그저그런 성적과 함께 프런트와의 불화로 1년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는 사실상 현역 지도자로서는 은퇴했으며 2011년 현재 실업야구연맹 및 일본 독립리그 서울 해치의 회장직 및 포츠서울 객원기자를 맡고 있다.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그저 그랬지만 87년의 삼성 타선에서 볼 수 있듯 타격이론에서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지도자이며 한국 야구에서 최초로 작전을 최소화하고 장타율출루율을 중요시하는 빅볼 스타일의 야구를 지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4] 최근에도 단기 인스트럭터 자격으로 여러 팀에서 타격 지도를 했으며 2009년 시즌을 앞두고는 최희섭의 단기 인스트럭터를 맡아 최희섭이 슬러거로 부활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런데 09시즌 종료후 가르친 두명의 롯데 타자 장성우오장훈의 경우에는 10시즌 기준 타격이 오히려 떨어지기도...
#당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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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업 롯데는 제외
  • [2]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실업 롯데 감독으로 있을 당시 이미 최동원의 실업야구 한국시리즈 활약상을 소속팀 감독으로서 직접 본 인물이다. 당시 최동원의 시리즈 성적은 시리즈 6경기에 모두 출전해 2승 1무 2패 1세이브 42와 3분의 1이닝 투구. 흠좀무. 그러나 그의 의견은 결국 묵살되었고 결국 1984년 한국시리즈는 그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말았다.
  • [3] 이 시리즈 1차전에서 당시 좌익수였던 장효조는 어이없는 실책으로 1차전 패배와 시리즈 완패의 주범으로 몰렸는데 결국 88년 시즌 직후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고 만다.
  • [4] 박영길 이후로 김용희, 김인식 감독이 이쪽 계열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