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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리피

last modified: 2015-04-13 19:02:41 Contributors

광저우 헝다 최고기술고문
마르첼로 로메오 리피
(Marcello Romeo Lippi)
생년월일 1948년 4월 12일
국적 이탈리아
출신지 아레조
포지션 MF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1968/69)
사보나 1907(임대) (1969/70)
UC 삼프도리아 (1970/71 - 1977/78)
AC 피스토이에세 (1978/79 - 1981/82)
감독 UC 삼프도리아 (1982/83 - 1984/85)
US 폰테데라 (1985/86)
AC 시에나 (1986/87)
AC 피스토이에세 (1987/88)
카라레세 칼치오 (1988/89)
AC 체세나 (1989/90 - 1990/91)
AS 루체세 (1991/92)
아탈란타 BC (1992/93)
SSC 나폴리 (1993/94)
유벤투스 FC (1994/95 - 1998/99)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9/00 - 2000)
유벤투스 FC (2001/02 - 2003/04)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04 - 2006, 2008 - 2010)
광저우 헝다(2012 - 2014)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2000~2004)
마르첼로 리피
(2004~2006)
베르토 도나도니
(2006~2008 )
베르토 도나도니
(2006~2008)
마르첼로 리피
(2008~2010)
사레 프란델리
(2010~2014 )


Contents

1. 커리어
1.1. 선수시절
1.1.1. 경력
1.2. 감독 시절
1.2.1. 우승 기록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이자 골초[1]

1. 커리어

1.1. 선수시절

삼프도리아 출신이지만 프로데뷔는 1969/1970 시즌 사보나 1907에서 했으며 이 때의 임대 생활을 제외하곤 선수시절 대부분을 UC 삼프도리아에서 보냈다. 1977/78 시즌 이후 AC 피스토이에세로 이적, 3시즌 동안 활약한 후 34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리피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장인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파비오 카펠로, 카를로 안첼로티가 감독 커리어 뿐만 아니라 선수시절에도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 대표팀 승선 등 활약을 보여준 것과는 달리 리피는 평범한 선수생활을 했으며 높은 레벨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삼프도리아에서 얻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1.1. 경력

1969Sampdoria0(0)
1969–1970Savona21(2)
1970–1978Sampdoria274(5)
1979–1982Pistoiese59(1)

1.2. 감독 시절

은퇴 직후 1982년 친정팀인 삼프도리아에서 유스팀 감독으로 지도자 데뷔를 한다. 3시즌동안 유스팀 감독을 한 리피는 85년부터 US 폰테데라, AC 시에나, AC 피스토이에세, 카라레세 칼치오 등 하위 디비전 팀의 감독을 하며 경험을 쌓다가 1989년 드디어 AC 체세나에서 세리에 A 감독으로 데뷔한다. AS 루체세와 아탈란타 BC를 거쳐 1993/94시즌 나폴리 감독을 하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며 팀을 UEFA컵에 진출시켰고 이탈리아 최고 명문 구단인 유벤투스 FC의 러브콜을 받아 감독직을 옮기며 리피는 본인의 감독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유벤투스에서 필리포 인자기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지네딘 지단, 파올로 몬테로, 치로 페라라[2] 등 화려한 멤버들을 앞세워 1994/95,1996/97,1997/98 시즌 리그 우승과 1994/95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하며 유벤투스를 이탈리아 무적으로 이끈다. 하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1995/96시즌 아약스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우승하지만 1997/98시즌과 1998/99시즌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레알 마드리드에게 연속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5시즌동안 화려한 성과를 거둔 리피는 후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감독직을 옮기지만 유벤투스 시절과는 달리 1999/00시즌에 리그 4위를 기록, 간신히 챔피언스 리그 예선 티켓을 따내지만 2000/01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스웨덴의 헬싱브르그에게 패배하며 탈락하게 된다. 그리고 2000/01 시즌 세리에 A 개막전에서 레지나전에서 1:2로 패배하고 난 뒤 "내가 구단주라면 코치진이든 선수진이든 모두 걷어차버리겠다" 라는 격한 인터뷰를 하고 난 뒤 경질 당한다.

한 시즌 뒤 2001/02 시즌 필리포 인자기, 지네딘 지단, 에드윈 반 데 사르 등 핵심 선수를 이적 시켜 리빌딩이 필요하게 된 유벤투스의 부름을 받아 복귀한다.

리피는 핵심 선수들이 떠난 자리에 파벨 네드베드,지안루이지 부폰,릴리앙 튀랑 등을 영입하며 팀을 재건 했고 2001/02 시즌 3시즌 만에 유벤투스를 세리에 A 정상으로 복귀 시킨다.

2002/03 시즌 마우로 카모라네시, 마르코 디 바이오 등을 영입해 선수 보강을 했지만, 다비드 트레제게의 부상과 몬테로, 율리아노 등 핵심 수비수들의 컨디션난조, 잔부상등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게 된다. 결국 당시 36살의 노장이었던 페라라를 중용하고 잔루카 잠르보타를 왼쪽 윙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하는 등 고육지책을 쓰면서도 리그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또 당시 갈락티코 정책으로 인해 화려한 멤버를 자랑했던 레알 마드리드를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가볍게 누르며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AC 밀란에게 패하여 3연벙 3번 연속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기록한다.

2003/04 시즌 페루자에 임대보냈던 파브리치오 미콜리를 복귀시키고, 다비즈의 대체자로 당시 가나의 유망주였던 스테판 아피아를 영입, 또 빈약한 센터백을 보강하기 위해 02/03시즌 키에보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레그로타글리에를 AS 로마와의 영입경쟁에서 이기며 영입하며 리그 3연패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렸다. [3]

하지만 03/04시즌 선수들의 잔부상으로 베스트 11을 제대로 가동한 적이 없었고 야심차게 영입했던 선수들이 부진에 빠지는 등 악재가 겹쳐 결국 03/04시즌은 리그 3위, 챔피언스리그 16강이라는 그 전시즌에 비해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리피는 유벤투스 감독직을 사임한다.

시즌이 끝난 뒤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에 이어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친선경기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3:1, 독일을 상대로 4:1로 승리를 거두는 등 비교적 쉽게 2006 월드컵에 진출하였으며 이러한 결과는 많은 기대를 가져다 주었다. 2006 월드컵이 시작하기 직전 세리에 A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했고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분전하여 결국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누르고 4번째 우승을 하게 된다. 이것은 이탈리아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해있던 세리에 A 에게도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월드컵이 끝난 후 리피는 재계약을 하지 않고 로베르토 역사도니도나도니에게 감독직을 물려준다. 하지만 도나도니가 유로 2008에서 실망스러운 성적만 남기자 2008년 여름, 리피가 다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한다.

리피는 마리오 발로텔리, 쥐세페 로시 등 젊은 유망주들을 기용하지 않고 2006년 우승 멤버들을 대거 중용한다. 또한 안토니오 카사노 같은 키 플레이어도 제외했다. 이러한 리피의 선택에 사람들은 의문을 던졌지만 그래도 4년전 월드컵 우승을 안겨준 감독이기에 많은 팬들이 믿음을 가지고 지켜봤지만.....
2010년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며 쓸쓸하게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유로 이후 이탈리아 감독으로 재임한게 결과적으로 그의 오판이였다. 재취임 이전에는 빅클럽 링크가 툭하면 났으나, 이탈리아 광탈후 쑥 들어가 버렸다.

2012년 5월 17일 이장수 감독이 경질된 중국 슈퍼리그의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에 취임하였다. 연봉은 약 15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4]그리고 2013시즌 광저우에서 중국 슈퍼 리그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더블을 달성하며 중국 클럽의 23년만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그리고 본인도 UEFA 챔피언스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우승해본 감독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4년을 끝으로 클럽 감독을 은퇴하겠다고 밝혔었지만, 2014시즌의 본격적인 개막을 앞둔 2월말 광저우와 3년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2014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역시 광저우를 이끌고 2대회 연속 우승을 노렸으나 8강 1차전(원정)에서 호주의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에게 0:1로 패배한다. 게다가 1차전 끝날 즈음에 두 명이 퇴장당하자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기장에 난입해 주심에게 항의했다가 1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먹고 8강 2차전(홈)을 지휘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2차전에서 2:1로 이겼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발목잡혀 2연속 우승의 꿈이 4강 문턱에서 좌절됐다. 2014년 11월 2일 산둥 루넝과의 경기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고, 감독 사임을 발표했다. 광저우가 커리어 마지막 종착지라고 누누이 밝혔기에 사실상 은퇴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임 이후에는 광저우에서 최고기술고문으로 일할 예정이다. 광저우 상왕 등극

1.2.1. 우승 기록

  • 유벤투스(1994/95 - 1998/99, 2001/02 - 2003/04)
    • Serie A (5) : 1994–95, 1996–97, 1997–98, 2001–02, 2002–03
    • Italian Cup (1): 1994-95
    • European Cup (1): 1995–96
    • European Super Cup (1): 1996
    • Intercontinental Cup (1): 1996

  • 광저우 에버그란데(2012 - 2014)
    • Chinese Super League (2): 2012, 2013, 2014
    • Chinese FA Cup (1): 2012
    • AFC Champions League (1): 2013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04 - 06, 2008 - 10)
    • FIFA WORLD CUP (1)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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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항상 손에 담배가 들려있을 정도로 애연가이다. FIFA가 주관한 축구장 금연정책의 최대 피해자로 불리기도. 금연령이 내려진 이후 금단현상으로 한동안 부진했다 위 짤방은 2006 독일 월드컵 우승 이후 시가를 꺼내 피우는 사진그가 우승 후 찾은 것은 트로피가 아닌 담배였다. 승부차기까지 가느라 금단현상이 심했던듯?
  • [2] 지금 유벤투스의 대괄호, 그 분 으로 불리고 있는 그 페라라가 맞다
  • [3] 영입경쟁에서 패배한 AS 로마는 차선책으로 크리스티앙 키부를 영입했다.
  • [4] 이 금액의 연봉은 당연히 아시아 클럽 감독 1위이고, 심지어는 전 세계 축구 감독들 중에서도 펩 과르디올라, 주제 무리뉴 다음의 3위(!!)다. K리그 팬들은 이 정도의 연봉을 줄 수 있는 광저우의 재정 수준에 부러워하는 듯? 150억이면 왠만한 구단 1~2년 예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