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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페예그리니

last modified: 2016-05-01 00:19:2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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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마누엘 루이스 페예그리니 리파몬티
(Manuel Luis Pellegrini Ripamonti)
생년월일 1953년 9월 16일
국적 칠레
출신지 산티아고
신체 조건 185cm
포지션 센터백
유니버시다드 데 칠레 (1973~1986)
감독 유니버시다드 데 칠레(칠레) (1987~1990)
CD 팔레스티노(칠레) (1990~1992)
오히긴스 FC(칠레) (1992~1993)
CD 유니버시다드 카톨리카(칠레) (1993~1995)
CD 팔레스티노(칠레) (1998)
LDU 키토(에콰도르) (1998~2001)
산 로렌소(아르헨티나) (2001~2002)
CA 리버 플레이트(아르헨티나) (2002~2003)
비야레알 CF(스페인) (2004~2009)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2009~2010)
말라가 CF(스페인) (2010~2013)
맨체스터 시티 FC(잉글랜드) (2013~)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감독
안데 라모스
(2008~2009)
마누엘 페예그리니
(2009~2010)
조세 무리뉴
(2010~2013)

맨체스터 시티 FC 역대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
(2009~2013)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3~ )

칠레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현 맨체스터 시티 FC의 감독.

후안 로만 리켈메, 마르코스 세나 등과 함께 비야레알 C.F.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감독이다.

Contents

1. 기록
2. 비야레알 전
3. 노란 잠수함의 전설
4. 레알 마드리드 시절
5. 말라가 CF
6. 맨체스터 시티 FC
7. 특징
8. 기타


1. 기록

  • 우승기록
    • 1994 코파 인테르아메리카나(유니버시다드 카톨리카)
      1995 코파 칠레(유니버시다드 카톨리카)
      1998/99 에콰도르 세리에 A(키토)
      2000/01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산 로렌초)
      2001 코파 메르코수르(산 로렌초)
      2004 UEFA 인터토토컵(비야레알)
      2013/14 캐피탈 원 컵(맨체스터 시티)
      2013/14 프리미어 리그(맨체스터 시티)2015/16 캐피탈 원 컵[1]

2. 비야레알 전


선수시절. 참으로 얼굴이 한결같다(...)

성에서도 대충 알 수 있지만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유니버시다드 칠레의 레전드급 선수 중 하나로, 유스 때부터 쭉 유니버시다드 칠레 소속으로, 프로에서 13년 간 뛰면서 리그와 컵을 통틀어 451경기를 출전하고[2], 감독으로 우승컵까지 안겨주고 떠난 역사에 남을 원 클럽 맨이다. 수비수이고, 또 남미 선수기도 해서 돋보이는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노력파 선수로 이름이 높았고, 국가대표도 승선했기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벵거, 무리뉴 등보다는 선수시절 이력을 많이 남겼다. 단 월드컵 스쿼드에는 커리어 중 칠레가 진출한 두 번의 월드컵 중 한 번도 승선하지 못했다. 선수시절 전체를 통틀어 받은 카드가 단 7개라고.

33세라는 나이에 빠르게 은퇴한 후, 다른 일을 잠시 하다가 유니버시다드 칠레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13/14시즌으로 따지면 스티븐 제라드가 당장 은퇴하여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과 같은 결과.

그 이후 남미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10년간 명성을 키워나간다. 주로 자국 칠레의 여러 빅클럽에서 컵대회와 리그 우승컵을 간간히 뽑아주었고, 이때도 현재의 전술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1999년 LDU 키토를 자국리그에서 우승시킨 데에 이어, 남미의 챔피언스 리그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16강에 진출시키며 더욱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아르헨티나로 이동, 이름있는 명문들인 산 로렌초와 리버 플라테를 맡게 된다. 산 로렌초에선 후반기 리그 우승, 그리고 당시 유럽의 UEFA 유로파 리그와 비견될 수 있었던 코파 메르코수르에서 우승을 시키면서 더블을 달성. 이후 아르헨티나 최대우승팀인 리버 플라테로 이동, 다시 후반기 리그를 우승으로 끝맺는다. 하지만 선수 유출로 더이상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고 2003/04시즌 전반기를 끝으로 사임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시절에 이후 다시 만날 마르틴 데미첼리스, 파블로 사발레타를 처음으로 지도해보게 되고, 더불어 리버 플라테 시절, 현재까지 15년 가까이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오른팔 루벤 쿠시야스를 만나게 된다.

3. 노란 잠수함의 전설


페예그리니는 2003/04시즌이 끝난 즉시 스페인의 비야레알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 비야레알은 01/02 시즌에 15위, 02/03 시즌에도 역시 15위로 겨우 강등을 모면했다가 03/04 시즌에는 리그 8위를 거두던 중하위권 팀이었다.[3]

페예그리니는 이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먹튀를 하고 돌아온 디에고 포를란을 영입하게 된다. 후에 보게 되지만, 이 영입은 신의 한 수가 된다.

비야레알은 그 시즌 폭발하고 페예그리니는 명성을 얻게 된다. 인터토토컵에서는 오덴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함부르크라는 인터토토컵 치고는 어려운 대진을 이겨내고 우승으로 그 다음 시즌의 UEFA컵 진출권을 따낸다. 그 이후 UEFA컵에서는 8강에 진출, AZ에게 져서 탈락한다.
당시 비야레알을 빛낸 것은 리그에서의 성적. 리그에서 3위를 기록했다. FC 바르셀로나와 당시 갈락티코 끝물이던 레알 마드리드를 따라잡진 못했지만 굉장히 가열찬 경쟁을 하던 중상위권 여러 팀들을 따돌리고 팀 역대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거머쥔다. 이 때 포를란은 사무엘 에투와 함께 라리가 득점왕에 올랐고[4] 리켈메는 15골을 집어넣으며 대활약[5]. 이때부터 비야레알은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05/06시즌에 비야레알은 뎁스가 얇은 스몰클럽에서 챔스를 뛰느라 리그성적은 많이 떨어지고, 포를란의 부진도 겹쳐 7위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이 때, 비야레알 전성기에서 제일 많이 기억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4강 진출이 일어난다. 3차 예선에서 에버튼 FC를 2승으로 간단히 이기고 올라온 비야레알은 조별리그에서 벤피카, 릴 OSC,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진출한다. 일반적으로는 벤피카와 맨유의 진출이 점쳐졌지만, 피터지는 접전 끝에 비야레알은 맨유에게 2무를 포함 2승 4무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다.

16강에선 레인저스를 만나 역시 2무에 원정골 원칙으로 8강까지 진출한다. 8강에서의 상대는 인테르. 밀라노에서의 1차전에서 1분내에 포를란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당시 기량이 절정이던 아드리아누의 동점골과 오바페미 마틴스의 역전골로 인테르가 승리. 하지만 비야레알 홈에서는 달랐고, 비야레알은 인테르를 후안 파블로 소린이 폭발하며 경기내내 털면서 기회를 만들지만 스코어 자체는 1:0으로 승리.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번에도 원정골로 비야레알은 챔스 4강에 진출하게 된다. 4강에선 아스날 FC를 상대로 1차전에서 콜로 투레의 골로 패배. 2차전에선 이번에도 주도하는 경기였지만 리켈메의 페널티킥 실축 등의 불운으로 패배, 결국 결승진출엔 실패한다.

06/07시즌엔 리그 5위를 기록. 포를란이 부활했지만, 챔스진출엔 실패한다. 인터토토컵에서도 광탈하면서 실패한 시즌으로 기록되었다.

07/08시즌엔 다시 부활한다. FC 바르셀로나를 무려 10점차로 따돌리고리그 2위를 기록한다. 스몰클럽으로서는 역대급의 업적. 포를란이 떠났지만, 주포 니하트 카베시를 중심으로 훌륭한 성적을 이룬다. UEFA컵(유로파 리그)에선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게 패하며 32강에 그친다.

08/09시즌은 다시 리그 5위. 시즌 초엔 2위를 다퉜지만. 중반부터 챔스 영향인지 성적이 좋지 않아 순위가 떨어져 챔스진출에 실패한다. 이 때 리켈메는 떠난 뒤였고, 피레스와 세나, 그리고 주세페 로시의 활약으로 챔스에서 다시 좋은 성적을 내게 된다. 챔스에선 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만나, 또다시 2무를 기록한다. 다른 점은 이번엔 맨유에 이은 2위로 진출했다는 점. 16강에서는 파나티나이코스를 만나 1승 1무로 진출. 8강에서 만난 상대는 다시 아스날이었다. 1차전 홈에서 세나의 선제골로 1:1로 비겼지만, 어웨이에선 세나와 카솔라가 부상으로 빠진 상태로 관광당했다. 그리고 이 시즌 뒤에 페예그리니가 떠나면서, 페예그리니의 비야레알 시대는 끝나게 된다. 비야레알은 그 뒤로도 몇 년간 강팀의 포스를 유지했으나, 로시가 부상으로 드러눕고 카솔라가 팀을 떠나자 바로 강등당하고, 세나도 떠나 사실상 페예그리니 시절과는 연결이 단절되게 되었다.

이때부터 당연히 페예그리니는 이름이 높아졌다. 헌데 제일 잘 기억되는 선수인 후안 로만 리켈메와 페예그리니의 사이는 꽤나 유명할 정도로 좋지 않았으며, 결국 계속 불화가 나오다가 06/07시즌 초반 이후 페예그리니가 플랜에서 리켈메를 빼버렸고, 리켈메는 계속된 압박으로 결국 비야레알을 떠나게 된다. 단 여기서 페예그리니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리켈메를 내친 것은 아니다. 리켈메는 원래 자존심이 대단히 강한 선수였기도 하고, 또 항목에도 있지만 리켈메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리켈메에게 모든 경기운용을 맡겨야 제대로 경기가 돌아가는 타입이기도 하다. 즉, 의존도가 높았다. 페예그리니는 리켈메 없이도 리그 2위라는 성적을 내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4. 레알 마드리드 시절


비야레알에서의 전적을 본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페레즈는 갈락티코 2기의 시작에 맞춰 그것을 가동할 감독으로 베른트 슈스터를 버리고 페예그리니를 데려오게 된다. 페예그리니는 비야레알을 떠날 일이 없을 것이라며 부정했지만, 레알의 돈지랄계속된 구애로 결국엔 비야레알을 떠나게 되었고비야레알은 망조를 탔다. 스몰클럽에서 클래스 낮은 선수로도 훌륭한 성적을 만들어낸 감독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처럼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카림 벤제마, 사비 알론소 등의 A급 선수들을 영입하였다. 이때 레알은 정말로 역대급으로 돈을 풀었다.[6]

결국 결과는 밍숭맹숭했다. 시즌 자체의 성적만 보면 아주 실패한 시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페예그리니가 이 때 기록한 96승점은 무리뉴가 우승시즌에 경신할때까지 역대 최다승점이다. 하지만 챔스에서 올랭피크 리옹에게 패한 데 이어, 국왕컵에서 3부리그의 알코르콘에게 패해 탈락하며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 리그 성적은 FC 바르셀로나가 워낙 대단했을 뿐 준수한 성적이었으나, 챔스와 컵 광탈은 즉 (갈락티코 스탠다드에서는) 실패한 시즌을 의미했고, 페예그리니는 그대로 잘려버린다.

레알에서의 실패의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지목되고 많은 키배가 이루어지는데, 레알의 팬들은 페예그리니를 까는 입장이 많고, 타팀 팬들은 페예그리니를 옹호하는 입장이 많다. 하지만 갈락티코의 실패는 1기와 같이, 제대로 감독에게 선수영입 자유도를 부여하지 않았고, 선수기용에 관해선 알아서 하던 델 보스케와 달리[7] 선수기용에 대한 자유도도 부여하지 않았다. 페예그리니가 기용하길 원하던 웨슬리 스네이더아르연 로번을 페레즈는 상품성이 적다고 팔아버렸고, 페예그리니가 원하지 않고, 비싼 선수를 굳이 데려왔다. 거기에 페레즈가 선수 선발에 간섭했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데, 카카와 알비올 등의 폼이 좋지 않았음에도 기용을 강권했다는 말이 굉장히 많다. 페예그리니는 이후 기자회견에서 갈락티코 2기를 상징하는 말로 회자되는 마드리드에서 나는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최고의 기타리스트만 10명이 있다고 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게는 피아니스트나 드러머가 없었다는 말을 남긴다. 심지어는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이후 세계최고의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주제 무리뉴도 더 다듬어진 레알에서 슈퍼코파를 뺄 시 3년간 컵 1개, 리그 1개의 트로피를 드는 데에 그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단순히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 페예그리니가 1년에 걸쳐 결국 제대로 스타 선수단을 휘어잡고 경기력을 향상시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 레알에서의 1년이 성공한 1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5. 말라가 CF


이후 페예그리니는 멕시코 대표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지만 거절했고, 당시 중동 석유재벌이 소유하게 되며 제 2의 맨시티의 포부를 높이던 말라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첫시즌엔 시즌 중간, 이적시장 때도 아닌 정말 중간에, 순위가 강등권에 쳐져 있을 때 취임했고 당시 영입선수도 별 게 없었기에 거의 시즌 후반까지 강등권에서 썩었지만, 최후반 줄리우 밥티스타밥장군의 대활약으로 기적적으로 생환, 후반 연승으로 11위로 중위권에 안착한다.

2번째 시즌은 본격적인 말락티코의 시작이었다. 전에 같이 있었던 카솔라를 필두로 뤼트 판 니스텔로이, 호아킨 산체스말라가 치곤 호화로운 스쿼드를 구축, 2위 바르셀로나의 절반도 안되는 득점수에도 불구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추격을 뿌리치고 레반테를 제치며 4위, 승점 58점으로 챔스에 진출한다.[8] 국왕컵에선 16강에서 레알을 만나 탈락. 산티 카솔라가 에이스 역할을 했고, 이스코가 부상한 것이 이 시즌이다.

그런데 12/13시즌, 말라가 구단주가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이 드러나면서(...) 팀내 최다득점자 론돈, 카솔라, 마타이센, 부오나노테, 그리고 몬레알까지 주전 라인 중 반이 뜯기면서 위기를 맞는다. 선수들 주급도 제대로 못 주는 상황에서 말라가는 그래도 순항했고, 카마초를 터뜨리고, 맨시티가 버린 로케 산타크루즈와 벤피카가 버린 사비올라 등의 퇴물을 적당히 이용하며 챔스에서 AC 밀란을 제치고 조 1위를 달성하고, 리그에서는 주급을 안 줘서 유럽대회 진출이 막힌 이후 설렁설렁 하다가 순위가 떨어졌지만(6위) 후반기까지 챔스'권' 경쟁을 했다.

챔스 16강에서는 FC 포르투를 만나 어웨이에서 1:0, 홈에서 0:2로 이겨 8강에 진출.

8강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에 주가가 다시 폭발하고 있는 위르겐 클롭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난다. 보루센이 쉽게 이길걸로 예상되었지만, 홈에서 0:0으로 비긴 데에 이어 어웨이에선 2:3으로 져서 탈락. 그런데 여기서 도르트문트의 세 번째 산타나의 골이 어딜 봐도 명백한 오심이라(...) 그래도 일단 말라가의 둘째 골도 아슬아슬하게 오심이라 그냥저냥 넘어가는듯. 도르트문트가 레알을 4:1로 떡을 치고 바르셀로나를 바르칠로나로 만든 바이에른 뮌헨에게도 똥줄경기를 하다 1:2로 지면서 말라가의 저력이 새삼 부각되게 되었다.

6. 맨체스터 시티 FC


5월에 맨시티의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가 리그에서 2위에 그치는 것이 확정되고, FA컵에서 위건 애슬레틱한테 관광당하면서 만치니의 경질설이 폭발했고, 만치니가 결국 경질되자 페예그리니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말라가 구단은 일단 부정했지만 사실상 기정사실로 인정되는 분위기가 되었고, 페예그리니가 이번 시즌이 끝이라고 발언하면서 확정되었다. 이후 오피셜 취임기사는 6월 15일에 떴다.

취임하자마자 이적사가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자신이 데려와 터뜨린 유망주 이스코를 맨시티에 같이 데려오는 것으로 취임 루머가 나올 때부터 상당한 예측이 있었고, 또 이스코 자신도 어느 정도 어장관리이런 쪽으로 발언을 했었는데...레알 마드리드에서 끼어들어 이스코를 낚아챘다. 맨시티 팬들은 애통해하면서도 레알이라 이해한다는 분위기인데, 페예그리니 자신은 꽤나 부아가 났다는 듯.

13-14 시즌 맨체스터 시티를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시켰으며 풋볼 리그 컵을 우승시켰다. 그리고 리그도 우승시키면서 부임 첫 해만에 시즌 2관왕에 올랐다. 게다가 비유럽인 감독으로 처음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란 기록을 세웠다.

2014년 7월,칠레 일간지 '엘 메르쿠리오' 보도에 의하면 16일(한국시간) "페예그리니 감독이 브라질축구협회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며 "대신 맨시티에 계속 남아 있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엉망이 된 브라질이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 영입을 하기로 하면서 무리뉴와 같이 국대 감독 후보로 올랐다는 말이 있지만 둘다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14-15시즌 초반에는 맨시티가 전 시즌에 비해 부진했던 데다 야야 투레의 별로인 활약, 경직된 전술과 챔스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는 경질설이 돌기까지 했으나(...) 이후 팀이 챔스에서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하고, 리그에서도 12월이 오면서 급격한 상승세와 훌륭한 경기력으로 첼시를 따라잡으면서 이 부분에서는 비판이 거의 들어갔다. 단 일부 팬들은 유스의 기용이라던가, 이적시장의 활용 등에 있어서는 아직 비판하는 중.

..그리고 1월 야야 투레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차출된 이후 한달 넘게 공식전 무승행진을 이어가며 안습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눈앞까지 추격했던 첼시는 승점 7점차로 다시 저만치 멀어진 상태. 거기에 센터백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데려온 망갈라가 별다른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자신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나스타시치샬케 04로 쫓겨나듯 임대이적하자마자 대폭발(...)하며 맨시티 서포터들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는 중.

그리고 이후 챔스에서 바르샤에게 홈에서도 지고, 원정에서도 하트가 아니었으면 5골은 먹혔을 퍼포먼스를 보이며 탈락하고, 리그에서도 리버풀에게 발린 데 이어 번리한테 경기력에서 밀리면서 패배하는 등 팀이 망조를 보이면서 다시 경질설이, 이번엔 매우 진지하게 돌기 시작했다. 4월에 접어든 시점에선 리그에서 4등까지 떨어지는 등 시즌이 붕괴할 조짐을 보인다.

7. 특징

온화한 성격을 바탕으로 폼이 떨어진 선수들을 다시 재활시키는데 일가견이 있다. 말라가 시절에는 폼이 다 떨어져 있던 산타크루즈를 재활시켜 재미를 봤고, 2013년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만치니 시절 폼이 다 떨어져 있던 나스리를 완벽히 부활시켜 놓았다. 신사적인 성격에 걸맞게 언론플레이나 공격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는 성격으로, 언론을 대하는 태도나 인터뷰는 가히 모범적이라고 할만하다.

주전술은 공격적인 4-2-2-2(라고 분류되는) 전술로 비야레알 때부터 때때를 제외하면 이 전술의 틀 자체는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자신이 주장한다. 그 외로는 전체적으로 치고 빠지는 부분전술을 아주 잘 사용하는 감독이다. 그래서 점유율을 압도적으로 많이 가져가거나, 선수비 후역습 스타일의 축구를 지향하지 않고, 수비를 할 때는 수비를 하고 공격을 할 때는 빠르고 효율적인 공격으로 상대방을 흔드는 축구를 지향하는 편. 사이드에서부터 빠른 원투패스로 골을 성공시키거나, 전방에서부터 패스를 간결하게 주고받는 압박으로 공격을 이끌어나가는 스타일. 그에 걸맞게 로테이션도 잘 돌리고 전술적으로도 유연한 편이다. 그 예로 2013년 맨시티-첼시전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야야 투레를 공미로 놓는 3미들 전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마지막 조 하트의 삽질로 패배하고 말핬지만, 전술 자체는 무리뉴의 첼시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8. 기타


상당한 간지의 미중년~미노년으로 무조건 착용하다시피하는 수트간지는 장난이 아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지만 눈에서 나오는 신비한(...) 눈빛 역시 이야기할 만 하다. 그와 함께 얼빠양성을 하고 있다...

경기장에서나 어디서나 누구와는 다르게 조용한 편. 말라가에서 영웅시되었을 때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패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사망한 주의 리그경기에서도 그 분위기에 관중들이 이름을 연호하는데도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경기장을 나가버려서 주장 웰링턴이 통로에서 꺼내와서 관중들의 연호를 받아야했다. 맨시티로 옮겨간 후에도 말라가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긴 그가 떠난 뒤로 중하위로 추락한 팀을 생각하면

주제 무리뉴와 사이가 아주 좋지 않다. 웬만해서는 다른 감독들한테 험한 말 안하는 페예그리니지만 무리뉴에게만큼은 종종 까칠한 인터뷰를 보여주기도 한다. 경기가 끝나고 악수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감정의 골이 꽤 깊은 모양.

영어에 능숙하다. 코치 자격증 수업을 영국에서 받아서, 영어에 능숙하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프리미어리그에 왔을 때도 언어상으로 아무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맨체스터 시티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선수들이 많아서, 경기 중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선수들에게 지시를 할 때 다급하면 스페인어가 종종 튀어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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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비유럽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 [2] 단 그가 뛰었을 때 유니버시다드는 암흑기여서, 리그 우승컵은 한 번도 들지 못했다.
  • [3] 비야레알은 원래 창단이후 14시즌동안만 1부리그에 있던 팀인만큼 그저 그런 중하위권팀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즌은 2부리그나 지역리그에서 활동했다.
  • [4] 에투가 PK골이 3골 많아서 공식 득점왕은 포를란이다.
  • [5] 이 때 뛴 다른 선수로는 산티 카솔라가 있다.
  • [6] 그 돈을 풀어 페예그리니를 지원했다고 보기엔 뒤의 내용들을 보면 미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7] 갈락티코가 막장티코가 된 것은 델 보스케가 나가고 마케렐레가 나간 시점이다. 델 보스케가 나가면서 무게있는 감독이 없어졌고, 페레즈의 기용 아래에서 갈락티코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
  • [8] 동시에 비야레알은 강등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