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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last modified: 2015-04-10 13:41:19 Contributors

그레미우 감독
"펠리팡"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Felipão" Luiz Felipe Scolari)
생년월일 1948년 11월 9일
국적 브라질
출신지 파소 푼도
선수시절 소속팀 카시야스 (1973-1979)
주벤투지 (1980)
노부 암부르구 (1980-1981)
CSA (1981)
지도자 CSA (1982)
주벤투지 (1982-1983)
브라질 지 펠로타스 (1983)
알 샤바브 FC (1984-1985)
브라질 지 펠로타스 (1986)
주벤투지 (1986-1987)
그레미우 (1987)
고이아스 (1988)
알카디시야 쿠웨이트 (1988-1990)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1990)
쿠리치바 (1990)
크리시우마 (1991)
알 아흘리 (1991)
알카디시야 쿠웨이트 (1992)
그레미우 (1993-1996)
주빌로 이와타 (1996-1997)
파우메이라스 (1997-2000)
크루제이루 (2000-2001)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2001-2002)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2003-2008)
첼시 FC (2008-2009)
분요드코르 (2009-2010)
파우메이라스 (2010-2012)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2012-2014)
그레미우 (2014-현직)

Contents

1. 소개


1. 소개

브라질의 축구 감독. 자국에서는 애칭인 "펠리팡"으로 불리며, 이는 "펠리페 어르신(Big Phil)"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브라질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들어올린 감독이며 남미의 챔피언스 리그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95년과 99년 각각 그레미우파우메이라스 감독으로 들어올렸다. 2002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 잇달은 졸전으로 사상 최초로 월드컵 예선탈락에 빠질번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긴급 소방수로 투입되었다. 스콜라리는 대대적인 개혁을 이루는데, 팀 케미스트리에 해가 되는 호마리우를 과감히 제외시키는 등 명성보다 실력 위주로 대표팀을 선발한다. 이때 지우베르투 시우바카카가 발탁되어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난다. 그리고 전통의 4-2-4 포메이션을 버리고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는 3-4-3 포메이션으로 전환하며 철저한 실리축구로 일관한다. 브라질 내부에서는 전통적인 팀컬러를 잃었다며 비판을 받았고, 팬들은 호마리우를 발탁하라며 시위를 벌였으나 스콜라리는 이에 성적으로 대답하며 브라질을 본선에 진출시킨다. 턱걸이로 진출한 월드컵이기에 전문가들의 우승 전망은 낮았으나, 본선에서는 히바우두 - 호나우두 - 호나우지뉴로 이어지는 이른바 3R 스리톱의 대활약으로 환상적인 경기력 끝에 우승을 차지하며 고국 브라질에 다섯 번째 별을 선물한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활약 이후, 월드컵에서 졸전 끝에 조별라운드에서 탈락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을 리빌딩할 감독으로 선임된다. 팀을 대대적으로 리빌딩한 스콜라리는 데쿠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중용하며 유로 2004 결승전에 진출하나, 그리스의 수비축구에 막혀 준우승에 그친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을 40년만에 4강에 올렸으며, 월드컵 본선 12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세운다. 이 뒤로 로만 아브라모비치구단주에 의해 첼시 FC 감독으로 선임되나,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며 불명예스럽게 경질된다.

이후 우즈베키스탄분요드코르감독으로 부임해 당시 팀에 입단한 히바우두를 앞세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렸으나 포항 스틸러스와의 8강전에서 2차전 연장 혈투까지 가는 끝에 결국 4-5로 패해 좌절되는 등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 뒤로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 파우메이라스 감독으로 선임되며, 다시 브라질리그에 복귀한다. 자국에서 열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사령탑으로 다시 선임되며 기대를 모았으나 실력이 떨어지는 프레드, , 헐크 등을 의리로 뽑았고, 그 결과 미네이랑의 비극을 겪었고, 결국 4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며 감독직을 내려놓게 된다. 브라질에서는 4강이 기대 이하라니...

워낙 엄청 비난을 받아 축구계에서 은퇴하는 거 아니냐 했지만 18년 만에 다시 그레미우의 감독이 되었다. 그레미우 시절 리그 우승 및 코파 리베르도타레스 우승(1995)같은 화려한 성적을 거뒀기에 그레미우 팬들에게는 아직도 반응이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