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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엔리케

last modified: 2015-04-10 13:33:14 Contributors


FC 바르셀로나 감독
루이스 엔리케 마르티네스 가르시아 (Luis Enrique Martínez García)
생년월일 1970년 5월 8일
국적 스페인
출신지 히혼
포지션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180cm
프로 입단 1988년 스포르팅 히혼 B 입단
선수시절 소속팀 스포르팅 히혼 B (1988/89 - 1989/90)
스포르팅 히혼 (1989/90 - 1990/91)
레알 마드리드 (1991/92 - 1995/96)
FC 바르셀로나 (1996/97 - 2003/04)
국가대표 62경기 / 12골
스태프 커리어 FC 바르셀로나 B (2008/09 - 2010/11)
AS 로마 (2011/12)
셀타 비고 (2013/14)
FC 바르셀로나 (2014/15~ )

FC 바르셀로나 역대 주장
르지 바르주안
(2001~2002)
루이스 엔리케
(2002~2004)
카를레스 푸욜
(2004~2014)

FC 바르셀로나 역대 감독
라르도 마르티노
(2013~2014)
루이스 엔리케
(2014~ )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2.1. 스포르팅 데 히혼
2.2. 레알 마드리드
2.3. FC 바르셀로나
2.4. 국가대표
3. 지도자 경력
4. 경력
4.1. 선수 시절


1. 소개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 선수 시절엔 특유의 투쟁심과 수많은 포지션을 섭렵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으로 머무는 팀마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FC 바르셀로나로 바로 이적한 역사상 단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1] 선수 은퇴 이후 08-11시즌부터 10-11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바르셀로나B의 감독을 맡았다. 11-12시즌에는 이탈리아 세리에 AAS 로마의 감독을 맡았고, 13-14시즌부터 셀타 비고의 감독을 맡았으며 14-15 시즌부터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


FC 바르셀로나의 캡틴 루이스 엔리케

2.1. 스포르팅 데 히혼

히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풋살로 섬세한 기본기를 익혔다. 1981년 11세 때부터 고향팀 스포르팅 히혼 유스에 소속된 이후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라 브라냐로 임대를 떠났으며, 1988년 당시 3부 리그에 소속된 스포르팅 히혼의 2군격 팀인 스포르팅 히혼 B 소속으로 데뷔했다. 이후 하비에르 만하린, 후아넬레, 아벨라르도 페르난데스 등과 함께 팀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자리잡았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1989년 9월 CD 말라가를 상대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1990-91 시즌에는 키리아코 카노 감독의 지휘하에 스트라이커로 출전해 리그 35경기에서 14골을 득점했으며, 특히 마지막 라운드에서 발렌시아 C.F.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해 팀이 1:0으로 승리하며 최종 순위 5위에 올라 UEFA 컵 진출권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2. 레알 마드리드

좋은 활약을 펼친 결과 시즌 종료 이후 250만 페세타의 이적료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었으나, 입단 초창기에는 당시 팀의 감독이 라도미르 안티치와 제니토 플로로로 연달아 바뀌는 상황에서 본 포지션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기대했던 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1994년 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호르헤 발다노가 선임된 이후에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중용되었으며, 1994-95 시즌에는 FC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1골을 넣어 5:0 승리에 일조하는 등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하지만 1995-96 시즌 종료 이후 구단과의 계약 연장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나게 되었다.

2.3. FC 바르셀로나

결국 1996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다른 팀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더비 라이벌인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했다. 입단 이후 첫 시즌인 1996-97 시즌에는 팀의 감독인 바비 롭슨의 지휘 하에 리그에서 35경기에 출전해 17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수페르코파, 코파 델 레이,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했다. 1997-98 시즌을 앞두고 팀의 감독이 루이스 판 할로 바뀐 이후에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전히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리그에서 34경기에 출전해 18골을 넣어 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했을 뿐 아니라 코파 델 레이에서도 6경기에 출전해 3득점을 기록해 팀의 코파 델 레이 2연패를 견인했다.

입단 초창기 당시에는 더비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전력도 있는 관계로 서포터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보다 더 많은 8시즌동안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장에까지 선임되어 팬들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2004년 5월 16일 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으며,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후반 14분 마르크 오베르마스와 교체시켜 벤치로 불러들이면서 서포터들의 기립박수를 받게 했다. 루이스 엔리케 이후 이름에 루이스가 들어가는 또 하나의 축구 선수가 반대 케이스가 되기도 했다.

2.4. 국가대표

1991년 U-23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1991년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공헌하였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뽑혔으며, 이후 1994 FIFA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조별예선 첫 경기였던 대한민국전에도 선발 투톱으로 출장했고, 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의 8강전 도중 마우로 타소티의 [꿈치에 얼굴을 가격당해 출혈을 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결국 이는 팀의 1:2 패배로 이어졌다. 하지만 경기중에는 타소티가 주심으로부터 아무런 처분을 받지 못했으며, 경기가 끝난 이후 8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2]

이후 유로 1996 당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며, 두 번의 월드컵(1998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해 불가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1골+1어시스트+1PK유도의 맹활약을 하며 팀의 6:1 승리를 이끌었으나 팀이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뒤 2002 FIFA 월드컵에도 나왔으나, 8강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을 만나 탈락했다. 공교롭게도 월드컵 첫경기와 마지막 경기에서 모두 우리 나라를 상대했고, 썩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그 스스로가 '투혼'으로 점철된 선수답게, “한국 선수들은 마지막 10분까지도 경기 시작 때와 다름없이 뛴다. 특히 끝까지 패배를 생각하지 않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라는 말로 겸허히 패배를 인정하고 한국 팀에 대한 존중심을 표현했다.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총 62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득점했다.

3. 지도자 경력


2004년 은퇴 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등 축구와는 거리를 먼 개인 생활을 보내다가 2007년 6월 바르셀로나 B팀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마침 지도자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지도자길을 택한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B의 감독직을 원해 임명이 취소되었다.[3]

2008년 6월 바르셀로나 1군감독으로 임명된 펩 과르디올라의 후임으로 원래 예정되어 있던 FC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맡게 된다. 2008-09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팀과의 연장 계약을 맞었다. 이후 2009-10 시즌 3부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해 11년만에 팀의 2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2010-11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팀 창단 이후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다.[4]

시즌 종료 이후 아직 구단과 2년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구단과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그 해 6월 AS 로마로 팀을 옮기는 데 합의했다.[5] 계약 조건은 160만 유로의 연봉과 2년의 계약 기간이며, 자신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이반 데 라 페냐를 임명했다.[6] 그러나 시즌 초반 유로파 리그에서 예선 탈락을 하면서 안좋은 출발을 보인 루이스 엔리케는, AS 로마에 바르셀로나식 4-3-3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성적이 부진하자 12시즌 종료 이후 자진 사임했다. 후속 감독으로는 즈데넥 제만이 취임했다.

이후 한 시즌을 야인으로 보내다 13-14 시즌부터 전시즌 극적으로 라 리가 잔류에 성공한 셀타 비고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감독으로서는 라 리가 데뷔하며 바르셀로나 B시절 호흡을 맞췄던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을 불러 모으며 명예회복을 꾀하고 있는데 시즌 시작 직전 건강 문제로 사임한 티토 빌라노바 감독의 후임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갈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루이스 엔리케를 믿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데려온 셀타 비고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하지만 단지 루머였는지 바르셀로나 감독으론 타타 마르티노가 영입됐다.

그렇게 맡은 셀타 비고 감독 첫 시즌은 리그 9위를 기록. 그동안 강등권을 겨우 벗어나는 수준이었던 팀을 생각하면 괜찮은 성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준우승 더블을 기록한 마르티노 감독이 사임하자 2014년 5월 20일 FC 바르셀로나 새 감독으로 2년 계약기간에 선임되었다.

4. 경력

4.1. 선수 시절


  • 레알 마드리드 (1991/92 - 1995/96)
  • FC 바르셀로나 (1996/97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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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른 두명은 1905년에 바르사로 이적한 루시아노 리스 리가, 1965년에 바르사로 이적한 루시엥 뮐러
  • [2] 대회가 끝난 이후 타소티는 결국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다시 선발되지 못했다. 유로 2008 당시 8강전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격돌하자, 루이스 엔리케는 1994년 월드컵 당시의 패배를 갚아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 [3] 과르디올라의 평전 승리의 길에서 나온 내용을 요약하자면 펩이 당시 4부리그에 있던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원하자 클럽의 수뇌부들은 펩을 바르샤B 감독으로 임명하면 바르셀로나의 레전드를 4부리그로 보냈다고 사람들이 욕을 할것을 우려해 펩을 만류했으나 펩의 고집대로 결국 바르셀로나 B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
  • [4] 3위에 올랐기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1부 리그로 승격되어야 하겠지만, A팀과 B팀은 같은 리그에 소속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승격하지 못했다.
  • [5] 당초 AS 로마는 AC 키에보 베로나의 감독인 스테파노 피올리를 선임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US 팔레르모의 지휘봉을 잡자 루이스 엔리케로 목표룰 바꾸었다.
  • [6]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데 라 페냐가 이전에 AS 로마의 더비 라이벌 팀인 SS 라치오에서 2년 동안 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