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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어 마테우스

last modified: 2015-04-10 23:03:25 Contributors



그가 최고의 폼을 유지할 때면, 뭐 그는 흔히 그랬지만, 그보다 나은 선수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프란츠 베켄바워

난 플라티니를 동경한다. 마라도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승리하려면 내겐 마테우스가 필요하다.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그는 내가 만났던 최대의 라이벌이었다. 이것으로 그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디에고 마라도나

(경기에 출전한 마테우스를 가리키면서) "마테우스가 마라도나의 오랜 라이벌이자 어쩌면 마라도나 이후의 인물이 될 수 있는 후보일 것이다. 둘은 인연이 깊다. 한 명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활약했고 다른 한 명은 북부에서 활약했다. 한 명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86 월드컵을 가져갔고, 다른 한 명은 서독 출신으로 90 월드컵을 가져갔다...
-마라도나의 은퇴 경기를 해설하던 중계진

나의 완벽한 우상은 마테우스다. 그는 스스로 골을 넣는 동시에 나머지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No.10이다. 나에게 있어 그보다 나은 선수란 없었다. 비아레조(Viareggio)에서 처음 만나 그의 사인을 받았던 날은 아주 오랫동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최고의 날이었다.
안드레아 피를로


이름 로타어 헤르베르트 마테우스[1]
(Lothar Herbert Matthäus)
생년월일 1961년 3월 21일
국적 독일
출신지 에를랑겐
포지션 MF/SW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9~1984)
FC 바이에른 뮌헨 (1984~1988)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88~1992)
FC 바이에른 뮌헨 (1992~2000)
메트로스타즈 (2000)[2]
지도자 SK 라피트 빈 (2001~2002)
FK 파르티잔 (2002~2003)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2003~2005)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2006)
레드불 잘츠부르크 (2006/07)
마카비 네타나 FC (2008/09)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10 - 2011)
국가대표 150경기 23골

1991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로타어 마테우스
2위
장 피에르 파팽
3위
게리 리네커
1990 Ballond'or
수상
로타어 마테우스
2위
바토레 스킬라치
3위
안드레아스 브레메
1991 Ballond'or
수상
장 피에르 파팽
2위(공동)[3]
로타어 마테우스
르코 판체프
얀 사비체비치
1990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
로타어 마테우스
1999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
로타어 마테우스

FC Bayern München XI[4]
FW
지오반니 에우베르
FW
칼 하인츠 루메니게
FW
게르트 뮐러
MF
로타어 마테우스
MF
슈테판 에펜베르크
MF
메멧 숄
DF
파울 브라이트너
DF
프란츠 베켄바워
DF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DF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GK
제프 마이어

FC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Der 'Kaiser'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Der 'Bomber der Nation' (폭격기)
게르트 뮐러
Die 'Katze von Anzing' (안칭의 고양이)
제프 마이어
Der 'Macher' (창조자)
울리 회네스
Der 'Visionär' (공상가)
칼 하인츠 루메니게
Der 'Leitwolf' (늑대사령관)
로타어 마테우스
Der 'Chef' (지배자)
슈테판 에펜베르크
Der 'Samba-Stürmer' (삼바공격수)
지오반니 에우베르
Der 'Beständige' (꾸준함)
롤란트 볼파르트
Der 'Libero' (리베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Der 'Mr. Europacup' (Mr. 유로파컵)
디터 회네스
Der 'Stratege' (전략가)
파울 브라이트너
Der 'Kaisers Bodygaurd' (황제의 기사)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Der 'Titelsammler' (타이틀수집가)
비셴테 리사라수
Der 'Rekordmeister' (기록챔피언)
메멧 숄
Der 'Titan' (거인)
올리버 칸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이몬트 아우만
(1991~1994)
로타어 마테우스
(1994~1997)
마스 헬머
(1997~1999)

축구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

자신이 뛰었던 모든 팀에서 팀 역사상 베스트 11을 꼽을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선수

전차 군단의 상징적인 인물

철인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2.1. 클럽
2.2. 국가대표팀
2.3. 플레이스타일
2.4. 선수 기록
2.5. 우승 경력
3. 감독 시절
4. 기타


1. 소개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국대와 클럽을 막론하고 자신이 플레이한 모든 팀에서 역대 베스트 팀에 꼽힐만한 어마무시한 인물이며, 프란츠 베켄바우어 이후 수여된 적 없던 독일 명예 주장을 차지한 첫번째 선수. 아직까지 두번째는 없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위퍼와 미드필더. 하지만 스위퍼와 미드필더라고만 표현하기엔 너무 많은 포지션에서 뛰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스위퍼, 중앙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박스투박스,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로 모두 뛰었고 94년 월드컵 이전 모든 월드컵에서 포지션이 달랐다. 유연하고 유능한 선수로, 마테우스는 넓은 시야에 패싱 능력, 포지션적 역할, 태클 타이밍, 그리고 폭발적인 슈팅을 지녔다. 2000년대 축구팬에게 미하엘 발락이 있다면 그 이전에 이 마테우스가 있었다. 현역 시절, 그는 주로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로 활약하다가 말년에는 스위퍼로 활약하였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강력한 포스를 보여주던 인터 밀란시절. UEFA컵우승을 견인

1979년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데뷔 시즌부터 주전을 차지했으며 해당 시즌 결승 1차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는 등 팀의 UEFA 컵 준우승을 견인한다.[5] 82-83시즌엔 키커 평점 미드필더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분데스리가 대표 선수로 자리매김한 마테우스는 84-85시즌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이 시기 뮌헨은 근 3시즌간 리그 타이틀 획득에 실패하고 4위권을 맴돌고 있었는데 여기에 주축이었던 브라이트니게의 해산[6] 이후 전체적인 팀의 재정비를 꾀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멤버 구성에서도 드러나는데, 70년대의 화려했던 면면들과 달리, 리베로형 수비수인 클라우스 아우겐탈러와 벨기에의 전설적인 골키퍼 , 아약스에서 활약하다 이적해온 덴마크 출신의 렌 레르비 정도를 제외하면 국가대항전에 소집되지도 못하거나, 소집되어봐야 시니어 B팀에서 뛸뿐, A매치 경력은 기껏해야 2, 3경기면 많이 뛴 이들이 대다수였다.[7]] 마테우스는 이들을 이끌고 4시즌간 분데스리가 3연패를 차지하는데, 그 마지막은 86-87은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하나 파울로 푸트레가 이끌던 포르투에게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뮌헨에서 동료였던 브레메와 함께 인테르로 이적하는데... 여기서 끝판왕급에 하드캐리를 보여준다. 이는 팀 성적에서 바로 알 수 있다. 마테우스가 이적하기 전 87-88시즌 인테르는 11승 10무 9패로 5위, 현재 기준인 38라운드, 승리 승점 3점에 맞춰 환산시 54.4점에 불과한 승점밖에 얻지 못했으며, 팀내 최다득점원이던 알토벨리는 9골에, 그 다음인 세레나는 고작 6골에 그쳤다.[8] 그러나 마테우스 영입한 88-89시즌, 인테르는 26승 6무 2패로 우승, 당시 기준 58점이고 현재 기준으로 환산할시 93.8점이라는 어마무시한 승점을 얻었다[9] 이전시즌 9골로 팀내 득점 1위였던 알토벨리가 유벤투스로 이적한 가운데, 6골을 넣었던 세레나는 무려 22골을 몰아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한다. 이전 시즌과 감독도 그대로고, 선수단도 그대로고, 상대팀도 그대로. 미드필더 마테우스와 사이드백 브레메 둘 영입하여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시기부터, 86-87시즌 스쿠데토 이후 팀은 보강했지만 자신은 절정의 폼에선 내려온 디에고 마라도나, 87-88시즌을 불태운 후 부상으로 고생하던 루드 굴리트의 뒤를 이어 3시즌간 세리에 에이스로서 활약한다[10] 1990 발롱도르 수상이 이 시기의 일. 1991년엔 중앙 미드필더로서 세리에에서 16골 득점하며 활약하는 한편, UEFA 컵에선 12경기 6골 2도움이란 절정의 활약으로 우승을 이끌어 1991 파 올해의 선수상 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11].

91-92시즌은 부상으로 유로 1992에도 불참, 다음해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92-93시즌부터 슬슬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오가던 마테우스는, 다음시즌인 93-94부터 본격적으로 센터백으로 플레이하기 시작한다. 센터백에서도 변함없이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93-94시즌의 경우 올리버 칸의 뒤를 이어 전체 평점 2위, 94-95시즌은 부상으로 16경기밖에 플레이를 모했으나 평점 기록은 전체 1위에 해당하는 등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특히 98-99시즌엔 한국 나이 마흔에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하는 등 수비수로도 최고 수준임을 입증하였다. 아쉬운 건 98-99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실패인데, 마테우스의 입장에선 80여분에 교체된 이후, 그것도 자신의 교체멤버인 토르스텐의 실책으로 인해 역전패를 당한 것이라 더욱 안타까울 것이다.

2.2. 국가대표팀


마테우스가 처음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던 건 유로 80으로, 이후 82 월드컵까지 로테 멤버로 주전과 벤치를 오갔다.

주전 발탁된 건 86 월드컵부터. 결승전에선 마라도나의 마크맨으로 기용된 게 특기할만할 텐데, 하프타임 감독의 지시로 인해 대인방어를 그만두고 올라가기 전까지 철저하게 묶었다. 이 시기 대표팀에서 마테우스는 소속팀에서와 달리 펠릭스 마가트를 보좌하여 상대 에이스를 차단하는 지우개로서 플레이했다. 아쉬운 점은 정작 팀의 코어였던 마가트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감독은 결승전 후반에 가서야 마테우스를 올려 공격의 활로를 찾는 선택을 하고, 실제로 해당 시점 이후부터 서독의 공격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정작 마라도나가 살아나며 너무 늦은 선택이었음을 드러냈다. 과감히 마가트를 대신하여 마테우스를 공격의 중심으로 팀을 개편했으며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부분.

자연히 다음 메이저대회인 유로 88부턴 팀의 핵심 에이스로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한다. 해당 대회에서 마테우스는 중앙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자신의 탁월한 개인 전술을 마음껏 뽐낸다. 4강에서 리누스 미셸이 이끄는 네덜란드를 만나 결승 진출엔 실패했지만, 오렌지 군단이 도배된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된 것으로 그 활약을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다음, 90 월드컵을 마테우스는 자신의 대회로 삼는다. 허나 본직인 박스투박스가 아닌 수비 라인 위에서 활약하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기용되었는데, 특유의 킥 테크닉으로 팀의 빌드업을 주도함은 물론, 종종 올라가서 상대 수비를 직접 타격하는 드리블 능력과 중거리를 과시하였는데 유고슬라비아와 조별 경기에서의 득점에서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마테우스를 중심으로 한 독일 대표팀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이 대회 활약을 바탕으로 마테우스는 1990 발롱도르와 월드사커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다.

그러나 유로 92에 부상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대표팀에서 에이스 자리는 슬슬 클린스만에게 내주기 시작한다. 실제 94 월드컵 독일은 똥줄 경기력으로 일관한 가운데 클린스만이 하드캐리하는 양상을 띄기도 했고. 유로 96 시점에선 아예 국가대표 은퇴에 가까운 상태였고, 98월드컵도 불참이 유력했는데 마티아스 잠머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대체자로 들어왔다. 역시 8강에서 크로아티아에 참패를 당하며 월드컵을 접었다. 유로 2000에서는 39살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로 참가했다. 그러나 독일은 1승도 못거두고 심지어는 라이벌 잉글랜드에 30년만에 지며 1무 2패로 쓸쓸히 탈락했다.

39세까지 국가대표로 뛴 마테우스의 커리아 후반기 그를 둘러싼 두 가지 루머가 있었는데, 엇갈리는 이 두 루머 중의 하나는 "아직도 저 늙은이 꼰대가 국대냐?"라며 불만을 품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당시 에리히 리벡 감독에 대해 불만을 품은 후배 선수들이 마테우스를 찾아가 "차라리 당신이 감독을 해달라"라고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마테우스의 성격을 보면 이 루머가 신빙성이 없다고 할수가 없다(...) 어느 것이 사실이든 당시 독일 팀분위기가 최악이었다는 것은 사실인듯 하다. 거기다 마테우스가 국가대표 스위퍼 자리를 지키고 싶어했기에 독일 대표팀은 당시 대세인 포백으로의 전환이 상당히 늦었다. 이것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독일 암흑기의 원인 중의 하나라고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에리히 리베크 감독과 그 전부터 감독 자리 문제와 선수단 지휘 방식을 놓고 갈등이 있었던 수석코치 울리 슈틸리케는 마테우스의 스위퍼 기용과 쓰리백에 반대하며 격한 갈등을 빚다가 물러나는 일까지 빚어졌다. 결국 옌스 노보트니가 등장하며 스위퍼 위치를 다른 중앙 수비수들 쪽으로 올려가며 루디 푈러 감독 부임 후에야 포백이 정착되었다.

정리하자면 서독의 에이스로서 90 월드컵 우승 및 유로 88 4강, 주축으로서 86 월드컵 준우승, 로테or벤치로 80 유로 우승 및 82 월드컵 준우승 등을 기록했다.

2.3. 플레이스타일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마테우스 특유의 세레모니

마테우스의 장기를 이야기하며 수비력이나 멀티 포지셔닝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뭐 그 부분도 대단하긴 했지만 막상 마테우스의 경기를 구해볼 경우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미들 라인부터 시작하는 저돌적인 드리블과 어디서든 포워드 라인으로 빵빵 때려주는 킥 테크닉이다. 경기내 볼 전진 능력은 당대 다른, 포워드나 사이드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이례적일 정도. 온더볼도 상당하고 팀 템포를 이끄는 능력까지 타고났기에 하프라인에서 자연스러운 빌드업 리딩을 이끌기도 했다. 이걸 밑에서 받치는 건 역시 탁월한 운동량이고, 이 운동량을 바탕으로 한 수비 능력도 역시, 마테우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이 모든 게 맞물린 마테우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이처럼 두루두루 미들에게 갖추어야할 능력들을 상당한 레벨로 갖추고 있었기에 굉장히 자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볼의 흐름을 읽어내는 포지셔닝을 갖춘 미들 플레이어는 일정 이상의 패스 능력과 온더볼 능력이 된다면 팀의 호흡을 조절하는 빌드업 리더가 될 수 있다. 이 킥 테크닉이 상대 문전을 위협할 수 있을만한 수준이라면 후방의 찬스메이커가 될 수 있고. 다시 해당 선수가 상대 수비 라인을 직접적으로 부수고 들어갈 수 있는 신체 능력과 드리블링까지 갖추었다면... 말 그대로 전후방을 포괄하는 만능 플레이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어느 위치에서 볼을 잡건 상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힐 수 있는 전술적 유틸리티가 되고, 어느 위치에서 볼을 잡건 우군의 공격을 이끌어나갈 키플레이어가 된다. 그리고 바로 마테우스가 그런 선수였고. 그야말로 전천후 박스투박스. 최후방에서 수비나 싶더니 어느새 쉐도우를 방불케할만치 오르내렸다는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안타까운 점은, 커리어에 있어서 화룡정점인 90 월드컵이 망한 대회라는 것과, 본직이 아닌 수비 라인 앞 홀딩 미드필더로 뛰었기 때문에 파괴적인 공격 본능을 상당히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12] 헌데 정작 이게 마테우스의 커리어상 최고로 꼽히는 만큼 아무래도 찾아보면 이 대회부터 찾아본다는 게 팬으로서 아쉽다면 아쉬운 점.[13] 딥라잉 플메로서, 홀딩 미들로서도 잘했지만 마테우스의 본직은 플랫 미들에서 언제든 개인 능력을 이용해 상대 수비 라인을 직접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박스투박스고, 이는 88-91 인테르 시절 경기에서 잘 엿볼 수 있다.

2.4. 선수 기록


시즌클럽리그경기
1979/80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분데스리가284
1980/81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분데스리가3310
1981/82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분데스리가333
1982/83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분데스리가348
1983/84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분데스리가3411
1984/85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3316
1985/86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2310
1986/87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3114
1987/88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2617
1988/89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세리에 A329
1989/90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세리에 A2511
1990/91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세리에 A3116
1991/92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세리에 A274
1992/93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288
1993/94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338
1994/95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165
1995/96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191
1996/97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281
1997/98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253
1998/99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251
1999/00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151

2.5. 우승 경력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9/80 - 1983/84)
  • FC 바이에른 뮌헨 (1984/85 - 1987/88, 1992/93 - 1999/00)
    • Bundesliga (7) : 1984-85, 1985-86, 1986-87, 1993–94, 1996–97, 1998–99, 1999–2000
    • DFB-Pokal (2) : 1985/86, 1997/98
    • Liga-Pokal (4) : 1997, 1998, 1999, 2000
    • DFB-Super Cup (1) : 1987
    • UEFA CUP (1) : 1995/96
    • UEFA Champions League Runner-Up : 1986/87, 1998/99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88/89 - 1991/92)
    • Serie A (1) : 1988/89
    • Supercoppa italiana (1) : 1989
    • UEFA CUP (1) : 1990/91
  • 메트로스타즈 (2000)
    • MLS Eastern Division Champion (1) : 2000
  • 독일 국가대표팀 (1980 - 2000)

3. 감독 시절


선수 시절에 비해 감독경력으로는 그다지 신통치 못하다. 오스트리아 클럽인 라피트 빈 감독으로 데뷔하고 ,그 후에 유고슬라비아 클럽 FK 파르티잔 감독을 역임했다. 파르티잔 감독 시절에는 부천 SK와의 전지훈련 대회 도중에 트나즈 트르판 감독에게 시비를 걸고 욕설을 퍼부어서 빈축을 샀다. 그 후 2003년에서 2005년에 헝가리 국가대표팀을 맡았으나 별 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이후 브라질리그 클럽인 아틀레치구 파라나엔시에서 한시즌 동안 감독직을 역임하기도 했따. 2006년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의 부름을 받아 오스타리아 클럽인 잘츠부르크 감독을 지휘하며, 커리어 최초 리그 우승을 차지 했으나 트라파토니와의 불화로 한 시즌만에 해고 된다. 그 후엔 이스라엘 리그 클럽인 마카비 네타냐 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2010 - 2011년에는 불가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은 후 2013년 현재는 휴식 중이다.

라이벌인 클린스만이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3위,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 등 나름대로 괜찮은 커리어를 쌓은 반면 마테우스는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이스라엘, 브라질리그와 헝가리, 불가리아 국가대표팀 등 축구 변방국들 중심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지만[14] 이렇다할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4. 기타

사생활로도 추문이 많은데 4번씩이나 결혼을 했다. 그 중 하나는 무려 26살 차이로 어린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도 있었다. 그러나 네 번째 결혼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혼했으며, 2014년 11월 다섯 번째 결혼을 했다.기사

대표팀 동료이자 FC 바이에른 뮌헨 시절에 잠깐 함께 했던 위르겐 클린스만과 앙숙이었다고 한다. 사실 클린스만이 모범적인 행동을 보인것에 비하면 마테우스는 그야말로 막장이니 서로의 성격이 맞을리가 없다.

리자라쥐와의 난투극이 찍히기도 했다. 영상 중후반부부터 나온다.

스타 선수들이 많이배출되고 많이 영입되는(...)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여태껏 레전드로 인정하는 "Hall of Fame"에 들어갔던 선수는 프란츠 베켄바워, 제프 마이어, 게르트 뮐러, 칼 하인츠 루메니게, 울리 회네스, 그리고 6번째로 등록된 선수가 마테우스였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바이에른에서 보냈으며, 12년동안 리그 우승도 7번이나 한 전설적인 선수지만 현재는 서로 원쑤지간이다(...) 이유는 바이에른을 떠난 후 특유의 노가리(...)로 바이에른을 엄청 깠다.[15] 결국 참다참다 못한 단장 울리 회네스는 "마테우스같은놈은 바이에른으로 와 봤자 관리직도 제대로 못가질 것" 이라고 맞디스를 외쳤으며, 마테우스도 이에 질세라, 위에 나온 레전드 명함이 박탈되었다는 이유로[16] 소송을 먹일려하였다. 다행히 바이에른 뮌헨 회장인 칼 하인츠 루메니게가 끼어들어서 말리는덕에 서로 화해하고 끝나나 싶었지만....

마테우스는 다시 회네스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그림자 속에 사는 인물 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이 분쟁을 중재한 루메니게는 가식떤 것일 뿐이라고 디스했다(...) 마테우스와 원쑤 중의 원쑤인 위르겐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데려온 것도 마테우스를 깔려고 대려온거라는 말이 있다(...) 위의 관리직도 못할거라는말을 보면 꽤나 그럴싸한데

할머니가 유태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프리미어리그로 가서 08~09 마카비 네타냐 감독을 맡기도 했다. 성적은 뭐 그냥 그랬다. 2010년 4월 말 내한을 했는데,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협상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떡밥이 돌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입지가 불안했었다. 결과적으로 사퇴하긴 했지만. 그리고 마테우스는 카메룬 국대 감독으로 들어가 버렸다..

월드컵 역사에 기록을 세웠는데 5회 연속(1982,1986,1990,1994,1998)으로 월드컵에 출전해서 무려 25경기나 뛰었다.[17] 월드컵 5회 출전은 멕시코의 안토니오 카르바할, 이탈리아의 지안루이지 부폰과 더불어 공동 최다 출전 기록이며 필드플레이어로는 유일한 기록이다. 또한 25경기 출전은 최다 경기 출장 기록으로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파올로 말디니가 2002 월드컵 때 이 기록을 깰것으로 유력해보였으나 동방의 어느 나라에게 16강에서 지며 총 23경기에 그쳤다.[18]

여담이지만 김성모 화백의 만화 마계대전에 나오는 마테우스는 이 마테우스에게서 이름을 따온 걸로 추정되고 있다. 이름을 지을 적에 마계의 제왕답게 마자를 들어가면서도 간지나고 강해 보이는 서양 이름을 찾다가 이 마테우스의 이미지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오 김화백 오오...

아놀드 슈왈제네거랑 비슷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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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독일어의 eu나 äu는 ㅗ+ㅣ발음이지만 일부 고대독어단어나 몇몇 예외 단어들은 그대로 기본 음가 ㅐ+ㅜ 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들어 박물관을 뜻하는 das Museum도 "무조임"이 아닌 "무제움"으로 발음이된다. 마테우스(Matthäus)가 "마토이스"가 아닌 "마테우스"로 발음되는것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 [2] 현 뉴욕 레드 불스
  • [3] 대한민국 방송 대상처럼 나오는 공동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저 3명이 42표로 동률이었다!! 1표차이로 승자가 갈리는 기록도 있지만 이렇게 3명이 동률인 전무후무한 기록도 1991 발롱도르에서 나온 전설적인 기록이다.
  • [4] 2005년 FC 바이에른 뮌헨이 66,000명의 바이에른 팬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선정된 구단 역대 베스트11이다.
  • [5] 차범근과 맞대결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해당 경기 마테우스가 라이트 윙으로 출장했기에 경합 보직이 아니었다. 선수 생활 말년 마테우스가 수비수로 활약했던 사실을 취합해 잘못 알려진 사실
  • [6]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뮌헨의 두 축이었던 파울 브라이트너칼 하인츠 루메니게 콤비를 일컫는 표현이다. 브라이트너는 83년에 은퇴, 이후 루메니게는 83-84시즌 이후 인테르로 이적하며 자연스레 해산된 것.
  • [7] 물론 이후 안드레아스 브레메도 영입되어 마지막 두시즌간 함께 활약하긴 한다.
  • [8] 물론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의 경우 선수말년이던 해당 시기 활약이 돋보이지 않았을 뿐, 해당 시기 아주리와 인테르를 이야기할 때 유의미하게 언급해야할 선수 중 하나긴 하다. 문제는 이 알토벨리도 87-88을 마지막으로 이적...
  • [9] 18팀 체제 아래서 세리에 역대 최다 승점 기록이며, 06-07 만치니가 갈아치우기 전까지 역대 최다 승률 기록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콘테의 유벤투스가 다시 한 번 갈아치웠지만.
  • [10] 마테우스 이후 이 자리는 로베르토 바죠에게 이어진다. 도식화할 경우, 플라티니-마라도나-(굴리트)-마테우스-바죠로 이어지는 식. 물론 만치니처럼 플라티니 시대부터 바죠 시대까지 꾸준히 지배자의 컨텐더로서 좋은 활약이어간 선수도 있다.
  • [11] 참고로 피파 올해의 선수상의 경우 마테우스가 초대 수상자다.
  • [12] 물론 90 월드컵에서 보여준 것만으로도 굉장하긴 했다.
  • [13] 비유하자면 발렌시아 시절 비야나 바르샤에서의 샤비를 보지 않은 채 남아공 월드컵만을 보고 그들을 판단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남아공 때 다른 선수가 가면 쓰고 뛴 것도 아니고 해당 대회에서 비야는 역시 비야고, 샤비 또한 샤비긴 합니다만 이 둘의 진정한 절정의 퍼포먼스가 궁금하다면 비야의 경우 06-09 발렌시아를, 샤비의 경우 08-12 바르샤를 봐야 알 수 있는 것.
  • [14] 한때 K리그 수원삼성 감독 임명설도 있었다.
  • [15] FC 바이에른 뮌헨의 반대파들은 물론 라이벌인 도르트문트, 함부르크 SV, 샬케 04같이 라이벌 팀의 레전드들도 있지만, 마테우스, 클린스만, 프링스, 오토 레하겔과 같이 바이에른 뮌헨에 몸담은 인물들도 꽤 있다. 사실 바이에른 뮌헨은 라이벌 팀 인물이라도 어떻게든 빼내 오지만, 대부분은 정리할때 냉정하게 정리해버린다. 헤어질 때 굉장히 섭섭하게 대접했기에 더욱 더 반대파가 되는 것이다.
  • [16] 그래서 풋볼 매니저등 축구게임에서 보면 바이에른의 레전드 목록에는 마테우스가 없다. 그래도 베스트 11등에는 마테우스가 들어간다.
  • [17] 1982, 1986 월드컵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수로 1990년 월드컵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1994, 1998 월드컵은 스위퍼로 뛰었다 흠좀무
  • [18] 하지만 경기에 뛴 시간을 따지면 말디니가 더 많다. 그것도 교체된 적이 없이 풀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