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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만치니

last modified: 2015-04-02 16:47:32 Contributors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Roberto Mancini)
국적 이탈리아
출생 1964년 11월 27일
출생지 마르케 주 제시
183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선수 경력 볼로냐 FC 1909 (1981-1982)
UC 삼프도리아 (1982-1997)
SS 라치오 (1997-2000)
레스터 시티 FC (임대) (2001)
지도자 경력 SS 라치오 (2000, 수석코치)
ACF 피오렌티나 (2001-2002)
SS 라치오 (2002-200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4-2008)
맨체스터 시티 FC (2009-2013)
갈라타사라이 SK(2013-201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4- )
국가대표 36경기 4골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 현 축구 감독.

Contents

1. 선수 생활
2. 감독 생활
2.1. 초창기 ~ 인테르
2.2. 맨체스터 시티
2.3. 갈라타사라이 SK
2.4. 인테르 시즌 2
3. 기타

1. 선수 생활


지금 맨시티에는 만치니 선수시절보다 더 뛰어난 선수는 없어요. 그만큼 대단한 선수였죠!
by 장지현!

''삼프도리아의 신'''

그의 삼프도리아 시절엔 이런 유머가 돌았다.

루드 굴리트:"베를루스코니가 말하기를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 한다."

로베르토 바조:"무슨 소리!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잔니 아녤리[1]가 인정했다."

디에고 마라도나:"모두 주목! '신(God)'이 말하기를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이 때 삼프도리아 팬들이 하는 말:"마라도나, 헛소리 하지 마라, 신(만치니)은 너에게 한마디의 말도 건내지 않았다!!

삼프도리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플레이 스타일은 전형적인 판타지스타 타입의 화려한 공격수. 17세의 나이로 볼로냐에서 30경기 9골을 넣으며 데뷔했으며, 이후 삼프도리아의 에이스로서 2011년까지 삼프도리아의 유일한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사실 단지 리그 우승만이 아닌 삼프도리아의 전성기 그 자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프도리아 팬들이 만치니를 일컬어 신이라고도 할 만한 게, 만치니가 삼프도리아에서 경험한 모든 우승,

세리에 A - 1회 (90-91)
코파 이탈리아 - 4회 (84-85, 87-88, 88-89, 93-94)
UEFA컵 위너스 컵 - 1회 (89-90)
페르코파 이탈리아 - 1회 (90-91)

이 모든 우승이 곧 삼프도리아가 지금까지 따낸 우승의 갯수와 동일하다. 사람들이 흔히 마라도나의 위대함을 기릴 때 약팀을 이끌고 우승을 따냈다고 하나, 만치니의 삼프도리아는 마라도나의 나폴리보다 더 허약한 팀이었으며 만치니는 이 약팀을 홀로 이끌고 우승을 따냈다. 여기에 삼프도리아가 경험해 본 가장 높은 챔피언스리그 무대인 결승전까지[2] 진출시켰으며, 리그 최다 출장기록과 최다득점 기록까지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삼프도리아의 신이자 모든 것이 만치니다.[3]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로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이기도 했던 안루카 비알리와 짝을 맞추어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니만큼 엄청난 기대를 받고 스타팅멤버로 출전했으나, 첫경기 두번째 경기 모두 후반에 자신의 교체로 들어간 당시로선 거의 무명급(?)이었던 살바토레 스킬라치가 골을 넣는 바람에 이후로 계속 벤치신세...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그리고 스킬라치는 이 대회 득점왕에 오른다. 한마디로 월드컵 빤짝스타의 대표적인 사례)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이탈리아 축구 국가 대표팀에서 뛴 경력이 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만큼 빛나지 못해 총 36경기 출장 4골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월드컵 출전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97시즌 이후 팀의 감독이던 에릭손감독을 따라 라치오로 이적했으며 라치오에서의 3시즌 동안 스쿠데토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컵 위너스 컵 우승 1회를 추가하며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으며, 말년에는 프리미어 리그의 레스터시티로 이적했으나 몇경기 뛰지 않고 2001년 은퇴했다.

요약하면 클럽에서의 화려함에 비해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아쉬웠던 선수생활.

선수 시절은 이탈리아 사람답게 성깔도 드럽기로 유명했다고 한다.[4]

성격과 관련된 일화로 1995년 11월 경기에서 자신이 파울을 당했고 페널티킥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만치니는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자 성질을 못 이기고 자신의 주장완장을 땅바닥으로 던져버렸고, 당시 감독이었던 에릭손 감독은 만치니에게 욕설을 날렸다. 그가 다시 필드로 돌아온 후 그놈의 성질을 못 이기고 곧바로 심각한 파울로 퇴장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6주 동안 출전할 수 없는 중징계를 받았다.

아스날의 골리인 보이첵 슈체스니와도 기묘한 인연이 있는데 역시나 골리였던 슈체스니의 부친이 뛰던 클럽과 유럽대회에서 삼프도리아가 만났는데 슈체스니의 부친이 만치니에게 주먹을 날리고 퇴장당했었다고(...)

이러한 권위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과 비순응적인 모습들이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맡고 있는 누구랑 비슷한데...

워낙 본좌였던 선수시절 때문인지 감독이 된 지금도 아웃된 볼을 처리하는 트래핑이 일품이다. 수트에 구두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현역보다 더 뛰어난 컨트롤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테르 감독으로 부임한 2014/15 시즌 제노아와의 세리에 A 경기에서 마르코 안드레올리 선수가 찬 공에 적중하여 발라당 넘어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2. 감독 생활

2.1. 초창기 ~ 인테르


선수생활은 2001년 마감했으며, 이후 본격적인 지도자 행보를 하기 시작했다. 2001년 라치오에서 에릭손 감독의 수석코치로 일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으며, 이후 일년만에 피오렌티나 감독직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탈바꿈했다. 피오렌티나와 라치오 감독을 맡으면서 코파 이탈리아 대회를 우승하는 등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고, 2004년 인터 밀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인터밀란 감독직을 맡으면서,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하는 등 꽤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챔피언스 리그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리그 내에서 성적은 꽤 괜찮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8강 이상을 진출하지 못했던 것.

결국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바랐던 모라티 구단주의 뜻에 따라, 만치니 감독은 2008년 인터밀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리버풀전 패배 이후 사임의사를 비치면서 시즌 종료후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후 첼시나 중동 클럽의 러브콜을 받다가 2009년 성적 부진으로 인해 마크 휴즈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에서 경질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발탁되었다.

2.2. 맨체스터 시티


2011년에는 한때 리그 2위로 올라서기도 했으나 31라운드까지 5위에 3점 승점 차인 불안한 4위를 지키고 있다. 2010년 리그 5위에 머물때 다음 잔류조건이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모가지될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리그 3위를 차지하고 FA컵도 우승하면서 팀의 35년 우승 무관을 극복했기에 확실히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축구로 정평이 나 있다. 수비와 피지컬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래서 수비진의 호흡과 조직력을 끌어올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편. 실제로 만치니 감독 부임 이후 맨시티는 리그에서 시즌 최소 실점팀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같은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유의 감독인 퍼거슨과 스타일이 아주 대조적이다. 윙어 덕후 퍼거슨은 사이드 라인을 기본으로 하는 빠르고 스마트한 축구를 선호하는 반면에 만치니는 피지컬과 테크닉 좋은 미드필더들로 중앙을 장악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한때는 중앙 장악에 신경쓰다가 원톱만 선호한다고 까이기도 했는데 맨시티에 좋은 선수들이 들어온 이후 투톱도 곧잘 쓴다. 그러나 전술에 유연성이 없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되는데, 이러한 단점 때문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곧잘 성적이 좋지 못했다.

맨체스터 시티에 워낙 악동 같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렇지, 선수 장악력도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무리뉴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 그렇지만 그 마리오 발로텔리가 믿고 따르는 감독이라고 하니, 그걸로 선수 장악력은 증명이 된 셈...이었는데 2010/2011 맨시티에서 계속 선수들끼리의 충돌, 선수와 감독의 충돌, 선수의 은퇴 땡깡 등이 일어나면서 "선수 장악력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 VS "맨시티 자체가 워낙 막장이라 만치니도 별 수 없다." 같은 논란이 생기고 있다.

단점이라면 대놓고 비기기 전술이나 잠그기 축구를 꽤 자주 보여준다는 점. 관중 입장에서는 꽤 지루한 시합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클럽의 서포터들은 '새가슴'이라고 대놓고 비난하기도.

그리고 만치니는 "더 이상 전술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피지컬의 발전만이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다른 전술가적 감독들은 이 얘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2011/2012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무패 행진으로 1위로 올라서는 등 순조로운 시작을 보였으나.....챔피언스 리그에서 카를로스 테베즈의 항명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지도력에 대해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처는 불확실하지만 인터밀란 시절에도 대다수의 선수들과 갈등이 있었다는 소식도 보도되면서 더더욱 지도력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두번의 챔피언스 리그 시합에서 1무 1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만치니의 챔스 본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까이는 중. 그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이에른 뮌헨에게 2-0으로 깨진후, 2011년 10월 2일 블랙번 로버스와의 시합에서는 4-0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 2-1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만치니감독은 맨체스터 시티 부임후 역사를 만들어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올드 트래포드에서 6-1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관광을 태우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툭하면 사고치는 발로텔리[5] 가 2골을 집어넣었고 특히나 팀의 조직력이 상당히 올라간 경기였기 때문에 만치니 감독의 논란은 종결될 듯 싶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가면서 주춤한 모습을 계속 보이면서 연장계약이 이뤄질지 의문시이다.20라운드 넘어가면서 되려 안방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맨유와 똑같은 17승 3무 3패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맨유에게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 첼시전을 빼면 선더랜드와 에버튼이란 중하위팀에게 패했다. FA컵과 리그컵,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 죄다 탈락했고 남은 건 리그 우승뿐인데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 5달 넘게 유지하던 리그 1위 자리조차도 라이벌 맨유에게 빼앗겼고 31차전까지 승점 차가 크게 벌어질 위기에서 만치니조차도 리그 우승 장담이 어렵다고 실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올 시즌이 계약기간이 마지막이라 맨시티를 떠날 것이라고 예상이 많았는데 알 나얀 구단주가 만족한다면서 2년 재계약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판에 맨시티의 연승행진과 반대로 맨유의 삽질이 이어지면서 36차전에선 극적으로 리그 1위를 탈환하면서 44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많아졌기에 다음 시즌 감독 재계약은 확실시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38차전 퀸스파크 경기에서 고전 끝에 겨우 3:2로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한 우승 확보, 감독으로서 7번째 우승컵이자 팀에겐 무려 44년만에 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물론 두둑한 우승 보너스는 덤. 그리고 5시즌 장기간 감독 연장계약이 되었다.

2011/2012년 시즌 말에 접어들면서 신선한 언플과 심리전을 시전하는 바람에 약간 개그캐릭터 기믹도 생겼다. "어차피 맨유가 우승해." , "여러분. 맨유 우승에 돈을 거세요."라고 언론에 조롱조로 인터뷰하는 바람에 역레발로 우승했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 리그 우승 결정전인 큐피알전 바로 직전까지 저런 인터뷰를 했다.

위에 썼다시피 선수 시절에는 악동 이미지였는데 감독이 되자 덕장 이미지가 강해졌다. 무리뉴도 포기한 발로텔리를 그래도 잘 조련하고 있는 것이나[6] 항명 사건까지 일으켰던 테베즈를 시즌 말에 잘 끌여들여서 우승에 큰 역할을 하게 한 것을 보면 나름 덕장은 덕장.[7] 사실 선수시절 멘탈갑으로 유명했기에 개기는 선수의 심정을 잘 이해해서라는 말도 그래서 한국 한정으로 만보살이라는 별명도 있다. 테베즈와는 잘 화해했는지, 테베즈는 계속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발로텔리 또한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감독은 만치니 뿐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만치니 : "내가 얘 잡은 거냐, 얘가 나를 잡은 거냐?"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4강, 한국 vs 브라질전을 관람하기 위해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하기도 했다가 전광판에 그의 얼굴이 비치자 야유 세례를 받았다(…). 한국 언론에서는 기성용을 보러 왔다느니 호들갑을 떨었지만, 네이마르를 비롯한 브라질 선수들을 보러왔다는게 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기성용보다 더 나은 선수를 한 트럭은 살 수 있는 돈이 있거든.

2012/13시즌에 리그 2위, 챔피언스리그 32강 탈락, FA컵 준우승에 그치면서 팀이 무관으로 끝나고서 바로 경질되었다. 사실 성적이 경질의 한 이유는 되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와는 다른데, 관측과 구단의 발표에 따르면 경질의 이유는 1) 계속된 징징댐, 그리고 2) 선수진과의 불화로 우선 지속된 영입에도 반 페르시, 데로시를 언급하면서 징징대는 만치니의 태도에 높으신 분들이 많이 짜증이 났다고 하며, 또 나스리나 발로텔리와의 잘 알려진 불화를 제하더라도 선수단 분위기는 대단히 안좋았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으며 트위터발 일설에 의하면 주장 뱅상 콩파니마저도 만치니를 경질하지 않으면 팀을 나가겠다는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고. 이 설이 사실이라면 만치니는 선수단과의 힘싸움에서 졌다고 볼 수 있다. 덕장 스타일로 팀을 이끌기에 선수단 기강유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 나왔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월드컵에 나가보고 싶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축빠들은 살짝 기대하고 있을지도? 연봉이 얼만데 축협이 내주겠어 안될거야 아마

2.3. 갈라타사라이 SK


2013년 9월, 갈라타사라이 SK에 테림의 후임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갈라타사라이 팬들로부터 사랑받아왔던 테림이 석연찮은 이유로 팀을 떠났기 때문에 만치니를 보는 팬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겠으나, 리그에서는 그럭저럭 꾸역꾸역 승점을 챙기면서 초반의 부진을 만회하고 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끝내 팀을 16강 진출에 성공시켰다. 해냈다 해냈어 만보살이 해냈어 맨체스터 시티에서 2년동안 16강 문턱도 못 밟아본 양반이 1-6 패배의 상처가 선명했던 팀을 16강에 진출시킨 것은 현대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사실 만치니가 갈라타사라이 팬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대표적 이유는 앞에서도 서술된 바 있듯이, 수비적인 전술 때문이다. 센터백인 체쥬와 세미 카야는 세트플레이 상황을 제외하면 하프라인 밖을 벗어나지 않고, 양쪽 풀백인 리에라와 에보우에가 열심히 오버래핑을 해주면서 공격가담을 하는 게 전부다. 적극적인 공격가담과 상대팀 페널티박스에서의 공중전 수행이 큰 장점이었던 펠리페 멜로는 더욱 더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셀추크 이난 또한 센터에서의 적극적인 공격보다는 사이드에서 에보우에를 지원사격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부락 일마즈가 철저하게 고립당하면서 득점력 저하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은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왜 만치니를 좋아하지 않는 지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될 수 있다. 그나마 드록바와 스네이더가 테림 감독 시절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언제까지 드록바의 개인기를 이용한 돌파나 스네이더의 폭발적인 슈팅력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 만치니가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다. 이러한 만치니의 전술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테림 감독 시절의 호쾌한 공격축구를 그리워하고 있다.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에게 1-6으로 대패한 경기조차도 '갈라타사라이답게 당당히 맞서싸웠다', '적어도 전반전까지는 레알을 밀어붙이지 않았느냐' 라고 반문할 정도로 공격적인 전술에 대한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선호는 절대적이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치니는 자신의 전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2014년 2월 22일, 베식타쉬와의 라이벌 매치에서 1-0으로 승리한 직후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얻은 것이다." 라고 운을 띄우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과감한 전술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술을 지향해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

3월 14일부터 계속된 무승행진으로 인해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은 만치니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본인은 "원한다면 오늘 저녁, 아니 내일 아침에라도 떠나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 일을 하러 왔기 때문에 그런 결정은 내려줄 수 없다." 라고 맞불을 놓았다. 또한 한편으로 "4개월만에 (자기가 원하는) 팀이 완성될 수 없다." 고 말하며 서포터들에게 인내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부진으로 인해 본인 또한 아리송한 답변만 계속 늘어놓으면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갈라타사라이 前 코치였던 하샨 샤쉬[9]가 TV에 출연하여 '파티흐 테림 감독과 내가 팀을 지휘했다면 페네르바흐체가 쉽게 리그 챔피언에 오를 수 없었다' 라고 만치니를 정면비판하기도 했다.

만치니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4월 6일 페네르바흐체와의 경기는 웨슬리 스네이더의 결승골로 힘겹게 1-0 승리를 거두며 잠시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어서 팬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며, 지난 4월 19일에는 페네르바흐체도 아니고, 베식타쉬도 아닌, 카슴파샤에게 홈에서 0-4 대패를 당하며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이 기록은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 개장 이후, 갈라타사라이의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이다. 그나마 5월 7일, 튀르키예 쿠파스 결승전에서 에스키세히르스포르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감독으로서 터키에서의 첫 우승 트로피를 챙겼다.

13-14 시즌 종료 후 얼마 뒤 갈라타사라이와 상호계약해지를 했다. 사실 만치니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예전부터 극심했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무미무색의 전술과 겨울 이적시장에서만 자그마치 300억 가까이 지출하고도 선수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모습300억 가지고 떡 사 먹는데 썼냐?은 그로부터 팬들을 등돌리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재임기간동안 선수들과의 불화설(특히 펠리페 멜로와 셀축 이난)도 심심찮게 제기되었으나, 막상 프란델리 체제의 갈라타사라이 훈련장을 직접 찾아와서 선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모습을 보면 결국 본인의 말대로 맨시티 시절과는 달리 선수들과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타사라이와의 결별 원인은 구단의 이적 정책과 다음 시즌 예산 책정에 대한 의견차이.

이탈리아 대표팀 차기 사령탑 후보에 올라있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worldsoccer/newsview?newsId=20140708180204395 만약 대표팀을 맡게 되면 영광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깨알 같은 발로텔리

그러나 이태리팀 감독에 콩테 감독이 선임되어 이태리팀 감독이 되진 못했다.한편 현재 한국팀 감독의 자리가 공석이라 여라 한국팀 감독 후보로 꼽혔지만, 높은 연봉으로 협상에도 들어가지 못한 듯 하다. 현재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2.4. 인테르 시즌 2


"만치오 리턴즈"

2014년 11월 14일 마짜리 감독의 후임으로 10년만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인테르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광복절 분위기에 휩싸였다. 계약기간은 2017년까지.링크 데뷔전은 세리에 A경기 AC 밀란전이다. 데뷔전이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후덜덜. 매도 먼저 맞는 편이 좋다고 만치니는 인테르 역사상 가장 많은 트로피를 획득한 감독이며(총 7개)[10], 인테르의 감독으로 100경기 이상 치른 감독 중 승률이 3위이다.[11] 또한 인테르 감독 역사상 가장 적은 패를 기록한 감독이기도 하다. 유럽무대에서 약했던 전력 외에는 인테르의 기나긴 역사에서 톱을 달리는 명장이었기에 팬들의 기대는 더욱 크다.

하지만 리그 막바지에 이르는 현재 그렇게 막장이라 불리는 형제AC밀란보다도 1단계 순위가 낮다(...) 인테르 자체의 선수층의 문제도 있지만 포돌스키, 샤키리를 영입했음에도 공격진의 답답함과 그냥 서있기만 한 미드필더, 허수아비같은 수비진 등 전술에 문제가 없다고 보기엔 심각하다. 그나마 밥값을 하는건 골키퍼 한다노비치 정도..데헤아:동지

3. 기타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준수한 외모의 미중년이고 패션 감각도 좋다.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로 유명한 리암 갤러거옆동네옆집 할아버지같은 감독과 달리 우리 감독은 잘생기고 멋쟁이다라는 발언을 한적도 있다. 근데 그 옆집 할아버지쓰러지지 않아!ㅠㅠ 근데 드디어 쓰러지셨다. 그런데 만치니도 맨시티를 떠난게 함정


패션왕 만치니

이탈리안답게 패션감각이 좋아서 사복도 잘 입고 피치위에서도 옷 잘 입는다. 맨체스터 시티 머플러를 패션 아이템처럼 제대로 활용[12]하기도 한다. 근데 안첼로티도 분명히 이탈리아 출신인데 대체 왜...맨체스터 시티 감독시절 남성잡지 GQ와 에스콰이어에서 그의 패션세계를 기사로 다루기도. 링크 미중년속성의 본보기와 같은 존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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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유벤투스 명예 구단주
  • [2] 1991-92시즌 유로피언 컵에서 팀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디펜딩 챔피언인 츠르베나 즈베즈다까지 제치며 결승까지 올랐었다. 다만 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바르셀로나였는데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바르셀로나의 수비수인 로날드 쿠만에게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헌납하여 0-1 석패를 당하였다.
  • [3] 다만 마라도나와 팀 성적만으로 비교하자면 사실 비알리가 있던 삼프도리아나 나폴리나 전력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리그에서 90-91 우승을 제외하면 평균적인 성적은 나폴리가 훨씬 좋다.
  • [4] 성질 더럽기로는 어디가서 지지 않는 베론이 삼프도리아 시절 코너킥을 이상하게 찼는데 만치니가 와서 '공 좀 제대로 차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베론은 욱해서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는데, 경기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가니 만치니가 자기를 때릴 준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베론의 표현에 따르면 다른 선수가 말리지 않았으면 죽을뻔 했다고... 라고 알려져 있지만 포포투 2013년 1월에 베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치고받고 싸운건 아니고 짜증은 좀 냈다고 한다. 애시당초 자신은 그 양반 이길 수 없다고... 그래도 만치니와 베론은 삼프도리아-라치오 선수시절을 비롯해서 인테르에선 감독과 선수로도 만난걸 보면 잘 푼 모양.
  • [5] 인테르 시절 만시니가 1대1 면담에서 "넌 진짜 바보고 왜 내가 너 같은 놈을 사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갈군 적도 있고, 담배 피는거 보고 "내 아들이었으면 죽여놨을거야."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한 발로텔리의 대답이 압권. "나는 킥복싱을 배웠다."
  • [6] 마침 발로텔리가 아들과 친구라고 한다.
  • [7] 사실 테베즈는 구단의 압박에 돌아온 것이라는 게 중론. 그러나 빅클럽 감독이 자기한테 정면으로 개겼던 선수를 다시 중용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알렉스 퍼거슨베컴야프 스탐을 내친사례 그리고 즐라탄사무엘 에투를 내친것만 봐도. 거물급 감독이 자신의 리더십에 도전한 선수를 달래서 중용하는 것은 왠만한 도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 [8] 사실 터키의 축구는 승리보다 오락적인 요소가 더 강하기 때문에 만치니의 수비적인 축구는 터키에서 좋게 보일 수가 없다. 게다가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선수단 봉기가 일어났을 정도로 만치니의 전술적인 기본 틀 자체가 답답하긴 하다
  • [9] 국내에는 '하산 사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2002 한일 월드컵의 그 선수가 맞다.
  • [10] 전설적인 명장 레니오 에레라와 타이, 트레블을 이룩한 무리뉴는 5개로 만치니에 이은 3위이다.
  • [11] 61.95%의 승률, 1위는 주제 무리뉴 63%
  • [12]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 시절에도 선수로 있던 삼프도리아, 감독으로 있던 라치오의 상징색이 모두 하늘색이라 하늘색 머플러를 자주 착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