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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키 오사무

last modified: 2014-07-31 14:27:18 Contributors

統 (でざき おさむ)

1943.11.18~2011.4.17

일본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각본가. 이름이 비슷한 즈카 오사무와 혼동할 수 있으니 주의.

원래는 만화가를 지향했다고 하며 상당한 실력도 갗추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토시바에 입사했다. 그랬다가 철완 아톰 자극을 받아 토시바를 그만두고 데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에 입사.

'철완 아톰', '오공의 대모험', '도로로'에서 동화 담당을 한후, 26살에 아니메라마 대실패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무시 프로덕션의 회심의 작품인 치바 데쓰야 원작의 인기만화 '내일의 죠'의 감독으로 발탁되어 자신을 알리게 된다.

'내일의 죠'의 성공 이후에 야마모토 스미카 원작의 에이스를 노려라!에서 자신만의 캐릭터 디자인과 영상연출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안노 히데아키의 작품인 톱을 노려라!의 제목은 데자키 오사무의 '에이스를 노려라'에게 바치는 오마쥬라는 소리까지 있을 정도. 1975년에는 감바의 모험을 감독, 데자키 오사무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모니 기법과 투과광 기법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보물섬에서는 인상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실버를 창조해냈고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데자키 오사무의 최고 걸작으로 꼽힐 정도로 데자키 오사무의 연출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80년대에는 우주해적 코브라의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티비판 애니메이션, 그 이듬해에 고르고13의 극장판을 감독한다. 그러나 '고르고 13'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데자키 감독은 미국으로 가서 오보트 같은 도쿄무비신사가 추진하던 미일 합작 애니메이션에 참여한다.

그러다 일본으로 복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에이스를 노려라!2와 에이스를 노려라 파이날 스테이지를 감독, 다시 한번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이며 건재를 과시한다.

1991년에 감독한 창룡전 애니메이션판은 감독의 이름값에 많이 못 미치는 작품이었지만, 창룡전 직후의 작품인 이케다 리요코 원작의 디어 브라더는 섬세한 연출과 캐릭터 묘사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데자키 감독의 능력을 또 한번 확인케 했다. 1993년부터는 블랙잭 ova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96년에 개봉한 블랙잭 극장판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tv로 복귀해 '백경전설'을 만들었는데 제작의 어려움으로 결국 조기종영하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로는 2005년에 방영된 눈의 여왕 tv판과 2005년 AIR 극장판, 2007년 클라나드의 극장판, 그리고 2008년의 울트라 바이올렛 tv판이 있다.

데자키 감독이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끼친 영향은 측량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모니 기법과 투과광 기법은 수많은 감독들이 애용하는 연출기법이 되었다. 데자키 감독은 블랙잭 극장판에서는 하모니 기법을 한단계 진화시킨 하모니 동화기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수많은 걸작을 만들고 지대한 업적을 남긴 명감독이지만 말년에는 노쇠한 기미가 살짝 보였으며, AIR 극장판, 클라나드 극장판도 졸작이라는 이유로 젊은 덕후들에게는 대차게 까였다. 물론 올드덕후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에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올드 덕후들에게서는 데자키 감독이 아깝다는 불평이, 젊은 덕후들에게서는 원작이 아깝다는 불평이 동시에 나오는 실정. 데자키 감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로 올드덕후, 뉴덕후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

여담이지만, 루팡 3세 팬들에게는 시리즈를 말아먹을뻔한 공공의 적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자세한 건 그가 감독을 맡았던 루팡 3세 TV 스페셜 항목 참고.

2009년 1월에 겐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tv 애니메이션 "겐지 이야기 천년기 genji"의 감독을 맡았다.

아다치 미츠루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2011년 4월 17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항년 6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