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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포로스 1세

last modified: 2014-11-06 19:26:34 Contributors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이레네 니케포로스 1세 스타우라키우스
이사우리아 왕조 니케포로스 왕조 니케포로스 왕조

코이네 그리스어: 니케포로스 1세(Νικηφόρος Α')
현대 그리스어: 니키포로스 1세
라틴어: 니케포루스 1세(Nicephorus I)

? ~ 811, 재위기간 802 ~ 811.

비잔티움 제국황제. 선조는 아랍인으로 가산 왕국의 왕족이었다고 한다. 필리푸스 아라부스 이래로 오백 년 만에 등장한 아랍인 로마 황제기도 하며, 죽어서 술잔이 된 황제로도 알려진다.

서기 800년, 로마교황 레오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에게 서로마의 대관을 씌어주고 로마제국의 황제라는 칭호를 부여하면서 당시 로마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던 비잔티움 제국을 엿먹였다. 게다가 샤를마뉴는 동방제국의 황제 자리도 탐내면서 당시 동방제국의 여제였던 이레네에게 접근하였는데, 인망과 지위를 잃어가던 이레네는 이 혼인제의를 받아들이려 하였다.

안그래도 비잔티움의 사람들은 로마 교황의 행동으로 제국의 긍지와 자존심이 상처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제였던 이레네까지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갑툭튀듣보잡 괴뢰 황제에게 정통성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결국 폭발하였으며, 802년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이레네를 폐위시키고 추방하였다. 그리고 당시 이레네에 의해 재무 대신으로 임명되었던 니케포루스를 비잔티움 제국의 새 황제로 추대하였다. 이에 따라 비잔티움 제국에서 이사우리아 왕조가 막을 내리고 니케포루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즉위하자마자 이루어진 정책은 수도원에 대한 세금 감면 정책의 폐지였는데, 전임 황제였던 이레네가 지지기반이었던 교회에 너무 많은 특혜를 주면서 재정이 파탄날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틈만 있으면 교회와 수도원을 압박하여 국가 재정 확충을 꾀하였으며, 상당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와 수도원에서는 "야이 막장 황제야!"라면서 수시로 디스질을 해댔다. 이 디스질은 죽은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됐다(…).

더불어 이슬람교의 세력 확장과 주변 이민족들의 위협, 샤를마뉴의 압박 등으로 인해 주변도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일단 확보한 재정을 바탕으로 자영농들을 대거 징집하여 정규군으로 편성하고 훈련을 하여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제국을 보호하려 하였다.

일단 첫타는 압바스 왕조와의 대립이었다, 당시 칼리프였던 하룬 알 아시드는 비잔티움 제국에 사절을 파견하여 조공을 요구하였는데 니케포루스 1세는 거절하였다. 이로 인해 805년부터 806년까지 양측 사이에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는데, 비잔티움 제국군이 크게 패하는 바람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강화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806년에는 여전히 동방제국의 제위를 탐내던 샤를마뉴가 베네치아와 달마티아 지역을 공격하여 맞서 싸워야만 했다. 다행히 샤를마뉴의 군대가 패배하면서 이 지역을 지켜낼 수 있었으며, 이 지역을 놓고 벌어진 분쟁은 훗날 니케포루스 1세가 죽고난 후 맺어진 조약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공식적인 영토로 인정받으면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니케포루스 1세의 재위기간동안 최대의 골치거리는 불가르족이었다. 으로 크룸이 등장하면서 하나로 통일된 불가르족은 주변의 다른 민족들을 위협하였으며, 제국의 영토에도 자주 침입하였다. 특히 초창기에는 불가르족에게 밀려난 슬라브족들이 제국 영토로 대거 침입하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에 니케포루스 1세는 그리스인들을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이주시키고, 제국에 침입한 슬라브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정착을 도우면서 안정을 꾀하였다. 사실 이레네부터 추진하던 정책이긴 했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밀어붙여 스탄티누스 5세가 거둔 귀중한 발칸에서의 군사적 성과 토대를 정치적, 경제적 성과로 굳힌 것인 니케포루스 1세다.

다음으로 불가르족의 위협에 군사적으로 맞대응하려 하였다. 불가르족의 약탈이 계속되자 809년에 불가르족의 수도였던 플라스카를 털어버렸으며 아나톨리아의 테마 부대들과 타그마 부대들을 총동원하여 811년에는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였다. 1년간 철저하게 준비한 전쟁이었던 덕분에 초반에는 크룸의 불가르족들들 개발살냈는데 이 때 크룸이 당황하여 사절을 보내 화평을 애걸할 정도로 위세를 날렸다. 하지만 이 참에 불가르족의 위협을 뿌리채 뽑아버릴 심산이었기에 화평을 거절하고 전쟁을 계속 수행하였다.

하지만 811년 7월 24일, 도망가는 불가르족을 추격하여 좁은 협곡으로 들어갔다가 그만 함정에 빠져서 갇혀버리고 말았다. 유리한 고지를 장악한 불가르족은 니케포루스 1세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을 포위하여 맹공격을 가했고 결국 비잔티움 제국군은 완전히 괴멸당했다. 황제 니케포루스 1세도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시신은 불가르족들이 수습하여 참수하였고 몸 부분은 승전의 상징으로 전시되었다가 버려졌다. 그의 두개골은 으로 도금하여 크룸이 죽을 때까지 술잔으로 사용하였다. 여담으로 한참 전인 기원전 452년, 중국 춘추전국시대 조양자가 숙적 지백을 죽이고 그의 두개골을 칠하여 술잔으로 만든 적이 있다.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전사한 발렌스 황제 이후 두 번째로 전선에서 전사한 동방제국의 황제로 기록되었으며 최후가 상당히 비참한 황제이다.

아들 스타우라키우스가 그 뒤를 이어 제위를 계승하였으나, 그 역시 이 전투에서 척수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은 상태로 도망쳐 간신히 목숨만 건진 상태였고 당연히 제대로 황제직을 수행할 수 없었다. 3개월만에 죽었는데 차기 황제로 황후 테오파노를 임명하려 했으나, 궁정에서는 스타우라키오스의 매형[1]카일 1세를 황제로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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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니케포루스 1세의 딸 프로코피아의 남편으로 니케포루스 1세의 사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