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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로 빙가다

last modified: 2015-03-22 09:17:18 Contributors


이란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에두아르두 마누엘 마르티뉴 빙가다
(Eduardo Manuel Martinho Vingada)
국적 포르투갈
생년월일 1953년 3월 30일
출신지 세르파
신체조건 185cm
선수시절 소속팀 아틀레티쿠 CP(1964~1974)
신트렌세(1974~1975)
CF 벨레넨세스(1975~1979)
스태프 커리어 CF 벨레넨세스(1981~1982)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1982~1983)
신트렌세(1983~1984)
빌라프란켄세(1984~1986)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U-20 (코치)(1988~1991)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1994)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U-20(1994~1995)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U-23(1995~1996)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1996~1997)
SL 벤피카 (코치)(1997~1998)
CS 마리티무(1999~2003)
자말렉 SC(2003~2004)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U-23(2004~2005)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2005~2007)
위다드 카사블랑카(2007)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2007~2009)
페르세폴리스 FC(2009)
알아흘리(2009)
비토리아 SC(2009)
FC 서울(2010)
다롄 스더(2011~2012)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2013~2014)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U-23(2014~ )

Eduardo Manuel Martinho Vingada (에두아르두 마누엘 마르티뉴 빙가다)
Nelo Vingada (넬루 빙가다)

포르투갈 출신의 축구감독. 前 K리그 FC 서울의 감독이다.

Contents

1. 선수
2. 감독
2.1. K리그 부임 이전의 경력
2.2. K리그 부임
2.3. 2010 시즌
2.4. K리그 이후의 경력


1. 선수

아틀레티쿠 CP, 신트렌세, CF 벨레넨세스에서 활약했으며, 선수로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채 1981년 28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2. 감독

2.1. K리그 부임 이전의 경력

은퇴 이후 벨레넨세스에서 축구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이 후 한동안 포르투갈 내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다 포르투갈 U-20 대표팀의 코치로 1989, 1991년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명성을 쌓기 시작한다. 당시 카를로스 퀘이로스[1] 감독을 보좌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한 바 있다.[2]

이후 1994년 잠깐 동안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포르투갈 U-20 청소년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하며 1995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 공으로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임명되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3-4위전에서 브라질에 패해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3]

올림픽 종료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을 맡아 아시안컵 우승과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렸지만 경질되었다.당시 기사 참조 기사를 자세히 보면 또 다른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카를로스 퀘이로스가 2003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되었을때 수석코치 제안을 했으나 긴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2004년 이집트 명문 축구 클럽 자말렉 SC의 감독이 되어 2003-04 시즌에 21승 5무 0패 전적으로 우승을 하였으며 이 성적을 바탕으로 이집트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2007년 요르단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어 서아시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했으며 2010년 월드컵 지역예선 3라운드에서도 대한민국과의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끌려다니다가 용병술로 동점을 만들어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충공깽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남북한에게 밀려 조 3위로 탈락했다. 이후 여러 클럽을 떠돌다 2009년 FC 서울감독이 되었다.

2.2. K리그 부임

2010시즌 개막 전 몇몇 전문가와 팬들은 최근 5년간 무려 9개의 팀을 옮겨다닌 이력을 보고 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하고 있으며 의미있는 지적이다. 이들 대부분이 프로의식이 부족하고 정상적인 팀 운영이 어려운 중동팀들이긴 하지만 감독이 너무 자주 팀을 옮긴다면 사람들은 지도력 혹은 적응력에 대한 의심을 표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그가 전임자인 세뇰 귀네슈보다 명성이나 급수에서 떨어지는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훌륭한 감독이라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것은 아니고 일천한 경력의 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실패하란 법은 없다.

현재까지 언론에 비쳐진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덕장. 성공을 바라지만 우승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는 극히 조심스러 웠으며 조직력과 팀 캐미스트리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껏 서울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조직력 부재와 약한 멘탈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는 듯하다.

09년 겨울 누구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며 경험 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한 서울이 그의 지도에 힘입어 오랜 숙원이었던 K리그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3. 2010 시즌

4월 6일 까지 리그 5경기 4승 1패 12득점 4실점으로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 스코틀랜드로 떠난 기성용과 노쇠한 김한윤의 공백은 아디의 포지션 변경과 새로 영입한 하대성으로 메우고 있으며 아직은 조직력을 쌓아가는 단계로 보인다. 작년보다 얇아진 중앙 수비진은 여러 차례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했다. 선수들의 멘탈은 여전히 불안한 면이 있는데 빙가다 감독 본인이 직접 경기장에 들어와 말리는 모습을 보여 기존 서울팀의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유려한 패스플레이를 기본으로 하는 공격축구를 추구했던 귀네슈 감독 시절과는 달리 팀전술을 안정지향적으로 바꾸었으며 앞서는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조심스런 운영을 한다. 11명중 9명을 2진으로 채운 포항을 상대했을때도 양 풀백은 오버래핑을 자제했고 투톱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전체적으로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보였다. 다만 이에 대해 오른쪽 윙백 최효진은 오른쪽미들 에스테베즈와 본인 모두 신입생이라 아직 호흡이 맞지 않아 그런면이 있으며 차차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실제 다음 경기인 수원전에서는 3-1 승리를 거두는 가운데 양 풀백의 활발한 공격가담이 이루어졌으며 최효진은 골을 기록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경기에도 3득점 후 안정적인 운영을 한 것으로 보아 감독의 성향이 승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맞는 듯.

5라운드까지 매경기 스타팅 멤버는 물론 교체 멤버까지 거의 변화가 없어서 젊은 유망주의 산실인 FC 서울의 팀컬러가 바뀌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다. 동시에 선수 혹사가 염려되는 상황인데 아챔을 치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직 판단은 이르며 컵대회가 시작되면 빙가다 감독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될 듯 하다.

그리고 마침내 뚜껑이 열렸는데. 장기적인 운영에 대한 평가는 좀 더 두고봐야 겠지만 현재로선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컵대회 우승을 차지해 팀에 4년만의 우승컵을 선사했고 리그에서도 항상 뒷심 부족으로 고생하던 귀네슈 시절과 달리 초반부터 꾸준히 순위권을 유지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11월 7일 대전과의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최소실점 공동 2위(성남과 함께 26실점), 최다득점 1위(58득점)에 오르며 공수에서 균형잡힌 면모를 보였고 선수들의 조직력이나 정신력 측면에서도 훨씬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챔피언결정전에선 제주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종합 1승 1무 4-3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팀에 네번째 우승을 선물했다. 외국인 감독으론 역대 3번째 오르는 정상의 자리이며 K리그 역사상 데뷔 첫 시즌에 더블을 달성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려했던 유망주 방치 문제도 최현태, 김동우, 김태환 등을 꾸준히 기용하며 나름대로 육성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고있다.[4] 한가지 단점이라면 홈 경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원정경기 승률.

중국 시나통신이 2010년 시즌을 끝으로 FC 서울을 떠나 중국 베이징 궈안으로 팀을 옮길 것이라고 보도했다. FC 서울도 계약기간이 끝나고 연장에 큰 미련이 없는 듯한 모습이라 가능성이 높은 듯.

결국 2010년 12월 13일 공식 발표로 FC 서울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단 운영 방향과 연봉이 문제였던 듯 하다.기사

2.4. K리그 이후의 경력

2011년 여름, 다롄 스더 감독을 맡았다. 2011년 12위로 시즌을 마쳤고, 2012년은 1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시즌 종료 이후 다롄 스더가 다롄 아얼빈에 병합되자 중국을 떠나게 되었고,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거쳐 2014년 이란 U-23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이란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으나, 조별 라운드에서 베트남에게 1-4로 대패한 뒤 타지키스탄과 1-1로 비기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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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후 레알 마드리드 감독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를 거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으며, 2011년부터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먹감자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 [2] 이 대회는 포르투갈 축구의 골든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파울루 소사, 주앙 핀투, 루이 벤투, 아벨 사비에르 등을 발굴한 것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 [3] 이는 포르투갈 올림픽 축구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이고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참고로 이 당시 올림픽 축구 우승 감독은 나이지리아 감독을 맡은 조 본프레레. 준우승은 아르헨티나
  • [4] 다만 분노의 영입으로 선수단 자체가 과포화 상태라 타팀에선 주전급인 선수들이 어쩔수 없이 벤치 달구고 R리그서 뛰고있는 것도 사실이다.(각급 대표팀을 거친 선수들이 2군서 뛰는 바람에 손쉽게 R리그 A조 1위를 차지했다.) 이를 참지못한 수비수 이규로 선수는 싸이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일단 올시즌이 끝나면 상무입대 자원(최효진, 김치우, 이종민)을 포함해 선수단 정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