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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last modified: 2015-04-02 09:40:47 Contributors


이름 김호철(金浩哲)
생년월일 1955년 11월 13일
출신지 경상남도 밀양시
출신학교 대신고등학교-한양대학교
포지션 세터
신체사이즈 신장 175cm, 체중 68kg
소속팀 금성통신 (1980~1981)
멕시카노 파르마 (이탈리아) (1981~1985)
현대자동차서비스 (1985~1988)
시슬리 트레비소 (이탈리아) (1988~1990)
비첸사 클럽 (이탈리아) (1990~1995)
지도자 라벤나 밀라빌란디아 감독 (1999~2000)
트리에스테 감독 (2000~2003)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2003~2011, 2013~2015)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6, 2009)
아산 러시앤캐시 드림식스 감독 (2012~2013)

Contents

1. 소개
2. 선수시절
3. 지도자 생활
3.1. 이탈리아 리그
3.2. 국내 복귀
3.2.1. 현대캐피탈 시절
3.2.2. 드림식스 시절
3.2.3. 현대캐피탈 복귀
4. 기타
5. 감독 경력


다미~ 틀어 치는 거 연습했잖아~[1]

1. 소개

金浩哲

대한민국의 전 배구선수이자 전 현대캐피탈 감독.

1955년 1월 13일 생[2]. 키 175cm. 포지션은 세터.

리그베다 위키에 두 번째로 작성된 배구감독이다. 첫 번째는 강만수.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밀주초등학교 때 처음 배구를 시작하였는데, 원래 그는 중거리 육상 선수로 1500m를 4분 대에 뛰었던 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장에서 굴러온 공을 주워서 갖다 주고 보니 지루한 육상보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배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집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육상과 배구를 같이 하게 되었고, 육상 실력도 좋은 편인데 당시 그가 다니던 학교와 경쟁 관계에 있던 학교를 의식한 나머지 그는 유급을 하게 된다.

중학교 때부터는 배구에만 전념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대신중학교로 전학하였다. 키가 작아 세터를 했지만 그의 실력이 뛰어났고 이로 인해 중학교에서 또 1년을 유급하게 된다. 지못미.

2. 선수시절

대신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1975년에 생애 첫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1978년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김호철은 현란한 토스워크를 선보였고 이에 힘입어 대한민국이 4위에 입상하자 이탈리아 언론이 "원숭이가 나무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며 한국팀의 선전을 전했다. 이 중심에 섰던 김호철은 이탈리아 클럽 팀으로부터 이적 제의까지 받았고 그로부터 3년 뒤 멕시카노 파르마에 입단함으로써 성사됐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금성통신(현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에 강만수와 함께 입단하여 짧으나마 금성통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였다.

이 때 그보다 먼저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였던 대한민국 여자 배구의 레전드 혜정[3]과 '아침이슬'로 유명한 가수 양희은이 그의 이탈리아 리그 진출을 돕기 위해 나섰다.[4]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양희은은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김호철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고, 이를 토대로 김호철은 이탈리아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의 인연으로 조혜정과 양희은과는 서로 누나 동생이라 부르는 관계가 되었다.[5] 그리고 훗날 조혜정이 GS칼텍스 감독에 취임한 후 김호철 감독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게 된다.[6]

이탈리아 진출 전에 당시 도로공사 선수였던 임경숙 씨를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는데 임경숙 씨는 선배의 갑작스러운 은퇴로 공격수에서 갑자기 세터로 보직을 바꿔야 했다. 당시 김호철의 개인 코치를 받게 되었고 이 둘이 마음이 통하게 되면서 1981년 결혼하여 이탈리아로 진출해 해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여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 때 있었던 에피소드 중에 이탈리아 진출 첫 경기에서 당시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하는 김호철에게 팀 동료 선수가 네가 잘못해서 범실 났다며 투덜거리자 김호철이 홧김에 그 동료 선수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관중들은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뜨렸지만, 다른 동료 선수들이나 코칭 스텝들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일 이후 동료 선수들은 김호철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했으며, 소속팀인 멕시카노 파르마 클럽은 1부리그로 승격하였고, 1983년과 1984년에 우승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때 붙은 별명이 황금의 손(Mani d'Oro).

1984년에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파르마 시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성통곡하는 팬들이 그가 돌아가는 것을 반대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원래 소속팀인 금성통신에 들어간 게 아니라 현대자동차서비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대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그가 얼마나 불같은 성격이었냐 하면 후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배들에게 당당히(?) 다가가 갈궈댔다고 한다.

3. 지도자 생활

3.1. 이탈리아 리그

1988년에 다시 이탈리아 리그 시슬리 트레비소로 들어갔고, 비첸사 클럽에서 은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 2부 리그를 전전하는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킬 정도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애초에 2부리그 팀을 맡아서 1부리그로 승격시킨 적이 없으며, 1999년부터 스피드 배구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완전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1부리그에서의 실패로 2부리그 감독을 하였으나 2부리그에서도 13위를 기록하는등 처참한 기록을 남긴다. 이탈리에서의 마지막 클럽은 2부리그 클럽 AdriaVolley Bernardi Trieste에서는 간당간당 하다가 김호철 감독이 물러난 이후 급격히 성적이 상승해 1부리그 승격에 성공하는 등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많은 한계를 보인 지도자였다.

3.2. 국내 복귀

3.2.1. 현대캐피탈 시절

2003년에 대한민국 리그로 사실상 영구 복귀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송만덕 감독과 갈등을 빚은 방신봉의 항명 사건, 리베로 이호의 강제 은퇴 등으로 생겨난 선수단 집단 이탈로 배구단 해체 위기까지 갈 정도로 분위기가 어수선하였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에 있던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다름아닌 당시 현대캐피탈 김상욱 단장이었다. 당시 김상욱 단장의 말,

"김 감독, 현대캐피탈 좀 살려주시오. 현대캐피탈은 김 감독 없으면 안 될 것 같소."

처음 현대캐피탈로 왔을 때 현대캐피탈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선수들은 예전같지 않았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기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러한 와중에 김호철 감독에게 건수가 제대로 잡히게 되는데 상무와의 경기에서 시원하게 0-3으로 발리고 온 날 밤에 모든 선수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이에 열받은 그는 다음날 아침부터 선수단 숙소에 있는 소파를 치우고 감독실 의자까지 치워 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으름장을 늘어 놓았다. 내 말 안 들을 선수는 필요없으니 나가라며 밤늦게까지 훈련을 실시했다. 매일매일 반복되었던 일과가 하루 아침에 빡세게 돌변하였고 저녁 먹기 위해 주문한 자장면이 불어 터지며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선수들의 훈련 태도가 맘에 들지 않자 스스로 체육관 앞에 있는 연못으로 들어갔는데 이를 본 선수들이 모두 놀라 전원 연못으로 뛰어들어갔다는 일화도 있다.

그가 대한민국 리그로 돌아와 감독을 맡으면서 그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들어왔다. 도메니코 라사로 전력분석관이 들어왔고, 체력 담당관 안드레아 도토가 들어왔다.(도토 트레이너는 드림식스 때에도 잠시 온 적이 있다.) 당시에 대한민국 배구는 지도자들이 전력 분석의 개념을 갖지 않았고 그냥 선수 시절 배웠던 배구 이론을 토대로 시합을 독려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리시버를 귀에 꽂고, 관중석 한 구석에서는 전력 분석관이 보내는 정보를 토대로 작전 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남녀부를 막론하고 모든 팀의 감독이 시합 중 리시버를 끼고 전력분석관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아 작전 지시를 내리지만.

그는 현대캐피탈 감독으로 취임한 후 취임 일성으로 첫 해에는 한 번이라도 삼성화재를 이기고, 두번째 해에는 삼성화재를 넘어서고, 세번째 해에는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이루어졌다.

2004 시즌에 삼성화재에 계속 패하다가 삼성화재의 리그 77연승을 기어이 저지하였다. 당시 김호철은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었다."며 그 때를 회상한다. 선수들이 패배 의식에 젖어있다 못해 막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2005 원년시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마침내 다음 시즌에서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삼성화재의 10년 연속 우승을 좌절시켰다.

2006-07 시즌에도 우승은 그의 몫이었다. 이 때 있던 에피소드 중에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에게 시원하게 발렸던 일이 있었는데 그 날 저녁 숙소에서 선수들을 모두 천안 유관순체육관으로 불러낸 후 밤 9시까지 지옥훈련을 시켰다. 그 와중에 선수들이 모두 단내가 나도록 굴러 다녔고 일부 선수들은 자존심 상할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7-08 시즌부터 다시 삼성화재에게 계속 털리고 있다.김호철 팬들은 오늘도 몰빵이라고 까고 있다.

작전 타임 때에 워낙 선수들을 갈궈대는데, 특히 권영민이 그의 주된 이다. 자신이 세터 출신이기 때문에 세터를 갈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터만 갈구는 것도 아니고 실수한 선수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번 갈구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이다. 그의 질책 수준은 생방송으로 중계되어 작전 타임 때 벤치로 카메라나 마이크가 들어와도 아랑곳없이 진행되는 수준이며, 아주 어쩌다가 식빵을 찾기도 한다.[7] 그래서 별명은 호통호철, 버럭호철.[8]

이런 버럭대는 호전적인 성격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3월, KBS N 스포츠에서 배구 리포터로 활약하던 송지선 아나운서가 팀의 작전지시와 관련된 질문을 날카롭게 던졌고 김호철 감독은 이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 이 사건 이후 김호철 감독에 대해 크게 실망한 팬들이 많아졌다.

이후 그는 다시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월드리그 성적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같은 팀에 있던 박철우이상열 코치에게 구타당하는 사고가 선수촌에서 벌어졌고, 이후 박철우가 아버지와 함께 기자 회견을 갖게 되자 배구계는 난리가 났다. 김호철 감독은 악어의 눈물눈시울을 붉히며 국가대표팀에서 사임하였고, 이상열 코치는 영구 제명까지 당했지만 이 후유증으로 김호철 감독은 박철우와 사이가 나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겉으로는 박철우와 화해했다고 하지만, 안 그래도 신치용 감독의 딸인 혜인(전 부천 신세계 쿨캣 농구 선수)과 교제하고 있던 박철우의 마음은 신치용 감독이 있는 삼성화재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후 박철우는 FA 자격을 얻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박철우사위가 됐다. 이것이 김호철 감독에게 있어 가장 큰 흑역사 중 하나이다.

2009-10 시즌이 끝난 후 구미 LIG 손해보험 그레이터스의 감독으로 옮겨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현대캐피탈을 떠난다고 하자 현대자동차그룹은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고 그를 떠나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고, 정몽구 그룹 회장까지 직접 나서서 그가 현대캐피탈에 남아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라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2년 연속 우승 후의 기록은 실망스러울 정도. 그렇지 않아도 리시브 라인은 그야말로 현시창인데다 서브 마저 개판이다.[9] 이런 와중에 공격력을 극대화하겠다고 하니 팬들 입장에서 답답할 뿐이다. 아리랑 서브의 진수를 보이다 삼성이나 대한항공에게 지기 일쑤인데, 특히 대한항공에게는 4전 전패. 예년 같지 않은 처참한 성적으로 김호철 감독은 현대 특유의 강성 팬들에게조차 욕을 먹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인지 삼성화재가 초반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어 현대는 2위를 그럭저럭 유지는 했는데 정작 PO에서 만난 가빈 슈미트에게 삼성화재에게 0:3으로 시원하게 발렸다.

2011년 5월 3일 김호철 감독은 현대캐피탈의 총감독으로 승격되고 현대자동차서비스의 레전드 하종화가 후임 감독으로 내정됐다. 현장감독에게 총감독 하라는 소리는... 사실상 해고 통보.

이후 사실상 실업자 신세가 됐지만 엠스플에서 이를 놓치지 않고 김호철을 해설위원으로 모셨다. 2011 코보컵 대회에 해설위원으로 처음 나섰는데, 처음 방송치고는 김호철 특유의 입담 때문에 재밌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갈수록 편파적인 중계가 많아지고 있다. 현대캐피탈에게는 매우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삼성화재에 대해서는 상당한 적대감을 보인다.[10]

3.2.2. 드림식스 시절

엠스플에서 배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2-13 시즌을 앞두고 드림식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생각보다 일찍 현장에 복귀했다. 전임 박희상 감독이 깽판친 팀 분위기와 더불어 겨우 해체를 막은 구단의 운영 상황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 지켜보는 게 포인트로, 사실상 드림식스의 구원투수였다.그리고 김호철 감독 부임 이후 드림식스의 얼인히들은 벌써부터 오금부터 저려 온다 카더라. 그리고 엠스플은 박희상 전 감독을 낼름 해설위원으로 데려갔다. 돌고 도는 배구판

오프 시즌에 박희상 前 감독-선수들과의 갈등이라는 내홍으로 인해 제대로 훈련하지 못한 데다가, 운영 주체도 못 구하는 안습한 외환까지 겹쳐 2012-13 시즌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한국전력과 함께 드림식스가 꼴찌놀이를 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게다가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때문에 연고지를 아산시로 옮긴 상태였다. 다행히 아산 이순신체육관이 갓 신축한 체육관이고 러시앤캐시가 1년 계약으로 네이밍 스폰서를 맡아 약간이나마 팀 운영에 숨통이 트였던 상태. 이런 안습한 팀 사정으로 인해 김호철 감독은 팀에서 사무국장까지 맡기도 했다. 실제로도 2라운드 중반 전까지만 해도 상위권 3팀의 훌륭한 영양간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다. 하지만 2라운드 중반부터 강팀들을 잡기 시작하며, 급기야 시즌 후반까지 플레이오프를 노릴 정도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자신의 친정 팀이나 다름없고, 전임 팀인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2012-13 시즌에 굉장히 강했다.이 바람에 하종화는 시즌 후 짤렸다 이는 현대캐피탈전에서 이기면 승리수당을 더 주겠다는 것도 작용한 게 있긴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즌 막판 대한항공에 패해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내우외환의 팀 상황을 가까스로 수습하고 플옵권 팀으로 만든 김호철 감독의 2012-13 시즌은 결코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광국이 그의 조련을 받아 세터의 기량을 키웠다. 그렇게 지도력을 재평가받았고, 드림식스가 2013년 3월 우리금융그룹에 인수되었지만 김호철 본인은 우리카드와의 재계약을 거절하고 사임했다. 그리고 강만수에게 감독직을 넘긴 뒤 현대캐피탈로 돌아간다.

드림식스 인수전 당시 김호철 감독 본인은, 우리금융그룹보다 당시 네이밍 스폰서를 맡고 있었던 러시앤캐시가 드림식스 구단을 인수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우리금융그룹에게 인수전에서 밀린 러시앤캐시에서는 아예 팀을 하나 더 창단하기로 하고, 2013-14 시즌 후 팀명을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로 바꿨다. 그리고 우리금융그룹이 인수한 우리카드 팀은 순우 당시 신임 우리금융 회장[11]이 배구 팀을 포기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인수된 지 불과 2년 만에 또 다시 위기를 겪게 된다.

3.2.3. 현대캐피탈 복귀

2013년 4월 24일 현대캐피탈은 김호철 감독의 복귀를 공식 발표했다. 목표는 역시 타도 신치용, 타도 삼성화재... 호구 왔능가 그리고 드림식스 시절에 김호철의 전임 감독이었던 박희상은 수석코치로 현대캐피탈에 영입되었다. 돌고 도는 배구판 2

하지만 2014-15 시즌의 성적 부진으로 현대캐피탈이 봄 배구에 실패하자 현대캐피탈의 감독직에서 사임하였다.

김호철 감독의 현대캐피탈 감독 시절을 한 마디로 평가하면 이렇다. 현대캐피탈을 한편으로는 살렸고 한편으로는 망쳤다. 그가 주축으로 삼은 선수들은 전임 故 송만덕 감독이 끌어 온 선수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이들로 오랜 세월을 버텨 왔다. 반면 프로화 이후 드래프트로 입단한 선수 중 제대로 자리잡은 선수는 기껏해야 이선규의 보상 선수 이적으로 겨우 자리잡은 최민호 정도가 전부다. 하경민, 송병일, 임시형 정도가 그나마 많이 뛰기는 했지만 모두 트레이드되었다. 팀의 체질 개선을 등한시한 결과 팀은 점점 고령화되었고 뒤를 이을 젊은 선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결과는 2014-15 시즌 5위로 나타났다.

4. 기타

이탈리아에서 활동을 많이 했고, 현재 비 시즌 동안의 거주지는 이탈리아에 있다. 따라서 시즌이 끝나면 이탈리아로 떠난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으며 아들 김준은 이탈리아 골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 중이며, 국적도 이탈리아다. 그래서인지 김호철 감독 자신도 골프 실력은 알아 준다고 한. 딸인 김미나는 이탈리아에서 배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포지션은 세터. 그런데 김호철 감독의 자녀들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이탈리아 국적이다 보니 한국어를 전혀 못 한다고 알려져 있다.

5. 감독 경력

1995/1996 Cariparma Parma (A1) 정규리그 5위 13승 9패, 코파이탈리아 8강
1996/1997 Sisley Treviso (A1) 정규리그 2위 17승 5패, 코파이탈리아 4강
1997/1998 Sisley Treviso (A1) 정규리그 3위 14승 4패 (중도하차)
1998/1999 Valleverde Mirabilandia Ravenna (A1) 정규리그 10위 7승 15패 [12]
1999/2000 Valleverde Mirabilandia Ravenna (A1) 정규리그 10위 6승 16패 , 코파이탈리아 1라운드 탈락
2001/2002 Senza Confini Trieste (A2)[13] 정규리그 13위 13승 17패 , 코파이탈리아(A2) 8강
2002/2003 AdriaVolley Bernardi Trieste (A2) 정규리그 6위 7승 4패 , 코파이탈리아(A2) 8강 (성적부진 해고)
2004 현대캐피탈 V-투어 준우승 (한국)
2005 현대캐피탈 V-리그 준우승
2005-2006 현대캐피탈 V-리그 우승
2006-2007 현대캐피탈 V-리그 우승 , KOVO컵 양산프로배구 우승
2007-2008 현대캐피탈 V-리그 준우승, KOVO컵 마산프로배구 3위
2008-2009 현대캐피탈 V-리그 준우승, BK 기업은행배 양산프로배구 우승
2009-2010 현대캐피탈 V-리그 준우승, 부산 IBK기업은행 국제배구대회 준우승
2010-2011 현대캐피탈 V-리그 3위 , 수원 IBK기업은행컵 프로배구대회 우승

2006 아시안게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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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드림식스 감독 시절, 작전타임 때 외국인선수 다미에게 한 말. 엠스플에서 메이저리그 예고 영상에 써먹었다.
  • [2] 초등학교 재학 시절 그가 졸업하면 학교 성적이 떨어질 것을 걱정한 나머지 감독이 출생일을 바꾸게 하며 유급시키는 바람에 공식 프로필에는 1955년 11월 13일로 되어 있다.
  • [3]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따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의 핵심 멤버였다. 당시 이탈리아 산마리노 클럽에서 활동했으며 2011-12 시즌 GS칼텍스 서울 KIXX 감독으로 취임했다. 현재는 GS칼텍스의 감독을 사임하고 대한배구협회 이사로 활동중. 여담이지만 남편이 삼성 라이온즈 조창수 코치다.
  • [4] 조혜정과 양희은은 1970년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만나 30년 이상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 [5] 나이는 조혜정과 양희은이 김호철보다 2살 많다.
  • [6] 오죽하면 GS칼텍스 선수들이 용인에 있는 현대캐피탈 체육관을 찾아와서 훈련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 [7] 2008-09 시즌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의 경기에서 광균의 서브를 멍하니 쳐다보던 송인석 때문에 서브 득점을 허용하자 곧바로 작전 타임을 불러 송인석에게 들어갔으면 임마, 눈깔 바짝 뜨고 시합해야 할 거 아냐? 식빵이 어쩌구저쩌구...라고 심하게 질책했다. 그것도 마이크가 들어간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 때 중계방송을 하던 강준형 아나운서와 문용관 해설위원은 입에 담기 민망한 말이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을 돌렸다.
  • [8] 본인은 이런 별명을 싫어한단다. 그래서 현대캐피탈 구단에서 김호철 감독 별명을 공모하는 일도 있었는데 많은 팬들이 호통호철이라 부르는 바람에 그 별명이 굳어졌다.
  • [9] 원래 김호철 감독은 서브를 강하게 넣지 말것을 주문하는 편이다. 그래서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집단으로 소녀서브를 보여주었다. 반대로 후임 하종화 감독은 공격수 출신답게 강한 서브를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박철우현대캐피탈 시절에는 서브를 살살 넣었지만 삼성화재로 이적한 후로는 장인 신치용 감독이 서브 만큼은 터치를 잘 안 하는지라 마음껏 서브를 구사하고 있다.
  • [10] 가빈에 대한 부상 드립까지 쳤다.
  • [11] 배구단 인수 당시에는 이팔성이 회장이었다. 이쪽은 인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순우 회장은 정반대였다.
  • [12] 1998/1999시즌의 경우는 시즌 시작부터 감독을 한게 아니라 중도에 부임했다. 부임 전 성적은 3승 10패, 부임 후 성적은 4승 5패
  • [13] 2부리그.. 우리는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이탈리아는 세계최고의 배구리그 답게 축구처럼 2부리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