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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농구인)

last modified: 2015-04-07 14:54:53 Contributors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
김진(金眞)
생년월일 1961년 1월 22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강원도 춘천시
출신학교 신일고 - 고려대학교
포지션 가드
신체사이즈 180Cm, 75Kg
실업입단 1984년 삼성전자 농구단 입단
소속팀 삼성전자 농구단 (1984~1995)
지도자 상무 농구단 감독 (1995~1996)
대구 동양 오리온스 코치 (1996~2000)
대구 동양 오리온스 감독 (2001~2007)
대한민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2)
서울 SK 나이츠 감독 (2007~2009)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 (2011~)

2001~2002, 2002~2003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김동광(수원 삼성 썬더스) 김 진(대구 동양 오리온스) 전창진(원주 TG삼보 엑서스)

2013~14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문경은(서울 SK 나이츠) 김 진(창원 LG 세이커스)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 현 농구 감독. 2011년부터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

신일고[1] 시절 주목받는 가드로 고려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되어 실업무대에 데뷔했다. 농구대잔치 시절 삼성전자 농구단에서 10년 넘게 활약했다. 1984년에 입단하여 1년 선배인 김현준과 더불어 삼성전자의 가드진을 이끌었으나, 충격과 공포의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창단에 버로우. 우승을 딱 한 번 했으니까 콩라인은 아니지만, 하여간 우승 문턱에서 기아에게 밀려 많이 좌절했다. 결국 1994~1995 시즌을 마지막으로 삼성전자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이후 국군체육부대 농구 팀의 감독을 맡고 있었던 광호 감독이 동양의 창단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자 국군체육부대의 코치로 부임해서 1년 간 맡았다가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창단과 동시에 초대 코치로 임명되어 코치로 재직하게 되었다. 동양의 괜찮았던 시절과 32연패(...)로 막장을 찍던 시절을 모두 경험하였고, 감독이 바뀌어도 코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다. 그러다가 2000~2001 시즌, 상무에서 제대한 김병철의 가세에도 연패가 계속되면서 결국 명룡 감독이 해임되자, 감독대행으로 임명되어 남은 시즌을 치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즌인 2001~2002 시즌부터 오리온스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지명한 김승현의 돌출과 새롭게 뽑은 외국인 선수 르커스 힉스이언 페리맨의 맹활약,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전희철김병철의 활약으로 팀을 창단 첫 프로농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프로농구 우승 팀 자격으로 발탁된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을 20년 만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이끌면서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2002-2003 시즌에도 팀을 정규 시즌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통한의 계시계 오작동으로 5차전을 지면서[2] 삼보(현 동부 프로미)에게 2승 4패로 패배하며 우승을 놓쳤다. 여기까지가 그의 리즈시절.(...)

그러나 2002-2003 시즌 이후로는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오리온스 감독 재직 시절에는 팀을 6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면서 괜찮은 감독이라는 평판을 이어갔다. 김승현을 굴려서 얻은 성과, 역대급 외국인 선수인 피트 마이클의 등장에 덕을 본 결과라는 악평도 있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맡는 팀을 PO에 계속 올려 놓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종종 오심의 피해를 보기도 했고, 김승현이 부상으로 골골대는 와중에도 전력을 잘 추스린 편이다. 물론 김승현의 부상에는 김진 감독이 혹사시켰다는 평가도 적지 않지만, 오리온스 자체가 팀으로서 그래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던 것은 김진 감독의 활약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래서 팀이 막장으로 가던 농구계의 LG 트윈스 서울 SK 나이츠가 그를 전격적으로 모셔 왔다. 2007~2008 시즌부터 감독을 맡게 되었고, 2007년 실제로 6강 PO에 팀을 올려 놓았지만, 애당초 이 때도 스폰서가 SK라서 심판이 도와줬다는 풍문부터 김태술 빨이라는 이야기까지 전술적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결국 야심차게 영입했던 주희정 카드가 실패했고, 시즌 중반 13경기에서 1승을 거두는 최악의 부진이 이어지자 결국 2009년 말 팀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동안 명목상 서울 SK 나이츠의 기술고문으로 있다가 2011년 5월 계약이 만료된 강을준 감독의 후임으로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LG 입장에서는 에이스 문태영이 뛰는 마지막 시즌이니만큼 2011~2012 시즌 올인을 목적으로 영입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그러나 야심차게 영입한 서장훈 카드가 실패로 돌아갔고, 외국인 선수도 시즌 초반에 두 번이나 바꾸면서 처음 표방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실패했고, 성적도 전해보다 되려 더 떨어진 7위로 6강 PO진출에 실패.

2012-2013 시즌은 에이스 문태영이 리그 규정에 따라 빠져나가게 되어 최악의 시즌을 맞을 것으로 우려되었으나, 시즌 중반까지는 의외로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골밑 장악력이 검증된 로드 벤슨과 젊은 가드-포워드진을 앞세워 양궁농구 컨셉으로 바꾼 것이 잘 먹혔다는 평.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어이없는 작전 구사를 보여주며 도대체 경기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있는 건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신인 픽 먹으려고 6강 포기하고 그냥 대충대충 하는 게 아니냐고 LG 구단과 김진 감독에게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12/13 시즌 비슷한 양상의 플레이를 보여준 LG와 KT는 2013년 9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되는데... LG는 김종규를 잡았지만, KT는 삼성의 1.5%에 밀려서 5순위. 하지만 2013년 11월 6일 현재 KT, LG둘다 7승 4패

2014년 3월 9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T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하여 모비스를 밀어내고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감독 커리어로는 2002-2003 시즌 이후 무려 11년 만에 정규 리그 1위를 탈환했다. 창원 LG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모비스에게 2승 4패로 패하면서 정상 복귀에는 실패했다. 어쨌든 작년에 6강도 못든 LG를 정규시즌 우승에 올린 공로로 감독상을 11년만에 다시 수상했다.

2014/15시즌에는 초반의 삽질로 다시 돌진 소리를 듣다가(...) 2015년 들어서 울산 모비스, SK 나이츠등을 물리치고 11연승을 달리며 그나마 좀 잠잠해졌다. 2015년 2월 4일 기준으로 2015년에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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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신일고에도 농구부가 있었나'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있었다. 그러나 1975년 창단한 야구부에 투자가 집중되면서(창단 1년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했으니) 농구부는 관심에서 멀어졌고 결국 해체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재창단해 주태수 등을 배출하기도 했으나 이내 다시 해체되었고 그 반대급부로 대진고가 농구부를 창단했다.
  • [2] 이 오작동 때문에 역전을 당하는데, 오작동이 아니었다면 동양이 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