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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last modified: 2016-10-13 20:30:23 Contributors

KBO 리그 현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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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영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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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
(키움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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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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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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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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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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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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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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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덕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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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kt 위즈)


2014년 10월 23일 감독 취임식장에서. 190cm이라는 키를 증명하듯 어마어마한 기럭지를 자랑한다.


SK 와이번스 No.88
김용희(金用熙)
생년월일 1955년 10월 4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동광초-경남중-경남고-고려대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창단 멤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82~1989)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 (1990~1992)
롯데 자이언츠 감독 (1994~1998)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 (1999)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00)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2001~2002, 2005)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04~2006)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11~2013)
SK 와이번스 감독 (2015~2016)
프런트 SK 와이번스 육성총괄 겸 스카우트 팀장 (2013~2014)

1982[1]~1983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프로야구 출범 김용희(롯데 자이언츠) 이광은(MBC 청룡)
1985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세종(OB 베어스) 김용희(롯데 자이언츠) 김봉연(해태 타이거즈)

1982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프로야구 출범 김용희(롯데 자이언츠) 신경식(OB 베어스)
1984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신경식(OB 베어스) 김용희(롯데 자이언츠) 김시진(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7대 감독
강병철 (1991~1993) 김용희 (1994~1998) 김명성 (1999~2001)
삼성 라이온즈 10대 감독
서정환 (1998~1999) 김용희 (2000) 김응용 (2001~2004)
SK 와이번스 5대 감독
이만수 (2012~2014) 김용희 (2015~2016) 현역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1994 롯데 자이언츠 126 56 67 3 6위 -
1995 126 68 53 5 3위 준우승
1996 126 57 63 0 5위 -
1997 126 48 77 1 8위 -
1998 55 20 32 3 8위 -
통산 559 249 292 12 ­
년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0 삼성 라이온즈 133 76 57 0 3위[2] -
통산 133 76 57 0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5 SK 와이번스
총계 692 325 349 12 ­

Contents

1. 소개
1.1. 아마추어 선수 시절
1.2. 프로 선수 시절
1.3. 롯데 코치 부임: 지도자 1기 시작
1.4. 롯데 감독
1.5. 롯데를 떠나 삼성 감독으로
1.6. 다시 롯데로
1.7. 해설가 시절
1.8. SK 2군 감독 부임: 지도자 2기 시작
1.9. SK 육성총괄 겸 스카우트 팀장 부임
1.10. SK 와이번스 감독
1.10.1. 2015 시즌
1.10.2. 2016 시즌
1.11. 기타

1. 소개

한국프로야구의 전 선수이자 전 SK 와이번스 1군 감독. 김응용, 김성근, 백인천, 김재박 등의 감독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서 그렇지 그 또한 한국프로야구의 초창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슈퍼스타이자 감독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적어도 1995년까지는.... 구단의 대우를 떠나 선동열 이전 원조 588을 찍은 감독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면 1998년도 중도해임되어 故 김명성 감독이 유지를 이어받았다. 어찌됐건 롯데는 1996년 5위-1997년 8위-그리고 1998년 8위를 기록하여 롯데 자이언츠는 쌍방울 레이더스 이후 사상 두번째로 2년연속 꼴찌를 기록하고 말았다.

하단에도 나오겠지만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내외적으로 잡음이라는 것이 잘 나오지 않은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강헌주 기자의 기사김은식 작가의 칼럼이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1. 아마추어 선수 시절

현역 시절 별명은 '미스터 롯데' 롯데 자이언츠프랜차이즈 선수이자, 롯데 선수 출신으로 롯데 감독에 오른 첫 인물. 그 전임 감독들은 모두 프로야구 출범 이전 세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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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포항제철 야구단 선수시절.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뭐요!? 42가 아니고?

경남고 시절부터 이미 주목받았던 촉망받던 인재였다. 1973년 경남고청룡기 우승을 이끌면서 타격과 타점 부분 1위, 그리고 MVP에 선정될 정도로 이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고려대에 진학한 무렵부터 국가대표로 발탁, 프로에 진출하기 전까지 계속 국가대표로 활약한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주로 3루수였고, 가끔 유격수를 봤다. 키가 190cm로 당시로서도, 그리고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큰 키였지만 괜찮은 수비력과 타격 실력을 자랑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포항제철 야구단의 창단 멤버로 입단해서 주전 4번타자 자리를 꿰찼었고, 이후 1982년 롯데 자이언츠가 데려갈때까지 포항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특히 한국프로야구의 원형이 된 야구대제전[3] 에서 모교인 경남고 소속으로 나와 후배 최동원과 함께 팀을 이끌면서 우승을 안기고, 그 자신은 최다안타상과 타격상, 대회 MVP에 오른다.

그리고 1980년 세계야구선수권에서 주전 3루수로 출전하기 시작, 그 대회에서 일본 전 역전 적시타를 쳐내면서 대한민국의 준우승에 큰 기여를 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대회 베스트 9에 선정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인생은 한방 참고로 그에게 밀려서 대회 베스트 9에서 빠지게 된 일본의 3루수가 하라 타츠노리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이다.

1.2. 프로 선수 시절


1982년 프로 출범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한국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대표로 묶이지 않은 것에 대해 최동원, 심재원 등이 대표로 뽑히면서 프로 입단이 1년 늦어져 전력에 타격을 입은 롯데에 대한 배려라는 말과 이미 당시에 대표로 뛰기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김용희의 몸 상태는 당시 디스크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엄청난 기럭지!

그럼에도 1982년 초대 올스타전 MVP로 선정된다. 당시 3차전까지 열린 올스타전에서 2차전까지 3홈런을 치며 맹활약한 김용철을 제치고 선정된 이유는 그가 3차전에서 날린 역전 만루홈런의 힘이 컸다. 역시 인생은 한방. 역전의 사나이! 그리고 1984년에도 4타수 4안타를 치면서 다시금 올스타전 MVP의 영광을 안는다. 부상으로 받은 차만 두 대. 미스터 올스타로 뽑힌 후 동, 서군 선수와 코칭스태프 전원에게 한턱을 쏘고, 남는 차 한 대는 후배가 달라고 졸라서 그냥 줬다대인배스러운 일화를 남겼다. 결국 상으로 받은 차는 그냥 자기 돈으로 산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다고(...). 아울러 실업야구 시절은 1980년에도 실업야구 올스타전 MVP를 받았다니, 올스타전과 인연이 깊은 선수라고 하겠다. 당시 실업야구 올스타전 부상은 전축이었다고.

골든글러브를 세 번 받았을 정도로 활약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허리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 무대에서는 아마시절처럼 슈퍼스타로 군림한 것은 아니다. 일곱 시즌 동안 뛰었지만 3할을 넘긴 시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풀시즌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했고, 20개 이상 홈런을 친 적도 없다. 하지만 최초로 롯데를 상징하는 선수였고 롯데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후덕한 인품과 원만한 대인관계로 구단 고위층부터 팀 동료와 후배까지 믿음을 산 선수였다. 축구로 따지면 FIFA 발롱도르 초대 수상자인 스탠리 매튜스와 비슷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1.3. 롯데 코치 부임: 지도자 1기 시작

현역 은퇴 후에 코치 연수를 거쳐 롯데 코치로 부임할 수 있었다.

1.4. 롯데 감독


강병철 감독이 예상을 깨고 빙그레 이글스로 이동하면서, 롯데 구단은 고민 끝에 김용희의 감독 승격을 발표한다. 첫 감독 취임 당시 나이가 39세라 다소 이르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4] 언젠가는 이뤄질 일이기 때문에 크게 놀라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괜찮은 인재이기 때문에 너무 일찍 감독 데뷔를 시키기 보다 좀 더 경륜을 쌓는 것이 어떻냐는 이야기는 나왔다고.

미국 연수를 경험해서 인지, 그의 모토는 자율야구였다. 김용희의 자율야구는 팀훈련시간을 대폭 단축하면서 선수들에게 집중력있고 생각하는 야구를 요하는 것이 그 특징이었다. 제리 로이스터 체제가 등장했을 때, 그가 지지를 보낸 것은 그가 추구하던 야구와 유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독 첫해 롯데는 1군 붙박이 주전이 무려 8명이나 방위복무를 해 전 시즌보다 전력이 많이 약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반 잠깐 4위 싸움에 뛰어들 정도로 선전했다. 최종순위는 6위.

1995년에 이 자율야구 시스템이 비로소 성공을 거두는데 윤학길주형광이 팀의 주축 투수로서 활약하고, 마해영의 합류와 박정태의 재기로 팀 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 3위로 PO에 진출한 것이다. 7전 4선승제로 열린 PO에서 1차전 강성우의 활약으로 이상훈을 무너뜨리면서 이변을 연출하더니 주형광의 역투 속에 4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오른다. 당시 준PO는 3위와 4위의 게임차가 3.5게임 이상이면 무산되도록 규정되었기 때문에 무산되었다. 당시 4위는 해태. 한국시리즈에서도 굉장히 선전해서 1, 4, 5차전을 잡고 먼저 3승에 오르지만, 6차전 진필중에게 완투패를 당하고, 7차전 2:0으로 뒤지던 3회말 2사 2,3루 상황에서 박정태가 치명적인 실책을 저질러 2점을 더 내주는 악재가 겹치면서 아쉽게 OB에게 우승을 내주고 만다. 이 때 만일 우승했다면 장기집권도 가능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996년부터 주전 선수들의 부상 돌림병으로 인해 주전 투수들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염종석은 전 시즌을 마치고 팔꿈치 수술을 받아 아예 개점휴업했고, 박동희도 부상으로 부진했으며, 윤학길은 노쇠했다. 신인 차명주는 먹튀였고, 문동환은 계약금 문제로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다. 4위와 큰 차이로 5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지만, 199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성과 때문에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이게 좀 흠좀무한게 롯데 역사상 최초로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이었다는 점.

그러나 이듬해 1997년, 롯데 프런트는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문동환을 데리고 오겠다고 전준호현대 유니콘스로 주는 최악의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여기에 신인 손민한도 부상으로 쓰러지고, 팀 내부적으로도 많은 선수들이 단체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팀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서 이 시즌은 일치감치 꼴찌로 내달렸다. 아울러 프런트가 원정 기록원도 돈이 없다고 짜르는 등, 슬슬 막장 지원을 줄이더니, 1998시즌도 여전히 꼴지에 머물다가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무른다는 이유로 해임되어 롯데 감독과의 인연을 마치게 된다. 롯데는 해태에서 김응용을 데려오려고 애를 썼지만 데려오지 못해 당시 롯데의 투수코치였던 김명성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하였다. 선동열 이전에 588을 최초로 찍은 선임

1.5. 롯데를 떠나 삼성 감독으로

찾기 정말 힘들었다 꽁꽁 숨겨두신 김감독님

롯데 감독에서 해임된 후, 실업팀 시절의 팀 동료였던 서정환의 추천으로 1999 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에 임명된다. 1999시즌 PO에서의 패배 책임을 지고 서정환 감독이 사퇴하자, 2000 시즌 그 후임으로 내부 승진한다. 그러나 당시 그의 권위는 강할 수 없었다.

이미 삼성은 김응용 해태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고, 일단 김응용 감독이 한 해 더 해태에 남기로 하자 대타로 땜방으로 임명된 것이었다. 어째 후임이 항상 김응용으로 거론되네 그 증거로 2군 감독에는 김성근, 타격 인스트럭터에는 백인천, 사장 보좌역으로는 전 시즌 감독에서 물러난 서정환이 임명되는 등 감독으로서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무슨 지거리야[5] 물론 삼성 프런트도 이강철김동수를 FA로 영입해서 할 만큼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선수단을 장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양대리그 체제에서 드림리그 3위를 기록해, 당시 매직리그 2위였던 롯데보다 승률이 좋아서 준PO를 거친다. 여기서 승리하고 PO에 오르는데, 이 당시 91승을 거두면서 최강 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와의 대결에서 4연패로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재계 라이벌에게 4패로 물러났다는 점 + 김응용 감독의 영입이 확정되었다는 점으로 인해 자연히 감독에서 물러나게 된다. 여태껏 혹사당하던 임창용도 관리해 주는 등 무리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운영했지만, 삼성의 실적 제일주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성적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기도 했고. 참고로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전자업계 라이벌에게 4연패로 졌다는 이유로 정동진 감독이 짤린 적이 있다. 삼성의 전과는 화려하다! 그리고 10년 뒤에는 선동열 감독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연패하고 감독직에서 짤렸다. 10년 주기설?

스트레스가 많았던지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이해 6월 25일 김용희 감독은 심판의 멱살을 잡고(…) 항의한 탓에 최고 제재금 200만원을 물어야 했다. 그리고 12년 뒤 김기태가 최고액을 경신했다

잘 한 점이 있다면 임창용의 투구 이닝을 조절해 주며 임창용이 풀타임 주전이 된 후 처음으로 100이닝에 미달하도록 이닝 소화를 배려해 줬다는 점이다. 임창용이 해태에서 김응용에게, 트레이드로 삼성에 온 첫 해에 서정환에 의해 마무리면서 3년 연속 규정 이닝을 충족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때에 와서야 임창용은 제대로 된 관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임창용이 2000년마저 계속 전처럼 굴려졌다면 메이저리그일본 진출은 고사하고 재기불능 수준으로 망가졌을 가능성이 컸다는 평가를 듣는다.

1.6. 다시 롯데로

그 뒤 양상문 체제에서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강병철 3기 체제에서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롯데 감독이 바뀔 때마다 단골로 후보로 거론되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감독으로 복귀는 쉽지 않을 듯 싶었다.

1.7. 해설가 시절


롯데를 나간뒤에는 SBS ESPN의 해설가를 지냈다. 타격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론과 식견을 보여주는 해설을 했으며 현역 시절에 인품이 좋은 걸로 유명했던 것 답게, 까는 해설보다는 조용히 칭찬하는 해설자 타입에 더 가깝다. 가끔 들리는 부산 사투리와 롯데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정이 보이기도 한다. 사직 구장에서 중계를 할 때 마다 구장이 배 모양이라고 설명해주는게 일종의 패턴화 되었다.

2011 시즌에도 새롭게 영입한 양준혁안경현의 안정성이 아직은 높지 않기 때문에 케이블에서는 주역으로 뛰고 있다. 그리고 올스타전에서 임용수, 양준혁과 함께 신개념 개그 해설을 선보였다.

목소리와 억양, 해설 톤이 씨름이만기와 비슷하다. 옆방에서 들으면 씨름중계인지 야구중계인지 헷갈릴 정도.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서 "김용희 이만기" 검색해보면 '김용희는 이만기 보이스' 혹은 '오늘 야구 해설은 이만기' 등의 글을 많이 찾을 수 있다.


2011년 7월 20일 경남고군산상고 레전드 매치 촬영. 경기때는 허구연이 감독이고 김용희가 수석코치였다.

1.8. SK 2군 감독 부임: 지도자 2기 시작


2011년 9월 7일 SK 와이번스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추석연휴가 지나간 후 선수단에 합류했다. 퓨처스 개막전 때는 고양 김성근 감독과 배우개그 감독개그를 주고받았다. 박재홍과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등 세련된 감각으로 소통하고 선수들을 챙겨주는 모습에 과연 덕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민경삼의 파워협박은 부록

처음 부임 당시만 해도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고 이는 SBS 해설위원 시절 김성근 감독 체제 하의 SK를 많이 깠던 것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2013년까지의 모습을 보면 이만수 감독에 비해서는 지도력이 낫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실제로 계형철 감독이나 이만수 감독이 2군 감독하던 시절의 성적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군과 2군 성적 등가교환 SK 퓨처스 팀은 2007년 2위를 한 이후 줄곧 하위권을 맴돌았다. 2007년 우승 이후 상위권 독주로 상위 라운드 신인지명에서 계속 밀린데다,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 상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신인은 2군 경기장에서 직접 컨디션을 확인한 후 군입대도 한계 시점까지 연기하고 1군에서 뛰도록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2군의 전력이 좋다고는 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조범현 감독이 KT 위즈의 감독으로 선임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기사에서 당초 물망에 올라 제의까지 받았으나 "현재 팀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 고사한 2군 감독 K씨로 추정되었다. 2013년 당시 퓨처스리그 감독 중 이니셜을 K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김 감독을 제외하면 롯데의 권두조, 넥센의 김성갑 감독 정도였다.여기에 '이미 이만수 감독은 시즌 후 경질이 확정적이고, 후임 감독을 내부승격으로 처리할 것'이란 살이 붙어서 여러가지 말이 오고가는 상황. 결과적으로 이 말들은 사실이 되었다.

1.9. SK 육성총괄 겸 스카우트 팀장 부임

시즌 종료 후 은퇴한 박경완이 바로 SK 와이번스 2군 감독에 선임됨에 따라 김용희 감독은 새로 설치한 육성군 총괄 겸 스카우트 팀장으로 보직이 이동되어 신인지명과 육성을 전담했다.

1.10. SK 와이번스 감독

그리고 2014년 시즌 후 계약기간이 만료된 이만수 감독의 뒤를 이어서 SK 와이번스의 후임 감독으로 내정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SK 프런트 쪽에서 아직 내정된 바는 없다고 해명기사가 나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은 10월 21일, 계약기간 2년, 총액 9억 원SK 와이번스의 5대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었다.

2000년 삼성 라이온즈를 1시즌 맡은 이후 1군 감독으로는 자그마치 15년만의 복귀다. 내심 김경기 타격코치나 박경완 2군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기대하던 SK 팬들은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이 다수. 다만 시즌 종료 직후부터 SK의 후임 감독은 내부 승격이 유력했다는 점에서 김용희 육성팀장 역시 감독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는 있었다.

김용희 감독이 발표되고, 일단 그분이 아닌, 새감독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응원과 기대를 받고 있다.

롯데와 삼성에서 1군 감독을 맡았던 시기와는 이제 강산이 한번 반 바뀔 10여 년 이상 흘러가 버렸기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감각과 역량이 살아날 수 있을지 미지수란 점에서 불안 요소는 어느 정도 상존하는 상황. 물론 2011년부터 2년 간 SK 와이번스 2군 감독을 맡으며 이전까지 하위권을 맴돌던 퓨처스 팀을 맡아 2위까지 올려놓은 적이 있는 만큼 김응용처럼 지도자로서의 감이 완전히 녹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속 선수들의 해외 진출과 FA로 인한 전력 유출이 확정적인 2015년 시즌을 앞두고 김경기박경완을 섣부르게 1군 감독으로 앉히는 불확실성보다는 그나마 감독을 경험해 본 김용희 쪽이 당장의 리빌딩을 맡기기에는 더 적합하기도 하다는 점에선 현 상황에서의 차선책으로 보아도 괜찮을 듯. 취임 후 인선에서 김경기 타격코치가 수석코치, 박경완 2군 감독이 육성총괄로 확정된 것으로 미루어 보면 김용희 감독 체제에서의 2년은 김경기박경완 체제로 전환되기 전의 과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나간 다른 팀이나 현 소속팀 2군감독 시절에도 덕장으로 인품이 좋았던 지도자이지만 2군과 1군은 또 다른 만큼, 남은 마무리캠프와 내년 스프링캠프, 2015년 시즌에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전통적인 메이저리그식 '매니저'에 가까운 스타일의 지도자이므로 FA를 다 잡는 등의 프런트 지원만 충분하다면 기본 전력만큼의 성적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솩런트가 그 시절 꼴런트보다는 좀 낫겠지만 그 지원이 가능할 지는 두고 봐야지 그리고 민경삼 단장이 박동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실 만수감독 재신임 할까 생각도 했음 ㅋ이라고 해서 팬들의 부아를 또 뒤집어 놓았다(...)

한편 1군 감독으로 선임되고 나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얻은 별명은 용감이다.

감독 취임부터의 행보는 김용희/2014년에서.

감독으로 취임한 후 LG 트윈스의 타격코치로 있었던 김무관SK 와이번스로 불러들였다.

1.10.2. 2016 시즌

2016년에도 이른바 '시스템 야구'를 강조하였으나 팀은 연승과 연패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였고, 특히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당한 9연패가 너무나 뼈아팠다. 막판까지 가을야구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으나 결국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시즌 종료 후 SK 프런트는 김용희 감독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의 임기에 대한 평가는 "말로만 시스템 야구"라는 평가와, "이만수와 함께 김성근이 망친 팀을 추스리느라 고생만 한 징검다리 감독"이라는 평이 엇갈린다.

1.11. 기타

롯데 감독 시절 마산아재들이 경기 후 즉석 청문회를 연 적이 있었다. 카더라가 아닌가 싶은 의혹도 제기되었지만 이태일 NC 사장이 기자 시절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증언도 한 만큼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건 확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전부터 돌아다니던 글이었는데, LG가 상위권을 찍다 처참하게 무너지던 2011년 8월 잠실 청문회 사건이 용두사미로 끝나자 이 해프닝에 비교되는 사례로 다시금 발굴되어 야구 커뮤니티를 비롯한 도처에 글이 퍼졌고, 이후 웃프던 롯데의 상황을 제대로 표현한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SK 감독 취임 후 다시 회자되는 중.

아재들 웃통까고 버스 나오는 길 앞에서 가부좌 틀고 앉아서 대기하고 있음.
다른 아재들이 버스 존나 두들기면서 "감독 나와본나! 어이! 감독 나와본나!"
이러니까 김용희 나옴...ㅋㅋㅋㅋㅋㅋ

김용희 "와예?" (존나 개좆밥 새끼 내가 프로야구 감독만 아니었어도 척추를 접어버렸을거라는 짜증 섞인 표정)

아재1 "마! 우예 된기고? 박정태 절마저거 살 와 저렇게 마이 찌가 게임 뛰는데???"
김용희 "살 아입니더, 다 근육입니더"

아재2 "내 어제 호프에서 박계워이 봤는데, 선수들 관리 안하는갑제?"
김용희 "아이라예...잘못보신깁니다."

아재2 "내가 봤는데?"
김용희 "따블헤다 하고 오늘 새벽에 내려왔다 아입니꺼...지금 부상선수가 쪼매 있어가 이라지 쪼매만 참고 기다려주이소"

아재3 "아따 근데 김용희 미남이네~키 메시고?"
김용희 "90입니더" (곧 끝날것을 직감하고 씩 쪼갬, 버스기사 반 시동 걸음)
아재3 "어이 아재들요, 우리 롯데 잘하라고 화이팅 함 해주입시더 으이? 자! 롯데 화이팅! 김용희 화이팅!"

아재들 일동 만세 삼창하고 젤 앞에 서 있던 아재랑 김용희랑 악수하고 김용희가 버스에서 생수 가져와서 아재한테 주니까
모세가 바다 가를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길이 쫙 생김.

엄청난 주량을 자량한다. 고대 신입생시절 3시간만에 소주 24병을 마셨다는 전설이 ㄷㄷㄷ

노안에다가 한국 프로야구 초기부터 코칭스탭을 해서 나이가 굉장히 많은줄 알지만.1955년생 2014년 현재 60세 밖에 안되었다. 저 정도 경력에 나이 60이면 엄청 젊은것이다.

SK 감독으로 부임한 후 흠잡힐 곳 없는 인터뷰 스킬과 무난한 행보로 인해 용감등의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팬들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발언때문에 루동님, 도동님 등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인터뷰 스킬 만렙으로 유명한 염경엽과 입터는데 전문인 입동님과 인터뷰로 붙으면 누가 이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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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시즌만 수비율로 선정했다. 1983년부터 베스트 10과 통합 시상.
  • [2] 드림리그
  • [3] 실업과 대학을 망라해 모든 선수들이 모교의 유니폼을 입고 벌이는 대회. 프로야구의 원형 격이고, 이 대회를 주도한 이용일, 이호헌은 뒷날 KBO의 초대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이 된다.
  • [4] 허구연 다음으로 빠르다. 참고로 그 다음이 염경엽, 김기태로 둘 다 45세 때 감독이 되었다. 흔히들 염경엽과 김기태가 감독이 된 것이 허구연 다음으로 빠르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김용희가 39세에 롯데 감독이 되면서 허구연 다음으로 가장 젊은 나이에 감독이 된 순위에 올랐다.
  • [5] 이 세명은 전부 당시 삼성 1군 감독 경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