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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중

last modified: 2015-02-27 04:08:0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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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위메이드 폭스의 감독
2. 야구계 원로


1.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위메이드 폭스의 감독



1978년 3월 6일 안믿어진닷! 생으로써 나이상으로는 아직 젊지만 e스포츠 초창기부터 활동한 감독이다. 2000년에 IS팀에서 공동감독을 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이후 IS가 해체된 뒤에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슈퍼파이트의 해설위원으로 오랜만에 e스포츠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다만, 너무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해서 그런지, 경기 중 침묵만 지키고 가끔 하는 해설도 뻘소리뿐이라 그다지 좋은 평은 듣지 못했다. 결국 하차했는데 후임이 우승기.. 그 후 2007년 위메이드 폭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스타일은 완전한 용장 스타일로써 카리스마가 넘친다. 엄청난 강훈련을 시키고 선수들에게 숙소내에서도 꼭 일어나고나서 씻고 양치질 꼭 하라고 할정도로 품행을 중요시여기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선수들을 아끼고 챙기는 데도 굉장히 신경쓴다. 성적만 빼면 스타판의 김성근

엄격한 스타일이지만 나름 예능감도 있어서 안기효와 찹스온라인 광고 찍을때 리얼한 연기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김양중감독의 평소 스타일을 알수있는 대목이다 찹스온라인 광고에서 외모로 사람 차별한다는게 밝혀졌다. 안기효는 그것때문에 좌절했다! 믿으면 골룸 [1]

경기도중 재경기 상황이나 판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KESPA심판들이 까다로워하는 감독이다. 항의시간도 꽤 긴편이고 그런의도는 아니겠지만 외모와 엄청난 등빨탓에 김양중감독의 설명을 듣는 KESPA심판이 꼭 삥뜯기는거 같다는 우스개소리도 나왔다. [2]

e스포츠판에서 사람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감독으로 아무도 연습을 도와주지 않던 공군에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전력 등 인간적인 평판은 좋지만 스덕들에겐 발트리라고 까인다. 공군 감독만도 못한 발트리라고 까이니(...) 솔직히 수년 간 이렇다 할 에이스 카드를 배출해내지 못한 것 때문에 능력에 대해서는 까이는 일이 많다. 11년 6월 22일 전 3set에서 도택명을 모두 잡고도 이상한 선수기용으로 남은 셋트를 다 말아먹고 역전패를 당했을 땐 충격과 공포.

위메이드 폭스가 해체되고 선수들이 새 구단에 입단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새 직장을 찾은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큰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본인은 새로운 자리를 얻어 복귀하지 못했다. 그 뒤로 소식이 끊겼는데...


족히 경력이 10년은 넘어보이는 엄청난 싱크로율

1년여 후 밝혀진 근황따르면 신림동에 족발집을 열어서 운영중이다. 나름 동네에서 맛집으로 소문나서 슬슬 자리를 잡고 있다고. 역시나 소문난 인심은 죽지 않아 당일 판매원칙을 지키는데다 팔고 남은 족발은 독거노인 혹은 불우이웃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무엇보다 이 사람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e스포츠의 황제 임요환을 발굴해냈다는 것. 아마 이 사람이 없었다면 임요환은 그저그런 PC방 폐인으로 지내는 일반인이었을 지도 모른다. 스타크래프트를 취미로 즐기던 임요환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장본인.





2. 야구계 원로



왼쪽 인물이 김양중. 오른쪽 인물은 당시 국가대표 포수였던 김영조.

이름 김양중(金洋中)
생몰년도 1930년 ~ 2013년
출신지 광주광역시
학력 광주서중학교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
소속팀 금융조합-육군 야구단-업은행

1940~50년대 한국 야구를 풍미했던 야구 원로다. 해방 이후 경남중학교 출신의 장태영과 함께 한국 최고의 투수로 명성을 날렸으며, 둘의 라이벌 구도는 최동원선동열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1949년 제4회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장태영이 이끄는 당대의 강팀 경남중을 상대로 마운드에서는 11이닝 1실점으로 역투했으며, 9회말 2사 2루에서 장태영의 공을 받아쳐 동점을 만드는 중전 적시타를 치면서 광주서중의 11회 연장 역전승을 이끌어 일약 스타가 되었다. 청룡기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서울대 상대 등 여러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졸업 후 바로 금융조합 야구부에 입단한다.

각종 실업야구대회에서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그의 주무기는 직구였는데, 빠르고 묵직한데다 직구가 슈트처럼 꺾여 들어와서 상대 타자들로서는 무척 치기 힘들었다고 한다. 1954년 필리핀 마닐라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1955년에는 육군 야구단에 입단하여 중견수 장태영, 좌익수 박현식 등과 함께 활약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김정환, 박현식, 장태영, 김양중

1958년에는 내한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한국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벌인 경기에서 0-1로 뒤진 1회 무사 2,3루에서 선발 배용섭을 구원해서 9이닝 7안타 2실점 4탈삼진으로 호투했다.[3] 특히 6회에는 당대의 강타자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더 맨' 스탠 뮤지얼을 삼진으로 잡아내기도 했다.[4][5] 거의 40년만인 1997년에 스탠 뮤지얼이 내한했을 때 김양중과 당시를 회고했다고 한다.

그 이후 1961년 현역에서 은퇴하고 1962년 업은행 감독으로 선임되어 당시 상업은행 감독이던 장태영과 고교 졸업 이후 다시 한번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당시 기업은행의 투수로는 우리가 다들 아는 김성근 감독, 그리고 70년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국대회 6차례 석권을 이끌었던 관수 감독 등이 있었다.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시구하는 장면

1967년에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기업은행에서 1986년까지 은행원 생활을 했으며 지점장까지 지냈다. 1982년에는 고향팀인 해태 타이거즈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1차전의 시구를 맡아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아내기도 했다. 2013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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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광고컨셉일뿐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 [2] 물론 경기도중 강하게 이의를 제기할땐 해야되고 이런 상황에서 확실하게 행동하는건 좋은일이기도 하다. 지나치면 안되지만...
  • [3] 경기는 한국대표팀이 3-0으로 선방 석패했다
  • [4] 스탠 뮤지얼은 메이저리그에서 22시즌 동안 .331에 475홈런 1951타점 3630안타를 기록했다.
  • [5] 당시 볼카운트 투앤투에서 스트라이크성 공이 들어갔는데 심판이 잡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스탠 뮤지얼이 고개를 끄덕거린 후 그 다음 아웃코스로 한참 빠지는 볼에 일부러 삼진을 먹어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대인배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