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김병지

last modified: 2016-04-12 21:54:21 Contributors


그의 K리그 통산 500번째 경기 날 등번호 500번의 유니폼을 들고.


그의 K리그 통산 600번째 경기 날 당시 소속 팀이었던 경남의 모든 선수가 기념 티셔츠를 입었다.

전남 드래곤즈 No.1
김병지 (金秉址 / Kim Byung-Ji)
생년월일 1970년 4월 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남도 밀양시
184cm
포지션 골키퍼
소속팀 울산 현대 (1992~2000)
포항 스틸러스 (2001~2005)
FC 서울 (2006~2008)
경남 FC (2009~2012)
전남 드래곤즈 (2013~)
등번호 1번
국가대표 62경기

199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라데
FW
세르게이
MF
신태용
MF
데아
MF
홍명보
MF
하석주
MF
김현석
DF
윤성효
DF
김주성
DF
기태
GK
김병지
199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현석
FW
샤샤
MF
고종수
MF
유상철
MF
백승철
MF
안정환
MF
정수
DF
안익수
DF
시엘
DF
이임생
GK
김병지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주영
FW
차도
MF
김두현
MF
이천수
MF
이호
MF
조원희
DF
임중용
DF
유경렬
DF
조용형
DF
김영철
GK
김병지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보레
MF
따바레즈
MF
이관우
MF
김기동
MF
김두현
DF
아디
DF
마토
DF
황재원
DF
장학영
GK
김병지



내 뒤에 공은 없다. - 김병지

술을 21년간 마시지 않고, 담배를 21년간 피우지 않고, 몸무게를 21년간 1kg 이상 변화 없이 관리했더니 21년간 K리그에서 살아남았다. 그런데 누구나 실천 가능한 일이다. 21년간 술담배 참으신 분이 잠시동안의 드리블 욕구를 못참아서...

대한민국이 낳은 불세출의 스위퍼 타입 골키퍼.마누엘 노이어의 프로토 타입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골키퍼이기도 하다. 경상남도 밀양시 태생.

그의 상징은 캡틴 플래닛 닮은 염색한 머리와 꽁지머리. 그리고 걸어다니는 K리그 인간문화재 기록 제조기.

Contents

1. 클럽
2. 국가 대표
3. 평가
4. 이야깃거리

1. 클럽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5 시즌에 접어들면 무려 24시즌을 현역으로 뛰게 된다.[1][2]

1995년, 발레리 사리체프를 앞세운 천안 일화 천마의 3연속 우승 쇼크에 울산 현대를 제외한 K리그 전 구단이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는 붐이 일어났음에도 그만은 토종 골키퍼의 자존심을 지켰다.

1996년 K리그 우승과 1998년 K리그 준우승에 일조한다. 특히 1998년 포항과의 PO 2차전에서 보여준 헤딩 골은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당시 상황은 1:1, 후반전 인저리타임, 울산이 프리킥을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김병지가 포항의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달려왔고 때마침 올라온 골을 그대로 헤딩, K리그 사상 최초로 골키퍼 필드 골을 넣었고 플레이오프 1, 2차전 합계 스코어 4:4를 만들면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결국, 팀은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2001년에는 국내 선수 최고 이적료를 받고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 2004년 K리그 준우승에 여러모로 일조했다. 수원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는 말 그대로 야신 모드로 엄청난 슈퍼세이브를 경기 내내 보여주며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2차전 승부차기에서는 포항의 다섯 번째 키커로 등장. 김병지가 실패하면 수원의 승리가 되는 상황이었다. 김병지가 찬 공은 결국 영원한 라이벌 이운재의 손에 막히며 팀도 패배하고 본인도 라이벌에게 패배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6년에는 FC 서울로 이적하여 2006년 팀의 하우젠 컵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또한 2005년에는 통산 무실점 기록(K리그+컵 대회)을 갱신하였고, 이 기록은 지금도 김병지가 계속 갱신해 나가고 있다. 2006년 K리그 사상 2번째로 4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고 그 해 최다출장기록을 경신했다. 2007년에는 통산 최다 무교체 출장기록을 153경기로 갱신했다. 이 기록은 칠레와의 A매치 경기에서 입은 부상[3] 때문에 마감되었다.

2009년 고향 팀인 경남 FC로 이적. 플레잉코치 신분으로 이적했다. 비록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그는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등번호 500번 유니폼을 제작했는데, 처음에는 프로연맹에서 반대하였지만 하여간 연맹 진짜 이후 500번째 경기에서 500번 유니폼 착용을 허락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에서 4골이나 먹는 바람에 통산 500실점이라는 그다지 썩 좋지 못한 기록을 세웠다#.

2012년 6월 27일 통산 200번째 클린시트를 달성하였다. 오 대단 2012년 10월 7일, 서울을 상대로 대망의 6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2012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는데, 경남 FC 주전 수비수 이재명과 함께 전남행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이재명은 전북으로 갔다.

결국 전남 드래곤즈로의 이적을 합의했다.# 여담으로, 김병지 슬하의 아들 셋이 모두 축구를 하는데 모두 전남 드래곤즈의 유스 팀으로 옮긴다고 한다. 사부자가 구단을 접수한다!

특이한 것이 경남 시절에는 분명 플레잉 코치로 입단했는데, 전남에 와선 플레잉 코치가 아닌 선수로 입단했다. 이 때 그의 나이 43세(...). 참고로 김병지가 전남에 입단하기 전, 전남의 주전 키퍼는 다름 아닌 이운재다.(...). 이운재를 버리고 김병지를 취하는 전남의 클래스[4]
게다가 감독 하석주와는 겨우 3살 차이. 그나마도 하석주가 2014시즌을 끝으로 물러나고 수석 코치인 노상래가 감독을 하면서 코치진이 리뉴얼 되었는데, 단 한 명의 코치도 김병지보다 나이 많은 코치가 없다.[5] 다시 플레잉 코치로 전환하셔도 될듯??

스페인 매체 아스는 1월 6일 세계 만방에서 활약하고 있는 10대 노장 골키퍼를 선정해 소개했다. 그 중 최은성과 김병지가 10명의 리스트에 포함됐다.#
현재 700경기 출전을 눈앞에 두고있는데, 777번째 경기가 자신의 은퇴경기가 될꺼라고 선언했다. 아직 2~3년이나 남았다. 그나저나 주전자리 찾아서온 김민식 지못미(...)

2. 국가 대표


그때는 머리가 길지 않았다...라지만 트레이드 마크인 꽁지머리는 그대로였다. 1998년.

1995년 6월 5일 코리아컵 코스타리카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국가대표팀의 간판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프랑스 월드컵에서 맹활약한다. 특히 최고의 명장면은 네덜란드전이었다. 팀은 떡실신 당했지만 김병지는 빛났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는 우승후보로 꼽히는 명실상부 최고의 팀[6]이었다. 그런 팀을 상대로 대한민국관광을 당하고 결국 차범근 감독이 해임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겨우 5실점밖에 하지 않은 건 김병지의 눈부신 선방 때문이었다. 실제로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골키퍼가 너무 뛰어나서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라고 언급.

후에 히딩크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맡게 되었을 때 인터뷰 내용중 프랑스 월드컵에서 김병지의 활약을 언급하자 월드컵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골키퍼가 있다는 것은 팀에게도 감독에게도 좋은 일이며 더구나 그 때 김병지가 가장 인상에 깊게 남았었는데 그와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세계적인 감독이 변방의 나라 골키퍼 팬 이 곳이 김병지의 나라입니까?? 인터뷰도 좋지만 난 김병지부터 먼저 만나겠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9실점을 했지만 이는 전체적으로 팀의 수비전술 문제였는데 3-6-1포메이션에서 선수비 후역습은 어느정도 상대의 측면돌파를 윙백이 끊어주고 중앙에서 강하게 압박하는 등 시도 자체는 해볼만 했으나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은 체력적으로나 개인 기량적인 면에서나 한국팀을 아득하게 앞서는 넘사벽수준이라 일차 저지선이어야 할 허리라인은 현란한 개인기와 패스 조합에 우왕좌왕하다 헝클어지면서 윙백의 부담이 커지는데다가 네덜란드의 윙플레이어들의 미친 돌파력으로 최후방라인보다 더 내려가게 되어버려 쓸모없게 되는 지경에 협력수비한답시고 다들 공이 가는 곳마다 몰려다녀 공간이 호남평야마냥 훤하게 드러나 침투도 용이해지는 바람에 골키퍼의 부담의 가중까지 미쳐 올라가는 지라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병지 탓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때문에 김병지는 당시 골키퍼 선방 횟수 19개로 예선에 참가한 전체 골키퍼 중 2위를 기록했으며 야신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만약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면, 김병지가 수상했을 것이라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예선도 통과 못 한 팀의 선수에게 상을 주기에 아까웠던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 말에 '16강 진출팀이나 예선탈락 팀이나 어찌 보면 한 끗 차인데 야신상 받기엔 그저 그런 성적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는 뉴비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 전 대회에서 야신상을 받은 골키퍼는 16강에서 독일에게 3-2로 패배해 탈락한 벨기에의 주전 GK 미셸 프뢰돔이 받았다. 전례가 바로 그 전 대회에서 있었기 때문에 아주 신빙성이 없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1998년 월드컵이 끝나고 당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게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본인이 언어 문제 때문에 거절하여 무산되었다."고. 뭐 당시는 프리미어리그가 최고의 리그가 아니던 시점이기도 하고...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역사적인 트레블은 1999년, 김병지가 영입제의를 받았을 때는 1998년이었다.[7] 하지만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수비수들과의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매우 곤란해진다. 따라서 김병지 본인이 언어 문제때문에 거절한 건 타당한 이유가 된다.[8]

어이없어하는 거스 히딩크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핌 베어백의 모습이 압권.

이런 뛰어난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지만, 2001년 1월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무리하게 공을 몰고 가다 상대 미드필더인 구스타보 모리니고에게 공을 빼앗기는 아찔한 실수를 벌였고, 결국 후반전에 교체되고 말았다. 비록 대한민국이 승부차기에서 승리했지만 이 경기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나게 되면서 한동안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으나, 후에 리그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 해 11월에 다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포함되면서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벤치에서 4강 진출의 기쁨을 맛봐야 했다. 히딩크 감독 자서전에 의하면 이운재김병지 두 선수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으나, 이후 기용된 이운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지속적으로 출전시켰다고[9].

이후에도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은 이운재로 고정되어 가게 되는데, 김영광이나 김용대 등 젊은 골키퍼들도 두각을 나타내었고 한일 월드컵이후 외국인 감독들이 국제경험이 많으면서 최근 월드컵을 경험한 이운재를 중심으로 삼게되면서 자연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곤 하였다. 그러나 04-05 두 시즌간 이운재의 리그와 대표팀에서의 기량정체 밑 저하로 언론과 축구팬들 사이에서 독일 월드컵 대표팀의 부동의 1번에 의구심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대표팀 재입성이 재기되었다. 실제로 기록만으로 본다면 이운재는 1점대 이상의 실점률을, 김병지는 0점대의 실점률을 보이며 수치상으로는 이운재를 압도하는 중인데다가 이운재의 소속팀은 그 유명한 K리그 대표팀 중의 하나인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원 블루윙스이지만 김병지는 과거 전통명문강호이지만 중위권팀이었으면서 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포항 스틸러스 소속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가 되고 있으며 이 현상에 대해 이운재는 "김병지가 대표팀에 돌아오면 후배들의 앞길을 틀어막는다."며 디스를 시전 하였고 얼마뒤 김병지가 '너님이나 똑바로 하셈. 너님이 얼마나 빙다리 핫바지식으로 대표팀에서 굴었으면 나를 찾는거임?? 내가 돌아갈 정도면 너님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나대는 거임??'이라는 식의 맞 디스를 날리며 으르렁거리는 상황이 펼져졌고 양 선수들의 팬들까지 서로 '파라과이 무한돌파 실패한 벤치멤버', '운동도 안하고 살만찌는 돼랑이'라고 온라인에서 물어뜯으며 국가대표팀 엔트리 발표일 까지 두 선수의 향방이 주목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뭐...이후 2007년 음주 파동에 휘말린 이운재를 대신해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했으나, 2008년 1월 칠레와의 경기에서 허리 부상을 당하며 다시 아웃. 이후 국가대표는 본인이 후배들을 위해 터주어야 한다면서 은퇴를 간접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3. 평가

이운재와 함께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골키퍼.

동물적인 판단력과 순발력, 탁월한 반사신경, 좋은 킥력 등 골키퍼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 준족을 살린(100m 11초)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하며, 골키퍼로서 큰 키가 아니지만 점프력이 좋아 공중볼 처리에도 능하다.

전진수비가 많고 골키퍼임에도 공을 차고 앞으로 나가는 돌출행동을 할 때가 있어, 이운재보다 수비 안정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건 억울한 평가인 게 히딩크 시절의 기억이 깊게 남은탓이지, 커리어 전체로 보면 돌출 행동이 많은 선수는 아니며 전진 수비로 인한 실점도 적은 선수다.

4. 이야깃거리

  • 12회 연속 올스타 출전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 2009년 11월 1일. 본인의 리그 500번째 경기는 F4를 앞세운 전북과의 경기였다. 499경기 때까지 김병지는 실점 496점을 기록하며 평균 실점 0.994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근데 하필이면 이때 또 전북이 폭발해 4골을 득점. 본인의 500번째 경기에서 500번째 실점을 하며 평균 실점 1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 23년 동안 현역으로 뛰고 있고, K리그의 기록 제조기의 비결은 역시 자기관리. 정말 철저하다. 23년의 현역 선수생활 동안 데뷔했을 때의 몸무게가 지금까지 단 1킬로도 찌지 않았다고 한다.[10]

  • 마산공고 재학 시절 부산 소년의 집[11]으로 전학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감독으로부터 키가 너무 작으니 축구를 접으라는 소리를 들어서, 둘째는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님이 멀쩡히 계심에도 불구하고 단지 축구가 하고 싶어서이다. 그의 축구 사랑은 위대하다.

  • 마산공고 재학시절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의 강호동과 함께 마산 시내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던 학생들 가운데 하나였다. 마산공고 축구부와 마산상고 씨름부에서 둘 다 엄청 유명했다고.

  • 현 기능사에 해당하는 자격증인 선반기능사 2급,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소년의 집에서 취득한 것으로, 학교가 공고인데다가 실전을 중시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격증 취득을 장려한다. 김병지의 신장이 작다는 이유[12]로 팀들이 입단을 거절했었고, 결국 LG산전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축구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당시에는 리그에 참여하지 않는 그냥 상무팀)에 입단 테스트를 요청하여 상무에서 뛰게 된다. 상무에 입단 테스트를 요청한 경우는 전무후무한 기록.

  • 1998년 K리그 플레이오프 준결승 2차전 포항과의 경기에서 팀이 1대1로 비기고 있을 때 게임 종료 직전에 공격에 가담하여 헤딩슛으로 골을 넣었다. 이로 인하여 K리그 최초의 골키퍼 득점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인 남아공 vs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해설을 맡았다. 언론에서는 성공적인 해설이라고 했지만, 팬들로부터는 경기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사투리를 쓰거나 말을 버벅거린 것도 감점 요인. 다음 경기인 프랑스 vs 우루과이 경기의 해설을 맡은 박문성의 해설과 비교되어 평가가 더 나빠졌다. 다만, 이후 안 좋은 점을 고쳤으며 나름대로 좋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점점 해설에 적응해 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회 중반 이후로는 상당히 훌륭하게 해설을 했고,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키퍼 출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사항들을 해설해 줘서 평가가 굉장히 좋았다. 실제로 파라과이 vs 이탈리아 전에서 파라과이의 프리킥 상황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의 포지셔닝에 대한 지적을 했는데, 그 뒤 이탈리아는 파라과이에 바로 선제골을 먹혔다.

  • 2010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네이트에 칼럼을 연재했다. 필력도 괜찮은 편이고 오랜 선수생활 동안의 풍부한 경험, 선수들만이 알 수 있는 경기 내적인 내용이나 현장에서의 고충을 토대로 서술하여 인기가 좋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선수 신분이기에 전문 칼럼니스트들처럼 취재, 조사하고 다닐 처지는 아니라서 연재가 정기적이지 않고 분량이 약간 짧았다. 2011년 5월 27일 칼럼을 마지막으로 네이트에서 '연재 종료' 칼럼으로 분류되었다.

twitter.jpg
[JPG image (Unknown)]


  • 경상남도 출신이라 그런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도 챙겨 보는 모양이다.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 당시 이대호의 호수비를 보자 트윗에 글을 남겼다.

  • 2000년 8월 16일 심장 부정맥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임수혁에게, MVP 및 캐넌슈터왕으로 얻은 상금 중 300만 원을 임수혁의 치료비에 보탰다.

  • 2005년 FC 서울로 이적할 때, 당시 꼬꼬마였던 박주영이 김병지를 보고 어떻게 부를까 고민하다가 김병지가 '삼촌'이라 부르라고 한 뒤부터 1985년 이후 출생 선수들에게는 '삼촌'이라 부르도록 했다. 이후 경남 FC로 옮긴 뒤로도 막내들에게 삼촌이라고 불린다. 사실 나이로만 보면 삼촌뻘이 맞긴 하다.

  • 이말년씨리즈에도 나왔는데, 하나는 특유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또 하나는 김병지를 다루는 칼럼에서 나온 말[13]로 인해 이와 관련해서 개그 소재로 사용되었다.(...)

  •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던 2011년 5월 어느 날, 한 인터뷰를 통해 "나에게 승부조작 제의가 왔다면 패버렸을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그의 축구사랑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이 소식을 들은 일부 축구 팬들은 김병지라면 실제로 그럴지도...라고 평했다.

  • 김병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일화로 99년 SBS 모 예능프로 몰래카메라에 김병지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몰래카메라의 시나리오는 김병지가 지나가는 앞에서 괴한들이 여자를 괴롭힌다는 것. 김병지는 위에 설명했듯이 마산에서 싸움으로도 한 때 유명했던 사람이었던지라 괴한 중 한 명에게 바로 날라차기를 시전했고 다른 괴한역의 연기자들은 쫄아서 도망가버렸다. 하지만 김병지는 전성기에 100m를 11초대에 끊던 준족.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고 연기자들은 잡히고 나서 김병지에게 빌었다고...덕분에 몰래카메라 촬영은 중단되었다. 신동엽(당시 프로그램 MC)이 인증해주었다.잡았다 요놈!!

  • 위 발언은 전술된 네이트에 연재된 칼럼 가운데 마지막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승부조작 사건을 바라보는 백전노장의 안타까운 마음이 물씬 담겨있는 글이니 주석에 링크된 칼럼은 한 번씩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 2011년 12월, 트윗을 통해 2011년 목표를 운전면허 정복의 해로 선정, 트레일러와 오토바이 운전면허를 취득하였고 대형 면허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2012년 10월, 자신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에 직접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되었다. 댓글의 내용은 하이킹을 하던 중 히치하이킹을 하게 되었는데 탑승한 차량이 김병지의 차였던 것. 목적지까지 태워준 것은 물론 용돈까지 줬다고 한다. 김병지 본인이 단 댓글에는 대략적인 위치까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기억왕 김병지

ryuh****
10년전 배낭여행하던 나는 경상도 어딘가에서 히치하이킹을 했고! 고급세단이 나를 태워줬다! 그리고 놀랐다 운전자가 김병지형님이었지! 어린친구가 멋지다라고 격려하면서 목적지 까지 태워다 주었고 용돈10만원도 받았다! 그이후 나는 김병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김병지 형님! 정말 인간적으로도 너무 멋진분!

leos****
김병지 입니다.. 생각나네요..포항에서 영덕가는 국도변에서 대구 지역 대학생이었던걸로 기억나네요..두분이셨던것두요...강원도 설악산까지 하이킹 하신다고, 열혈도전에 깊은 인상이 남네요..아마 그때 그 도전정신으로 지금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자리하길 바랍니다...


  • 슬하에 아들이 셋 있다. 큰아들 태백, 작은아들 산, 막내아들 태산으로, 세 아들의 이름을 태백산에서 따왔다고 한다. 세 아들 모두 축구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모두 골키퍼를 하고 싶다고. 피파 온라인에서 팀을 생성하면 거기에 꼭 아버지를 주전 골키퍼로 넣는다 카더라. 김병지가 평하길, 태백이는 패스타이밍이, 산이는 킥력이 좋고, 태산이는 두 형에 비해 피지컬이 좋다고.이 글만 보면 왠지 재능을 셋으로 나눠서 물려준 거 같은데 특히 작은아들 산이는 KBS N 스포츠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김병지가 전남으로 이적할 때 세 아들 역시 구단 산하의 유스팀으로 옮겼다. 김병지는 큰아들 태백이가 프로 무대에 데뷔할 때 같이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14]

  • 과거 '논키퍼'라는 농약의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축구에는 골키퍼 논에는 논키퍼" 영상 추가바람

  • 2014년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아디의 은퇴식을 엎어버리고 승리한 후 최용수 감독의 두 손 악수를 한 손으로 잡아주는 위엄을 보여주셨다! 큰삼촌급 선수의 위엄[15]

  • FIFA 14에서 골키퍼로 득점하면 깰 수 있는 골드 도전 과제 '공수의 달인'의 설명에는 '김병지를 아시나요?'라고 적혀 있다.

  •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히딩크 감독이 보는 앞에서 폭풍드리블 후 볼 뺏기기(...)를 재현해서 큰웃음을 선사했다.# 보고있나 히딩크? 그 앞장면에서 초근접거리에서 김신욱의 강슛을 세이브해내는 장면도 쩔긴 쩐다.

  • 싸인을 거의 뿌리는 수준으로 해준다고 한다. PC방 컴퓨터 본체에 해줬다라는 일화도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해당 네티즌에 의하면 온 동네에서 김병지 싸인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 [1] 2015년 기준으로 5명(김병지, 현영민, 차두리, 김남일, 이천수) 남은 현역 2002년 멤버 중 최연장자로 세계 축구계 통틀어서도 상당히 노장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주전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게 포인트. 이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김병지뿐만 아니라 2014년 7월 20일에 은퇴한 최은성도 노장 골키퍼를 대표해서 나온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최고령 선수 기록을 세운 콜롬비아의 파리드 몬드라곤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것도 포인트. 게다가 2014 시즌 중반, 최은성도 선수 은퇴를 하면서 2002 월드컵 골키퍼 3인방 중 유일하게 아직도 현역이다.(...)
  • [2] 참고로 K리그는 2014년 기준으로 31시즌.(...)
  • [3] 허리 디스크로 당시 고양시의 명지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경기 도중 골킥이 하프라인조차 넘기지 못할 정도였으니...
  • [4] 이운재는 2012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 [5] 노상래, 김태영이 그나마 그와 동갑인데, 둘 다 생일은 김병지보다 늦었다.
  • [6] 역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2번째로 강한 올스타팀으로 선정되었다.
  • [7] 그러나 이때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는 전시즌 2위를 기록하였고 잉글랜드의 레전드 스트라이커 앨런 시어러가 있던 팀이었다. 김병지의 기량이 그만큼 높게 평가되었다. 그 때문에 국내 팬들은 해외로 가서 김병지의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게 아쉽게 느껴진다.
  • [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가 영국에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수비수들과 의사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9] 키퍼 문제는 히딩크가 월드컵 개막직전까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운재를 낙점하고 김병지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 주전 키퍼로 이운재를 낙점했지만, 자신의 질책을 받아들이고 성실히 훈련에 임해온 김병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병지도 이에 대해서는 히딩크에게 원망을 표하지 않았고, 히딩크는 이후로도 별말없이 성실히 훈련에 임하는 김병지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다만 선수로써 최전성기 때 고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뛴다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친 것은 역시 한이 되는지 후에 히딩크와 2002년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늬앙스의 발언을 몇차례 하기는 했다.
  • [10] 볼매거진 골에 나온 내용. 이에 김민지 아나운서는 부럽지만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 [11] 현재의 알로이시오 전자기계고등학교. 당시 이름은 소년의 집 기계공고.
  • [12] 계속 거론되지만 그의 키는 184cm로, 위너이다. 일반인 기준으론 작은 키가 아니지만, 골키퍼 기준으로는 작은 키인 편이다.(보통 180 후반대~190) 물론 이운재 선수는 182cm로 더 작은 키이다. 1998년 월드컵 때도 "키가 좀 더 컸다면"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야신상을 받은 파비앵 바르테즈는 183cm.
  • [13] "대표팀에는 뒤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소금 같은 선수가 필요합니다."
  • [14] 다만, 문제는 역시 나이. 김병지는 2014년 기준으로 45세의 K리그 최선참인데 반해 큰아들 태백이는 아직 중학생이다. 그래서 김병지는 유럽처럼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프로데뷔가 가능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 [15] 일단 나이도 최용수 감독보다 3년 위인데다(김병지-1970년생, 최용수-1973년생), 둘은 1998년과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대표선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