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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토 상가 이적후 훈련장 에서 찍은 사진... 옆에는 같이 이적한 황진성

교토 상가 FC No.5
김남일 (金南一 / Kim Nam-Il)
생년월일 음력 1977년 3월 14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182cm ,76kg, B형
프로입단 2000년 전남 드래곤즈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 (2000~2004)
SBV 엑셀시오르 (임대) (2003~2004)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2007)
빗셀 고베 (2008~2009)
톰 톰스크 (2009~2011)
인천 유나이티드 (2012~2013)
전북 현대 모터스 (2014)
교토 상가 FC (2015~)
국가대표 98경기 2골
별명 진공청소기

200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도훈
FW
그노
MF
신태용
MF
이성남
MF
이관우
MF
김남일
DF
최진철
DF
김태영
DF
김현수
DF
산토스
GK
동명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주요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며, 특히 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린 선수.
부평고등학교, 한양대학교를 거쳐서 2000년에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였다.

Contents

1. 국가대표
2. 리그
3. 기타

1. 국가대표

2000년부터 꾸준히 활약하였으나 대체로 K리그의 축구팬들 사이에서의 평은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는 끔찍한 볼 터치능력과 패스 능력을 꼽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를 선발출장시킨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5-0의 참패를 당할 때 패배의 원흉으로 찍혀서 일부 팬들로부터 '김남일과 같은 기본기도 안된 선수보다는 윤정환과 같은 기술이 좋은 미드필더, 또는 한국팀의 붙박이 주전이던 김도균을 써야 한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김남일을 꾸준히 아끼며 출장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로는 한국 선수들 중에서 드물게 모험을 할 줄 아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졌고 그것이 창의적인 플레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1] 그리고 꾸준히 국가대표팀에서 기회를 얻으며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상대를 잘 마크한다'고 하여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얻으며 팀의 주전으로 도약하게 된다.

2002년 월드컵에서 3-4-3 포메이션의 4의 미드필더 중 중앙에 위치하여 활동량이 좋으며 공격성이 강한 유상철의 뒤를 받쳐서 상대의 공격을 1차적으로 저지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 때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 플레이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곱상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터프한 플레이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여성 팬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후 2006년과 2010년 월드컵까지, 국가대표로서도 꾸준히 활약을 해 와서 센추리 클럽 가입 유력자이기도 하다. 다만 2010년 이후에는 기성용, 김정우, 구자철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에 밀려서 국가대표에서는 백업 미드필더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2014년 5월 브라질 월드컵 특집방송[2]에 나와서 '100경기까지 2경기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한 마음으로는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 라는 마음을 밝히기도 했다.

2013년 5월 16일 발표된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 레바논전 대표선수 명단에 포함됐다. 2010년 월드컵 이후 35개월 만에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재승선한 것. 기성용이 경고 누적, 박종우FIFA의 징계로 나갈 수 없게 된 반사이익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인천 이적 이후 보여준 뛰어난 플레이가 아니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를 기회로 어려워 보였던 센츄리 클럽에 가입할 기회를 잡았으나 부상으로 레바논 전 이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대표팀의 졸전으로 좋은 소리도 못들었다.

국가대표로서 전성기는 2002년 월드컵 4강 때와 2008년 동아시아컵 당시 MVP를 수상하던 시절.
반대로 국가대표 커리어에서 최고의 오점은 2010년 월드컵 당시 나이지리아전에서 보여준 백태클 반칙. 그 외에 2003년 아시안컵 예선에서, 오만 원정 경기 중 절묘한 백패스로 실점을 야기해 1-3 패배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3]

2. 리그

2002년의 활약 덕분에 김남일은 해외진출을 고려하게 된다. 비슷한 나잇대의 송종국이나 박지성, 이영표 등이 무난히 해외진출을 하게 되자 자신도 네덜란드 리그로 진출을 희망하였다. 이에 송종국이 이적한 페예노르트로 1년간 임대 후 완전영입 조건으로 이적하긴 했는데 페예노르트는 이적 직후 '김남일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하위권 팀으로 임대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라며 당시 리그 최하위권 팀이자 페예노르트의 성구단인 엑셀시오르로 재임대를 떠나게 된다.

엑셀시오르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긴 했으나 전력이 워낙 형편없어 짧은 임대기간 동안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엑셀시오르가 강등당하며 시즌을 마감하자 페예노르트로 복귀하였고, 활약이 불충분하다고 여긴 페예노르트가 완전이적 계약을 맺지 않아 다시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게 된다.

2004년 여름에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한 후에도 인기 및 실력은 여전하였고[4], 마침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2대 감독으로 부임한 차범근 감독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차붐은 당시 수원의 중원을 이루고 있던 김진우-대호로 이어지는 수비적인 중앙미드필더 조합, 또는 김진우-김두현으로 이어지는 공수를 겸비한 조합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에[5][6] 반년간 김남일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전남으로서는 FA가 가까워지는 시기에 몸값이 폭등하였고 명문구단으로 이적하기를 원하는 김남일을 잡기 어렵다고 판단, 결국 수원으로부터 병국+고종수를 받고 김남일을 내주게 된다.

2005년부터 김남일은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는 김진우의 자리를 꿰차며 수원의 중앙 미드필더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활약하게 된다. 이름값도 있으며 실력도 있는 선수이기에 수원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엑셀시오르 임대시절부터 수비형 미드필더이면서도 공격적인 패스전개 능력의 필요성을 크게 통감하게 된 후, 전남과 수원을 거치면서 패스 및 공격전개, 그리고 중거리슛 등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활약하던 와중에 2007년 중반부터 수원의 수비진들이 단체로 드러눕게 되자 임시로 3백의 중앙수비수로 뛰기도 했는데 생각외로 준수한 모습을 보이자[7] 수비수들이 부상에서 복귀한 후에도 차붐이 중앙수비수로 뛸 것을 권유하자 언론을 통해서 '중앙수비수로 뛰기 싫음'이라고 디스를 하며 감독과 불화를 보이게 된다.

Kim_Nam-Il_Vissel_Kobe.jpg
[JPG image (Unknown)]


2007시즌이 종료된 후 FA가 된 김남일은 해외로 이적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FA 규정에서 '자유계약으로 구단에 입단하여 입단시 계약금을 받은 선수가 해외이적을 희망할 때에는 먼저 소속 구단과 합의를 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있었으나 김남일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빗셀 고베와 먼저 합의를 하게 된다.[8][9] 원래는 빗셀 고베로부터 이적료를 챙길 수 있던 수원은 이 건으로 인해 제한적인 자유계약[10]으로 김남일을 풀어주게 되었고, 빗셀 고베와 러시아 리그의 톰 톰스크를 거쳐 활약하게 된다.

Kim_Tom_Tomsk.jpg
[JPG image (Unknown)]


2010 월드컵이 끝난 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에 입단할 예정이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약이 취소되었고 다시 톰 톰스크로 복귀했지만 쩌리 신세로 전락하여 국내 복귀를 타진했다. 고향팀인 인천 유나이티드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루머가 계속 돌았으나 김남일이 K리그로 복귀할 경우 선수에 대한 소유권을 수원 삼성이 쥐고 있기에 인천이 김남일을 영입하고자 하려면 먼저 수원에 이적료를 지불한 후에 김남일과 개인협상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인천이나 김남일이나 서로를 원하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적 협상은 원활하지 않았다.

수원 팬들에게 있어서는 팬들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존재. 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으나 빗셀 고베 이적 당시 팀과 불화를 일으키며 나가버린 것 때문에 그랑블루들에게 까이고 있다. 말년의 평안을 위한 고향팀 이적설이 뜰 때에도 가는 건 상관없는데 이적료는 내놓고 가라라고 반응이 나올 정도였으니 뭐(...)

결국 인천 유나이티드 허정무 감독의 끈질긴 구애 끝에 고향팀인 인천에 입단 확정. 인천과 협상 당시 연봉 5억을 요구했다는 기사가 떠 '풀타임도 뛰기 힘든데 무슨 연봉 5억이냐'라며 인천팬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인천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정확한 연봉 수치는 불명이지만 최종협상 때 김남일측에서 연봉부분을 많이 양보했다고 한다.

당연히 수원팬들은 드디어 돌아오는구나라며 이를 갈았다. 게다가 인천의 새로운 홈구장인 숭의 아레나 파크에서 처음으로 벌어지는 경기가 인천 vs 수원의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그랑블루와 하이랜드는 연합하여 김남일이 골 잡을 때마다 '배신배신 김남일'을 외쳐주고 지폐와 비슷하게 생긴 p2p쿠폰을 뿌려댔다. 이후 허정무 감독이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시즌 도중 사태하는 불상사가 벌어졌긴 했지만, 김남일 영입은 신의 한수까지는 아니어도 영입은 된다는 게 팬들의 중론.

13시즌 리그에서의 플레이는 매우 준수하다. 특히 김봉길 체제가 완전히 정착한 13시즌에는 리그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공수에서 두루 활약하고 있다. 인천 경기를 보면 김남일의 위치선정 능력은 케이리그에선 거의 신의 수준에 다다랐다. 뿐만 아니라 커리어 말년에 완전히 축구에 눈을 떠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방향을 선택해 적절한 패스를 찔러주는 모습을 보면 K리그 뿐만 아니라 대표팀 역대급을 논해도 좋을만큼 탁월하다. 다만 국가대표 입장에서 본다면 김남일의 개안이 늦었다기보단, 수원을 택한 이후로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천에 이르기까지 경기력면에서 좋을 게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듯. 한창 때 김남일은 활동량, 수비력, 패스를 다 갖췄고 김남일의 출전 여부에 따라 국대 경기력이 요동치던 무서운 미드필더였다. 이 때의 활약으로 2014 월드컵 최종예선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2013년 12월 23일 프로축구연맹은 FA 취득 193명 명단을 공개했다. 이중 축구팬의 관심을 끈 인물은 단연코 전북의 이동국과 인천의 김남일 설기현이었다. 이들은 머잖은 장래 은퇴를 앞둔 노장인데다 고액 연봉자이지만, 팀에서 활약상은 물론 상징성까지 지녀 프런트로서는 섣불리 떠나보내기도 반드시 잡기도 고민스러운 상황이였다. 다만 이동국은 전북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할 것이 확실해 보이고 전북 또한 리빌딩에 들어갔다지만 주포 이동국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었는데... 문제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인천이 과연 김남일을 잡을 수 있을 것인지 여부였다.

2014년 1월 3일 인천은 김남일과 재계약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곧바로 전북 이적설이 떴다. 전북은 2013 시즌 내내 허리가 구멍으로 지적받으면서, 수비 라인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사실상 허리를 생략한 공수 2선으로 진영을 짤만큼 수비형 미드필더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11] 야심차게 영입한 김정우는 오랜 부진끝에 임대를 갔고 노장 김상식마저 은퇴하면서 중원이 무주공산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김남일을 탐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전북 프런트는 김남일 영입설에 대해 일단 부인했다. 물론 축구팬들은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 의례적인 멘트일 뿐 김남일 이적을 확실시하고 있었다. 1월 4일 이미 인천과 김남일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김남일 영입은 전북 최강희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루어졌다는 기사가 나왔다. 2014년 1월6일 전북은 김남일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고마워요 인천, 13년엔 이규로, 정혁, 정인환, 14년엔 한교원부터 김남일까지

여담으로 인천팬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두번 OTL을 외쳐야했다. 인천의 프렌차이즈 스타감을 돈 몇푼에 내치냐며 여론이 극도로 나빠지자 덜컥 설기현을 잡아버린 것(...)

그러나 노쇠화가 온건지 전북에선 인천 시절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12] 패스 미스가 잦아졌고 김남일이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자 오히려 경기력이 더 좋아질 정도로 폼이 떨어졌다. 그리고 재활기간에 브라질로 간 것에 대해 전북팬들에게는 까임을 받고 있다.[13] 김남일의 부진 때문에 전북은 6개월만 뛰고 군대를 가야하는 신형민을 데려왔다.

2014시즌은 기대만큼 큰 활약을 보이진 못했지만,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며 이동국과 함께 팀의 베테랑 플레이어로써 경기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26라운드 경남FC와의 경기에서는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결승골이자 10년만의 리그 골 기록을 올렸다. 김남일 개인 기록으로 보아도 6년만의 골이었다. 마침 이날 중계방송은 KBS의 담당이었고, 경기 후 인터뷰를 위해 아내인 김보민 아나운서가 계속 경기를 관전했었다.

결국 김남일과 수훈선수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쁨의 울음을 터트린 김보민 아나운서와 포옹하며 홈팀의 팬들에게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 시즌, 전북이 리그 우승을 했는데 이것이 김남일에게는 첫 리그 우승이다.[14] 프로 생활 15년 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한 것이라 그에게는 더욱 의미가 크다.
지금 내 나이에는 애를 돌봐야 한다고 말해 유부남의 현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2014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자가 되었고, 2015 시즌 부터는 지도자를 보장하는 조건을 포함하여 일본의 교토 상가 FC로 이적하게 되었다.#

3. 기타

2007년 12월 8일에 김보민 아나운서와 결혼하며 '인생의 승리자' 대접을 받기도 했으나...

본격_서큐버스에게_당한_남일킨.jyp

김남일/어록도 유명하다. 2002년도에는 빵빵 터지는 개드립들이 일품이었으나, 2002년 이후부터 발언을 자제하고 평범한 발언 위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버린듯 하다. 읽어보실 분은 해당 문서를 참조바람.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보민에 따르면 김남일은 방송 중 전현무 아나운서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현무가 김남일에게 김보민의 어떤 점에 반했느냐 라고 묻자 생얼이 예쁘다라고 답했는데 이에 전현무는 '나는 김보민 아나운서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못 알아보겠다. 그래서 인사도 안한 적이 있다' 라고 농담하였고 이에 화가난 김남일은 곧바로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고 한다. 이에 논란이 분분한데 전현무의 농담이 심했다는 견해도 있고 라디오 예능 방송의 성격상 한 농담일 뿐이고 방송 진행 중 진행자의 멱살을 잡고 흔든 것은 지나친 반응이라는 견해도 있다. #

부인인 김보민 아나운서가 방송에 나와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전북으로 이적하지 않고 슬슬 은퇴하려 했으나 부인의 권유로 전북에 입단했다고 한다. 당시 돈 때문이냐, 아직도 해준게 부족하냐며 꾸준히 투덜거렸는데 김보민 아나운서는 선수로서 교체로 1분을 뛰더라도 그라운드에 서 있는 게 멋있기 때문에 권했고 지금은 김남일도 만족한다고.

박용택의 별명 중에 남일택이 있으나, '남의 일'이란 뜻으로서 김남일 본인과는 절대 무관하다.

안정환의 말에 의하면 대표팀 시절에는 안정환의 꼬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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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출처 : http://blog.naver.com/jtark?Redirect=Log&logNo=21001816
  • [2] 김남일은 브라질 월드컵에 KBS 해설로 참여 할 예정
  • [3] 사족이지만,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이 끝난 후 김남일을 보며 말하는 허정무 감독과("너 때문에 내가 속이 까맣게 탔다, 이놈아!!"), 능청스럽게 웃는 김남일 선수가("아따~ 뭐 그런걸 갖고 그러요!" ^^) 함께 찍힌 사진도 있다. 의외로 코믹하게 찍힌 사진이라 신문사측이 그대로 실은 듯 하다.
  • [4] 복귀 후 제대로 K리그에서 활약하지도 않았으나 올스타전 선발멤버로 뽑힐 정도였다.
  • [5] 차붐은 김두현의 신체조건으로는 중앙 미드필더 싸움에서 활약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김두현을 뒤로 빼거나 측면으로 돌렸으며, 심지어 김두현을 3-5-2의 윙백으로 쓰기도 했다.
  • [6] 손대호는 김진우에 비해 수비범위가 넓긴 했으나 적장 수비력에선 지나치게 거칠기만하고 부족함을 드러냈고 패스 능력도 썩 좋지 않았다.
  • [7] 그때나 지금이나 국대 중앙수비수는 욕먹는 자리였던지라 팬들 사이에선 국대에서도 중앙 수비수로 뛰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는데 베어벡 감독은 부정했다. 베어벡은 김진규강민수를 중용했다.
  • [8] 고종수 또한 FA가 된 후 이 규정을 무시하고 교토 퍼플상가와 이적협상을 하다가 수원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를 당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 다만 이 때 규정이 개정되어 해외 이적시는 이적료가 없지만, 돌아와서 K리그 타 팀 이적시 그 팀은 원 소속팀에 이적료를 주도록 바뀌었다.
  • [9] 더 큰 문제는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떠나면서 당시 팀 사정이 어려웠던 수원을 떠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그대로 빗셀 고베로 갔다는 점이다. 죄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스티브 유와 같은 케이스라 보면 된다. 이 이후로 김남일은 수원팬들 사이에서 '김배신'이라는 칭호를 획득하게 되었다.
  • [10] 하지만 국내로 돌아올 때의 권리는 수원이 계속 쥐게 된다.
  • [11] 사실 K리그에서 몇년째 정상급 공격수 못지 않게 수비형 미드필더도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 [12] 사실 인천에서 전북으로 온 선수들 치고 현재까지 전북에서 잘하고 있는 선수는 정혁, 한교원 말고 거의 없다. 정인환은 인천 시절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김기희, 알렉스 윌킨슨에게 밀렸고, 이규로는 전광환을 밀어내긴 했으나 공수 어디서도 잘한 부분이 없어 김기희가 라이트백을 보게 만들 정도였다.
  • [13] 원래 1월 가기로 결정났던 것인데 시기가 절묘했다 (...)
  • [14] 시즌 도중에 은퇴하고 코치가 된 최은성에게도 첫 리그 우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