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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

last modified: 2014-12-14 10:33:36 Contributors


한국인의 전통 궁술. 또는 전통 활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 이후엔 궁도라는 명칭으로도 부른다.

국궁을 쏘는 순서를 보여주는 GIF파일.
복원된 예궁. 총 길이 2m 50cm.[1]

Contents

1. 역사
1.1. 활의 재료와 종류
2. 타국 궁들과의 비교
3. 현대의 국궁
3.1. 배우는 단계
3.2. 현대 국궁의 사법과 국내 사극에서의 사법 표현
3.3. 국궁장비와 각종 가격 일체
4. 현대 국궁의 논쟁거리
4.1. 대한궁도협회 관련 문제
4.2. 사법 논쟁
5. 관련항목

1. 역사

한반도에 대한 기록은 고대 중국의 기록에서도 '맥궁'이라고 기록되어 있을정도로 오래 되었으며 역사가 긴 만큼, 활에 관련된 기록도 많고,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궁도 많다. 그중에서도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2], 조선을 세운 이성계[3], 그리고 조선 정조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성계의 현신이라 불릴 정도로 명궁이었다고 전해진다.[4] 심지어 후삼국 시대의 폭군 궁예도 활과 관련된 이름일 정도인 걸 보면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활을 잘 쏘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고대에도 거의 지금과 같은 합성궁[5]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당연히 처음부터 전역에서 합성궁을 사용한 것은 아니며, 극소수 발견되는 삼국시대 이전의 초기 활 유물들 중에는 단순 목궁도 많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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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환목궁[6]과 삼한시대 목궁.두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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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로 들어와 고구려 시대에는 소갈비뼈를 사용해 만들기도 했다. 위 사진이 고구려 골제 활고자(긴것 4개)와 줌통(짧은 것 2개).평양 영화9년명 고분 출토품으로, 일반적인 고자와 달리 길이가 길어 활채까지 이어진다. 저 길이와 형태 때문에 학계 일각[7]에서는 활고자가 아닌 궁간(弓幹)으로 보고 있으며, 고분벽화 그림에 근거해 활 중간중간 마디에 탄성력 강화를 위해 추가로 다른 부재를 덧붙였다고 보고 있다. 사진출처

조선시대에는 활쏘기가 유교에서 말하는 육예[8] 중 하나였기 때문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활쏘기를 즐겼다. 활쏘기는 철저하게 스스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 쏴야 하기 때문에 활쏘기 자체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 군사적으로도 국궁은 갑오개혁 이전(1894년)까지 군대의 제식무기였기 때문에 무과시험에서도 당연히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등이 있었고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장군이 무과 첫 고배를 마신 게 이 과목이다.[9]

이렇게 조선시대 내내 군사적인 의도로 매우 장려되어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에는 일반 평민들까지 활쏘기를 즐겨 했다고 하며 위에서 설명했듯이 구한말 외국인의 기록에는 어린아이나 아녀자들도 활쏘기에 능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활터에서 활쏘기로 돈내기를 하기도 했던 듯.[10] 괜히 옛날 이야기에서 지나가던 선비들이 활쏘기로 영물을 때려잡는 먼치킨으로 나오는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민족은 중국에서도 활을 잘 다루는 민족이라고 평했으며, 조선 말기에는 조선을 방문한 여러나라 외국인들이 조선사람들은 활을 잘 쏜다고 평하며, 미국에서는 조선의 병사가 활을 쏘는 그림이 그려진 우표까지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의 후손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 효자종목인 양궁을 매우 잘 하는 것도, 선조들이 활쏘기를 매우 잘해서 후손들이 유전자를 이어받은 이유가 아닐까.[11]

사실 초기의 화승총 같은 화승점화식 이 등장한 이후에도 활은 연사속도, 유효사정거리 등에서는 오히려 총을 앞서기도 했다. 쉽게말해 임진왜란조총보다 조선 각궁이 성능이 더 좋았다.(…) 활이 총에게 밀리게 된 것은 성능상의 문제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 1. 총은 장전하고 방아쇠 당기는 법만 배우면 되는 반면 활은 숙달하는데에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
  • 2. 유효사거리 내에서 총이 관통력이 압도적으로 더 강한 점.
  • 3. 활은 만들고 관리하기가 총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점.

조선이 화약무기보다 활을 더 위력적으로 본 것도 전통이라 태종때는 편전(애기살)의 사정거리가 화약무기보다 우월하니 폐지하자는 말까지 나왔을정도였다. 그러나 개화의 바람이 불면서 활은 총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성능상의 우위조차 상실하며 그에따라 활은 전근대적이라는 생각이 퍼져나가자 활터는 이용자가 줄었고,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그 맥이 상당히 위협받기도 했으나 다행히도 고종이 세운 '황학정' 등의 활터에서 꾸준히 활쏘기가 계승되어 왔으며 황학정에서 '조선의 궁술'같은 책을 내면서 명맥이 오늘까지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

허나 일제강점기~광복 시기를 거치며 단체의 이름과 공식 명칭이 한궁도협회궁도로 바뀌어버리고[12], 사회의 격동을 국궁계도 결코 견디지 못하고 중구난방하여 일본의 궁도처럼 통일된 규격을 가지기는 어려워졌다.

1.1. 활의 재료와 종류

'중국, 일본은 , 한국은 '이라고 할 만큼 발달한 무기다.

국궁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물소뿔로 만든 수우각궁(흑각궁)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물소가 없다.(...) 이 때문에 재료를 중국일본, 류큐에서 전량 수입해야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청나라 건국 이후 견제하려고 일부러 수량을 제한하고, 류큐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게 사실상 점령당해서 일본에서만 수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관련서적을 찾아보면 물소뿔을 얻기 위한 조선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다. 중국과 일본에 물소를 달라고 해서 남부지방에서 번식시키려 노력하지만 기후 때문인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결국 나중에는 중국에서 수출입에 제한을 두지 않은 물소 뿔조각을 대어 만드는 흑각후궁까지 개발되었으니, 그야말로 근성의 선조님들이시다.(...) 뱀발로 물소 뿔조각은 약재나 화각공예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그러나 흑각궁은 습기에 치명적으로 약하다. 따라서 장마철은 총을 다루기에도 좋지 않은 계절임에도 불구하고[13] 군에게 유리한 계절로 인식되었으며, 장마철과 여름에 망가지는 활도 많았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사들은 습기가 많은 계절을 대비하여 소힘줄을 대서 강화한 합성목궁이나 철궁, 간각칠궁[14], 합성죽궁 등을 같이 사용해야 했다.관련 융원필비 기록 링크


왜란종결자에서도 언급된 철궁. 철태궁과 달리 전체를 쇠나 놋쇠(황동)로 만든 활이다.

강화역사박물관에 보관중인 철궁. 위 것과 달리 철제다.
또한 한때 인터넷 등지에서 교자궁을 우천시 사용한 합성목궁으로 보는 주장이 퍼졌으나, 교자궁 관련 국궁신문 링크를 참조하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서양의 수많은 학자들은 훈족의 활로써 각궁을 생각하고, 또한 동양에서 가장 활이 강하고 숙달된 민족으로 보는데, 삼면이 바다여서 재료 수급에서 그나마 나은 사정을 보인 한국과 다르게 재료 수급이 극악하게 어려웠다는 점에서 이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사실 따져보자면 훈족을 우습게 보이게 만들정도로 강궁인 민족들이 동양에 상당히 많은데도 아직까지 서양 학자들이 훈족을 띄워주는것은 이들 훈족이 많은 서양 학자들의 조상인 게르만족을 털어먹어서 민족 대이동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인점도 있다.(...)

2. 타국 궁들과의 비교

활에 있어서 만큼은 한국이 매우 앞서있었다는 증거가 많다. 예를 든다면, 중국에서 한국의 활의 성능이 좋다는 기록이나 활을 조공품으로 바치라고 했던 것.[15] 전국시대 이래로 석궁기술은 구진천의 경우 같은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중국에서 도입되었다. 그리고 재료 문제에서 한국에서는 물소뿔을 최상으로 쳤지만, 사실 이건 최상품의 문제이고 대체제는 소뿔 등등 얼마든지 있었다.

사실 활의 장력만으로만 따지면 국궁보다 센 건 널리고 널렸다. 터키 각궁만 해도 130파운드를 넘으며 부탄의 죽궁 또한 만만찮은 장력을 자랑한다. 일본 죽궁도 역사스페셜 비교 실험으로 한국 활에 비해 현저히 약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스포츠용의 약한 활의 경우고, 일본궁도 전투용 활은 절대 약하지 않으며, 무로마치 막부 말기~에도 막부시대 나온 궁태궁(弓胎弓, 히고유미[16])이나 중등궁(重藤弓, 시게토 유미[17][18]은 사거리나 위력 면에서 우리나라 활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물론 이런 활들은 당시 일본에서 멀리까지 활을 쏘는 유행이 불면서 만들어진 다소 특수한 활이긴 하지만, 다른 활이 합성궁에 그렇게 밀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일본의 중등궁.[19] 사거리는 중등궁은 180~200m, 궁태궁은 200~250m미터로 국궁이 무과에서 멀리쏘기 시험시 박두(고도리살, 혹은 목전(木箭))을 쏠 때 시험에 통과되는 기본 제한선이 240보(약 300m)*인 것과 비교하면 그리 압도적인 차이는 없다. 이런 활들은(특히 궁태궁의 경우는) 단순히 보통 나무를 굽혀 만드는 환목궁과 달리, 잘게 쪼갠 대나무 가닥들을 모은 뒤 겉에 나무를 씌운다. 이 과정에서 아교로 각 부품들을 붙인다.



부탄 죽궁. 출처는 국궁신문검색. 2007년 국내에서 열린 세계민속궁축전에서 한국 각궁과 더불어 120m떨어진 과녁을 맞추는 데 성공한 유일한 활이다.[20] 다만 이는 활도 길고 부탄 지역에서 나는 특수한 대나무덕분에 가능한 경우라 다소 예외. 몽골과 터키, 헝가리 각궁은 부탄 죽궁이 한국 각궁을 대등하게 따라잡은 데 비해 그러지 못했다.

부탄 과녁과 한국 과녁 비교. 작은 게 부탄 과녁이다. 부탄의 과녁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과녁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크게 느껴진다.
한국의 각궁은 부탄 죽궁과 비슷한 성능을 냈으나 크기비를 따졌을 때 우리궁이 더욱 크기가 작은 편이면서도 성능이 높은 편이다.[21] 더욱이 세계 민속궁 축제에 나가는 한국의 현 국궁은 습사용이라 과거 쓰이던 실제 군용 국궁보다 활이 가늘고 약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실제로 최근 야스쿠니 신사에서 발견된 군용 국궁은 활의 굵기가 현재 국궁보다 훨씬 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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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에 보관중인 조선시대 전투용 활. 야스쿠니 신사에서 특별 전시회를 할 때 공개된 것으로, 옆의 큰 표지에는 원군(元軍)이라 써 놓았지만 이는 해당 구역 전시물이 원의 일본침입 당시와 관련된 것이라 그렇고, 활 바로 앞에 작고 하얀 이름표에 보면 조선궁이라고 한자로 씌여 있다.출처

조선시대 전기의 동궁(붉은 칠을 한 활). 길이가 181cm의 장궁이다. 일본 정창원에 소장중이라는 최영의 신궁(神弓)과 같다. 일본에 소장중인 거의 같은 형태의 고려활이 유인촌이 진행하던 시절 역사스페셜에서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소개하는 에피소드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현재의 우리가 아는 각궁보다는 터키나 북방의 유목민족의 각궁과 유사하다.

북방 유목민족의 각궁. 한국 활보다 길이가 길고 두꺼워 내구성은 높지만 탄성이 약해 성능은 떨어진다고 한다.

활줄을 푼 상태의 터키 각궁.

다음 영상들은 국궁과 양궁(롱보우)으로 금속판을 관통하는 영상. 영국 장궁쪽은 85~110파운드, 국궁은 40~57파운드이다. 국궁 쪽이 2배정도 약한 점을 따지더라도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다만 재료의 종류와 두께가 같아야만 비교의 의미가 있는데 장궁 시험에 쓰인 재료의 스펙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직접 비교는 의미가 없으므로 재미로만 보아두자. 국궁 시험에 쓰인 것은 고탄소강이 아닌 연강(mild steel)으로서 싸고 약한 강이니 그 점은 고려두자. 참고로 파운드수에 비해 고위력이 나오는 것이 합성궁들의 특색인데, 탄성이 좋고 시위의 속도도 빠르다는 이야기이므로 이런 활들은 절대로 빈 활을 쏴서는 안 된다. 활몸에 심한 충격이 가기 때문.

3. 현대의 국궁

전국 체전이나 육사배 국궁대회 등 전국대회등이 아직 존재하지만 일부 국궁 매니아들만 즐기는 마이너한 스포츠가 되었다. 국궁신문의 일본 규도장 견학문 중에 저자의 모교에도 국궁장을 도입하자고 건의했다가 '양궁을 수련하면 실력에 따라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아세안 게임, 올림픽 게임에도 나갈 수 있으며, 성적이 좋으면 국가로부터 평생 연금도 받으며, 양궁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대우를 받는데 왜 아무 전망도 없는 국궁을 수련하여 세월 낭비만 할 학생들이 있겠는가'면서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씁쓸한 얘기가 나오는 것이 현실.[22] 물론 우리나라 학교 중에 국궁을 가르치는 곳이 전무하지는 않지만[23], 마이너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상술했듯 일제시대의 민족분열과 각종 근현대사의 풍랑으로 인해 통일된 규격을 갖춘 국궁의 표본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며, 각 활터마다의 전통이 모두 다르다. 현재 각종 단체, 개인 간 수련의 방향이나 노선의 차이(대표적인 것은 사법 논쟁과 대한궁도협회의 부패 문제)로 심하면 키배가 벌어질 정도로 분열이 심한 상태이다. 마음수양이 된다는 활을 배우는 기반 잡힌 성인들이 많은 단체에서 키배 벌이는게 의외로 무시무시하다

3.1. 배우는 단계

쏘고 싶다면 각 지역마다 국궁활터 하나씩은 꼭 있을 정도로 배울만한 곳은 꽤 있지만 쏘는 데 상당한 숙련이 필요하다. 세상에 안 힘든 일 없다지만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입문했다가는 생각보다 만만찮은 활에 좌절할 수도 있다..

다음 그림은 국궁의 각부 명칭이다. 알아두면 좋다.
복잡해 보이지만 크게 나누면 손으로 쥐는 줌통, 줌통을 시작으로 한번 커브를 트는 오금, 다시금 커브를 틀어 활시위를 올리는 부분인 고자가 있다.
발사직전까지 화살을 올려두는 부분인 출전피가 붙은 쪽이 윗장, 아랫쪽이 아랫장이다. 사진에서 빠진 부분이 있는데, 활시위 중앙에 화살을 매기는 부분을 절피라 한다.
  • 집궁
    처음 활을 잡는 것을 국궁 용어로 집궁이라 한다. 집궁례를 치르는 활터도 있지만 보통은 생략하는 듯.
    집궁을 한 신사[24]는 우선적으로 활줄 매기와 풀기 등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과 궁도구계훈[25], 집궁제원칙[26] 등 국궁의 기본부터 배우고 시작한다.
  • 빈활 당기기
    본격적으로 초보자용 활(대략 20 ~ 30파운드)을 사용하여 빈활을 당기는 단계를 시작한다. 아마도 시위를 끝까지 당기지 못하고 팔이 떨리는 자신을 보며 옛 궁수들의 마음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팔만을 써서 당기는 것이 아닌 하반신의 지지와 등근육, 뱃심 등 포괄적으로 힘이 들어가야 하기에 더욱 힘들다. 여하간 이런 식으로 겨우 궁력(활을 당기는 힘)이 길러지면 단계적으로 더 강한 새로운 활 (40 ~ 50파운드)을 써서 다시 이 단계를 밟는다. 신사들 대다수는 이런 강행군에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카더라.
    어느정도 궁력을 완성시켰다 판단될 때, 사범[27]님의 허가를 통해 주살을 내는 단계에 들어간다.
  • 주살내기와 첫 습사
    주살이란, 줄+살의 합성어로 줄을 매달아 회수하기 편하게 만든 화살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사대에 오르기 전에 주살을 내게 되는데, 최초로 살을 매겨 쏴봄으로서 사대에서의 두려움을 줄이고 완전히 당겨 활시위를 놓는 연습을 하는 일종의 트리거 훈련 방식이 되기도 한다. 한번 쏘고 나서 회수가 편리하기 때문에 진짜 화살을 쏘게 된 때에도 자세 연습을 위해 한번쯤 쏴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주살연습을 어느정도 끝내면 드디어 첫 사대에서 습사(習射)를 실시할 수 있다.
    충실하게 자기 훈련을 한 뉴비라면 빠르면 몇 개월 안에 이 과정까지 올 수 있다.
  • 자기수련
    이후 습사를 시작하여 평균 1순[28] 중 2발정도 맞추게 되면 자신과의 싸움 단계가 된다. 국궁은 대련이고 뭐고 없는 철저히 1인 무예기에 좀 외로울 수도 있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마음을 다스리며 호흡도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며, 결국에는 계속 쏴보면서 연습하는 게 제일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사다성(多射多省)이라 했다.
    그래도 한계의 벽에 부딪혀[29] 나아갈 길이 없다면, 선배 접장[30]님들이나 사범님께 여쭈는 편이 좋다. 경험자의 말을 따른다는 점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은 남이 보는 눈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연습하여 1순을 전부 명중시키게 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드디어 몰기[31]를 한 것이다. 몰기한 신사는 접장이 되어 승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32]활 수련에 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3.2. 현대 국궁의 사법과 국내 사극에서의 사법 표현

국궁은 기본적으로 몽골리안 사법이기에 깍지를 엄지 손가락에 끼고 사용하며,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의 쌍분(雙分)을 통한 균형의 힘을 갖춘 활쏘기 방식이다.[33]
주몽이나 추노 등에서는 깍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몽골리안 사법을 나름대로 표현하려는 노력은 보였다. 이후 방송된 천추태후에서는 각지와 검지 보호대까지도 완벽히 갖춘 궁시일습을 묘사했고,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사극에서 성균관 유생들이 깍지를 끼고 정조 앞에서 활을 쏘는 장면이 등장했다. 발여호미라는 전통 사법의 특징 묘사도 이 사극에서 등장한게 최초인 듯.
그리고 마침내 최근 들어서 최종병기 활에서 적병의 육량전을 노획해 쏘는 장면에서 숫깍지를 사용하는 장면마저도 등장하게 됐다.

3.3. 국궁장비와 각종 가격 일체

  • 활 / 화살 : 국궁을 하는데 빠져서는 안 된다.(당연하잖아!!) 카본 등 합성섬유로 만든 개량궁과 전통의 각궁이 있으며, 대한궁도협회 공인 4단 이상부터는 대회에서의 각궁 사용이 의무화되며, 대회에서 동일 점수가 나올 경우 각궁/죽시 사용자를 우대한다. 각궁 산업의 시망을 막고자 함이라나? 마찬가지로 화살 또한 카본 개량살과 대나무살(죽시)이 있다. 가격대는 각궁/죽시 쪽이 넘사벽으로 비싸다. 개량궁/살은 각각 20만원/8천원대지만 각궁/죽시는 대략 65만원/2만원선. 개량궁의 경우는 공장제지만 각궁 메이커는 개인제작인 경우가 많기에 가격대와 퀄리티가 아주 다양하다. 활을 한 장 사면 메이커마다 다르지만 보통 활가방, 활을 싸는 궁대[34], 줌통피, 추가 활시위 등이 죄다 따라온다.
  • 깍지 : 역시 국궁에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 엄지손가락에 껴 엄지에 집중되는 활의 압력을 줄이고 손가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가격대는 대략 1만5천원 가량. 손에 끼는 물건이기 때문에 전국대회장 같은 곳에서 파는 깍지를 직접 껴 보고 맞추어 사는 것이 좋다.[35] 깍지 수급이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에[36] 신사들이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의외로 있다. 깍지의 종류는 깍지 참조.
    국궁장에 입회할 때도 대한궁도협회에 등록비 겸해서 내는 입회비가 있고, 국궁장 사용료로 내는 월회비 등이 있다. 국궁장 자치로 운영되고 있기에 회비는 각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4. 현대 국궁의 논쟁거리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근현대사의 풍랑 속에서 버텨낸 것이 신기한 국궁계는 현재도 중구난방으로 각종 논쟁을 쏟아내는 상태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4.1. 대한궁도협회 관련 문제

대한궁도협회는 전국의 국궁장(사정)을 관리하는 국궁계 최고위 기관으로, 궁시 장비의 공인이나 국궁 대회 주최 등 거의 모든 실권을 관리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일으킨 병크 중 유명한 것이 공인 궁시 변경궁시 가격 제한이다. 이외에도 많은 병크가 있어 기성 활터를 혐오하는 국궁인들이 따로 떨어져나오는 경우도 속속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 공인 궁시 문제
    갑작스러운 공인 궁시의 변경으로 엄청나게 국궁계가 시끄러웠었다. 공인장비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장비로, 원칙적으로 공인필이 없으면 대회 출전을 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공인장비의 규격을 갑작스럽게 국궁인의 대다수 장비와 안 맞는 듣보잡 메이커에 맡겼다는 것. 궁시는 자주 바꾸기 힘든 고가품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번 쓰면 평생을 갈 수도 있다. 이러한 처사는 전국 국궁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 궁시가격 제한 문제
    대한궁도협회는 앞장서서 국궁장비 가격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개량궁은 20만원, 각궁은 60만원으로 못박아둔 상태.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이러한 행태는 공산당과도 같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제도다. 가격이 올라도 좋은 활을 쓰고 싶다는 이들의 욕구도 충족을 시켜줘야 국궁계가 발전이 있는 것이 아닌가?[37]

4.2. 사법 논쟁

고대-근대의 사법을 현대에 복원시키려는 고전사법 사용자와 현대의 사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논쟁도 대표적인 토론거리이다. 이 논쟁은 정사론[38]이라는 옛 무인이 쓴 책에도 나올 정도로 대표적인 논쟁거리며, 지금도 국궁신문 홈페이지에 관련 기사가 자주 나온다.
요점은 현대의 국궁 사법과 고대-근대의 사법 중 어느 것이 정통이냐 하는 내용. 이는 수많은 논쟁을 낳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옛 사법이 멋이 난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인듯. 주몽 이후의 사극에선 거의가 뒷손을 크게 떼는 옛 사법을 사용한다.

5.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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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걸 거꾸로 휘어서 시위를 묶어 사용한다.
  • [2] 주몽은 이름 부터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고구려 건국 때 비류국 송양과 활쏘기 시합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
  • [3] 친구가 먼저 동이를 이고 아는 아낙의 동이를 맞추어 구멍을 내면, 이성계가 이어 화살촉에 솜을 감은 살을 쏴 그 구멍을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
  • [4] 정조가 활을 쏜 기록에서 보면 50발 중 41발, 45발, 46발, 47발 등 기록이 계속 늘어나다가 이후 49발이 10번 정도 나오는데, 일부러 50발 다 안 맞췄다고 한다. 이는 신하들 기 죽을까봐 그랬다는 말도 있고, 자만심을 막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일설로는 정조가 부친의 묘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화성에서 활쏘기를 하는데, 부친에 대한 예로 50시 중 한발을 일부러 안 맞췄다고...
  • [5] 합성궁과 복합궁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복합궁은 다른 종류의 나무들로 만든 활, 합성궁은 목재 외 다른 재료를 추가로 사용한 활을 의미한다.
  • [6] 신창동 저습지 출토
  • [7] 동북아역사재단 저,<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참고.
  • [8]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 [9] 정확하게는 낙마에 따른 부상
  • [10] 현대에도 활터에서 어르신들이 가볍게 하시기도 한다.
  • [11] 사실 한국 양궁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과 비인도적일 정도의(...) 빡센 훈련 덕분이기도 한다고. 실제로 외국에서 한국 양궁을 따라해보려다가 훈련과정을 보고는 고개만 젓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 [12] 황학정 국궁교본에 따르면 당시에 쓴 궁도라는 명칭은 궁술의 도(道)라는 의미로, 일본의 궁도와는 다르다 카더라
  • [13] 화승총은 화승 점화식으로 발사하기에 습기에 치명적이다.
  • [14] 겉에 옻칠을 여러 번 하여 내수성을 부여한 활.
  • [15] 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것이 중국이 한국의 장인을 초청한 구진천의 사례에서 문제가 된 기술(技術)은 노(弩), 즉 쇠뇌로 정말 활을 요구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은 사례이다.
  • [16] 에도시대에 등장한, 일본의 활 중에서는 가장 발달된 형태이다.
  • [17] 전국시대의 상급 무사들이 자주 사용했던 활이다.
  • [18] 하급 무사들이 주로 사용했던 사방죽궁(四方竹弓, 시호다케 유미)과는 달리, 겉에 옻칠을 하고 등나무 껍질을 씌워 내수성과 강도를 보강한 활. 일본식 활도 복합궁인만큼 접합시 아교를 쓰기에 습기가 많으면 합성궁인 각궁만큼은 아니어도 영 좋지않다.
  • [19] 사진출처 위키백과.
  • [20] 2번째 사진은 2010년 민속궁 축전 사진이다.
  • [21] 일본의 화궁 명인의 글을 보면, 145미터 거리의 한국 활터 비거리는 부탄궁과 더불어 세계적으로도 먼 것이라 한다. 확실히 길긴 길다.
  • [22] 근데 사실 양궁항목에 나오듯이 양궁의 대접도 좋지많은 않다.
  • [23] 대표적으로 족사관고등학교. 이 곳 외에도 클럽활동으로 하는 곳이 극소수 존재한다.
  • [24] 新射. 지역 국궁장에 입회한 신입회원을 의미한다.
  • [25] 4자성어로 이루어진 9가지 원칙이다. 습사시엔 입을 열지 말것, 남의 활을 당기지 말것 등 예절 위주의 내용이다.
  • [26] 유명한 문구이며 최종병기 활에도 등장한 전추태산 발여호미라는 말이 여기 들어있다. 활을 잡았다면 어떻게 해야 바른 자세로 과녁을 맞출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다.
  • [27] 보통 5단 명궁으로 구성되는 국궁장에서 유일하게 신사를 가르칠수 있는 지위를 가지는 직책. 일본식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국궁인도 있다 카더라.
  • [28] 국궁에서의 1세트는 순(巡)으로, 5발을 1순으로 한다
  • [29] 이쪽 용어로 "활병"이 난다고 한다. 보통 자의식 과잉이나 자세 불량 등으로 인한 한계점이 생기는 경우가 잦다.
  • [30] 동학당의 포접제에서 온 말로, 첫 몰기를 한 궁사에게 주는 명예 호칭. 처음 뵙는 국궁인들끼리 예의상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 [31] 무과 시험에서 1순을 모두 명중시킨 것에서 온 말로, 1순 5발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킨 것을 의미
  • [32] 승단을 하는 데 별다른 제한은 사실상 없지만 이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승단에 용이하다.
  • [33] 서양식으로 검지와 중지 사이를 이용해 활을 당기는 우리나라 사극이 아주 많았고, 지금도 종종 보인다.
  • [34] 활을 싸서 보관하는 용도로도 쓰이고, 작은 주머니가 달려있어 깍지 등 필요물품을 보관할 수도 있다. 활을 쏠 땐 허리에 매어 화살 1순을 고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 [35] 손가락은 인체 말단 부위기 때문에 아침의 굵기와 저녁의 굵기가 약간 다르다(심하면 플라스틱 깍지 1호 정도). 또 뿔 깍지는 날씨에 따라 사이즈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크기를 약간 달리해서 여러 개 갖춰두는 것이 좋다.
  • [36] 손가락에 맞춰봐야 되는데 대회 때가 아니면 살 수도 없고, 대회는 맨날 하는것도 아니므로
  • [37] 다만 2011년 충주무술축제에 전시된 송무궁의 각궁은 120만원이었고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비공인 궁방의 각궁으로 비공인 궁방은 궁도협회의 가격에 매이지 않는 것으로 대회에 들고 나갈 수 있는 공인 궁방의 각궁은 여전히 55만원으로 동결되어 있다. 그러니 대회따위 관심없다면 비공인 궁방에서 본인에게 맞는 제작을 웃돈을 주고서라도 제작하는 것이고 대회에 관심이 있다면 공인궁방으로 가서 맞춰야 할 것이다.
  • [38] 내용은 대략 선비들이 활을 쏴 무인의 전투활쏘기가 실전되고 있다는 데 개탄하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