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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 뮐러

last modified: 2015-08-18 14:17:22 Contributors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에


1970년 발롱도르를 수상하다


유러피안 골든 부트 시상식에서, 에우제비오와 함께

이름 게르트 뮐러 (Gerd Müller)
생년월일 1945년 11월 3일
국적 독일
출신지 바이에른 주 뇌르들링겐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장 176cm
프로입단 1963년 TSV 1861 뇌르들링겐
소속팀 TSV 1861 뇌르들링겐 (1963~1964)
바이에른 뮌헨(1964~1979)
포트로더레일 스트라이커즈 (1979~1981)
국가대표 62경기 68골
스태프 바이에른 뮌헨 II 수석코치 (1992~ )

1969 Ballond'or
수상
잔니 리베라
2위
이지 리바
3위
게르트 뮐러
1970 Ballond'or
수상
게르트 뮐러
2위
비 무어
3위
이지 리바
1972 Ballond'or
수상
프란츠 베켄바워
2위
게르트 뮐러
3위
터 네처
1973 Ballond'or
수상
요한 크루이프
2위
노 조프
3위
게르트 뮐러
1967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
게르트 뮐러
1969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
게르트 뮐러

FC Bayern München XI[1]
FW
지오반니 에우베르
FW
칼 하인츠 루메니게
FW
게르트 뮐러
MF
로타어 마테우스
MF
슈테판 에펜베르크
MF
메멧 숄
DF
파울 브라이트너
DF
프란츠 베켄바워
DF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DF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GK
제프 마이어

FC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Der 'Kaiser'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Der 'Bomber der Nation' (폭격기)
게르트 뮐러
Die 'Katze von Anzing' (안칭의 고양이)
제프 마이어
Der 'Macher' (창조자)
울리 회네스
Der 'Visionär' (공상가)
칼 하인츠 루메니게
Der 'Leitwolf' (늑대사령관)
로타어 마테우스
Der 'Chef' (지배자)
슈테판 에펜베르크
Der 'Samba-Stürmer' (삼바공격수)
지오반니 에우베르
Der 'Beständige' (꾸준함)
롤란트 볼파르트
Der 'Libero' (리베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Der 'Mr. Europacup' (Mr. 유로파컵)
디터 회네스
Der 'Stratege' (전략가)
파울 브라이트너
Der 'Kaisers Bodygaurd' (황제의 기사)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Der 'Titelsammler' (타이틀수집가)
비셴테 리사라수
Der 'Rekordmeister' (기록챔피언)
메멧 숄
Der 'Titan' (거인)
올리버 칸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제프 마이어
(1977~1979)
게르트 뮐러
(1979)
한스-게오르그 슈바르첸벡
(1979~1980)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FIFA 월드컵, UEFA 유로 에서 우승, 득점왕,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

폭격기 (Der Bomber)

골문 안에서는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를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했던 선수

공격수로서의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Contents

1. 커리어
2. 일대기
2.1. 데뷔
2.2. FC 바이에른 뮌헨
2.3. 국가대항전에서
2.4. 미국으로
2.5. 은퇴 후, 현재까지
3. 플레이 스타일
4.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누구인가?


1. 커리어



그야말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 커리어 끝판왕.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우승 : 1968–69, 1971–72, 1972–73, 1973–74
DFB - 포칼 우승 : 1965–66, 1966–67, 1968–69, 1970–71
레기오날리가 우승 (당시에는 2부 리그) : 1964–65
UEFA 유러피언 챔피언스 컵 우승 (현재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 1973–74, 1974–75, 1975–76
UEFA 위너스 컵 우승 (현재 UEFA 슈퍼컵의 전신) : 1966–67
인터컨티넨탈 컵 우승 (현재 FIFA 클럽 월드컵의 전신) : 1976


독일 국가 대표

FIFA 월드컵 우승 : 1974
UEFA 유로 우승 : 1972


개인 수상

발롱도르 수상 : 1970년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수상 : 1967년, 1969년
분데스리가 40년 역사상 최고의 선수 선정 : 1963 – 2003
분데스리가 득점왕 : 1967년, 1969년, 1970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8년
유러피안 골든 부트 수상 : 1970년, 1972년
FIFA 월드컵 득점왕 : 1970년
UEFA 유로 득점왕 : 1972년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 1973년, 1974년, 1975년, 1977년
FIFA 훈장 : 1998년
FIFA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00인 : 2004년
FIFA 선정 20세기 최다 득점자 1위 : 803골
FIFA 월드컵 베스트 팀 : 1970년
UEFA 유로 베스트 팀 : 1972년
Bravo Otto 상 : 1973년, 1974년
Bravo Otto 2위 : 1975년
Bravo Otto 3위 : 1972년, 1976년

2. 일대기


2.1. 데뷔


1945년 11월 3일, 독일 뇌르들링겐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항상 축구를 했죠." 그리고 그는 항상 1.FC 뉘른베르크에서 뛰고 싶어했다고 한다. 솔직히 거기 안 간게 다행이다 그리고 그는 출신 지역 팀인 뇌르들링겐에서 1963년 데뷔했는데, 데뷔하자마자 31경기 51골(...)을 기록했다.

2.2.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합

그리고 1964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카우터가 그를 스카웃해갔다. 그 팀은 다름 아닌, 당시까지는 분데스리가 신흥 강호로서 팀 몸집을 불리고 있던 FC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그리고 그는 팀에서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는데, 그 친구들이 다름 아닌 프란츠 베켄바워 (...)제프 마이어 (...) 독일 역대 최고의 공격수, 수비수, 골키퍼가 함께

시즌 클럽 리그 경기 리그 골 리그 어시스트 컵대회 경기 컵대회 골 유럽대회 경기 유럽대회 골 통산 경기 통산 골
1964/65 B. Munchen 26 33 10 32 35
1965/66 B. Munchen 33 15 4 6 1 39 16
1966/67 B. Munchen 32 28 6 4 7 9 8 45 43
1967/68 B. Munchen 34 19 7 4 4 8 7 46 30
1968/69 B. Munchen 30 30 4 5 7 35 37
1969/70 B. Munchen 33 38 10 3 4 2 0 38 42
1970/71 B. Munchen 32 22 14 7 10 8 7 47 39
1971/72 B. Munchen 34 40 16 6 5 8 5 48 50
1972/73 B. Munchen 33 36 8 5 7 6 12 44 55
1973/74 B. Munchen 34 30 10 4 5 10 8 48 43
1974/75 B. Munchen 33 23 15 3 2 7 5 43 30
1975/76 B. Munchen 22 23 3 6 7 6 5 34 35
1976/77 B. Munchen 25 28 4 4 11 4 5 33 44
1977/78 B. Munchen 33 24 7 3 4 6 4 42 32
1978/79 B. Munchen 19 9 0 2 4 21 13
총합 B. Munchen 453 398 118

역대 최강의 공격 포인트 기록자


1970년대 바이에른 뮌헨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리그 우승이 1회에 불과했던 바이에른 뮌헨은 1970년대 이후 독일 축구의 제왕으로 등극한다.

명실상부한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이자 황금기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전력은 강력했다. 당시 분데스리가는 지금과는 달리 세계 최강의 리그였다. 강력한 경쟁자로는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유프 하인케스, 귄터 네처 등의 버티는 최강의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에서 4번, DFB - 포칼에서 4번 우승하는데, 이 때의 주역은 분명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였다.
여기서 프란츠 베켄바워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축구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안드레아 피를로가 곧잘 보여주는 후방에서 최전방으로 찔러주는 찬스메이킹. 사비 에르난데스가 보여주는 볼 배급과 경기 조율, 그리고 독일 역대급 윙인 위르겐 그라보프스키보다 드리블을 잘했고, 독일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1974년 서독 월드컵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를 꽁꽁 묶어버린 바로 그 수비수인 베르티 포그츠보다 수비를 잘했으며,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선수 중 한 명인 프강 오버라트보다 플레이 메이킹에 능한 선수였다. 그야말로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경기를 결정 지은 것은 게르트 뮐러였다. 프란츠 베켄바워의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반복된다. 이 경기에서 프란츠 베켄바워가 잘했다... 그리고 게르트 뮐러가 결승골을 넣었다. (반복, 반복, 반복...) 그야말로 게르트 뮐러가 없었다면 바이에른 뮌헨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프란츠 베켄바워, 울리 회네스, 칼 하인츠 루메니게, 파울 브라이트너, 제프 마이어 같은 동료들이 모두 극찬한 부분이다.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 & 분데스리가 MVP 2회로 당시 유럽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를 완전히 씹어먹었다.

앞서 말했던 "정신나간 조합"을 내세운 바이에른은 1970년 들어 마침내 유럽무대를 정복한다.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우승. 그것도 3연패(1974, 75, 76).[2]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은...득점왕 4회라면 설명이 될까. 그 중에서도 백미는, 클럽이 3연속 우승했던 때에 맞춰서 득점왕 역시 당시 전무했던 3연패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3]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을 포함한 유럽 클럽대항전에서만 때려넣은 골이 69골. 2010년 말에 라울 곤잘레스필리포 인자기가 경신하기 전까지 확고부동의 1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미라면 유러피언 골든슈 2회. 특히 1972년 수상 당시에 세운 기록이 바로 그 유명한 한시즌 55골.[4] 이렇게 날아다녔으니 발롱도르 를 받아야겠지. 발롱도르 포디움에도 4번이나 들었다. 사실 한번밖에 못받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이게 다 두 놈 때문이다. 3인자의 설움


전설이 전설에게

리오넬 메시는 유니폼에 자신의 사인과 함께 '게르트 뮐러에게, 저의 존경을 담아.' 라고 적었다.

현재 바이에른 뮌헨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리오넬 메시가 게르트 뮐러의 기록을 경신한 후에 그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보내서 존경을 표했다. 게르트 뮐러는 리오넬 메시의 기록 경신은 대단히 축하하면서도, "그의 유일한 단점은 바이에른 뮌헨 선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라며 유머를 던지기도. 독일식 유머

2.3. 국가대항전에서



1970년대 바이에른 뮌헨처럼, 1970년대의 서독도 역대 최강 팀 중 하나로 무조건 거론되는 팀이다.

당시에 '람바참바'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이는 유럽의 삼바 축구라는 뜻으로 역대 최강 팀인 1970년의 브라질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붙혀진 별명이다.

사실 스페인보다 훨씬 전에 메이저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던 팀이다. 아쉽게도 1976년 유로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패했다.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이탈리아와의 4강전이 끝나고, 지아친토 파케티와 함께

1970년 멕시코 월드컵

1경기 vs 모로코 2:1승 결승골
2경기 vs 불가리아 5:2승 헤트트릭
3경기 vs 페루 3:1승 헤트트릭
8강 vs 잉글랜드 3:2승 연장 결승골
4강 vs 이탈리아 3:4패배 연장에서만 두 골
5경기 10골로 득점왕 차지


1972년 유로, 소련과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한 게르트 뮐러

1972년 유로

4강전 vs 벨기에 2:1승 2골
결승전 vs 벨기에 3:0승 (선제 결승골 + 마지막 쐐기골)


World Cup Champion


월드컵을 들어 올리다


1974년 서독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한 게르트 뮐러

1974년 서독 월드컵 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 월드컵에서 게르트 뮐러는 7경기 4골로 극히 부진 (...) 한 성적을 거두었다. 뭐라고? 하지만 또 다시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독일의 월드컵 우승의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1974년 월드컵 결승은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와 프란츠 베켄바워의 서독간의 대결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작 1분만에 16번 공을 돌리던 네덜란드는 요한 크루이프에게 공을 패스했고, 요한 크루이프는 무서운 스피드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PK를 얻어냈다. 1분만에 요한 네스켄스가 PK를 성공시켰고, 이후 네덜란드는 서독을 농락시키며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서독은 PK를 얻어내며 파울 브라이트너가 PK를 성공시켰고, 게르트 뮐러가 결국 환상적인 결승골을 꽂아 넣었다. 사실 게르트 뮐러는 후반에 한 골을 더 추가했다. 분명 명백한 골인데도 오프사이드 판정이 선언되었지만 게르트 뮐러는 항의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렇게 심판이 오심을 하더라도 항의하지 않았다. 어차피 난 또 넣을 수 있어 아무튼 이렇게 월드컵에서 우승하여 진정한 커리어 끝판왕이 되었다.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보다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펠레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호나우두 등장 이전 월드컵 최다 득점자이다.. 월드컵에서만 13경기 14골로, 2014년 현재로는 호나우두의 15골과 클로제의 16골에 이어 3위다. 06년 당시 호나우도가 뮐러의 기록을 32년만에 드디어 경신했다고 전 세계가 울고불고 난리였던 걸 생각하면.. 74년 월드컵 우승은 부록이다.[5]

2.4. 미국으로


1978/79 시즌 이후 바이에른 뮌헨에서 떠나게 된다. 당시 감독과의 불화가 있었고 전성기에서 내려오던 시점인 게르트 뮐러는 떠나기에 적절한 시기였다고 판단한 것 같다. 사실 FC 바르셀로나에서 그를 강력하게 원했다. 계약서까지 준비되며 사실상 입단이 확정되었지만, 무려 독일 정부에서 이적을 막았다. 그리고 FC 바르셀로나는 그의 대체자로 영입한 사람들이 무려 요한 크루이프한 네스켄스... 영입 안 하길 잘했다.

시즌 클럽 리그 경기 리그 골 리그 어시스트 컵대회 경기 컵대회 골 유럽대회 경기 유럽대회 골 통산 경기 통산 골
1979 F. L. Strikers 27 19 17 27 19
1980 F. L. Strikers 36 16 8 36 16
1981 F. L. Strikers 17 5 0 17 5
통산 F. L. Strikers 80 40 25



미국으로 파견된 폭격기


타지에서 만난 인생의 친구


친구에서 적으로, 미국에서도 그의 기록적인 득점 행진은 이어졌다.

결국 미국의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로 이적한다. 처음 5경기 동안은 무득점이어서 많은 비판을 들었으나, 6번째 경기에 4골을 꽂아넣으며 폭격기는 다시 임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에서도 2경기 1골이라는 놀라운 노익장을 과시하고 은퇴한다.

2.5. 은퇴 후, 현재까지



임무를 마치고 평화롭게 착륙한 폭격기

은퇴 후에 사망할 위기까지 갔다. 동료들은 미국 진출이 큰 이유였다고 말하는데, 언어는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진출한 것이 실수였다는 것이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간 수치가 무려 2000에 달할 정도로 사망 직전까지 갔으나, 그의 곁에는 프란츠 베켄바워, 울리 회네스, 칼 하인츠 루메니게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의 보드진이 된 그들은 게르트 뮐러를 구원하기로 하고 그에게 1992년 팀 코치직을 주었다. 그렇게 1군 팀에서 몇 년 코치를 하다가 2015년 현재까지 2군 팀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이것이 그의 저 평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도 꽤나 모습을 자주 드러내고, 광고도 찍으며, 인터뷰도 한다. 물론 타 전설만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자주 소식을 들려 주고 있다. 1992년 이후로 술에 입도 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토버 페스트 같은 행사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의 후계자와 함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버지와 아들


같이 광고도 찍었다. '뮐러 우유'라고... (실제 이름이다.)

3. 플레이 스타일


게르트 뮐러가 주워 먹기 공격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로 아니다. 물론 그의 위치 선정이 큰 장점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 현재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하고 있는 리오넬 메시 같이 엄청난 스피드와 드리블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완성형 스트라이커였으며, 스트라이커로서의 모든 능력을 다 가지고 있었다. 완벽한 트래핑, 번개 같고 정교하게 이를데 없는 슛팅력,[6] (단거리나 중거리나 가리지 않았다.) 지칠줄 모르는 체력,[7] 역도 선수같은 하체에서 나오는 완벽한 밸런스, 그리고 양발을 완벽하게 자유자재로 썼다. 테크닉도 대단해서 중거리슛, 발리슛, 심지어 로빙슛까지 못하는게 없었다. 위치선정 능력이 아니여도 그는 최정상급 스트라이커였다.

그리고 위의 스탯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시스트도 상당히 많이 찍었는데, 이게 바로 연계가 안 된다는 말에 반박하는 증거다. 이타적인 플레이어였던 게르트 뮐러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훌륭한 원 터치 패스와 센스 있는 패스로 어시스트를 상당히 많이 찍었다. 사비 에르난데스처럼 완벽한 패스를 뿌려야만 훌륭한 연계인가? 다시 말하지만 게르트 뮐러는 스트라이커다. 스트라이커는 공격 포인트를 위한 포지션이다. 한 마디로 그는 스트라이커라는 역할을 그 어떤 선수보다도 잘 소화해낸,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이다.

그는 보통 역대 축구 선수 순위를 뽑으면 10위 ~ 15위 정도에 꼽히는 선수다. 그는 아까 말했듯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 메이킹에는 능하지 못한 선수였다. 게르트 뮐러보다 위에 뽑히는 선수들은 모두 플레이 메이킹에 능한 선수들이다. 이를 퍼포먼스적인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게르트 뮐러가 스트라이커로서 보여준 퍼포먼스도 이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게르트 뮐러보다 나은 플레이 메이킹을 보여주며 경기를 지배하며 게르트 뮐러만큼 훌륭한 커리어나 공격 포인트를 쌓은 선수들은 더 나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프란츠 베켄바워는 위에도 설명했듯이 그야말로 경기를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게르트 뮐러보다 나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퍼포먼스라면 측면에서 게르트 뮐러가 부족했기 때문에 폄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의 공격 포인트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스트라이커로서 그런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스트라이커가 해야 할 임무를 가장 훌륭하게 수행해낸 선수인데 퍼포먼스가 부족했다고?

그는 굉장히 겸손한 선수로 유명한 데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자가 "현대 축구에도 당신이 통할 것 같냐" 라고 묻자 "요즘 축구는 오히려 나에게는 좋은 환경이다. 내가 뛰던 시절에는 스트라이커만 수비하는 수비수가 무조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며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이는 곧 자신 있다는 뜻 되겠다.

또 그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박했다.


모든 골은 같다. 골 라인을 넘어가면 골인 것이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개인기나 기술이 아니라 순간적인 재치와 판단력이다.

공을 나에게 줘, 그럼 내가 알아서 할께!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런 그의 명언을 훌륭하게 대변했다.

아무튼 그가 등장하고, 은퇴한 이후 골에 관련된 기록은 모두 그가 가지고 있었다. 세월이 가면서 하나 둘씩 깨져가긴 했지만, 정말 대단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그냥 스탯을 보자. 봄버(Bomber)의 위엄 앞에 무릎 꿇어라!


커리어 통산 855경기 803골

비공식 경기 포함 통산 1216경기 1461골

클럽에서 555경기 486골

국가 대표로서 62경기 68골

월드컵에서 13경기 14골


시즌 클럽 리그 경기 리그 골 컵대회 경기 컵대회 골 유럽대회 경기 유럽대회 골 통산 경기 통산 골
1963/64 TSV Nordlingen 33 46 33 46
1964/65 B. Munchen 26 33 32 35
1965/66 B. Munchen 33 15 6 1 39 16
1966/67 B. Munchen 32 28 4 7 9 8 45 43
1967/68 B. Munchen 34 19 4 4 8 7 46 30
1968/69 B. Munchen 30 30 5 7 35 37
1969/70 B. Munchen 33 38 3 4 2 0 38 42
1970/71 B. Munchen 32 22 7 10 8 7 47 39
1971/72 B. Munchen 34 40 6 5 8 5 48 50
1972/73 B. Munchen 33 36 5 7 6 12 44 55
1973/74 B. Munchen 34 30 4 5 10 8 48 43
1974/75 B. Munchen 33 23 3 2 7 5 43 30
1975/76 B. Munchen 22 23 6 7 6 5 34 35
1976/77 B. Munchen 25 28 4 11 4 5 33 44
1977/78 B. Munchen 33 24 3 4 6 4 42 32
1978/79 B. Munchen 19 9 2 4 21 13
1979 F. L. Strikers 27 19 27 19
1980 F. L. Strikers 36 16 36 16
1981 F. L. Strikers 17 5 17 5
총합 533 438 62 68 74 66

그렇게 넣은 골이 바이에른 뮌헨의 리그 경기에서만 453경기 398골. 바이에른 클럽 역사 최다골은 물론이요 분데스리가 역사상 통산 최다골이다. 경기당 0.87골. 분데스리가 지난 40년 역대 최고의 공격수 선정의 내공은 이 정도다.

말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80경기 40골.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2경기 1골이라는 스탯을 쌓고 있었다. 이쯤 되면 사람인지가 의심된다.

결국 국내 컵대회와 유럽컵대회, 미국 시절 등을 합하면 클럽에서는 통산 669경기 572골을 넣었다.

국가대표로 나가면 한술 더 뜬다. 62경기 68골. [8] A매치에서 1경기 1골 이상 기록을 세운 공격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축구 강호들이 즐비한 유럽에서? 쥐스트 퐁텐느는 21경기 30골 경기당 1.5골인데? 코치시 샨도르도 68경기 75골 넣었다.어쨌거나 몇 없잖아.

사실 축구선수 중에 흔치 않게 스탯으로만 선수의 설명이 가능한 경우이며 그래서 그 위엄이 더욱 절실하다. 여기에 미미하긴 하지만 클럽 월드컵의 전신인 인터컨티넨탈컵이나 슈퍼컵까지 포함하면 골 수가 늘어나긴 한다. 특히 금방 취소돼서 정식 커리어로는 인정해야 되느냐 마느냐 다툼이 있지만, 분명 클럽 차원에서 참가했던 리그컵까지[9] 포함하면 뮐러의 커리어는 더욱 무시무시해지는데, 이 경우 뮐러의 시즌 최다 골기록은 53경기 62골이 된다...이 무슨 우주괴수... [10]

이런 굇수스런 골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저평가 당하는 이유는 그가 말그대로 정말 정말 쉽고 주워먹듯이 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골영상 보면 갑자기 공이 뮐러 발앞에 떨어지고 그걸 차넣는게 정말 많다. 뮐러 본인은 "자신은 공이 올 위치를 알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정말로 그렇다는 느낌.

4.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누구인가?


축구 역사상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꼽으라고 하면 대체로 게르트 뮐러, 에우제비오, 마르코 반 바스텐, 호나우두, 호마리우 정도의 선수들이 언급된다. 펠레, 리오넬 메시, 페렌츠 푸스카스 같은 선수들은 엄연히 말하면 포워드다. 포워드와 스트라이커는 살짝 다른 개념이다. 보통 포워드가 스트라이커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며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도 더욱 크다.

해외 축구를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 접한 사람들은 대체로 게르트 뮐러를 인식할 때 '호나우두 전에 월드컵 최다 득점자' 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저 위의 5명의 스트라이커 중 가장 'VS 놀이' 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두 명은 게르트 뮐러와 호나우두라고 할 수 있다.

호나우두가 게르트 뮐러보다 나은 스트라이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논리를 제시한다.

1. 요한 크루이프가 직접 "호나우두는 1974년 게르트 뮐러가 지닌 실력의 3배 정도라고 보면 된다"라고 극찬했다.

정작 요한 크루이프는 197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게르트 뮐러에게 결승골을 맞아서 패배했으며 요한 크루이프가 독일 선수들에게 좋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2. 월드컵 최다 득점

게르트 뮐러는 2번의 월드컵에서, 호나우두는 3번의 월드컵에서 이룬 업적이다. 게다가 게르트 뮐러는 197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한 골을 오심으로 도둑 맞았다.

3. 개인상 수상 경력

반대로 생각해보자, 호나우두가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뛰었다면 과연 2번의 발롱도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당시에는 피파 올해의 선수상이 없었다. 지금도 없어졌지만 게르트 뮐러는 1970년 발롱도를 수상한 바 있다. 물론 한계점은 있다. 이 때는 유럽 선수에게만 상을 주던 시점이라 만약 지금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사실상 무조건 펠레가 받는다고 보면 된다. 다만 변명을 하자면 1967년과 1969년에도 게르트 뮐러는 상을 탈 수 있는 조건이 충분했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이는 참 안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래서 시대를 맞추어서 잘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게르트 뮐러가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와 동시대에 뛰지 않았다면 더욱 많은 개인 수상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독과 바이에른 뮌헨의 황금기도 없었을 것이다. 결론은 역사에 만약은 없는거다.

그리고 호나우두가 게르트 뮐러보다 우위라고 하기에는 클럽 커리어가 너무도 약하다. 적어도 역대 최고의 선수들은 한 번쯤은 해 본다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없다. 게르트 뮐러가 클럽과 국가 대표를 가리지 않고 호나우두는 코파 아메리카 2번 우승 및 MVP(97, 99), 뭐 뮐러 시절에 2년마다 유로컵 했다면 2번 우승했겠지만.훌륭한 활약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둘 모두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게르트 뮐러가 중앙 라인을 넘어서면 관중들이 일어서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골을 넣을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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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5년 FC 바이에른 뮌헨이 66,000명의 바이에른 팬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선정된 구단 역대 베스트11이다.
  • [2] 유러피언 컵(現 챔피언스리그)를 3연패한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아약스에 이은 3번째이고, 그 후로는 2연패조차 쉽지 않은 판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신이 멍해지는 기록이다.
  • [3] 챔스 득점왕 3연패 기록은 30년이 넘도록 누구의 접근도 허용치 않다가 어떤 루저에 의해 마침내 경신되었다.
  • [4] 2010-11시즌에 호날두나 메시가 기록 깨겠다고 날뛰다가 결국은 못 다다른 그 기록이다(...). 하지만 결국엔 2012년 4월 1일에 메시가 시즌 56호골을 넣으면서 신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 [5]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은, 호나우두나 클로제가 최소 3번 이상 월드컵에 나가 세운 기록인 반면, 이 사람은 딱 2번(1970, 1974) 나가서 세운 기록이라는 점이다.
  • [6] 근거리에서 때리는 폭발적인 슛팅 때문에 Bomber로 불리운다
  • [7] 기자가 비결을 물었을때 한 대답이 어머니의 감자 샐러드(...)
  • [8] 국가 대표로서는 조기 은퇴를 했기 때문에 경기 수가 적은 편이다.
  • [9] 당시 국제 경기가 독일에서 개최되는 바람에 줄어든 경기수를 벌충하려고 실시했던 것이니 인정해야 된다는 말에 근거가 있다. 남들 다 참여한 시합이니까...
  • [10] 게르트 뮐러가 보유한 한 시즌 유럽 최고 골 기록은 2011/12 시즌 리오넬 메시가 60경기 73골을 기록하면서 갱신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메시는 국대 경기에선 아직 콩라인 탈출을 못하는 중이라...)